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우빈 기자]
공효진 : 방송 중에는 촬영만 하느라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했다. 시청률이나 까불이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인기가 있다는 말만 들었다. 바깥 활동을 잘 못하고 현장과 집만 왔다 갔다 하니까 인기를 모르다가 끝나고 나서야 인기를 체감했다. 드라마가 인기 있을 때 사람들의 함성을 느끼고 싶은데 항상 끝나서야 인기를 알게 된다.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면서 쉴 거냐고 묻는데 (휴식 대신) 인기를 누리고 싶다. 사람들의 함성과 환호, 응원들을 좀 느끼고 싶다. (웃음)
10. MBC ‘고맙습니다’ (2007)의 이영신 이후 12년 만에 맡은 미혼모 연기였다. 동백이와 영신이를 비교해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공효진 : 달라진 게 없더라. 내가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상상은 거기서 거기였다. (웃음)
10. 스스로가 느낀 동백은 어떤 사람인가?
공효진 : 그동안 했던 캐릭터 중에 동백이가 제일 사회성이 떨어지고 사람들에게 별로 애정이 없는 친구다. 껍데기만 남아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아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인물. 채워진 적도 없고 있어도 탈탈 털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기를 할 때도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있어서 고민이 많았다. 모진 말에 피하는 모습을 보여도 되는 건지 싫어하는 티를 내도 괜찮은지 고민했는데, 동백은 감정을 쌓는 것조차 불필요한 인물이었다. 말 그대로 외톨이.
10. 가난하지만 굳센 ‘캔디형’ 캐릭터를 가장 많이 연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백은 이전 작품 속 캔디와는 다른 색의 캐릭터다. 어떻게 차별점을 주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공효진 : 내가 가난해도 속이 텅 빈 인물을 연기한 적은 없었는데 동백이는 외롭고 속이 없는 친구였다. 외톨이여서 사람과의 관계가 서툴다고 생각했다.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 설정을 줬고, 대화할 때 답답한 느낌을 주려고 앞머리도 일부러 길게 길렀다. 솔직히 말해 긴 생머리가 단발머리가 된 듯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동백이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인물이다. 기존에 했던 굳센 캐릭터들과 비교해 커다란 변화는 없었지만 많은 분들이 ‘이상하게 다르다’는 말을 많이 해주시더라. (웃음)
10. 그동안 했던 작품 중 ‘동백꽃 필 무렵’이 가장 많이 울었던 작품인 것 같다. 거의 매 회 엉엉 우는 장면이 많았다. 감정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었나?
공효진 : 매일 눈물바다였던 작품들이 많았다. 이번에는 오열과 통곡이 많았다. 마지막 촬영 1, 2주에는 눈알이 아파서 힘들었다. ‘우는 건 끝이야’라고 했는데 다음날 우는 장면을 찍기도 했다. 우는 장면을 찍을 땐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공들여서 눈물을 준비할 필요는 없는 배우다. 매도 먼저 맞자는 생각으로 컷 소리와 동시에 울어서 한두 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는다. 마음을 편하게 하고 눈물을 흘리는데, 대본이 좋으면 울지 않으려고 해도 저절로 눈물이 나온다. ‘동백꽃 필 무렵’이 그랬다. 너무 울어서 덜 우는 촬영분을 방송에 내보낸 적도 있다.
10. ‘공효진의 눈물’은 사랑스러우면서 안쓰럽다. 울면서도 대사를 놓치지 않아 시청자를 더 찡하게 하는 포인트가 있다. 연기의 비결이 있다면?
공효진 : 그냥 다수가 이해하기 쉽게 세심하게 연구를 한다. 감정의 미세한 선들을 내가 조금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웃음) ‘여기서 조금만 더 울면 궁상맞고 징징거리는 것처럼 보이겠다’는 것을 안다. 처절하다 싶다가도 감정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걸 잘하는 것 같다. 완급조절을 잘하는 게 아닐까 한다. 계속 울기만 하면 사람들이 피곤하다. 목이 멘 느낌이랄까, 눈물이 확 터지진 않지만 눈물을 터트리는 울먹임이 뭔지 아는 것 같다. 내 생각에는 그걸 내가 알고 연기를 하는 것 같다. (웃음)
10. 대본을 재밌게 읽었지만 영화 일정 때문에 촬영 시기가 맞지 않아 출연을 몇 번 고사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결국 출연한 이유는 대본에 대한 신뢰와 흥미가 컸던 것 같다.
공효진 :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가 영화 ‘뺑반’이 끝나고 ‘가장 보통의 연애’ 촬영을 준비 중이었다. 영화를 미룬 다음에 촬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동백꽃 필 무렵’은 올해 초 편성이 예정됐기에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다. 근데 대본이 너무 재밌었다. 당시 4부까지 나온 상태였는데 대본에 생소한 단어도 많았고 요즘 사람들이 쓰는 말, 예전에 썼던 대사들이 섞여있어서 놀라웠다. 대본을 보면서 사전을 많이 찾아봤다. 시기를 맞출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편성은 바꿀 수 없는 거라 고사했다. 그러면서 임상춘 작가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해서 문자를 했다. 같이 일을 하지 않는데 문자 보낸 건 처음이었다. 작가님께 ‘대본이 너무 재밌어요. 함께 못해서 아쉽지만 5부를 보여주면 안 될까요? 다음에 꼭 해요. 너무 재밌게 봤어요. 감사해요. 방송되면 재밌게 볼게요’라고 했다. 작가님이 그 말에 나를 포기 못 하겠다고 하셨다. 편성이 5월로 미뤄졌다가 다시 9월로 미뤄져서 결국 하게 됐다.
