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좀 안아줘”라고 유약하게 말하던 <쓰릴 미> 속 ‘나’의 모습으로 이창용을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그는 데뷔작 <알타보이즈> 속 에이브라함에 더 가깝다. 유머감각과 포용력, 그리고 강한 확신까지 가졌던 그 에이브라함. 2007년 <알타보이즈>로 무대에 처음 등장한 이창용은 이후 <이블 데드>와 <쓰릴 미>로 관객들을 만났다. 2008년, 많지 않은 작품에도 스스로 “무열이형, 정석이형 팬들을 좀 뺏어왔죠”라며 장난스럽게 웃을 만큼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그는, 2월 6일 첫공연을 앞둔 프랑스 뮤지컬 <돈 주앙>의 연습이 한창이다. “<돈 주앙>은 일단 한국어버전으로 처음 올라가는 작품인 만큼 부담도 있지만, 스스로도 기대가 많이 되는 작품”이라며 눈을 빛낸다. 불안한 마음보다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뮤지컬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그 작품에 참여하게 되어 부푼 마음이 슬며시 삐져나오는 순간이다.

<돈 주앙>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연스럽게 동작이 커지고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이번 작품에서 이창용은 “군대 갔는데 그 사이 돈 주앙에게 애인을 뺏겨 상처 받은 인물” 라파엘 역을 맡았다. 처음으로 하게 되는 대형뮤지컬인 만큼 어려운 점들도 많지만, 하나하나 배우는 과정이 그저 감사하고 기쁘단다. 이제 데뷔 2년차, 인터뷰 내내 ‘배움’, ‘경험’, ‘연륜’이라는 단어들을 내뱉던 그는 배우들의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욱 돋보이는 <맨 오브 라만차>를 No.1 뮤지컬로 꼽았다.

<맨 오브 라만차>는 1605년 에스파냐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지은 소설 <돈키호테>를 뮤지컬로 옮긴 작품이다. 자신이 기사 ‘돈키호테’라 믿고 있는 노인 알론조 키하나의 모험담을 통해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전달하는 뮤지컬이다. 한국에서는 2005년 김성기, 류정한 주연의 <돈키호테>로 첫선을 보였다. 그 후 2년 뒤, 제목을 <맨 오브 라만차>로 바꾸고 조승우, 정성화를 캐스팅하여 많은 관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극중극이라는 형태, 뮤지컬 넘버들, 인물간의 관계들이 참 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우리 읍네>, <밑바닥에서> 같이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삶이 있는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맨 오브 라만차>가 그런 작품인 것 같아요. 특히 하녀 알돈자 같은 경우 초반엔 자신을 레이디 ‘둘시네아’라고 부르는 돈키호테를 무시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둘시네아’라고 인정하잖아요” 작품에 대한 감상 외에도, “류정한 선배는 최고의 아우라를 보여주는데, 그 모습이 정말 감동”이라며 지난 공연, 선배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소감도 빼놓지 않는다. 내내 선배들의 연기에 감탄해 이야기를 하던 그도 돈키호테에 도전해보고 싶지 않을까? <헤드윅>이나 <지킬앤하이드>처럼 해보고 싶은 다른 작품들을 물으면 “아휴, 제가 벌써 어떻게”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맨 오브 라만차>만큼은 “정말 빼빼마르고 나이 한 4~50정도 먹으면 그런 아우라가 생겨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며 수줍게 웃는다.

‘The Impossible Dream’
‘Man of La Mancha’‘The Impossible Dream’을 이창용은 <맨 오브 라만차>의 베스트 넘버로 꼽았다. 이 두 곡은 작품을 대표하는 넘버이기도 하고, <맨 오브 라만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곡이기도 하다. 특히 ‘The Impossible Dream’은 잃어버린 꿈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넘버이고 그만큼 극에서 불리는 버전도 여러 가지 버전인데, 이창용은 개인적으로 엔딩 때 불리는 버전을 특히 더 좋아한단다. 극중극 초반 세르반테스를 무시하던 죄수들은 극이 진행되면서 그를 이해하게 되고, 마지막 종교재판을 위해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죄수들이 함께 이 노래를 열창하며 응원한다. 이창용은 마지막 엔딩을 떠올리며 “지금 다시 생각하니까 닭살이 돋네요. 소름끼쳐요”라고 바짝 긴장한다. 한동안 그 장면을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저장해두었던 때가 생각나 함께 소름이 끼쳐온다.

“더 많이 경험하고, 고민하고, 배울 생각이다”

2009년, 이창용은 처음으로 하게 되는 대형뮤지컬 <돈 주앙>과 창작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에 온 힘을 쏟을 생각이다. <돈 주앙>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빼앗긴 라파엘으로, 4월에 올라갈 예정인 <내 마음의 풍금>에서는 어수룩함으로 똘똘 뭉친 시골 총각선생님 강동수로 관객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앞으로도 “시작의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새롭고 다양한 작품들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친다. 최근 부쩍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그는 “나이와 경력에 비해 잘 풀려가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순간 초심을 잃을 때가 있다”며 경계 또한 늦추지 않는다. 인터뷰 내내 “운이 좋았죠”, “복이 많아요”라는 말을 잊지 않았던 이 젊은 배우가 20년 후에 찾아올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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