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걸 꼭 봐야 돼? 조금 있으면 에서 2PM이랑 샤이니가 나온다는데 남자 둘이서 치고 박고 싸우는 걸 봐야 돼?
걔네는 다른 가요 프로그램에서도 춤추고 노래할 거잖아. 오늘 에서는 두 번 다시 못 볼 그런 매치업이 벌어진단 말이야. 내가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줄게, 응? 가뜩이나 초반 경기도 못 봤잖아. 제발. 제발. 자, 시작한다. 시작해. 이거 되게 재밌는 경기야. 왼쪽에 있는 선수가 알리스타 오브레임이라는…뭐 잘 모르겠지? 아무튼 종합격투기 선수고, 그 옆 선수는 바다 하리라고 입식타격기 선수거든. 둘 다 자기 분야에서 되게 잘하는 선수인데 이번에는 입식타격, 그러니까 K-1 룰로 싸워. 말하자면 서서만 싸우는 거야.

저 덩치 큰 사람이 훨씬 세 보이는데?
오브레임? 딱 보면 그렇지? 격투기를 처음 보는 사람이면 그렇게 느끼기 십상이지.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말했듯이 이 경기는 서서만 싸우는 거거든. 만약 누운 사람을 깔고서 때려도 되는 종합격투기라면 상대방을 넘어뜨리기 위한 근력이 많이 필요하겠지만 서서 싸우기만 할 때는 날렵한 스피드랑 유연성이 중요하거든. 저 바다 하리라는 날씬한 선수는 발도 빠르고 주먹도 빠르고 몸 전체가 유연해. 만약에 종합격투기라면 붙잡힌 다음에 아무 것도 못하고 넘어져서 두들겨 맞겠지만 이렇게 서서 싸우는 경기라면 빠르게 상대방 주먹을 피하면서 위력적인 공격을 날릴 수 있어.

아니, 그래도 딱 보면 느껴지는 게…
하…참. 저 바다 하리가 어떤 선수인지 몰라서 그러는데, 서서 싸우는 경기의 최고봉이 K-1이거든? 그런데 저 선수는 이번에 K-1에서 준우승까지 갔던 선수야. 그것도 K-1의 전설이라는 피터 아츠를 KO로 이긴 그런 무시무시한 선수라고. 종합격투기면 몰라도 지금처럼 서서 싸우는 걸로는 절대…

꺄아악. 저 바다 하린가가 맞았어! 진거야? 진거야?
…적으로 유리하지만은 않지. 졌네. 졌어. 야, 오브레임 타격이 정말 많이 늘었는데? 이게 넌 되게 당연한 결과처럼 보이겠지만 엄청난 이변이에요. 이게 내가 잘 몰라서 틀린 예상을 한 게 아니라 거의 대부분 전문가들이 나처럼 예상을 했거든. 진짜 이변이야. 자, 다음 경기 뭐지? 야, 이것도 재밌네. 아까처럼 입식타격을 하는 무사시란 일본 선수랑, 종합격투기를 하는 게가드 무사시라는 선수가 입식타격으로, 그러니까 아까처럼 서서 싸우는 거야.

누가 유리해? 내가 보기엔 저 백인 남자가 잘할 거 같은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아. 저 백인 남자는 우선 서서 싸우는 경기 전문이 아니고, 체중도 일본인 무사시보다 적게 나가. 평소에 84㎏급에서 싸우는 선수니까 이번에 감량 안 했으면 90㎏ 정도? 그런데 저 일본인 무사시는 100㎏ 급에서 싸우는 선수라고. 이렇게 객관적 전력에서 훨씬 앞서니까…

어어어, 저 동양인 계속 두들겨 맞고 있는 거 같은데?
…방심을 하면 안 되지. 클린치하고, 클린치! 내가 말을 안 했는데 저 일본인 무사시는 되게 세다기보다 전략이 좋아. 지금은 좀 밀리지만 상대방이 때리다가 지칠 때를 기다리면서 장기전으로 갈 거야. 입식타격 경기는 얻어맞고 쓰러진 사람을 때릴 수 없기 때문에 한 대 맞고 쓰러져도 기운을 차릴 시간이 있거든. 정신 좀 차리고 상대방 공격을 피하면서 조금씩 때리면서 분위기를 탈거야. 그러면서 서서히 점수를 뺏는 거지.

그런가? 그런데 지금 너무 맞고 있는데? 어? 아예 기절한 거 같아.
하하…하… 오늘 너무 이변의 연속인데? 너 되게 운이 좋은 거야. 이런 격투기 역사에서 흔치 않은 순간만 다 보고.

그냥 네 예상이 잘못된 거 아니야?
무슨 소리! 오늘 뭔가 다 이상한 상황인 거라니까. 이번에는 예상이 틀릴 건덕지도 없어. 봐, 지금 나오는 선수 있지? 저 뚱뚱한 선수. 저 선수가 마크 헌트라는 선수인데 서서 싸우는 K-1에서 우승까지 했던 사람이야. 저 근육질 흑인 선수는 맬빈 맨호프라고 종합격투기 선수고. 이번 경기는 둘이서 종합격투기, 그러니까 누워서도 싸울 수 있는 경기를 하는 건데 마크 헌트가 분명히 이길 거야.

응, 그럴 것 같다. 저 사람 덩치가 훨씬 좋네. 그런데 종합격투기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어?
지금 저 글러브 보이지? 아까 입식타격을 할 때 쓴 글러브는 일반 복싱에서 쓰는 글러븐데 장갑으로 치면 벙어리장갑이야. 주먹을 보호하는 대신 손가락을 쓸 수 없지. 그런데 저 글러브는 손가락이 나왔잖아. 요즘 많이 끼는 반장갑이랑 비슷하지? 상대방을 잡고 쓰러뜨리거나 관절을 비틀 수 있는 경기니까 손가락을 쓸 수 있는 글러브를 쓰는 거야.

그렇구나. 그런데 내가 봐도 덩치 좋은 백인이 유리할 거 같긴 한데 저 흑인이 종합격투긴가 그쪽 선수면 이번엔 더 유리한 거 아니야? 이번엔 누워서 싸우는 거라며.
누워서 싸우는 게 아니라 누웠을 때도 싸울 수 있다고. 아무튼 네 말대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저 맬빈이라는 선수는 종합격투기 선수 중에서도 서서 때리는 게 전문이거든. 상대방이 자길 넘어뜨리기 전에 주먹으로 끝내는 타입이라 거의 입식타격 선수에 가까워. 그런데 저 맬빈이라는 선수가 K-1에 나갔다가 저 덩치 큰 마크 헌트라는 선수랑 막상막하였던 레이 세포란 선수한테 한 방 맞고 기절한 적이 있거든. 그러니까 이번에도 마크 헌트가 훨씬 유리해. 체중차로 보나 입식타격 경력으로 보나 이건 마크 헌트가 이겨. 마크 헌트가 지면 내 왼손모가지를…

아앗! 맞았어! 꺅! 누운 사람을 또 때리고 있어!
…옳은 일에만 쓰도록 하겠습니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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