10. 임상춘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 노출을 꺼려서 굉장히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공효진 : 드라마를 보신 분들이 작가님에 대해 궁금해하는데 딱 동백이 같은 사람이다. 작가님이 외모를 언급해서 상상을 주지 말라고 하시더라. (웃음) 실제로 특이한 분은 아니고 말을 잘 들어주고 동백이처럼 선한 부분은 모두 갖고 계신 분이다. 대본을 읽고 궁금하거나 수정하고 싶은 부분을 말하면 잘 들어주고 바로 고쳐주셨다. 변주가 빠른 사람이고 칭찬밖에 못 하시는 분이다. 탁구공을 주면 배구공으로 만들어서 주는 분이다. 드라마가 끝난 후 ‘저한테 또 와주세요’라고 하셨다. 정말 말을 예쁘게 하시지 않나. 동백이 같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작가님일 거다. 선(善)으로 가득한 사람이다.
10. 드라마가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갔다. 인물마다 반전의 요소가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도록 이어졌다. 모든 상황들과 딱딱 맞아떨어져서 연기하면서도 놀랐을 것 같다.
공효진 : 우리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웃음) 엄마가 치매인데 치매가 아닌 것도 놀라웠고 까불이 흥식(이규성 분)에게 아버지가 있는 것도 놀라웠다. 정숙이 동백을 버리기까지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있었다는 것도 너무 놀라웠다. 그런 이야기가 다 있는 상태에서 반전을 거듭하는 게 신기했다. 참 많은 것들이 놀라는 포인트가 됐다. 무엇보다 내가 마지막 회에서 까불이를 손으로 때려잡는 것도 놀라웠다.
10. 동백이를 연기하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 혹은 상황이 있다면?
공효진 : 마지막 회에서 용식에게 ‘내가 용식 씨를 만난 게 기적일까요?’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용식은 ‘복권 같은 거 믿어요?’라고 되묻고 동백은 ‘나는 나를 믿어요’라고 대답한다. 그 장면을 찍고 나서 ‘아, 동백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동백이가 본인을 믿어주는 아이로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옥같은 장면이 많았지만, 내가 동백이를 연기하면서도 그런 대사를 할지 예상하지 못했기에 제일 인상 깊다.
10. 상대역인 강하늘은 어떤 배우였나?
공효진 : (강) 하늘이는 잘생김을 애써 감추는 배우다. 연기할 때 멋진 척하는 걸 진짜 힘들어하더라. (웃음) 사실 강하늘이 출연한 작품 중 기억에 남는 멜로가 없었다. 드라마 초반에는 로맨스가 강했기 때문에 강하늘의 로맨스와 멜로를 보고 싶었다. 연기력은 믿어 의심치 않았고 잘할 거라는 예상도 했지만 첫 대사를 듣고 감이 딱 왔다. 진짜 잘하더라. 강하늘은 어느 배우와 붙어도 잘 맞는 사람이다. 준비된 연기파 배우다. 나무랄 데가 없어서 짜증이 날 정도다. (웃음)
10. 향미 역의 손담비와는 실제로 친한 사이다. 사적으로 친하기 때문에 연기할 때 더 도움을 줬거나 조언을 해준 부분이 있었나?
공효진 : 도움이나 조언보다 지금 생각하면 향미와 (손)담비는 운명인 것 같다. 내가 대본을 보면서 가장 혹했던 캐릭터가 향미였다. 그래서 향미를 내가 아끼고 잘 됐으면 하는 친구가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사실 내가 친한 사람에게 작품을 먼저 제안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긴 기다림이나 작품 결말의 불투명성 등은 내가 겪는 건 괜찮아도 지인이 겪는 건 불편하다. 그런데 향미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 배역이기 때문에 남을 주기가 아까웠다. 어느 순간 담비를 보는데 향미 같이 보였다. 그게 운명이었던 것 같다.
10. 내년에 만 40세다. ‘로코퀸’이라는 수식어가 있을 만큼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강자인데, 로맨스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 나이가 주는 특별한 생각들이 있나?
공효진 : 감독님도 처음에는 (강) 하늘이와 10살 차이가 나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극 중에서 동백이와 용식이가 두 살 차이가 나는 설정인데, TV에서 나이 차가 더 많아 보일까봐 걱정하셨다. 기분이 나쁠 정도로 (웃음). 하지만 반응을 보고 ‘미안해요, 용식이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것 같아’라고 하셨다. 사실 나이에 대해서 별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지 않나. 어렸을 때는 그 말을 잘 모르기도 했고, 선배님이 ‘내가 37세인가 38세인가’라고 하실 땐 그냥 ‘왜 나이를 헷갈리시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 나이를 지나고 보니 그냥 괜찮은 것 같다.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괜찮다. 굳이 따진다면 다음 작품에선 몇 살 연하와 연기를 해야 하나, 이런 우스운 생각을 한다.
