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과속스캔들>을 보며 기동(왕석현)이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손자가 저렇게 귀엽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키워주고 남을 텐데’ 했다. 안타깝게도 워낙 애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뚱한 가계인 터라 그처럼 애교 넘치는 아이가 태어나줄리 만무하지만. 얼마 전 SBS <스타킹>에 출연한 석현이를 보니 그저 표정 연기가 일품인 꼬마일 뿐이 아니라 애당초 연예인의 끼를 타고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MC 강호동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애드리브며 비의 ‘레이니즘’을 따라 추는 몸놀림이 예사 다섯 살짜리는 분명 아니었던 것. <과속스캔들>이 별 다른 홍보 없이 입소문만으로 어느새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던데, 사실 성공의 열쇠는 어린 기동이에게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태현도 기대이상 선전했고 박보영도 신선했지만 아역 왕석현이 없는 <과속스캔들>은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일 테니까. 어쩌면 이 영화의 뜻밖의 선전을 계기로 아역스타를 앞세운 작품들이 많이 기획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다 예쁘다고? 모르시는 말씀

그러나 30초에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는 광고업계에는 ‘미녀(Beauty), 아이(Baby), 동물(Beast)’이 등장하는 광고는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3B법칙’이 있다지만 영화나 방송은 아이 중심이었다가 실패한 예가 꽤 많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우리 결혼했어요’ 중 ‘아이 돌보기’ 미션도 그다지 반응이 좋지 않았다. 제작진으로서는 의 영광을 재현해보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특히 알렉스-신애 커플의 네쌍둥이 돌보기는 최악의 반응을 얻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알신 커플의 아기보기는 왜 외면을 당한 걸까? 극단적으로 말해 의 재민이와는 달리 알신 커플이 돌본 네쌍둥이는 누가 나에게 맡길까 두려운 존재로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는지. 어떤 아기는 사랑스럽고 어떤 아기는 사랑스럽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아이 키워본 분이라면 다 아실 테지만 제아무리 <과속스캔들>의 황기동 어린이라 한들, 또한 전 세계가 열광해마지 않는 톰크루즈의 딸 수리라 한들 24시간 내내 마냥 사랑스러울 수는 없다. 어떤 아이나 어른을 질리게 하는 점은 다들 있기 마련이어서, 그림같이 예쁜 아기라 해도 당장 숨이 넘어갈듯 떼를 쓸 수도 있고, 지긋지긋하게 몇 시간씩 잠투정을 할 수도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돌 전의 아기라면 예쁠 때는 잠시잠깐일 뿐 하루 중 태반은 칭얼거리며 엄마를 힘들게 하는 법이거늘, 아기를 돌본 경험이 없는 청춘남녀에게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돌전의 아기를 넷씩이나 맡겼으니 좋은 그림이 나올 리 없고 네쌍둥이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질 리도 없는 것이다. 아기들도 낯설고 서툰 손길에 힘들었고 아기를 돌보는 연예인들도 지치고 힘겨워보였으니 재미도 감동도 없을 밖에.

부디 석현이가 그 천진난만한 미소를 잃지 않길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육아 문제에 매우 효율적인 좋은 프로그램임에도 “그거 아직 해?”라고 묻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이유도 같은 맥락이지 싶다. 누구나 내 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감수할 테지만 남의 아이의 긴 울음과 버릇없는 투정까지는 참아줄 생각이 없는 것이다.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부모라면 개선방안을 얻기 위해 기꺼이 시청하겠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던지고, 때리고, 부수고, 욕을 하는 아이를 한 시간 동안 지켜보겠나. 따라서 아이를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사랑스러운 점은 길게, 문제점은 짧게 부각시키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광고 ‘3B법칙’의 Baby도 ‘사랑스러울 때만’이라는 단서를 붙여야 옳지 않을까?

<과속스캔들>로 일약 스타로 부상한 왕석현이 <스타킹> 출연에 이어 모 한복디자이너 패션쇼 무대에 서고, 가수 케이윌의 도우미로 음악프로그램 무대에도 오르기도 하는 등 연예활동을 시작했다. 아마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개그맨 최양락에 버금가게 출연 요청이 쇄도하겠지만 그 옛날 전설의 아역배우 셜리 템플에서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만나는 맥컬리 컬킨에 이르기까지, 아역배우들의 흥망성쇠를 봐온 나로서는 살짝 걱정이 앞선다. 부디 석현이가 그 천진난만한 미소를 다 크도록 내내 간직해주길. 사람들은 아무리 귀여운 아이라 한들 ‘사랑스러울 때’만 사랑하는 법이니까. 사람들은 우는 아이도 못 견뎌하지만 아이답지 않은 아이는 더더욱 질색이더라고.

정석희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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