얼마 전 만났던 한 영화감독님이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저녁 7시 30분에 펠리니 영화를 보러 가야 할지 SBS <아내의 유혹>을 봐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아내의 유혹>을 보고 말았어요” 웃자고 하는 말 같지만 사실 그 말을 하는 당사자는 꽤나 심각한 표정이었습니다. 염치와 예의가 사라진 그 놀라운 세계는, 인간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 ‘막장’의 진수는, 불량식품과도 같이 먹으면 몸에 안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쩐지 피하기 힘든 유혹입니다.

한때 MBC <인어아가씨>, SBS <하늘이시여> 같은 드라마가 세상에 끼치는 영향을 너무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러다 어떻게 될까, 시청자들이 계속해서 이런 드라마를 높은 시청률로 보다간 정말 정신이 좀 먹을 거야, 라고 우려하던 때가 있었죠. 그러나 지난 주말 MBC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열연한 ‘쪽대본 드라마’편을 보면서 우리가 이제 그 ‘막장’의 드라마를 가지고 즐길 수 있는 충분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놓였습니다. 저는 시청자들이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에도 TV 앞을 떠나지 못하는 스스로를 폄하하는 일일 테니까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골라 볼 줄 아는 변별력을, 그 코미디 같은 드라마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망치지 않은 채 마음 것 놀 줄 아는 유희정신을 가진 시청자들이 있는 한 그 어떤 ‘막장’의 향연이 펼쳐진다 해도 우리는 끄떡없을 것입니다.

대신 <10 아시아>는 그 극단의 드라마와 수작들 사이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고 놀 수 있는 나침반 하나를 독자 여러분의 가슴 속에 심어 드리고 싶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세요. 그 마음가짐이 어쩌면 현재의 TV세계를 여행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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