우빈 기자 bin0604@tenasia.co.kr
배우 공효진이 필모그래피에 인생작과 인생 캐릭터를 하나 더 추가했다. KBS2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통해서다. ‘동백꽃 필 무렵’은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된다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로, 지난 21일 최고 시청률 23.8%를 기록하며 종영했다. 공효진은 이 드라마에서 숱하고 얄궂은 인생의 고비들을 모두 넘기고 당차게 성장하는 동백 역을 맡았다.10. ‘동백꽃 필 무렵’이 방송 내내 수목극 1위였다. 마지막 회도 23.8%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고, 2049 수도권 타깃 시청률은 10%, 12%를 나타냈다.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높은 인기를 얻었는데 드라마의 인기를 체감했나?
사랑스러운 매력 때문에 ‘공블리'(공효진+러블리)라 불리는 그의 매력은 이번 드라마에서 제대로 정점을 찍었다. 공효진은 순수하면서도 씩씩한 동백을 특유의 사랑스러움을 더해 연기했다. 공효진은 소극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동백을 더 가엽게 만들었고, 용식(강하늘 분)의 사랑을 받으며 씩씩해진 동백을 더 빛나게 만들었다. 시청자들은 그의 눈물에 함께 울었고, 미소에 함께 웃었다. 공효진의 연기는 대중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며 행복한 시간을 선물했다. ‘믿고 보는 공블리’가 된 공효진을 지난 25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공효진 : 방송 중에는 촬영만 하느라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했다. 시청률이나 까불이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인기가 있다는 말만 들었다. 바깥 활동을 잘 못하고 현장과 집만 왔다 갔다 하니까 인기를 모르다가 끝나고 나서야 인기를 체감했다. 드라마가 인기 있을 때 사람들의 함성을 느끼고 싶은데 항상 끝나서야 인기를 알게 된다.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면서 쉴 거냐고 묻는데 (휴식 대신) 인기를 누리고 싶다. 사람들의 함성과 환호, 응원들을 좀 느끼고 싶다. (웃음)
10. MBC ‘고맙습니다’ (2007)의 이영신 이후 12년 만에 맡은 미혼모 연기였다. 동백이와 영신이를 비교해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공효진 : 달라진 게 없더라. 내가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상상은 거기서 거기였다. (웃음)
10. 스스로가 느낀 동백은 어떤 사람인가?
공효진 : 그동안 했던 캐릭터 중에 동백이가 제일 사회성이 떨어지고 사람들에게 별로 애정이 없는 친구다. 껍데기만 남아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아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인물. 채워진 적도 없고 있어도 탈탈 털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기를 할 때도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있어서 고민이 많았다. 모진 말에 피하는 모습을 보여도 되는 건지 싫어하는 티를 내도 괜찮은지 고민했는데, 동백은 감정을 쌓는 것조차 불필요한 인물이었다. 말 그대로 외톨이.
10. 가난하지만 굳센 ‘캔디형’ 캐릭터를 가장 많이 연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백은 이전 작품 속 캔디와는 다른 색의 캐릭터다. 어떻게 차별점을 주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공효진 : 내가 가난해도 속이 텅 빈 인물을 연기한 적은 없었는데 동백이는 외롭고 속이 없는 친구였다. 외톨이여서 사람과의 관계가 서툴다고 생각했다.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 설정을 줬고, 대화할 때 답답한 느낌을 주려고 앞머리도 일부러 길게 길렀다. 솔직히 말해 긴 생머리가 단발머리가 된 듯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동백이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인물이다. 기존에 했던 굳센 캐릭터들과 비교해 커다란 변화는 없었지만 많은 분들이 ‘이상하게 다르다’는 말을 많이 해주시더라. (웃음)
공효진 : 매일 눈물바다였던 작품들이 많았다. 이번에는 오열과 통곡이 많았다. 마지막 촬영 1, 2주에는 눈알이 아파서 힘들었다. ‘우는 건 끝이야’라고 했는데 다음날 우는 장면을 찍기도 했다. 우는 장면을 찍을 땐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공들여서 눈물을 준비할 필요는 없는 배우다. 매도 먼저 맞자는 생각으로 컷 소리와 동시에 울어서 한두 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는다. 마음을 편하게 하고 눈물을 흘리는데, 대본이 좋으면 울지 않으려고 해도 저절로 눈물이 나온다. ‘동백꽃 필 무렵’이 그랬다. 너무 울어서 덜 우는 촬영분을 방송에 내보낸 적도 있다.
10. ‘공효진의 눈물’은 사랑스러우면서 안쓰럽다. 울면서도 대사를 놓치지 않아 시청자를 더 찡하게 하는 포인트가 있다. 연기의 비결이 있다면?
공효진 : 그냥 다수가 이해하기 쉽게 세심하게 연구를 한다. 감정의 미세한 선들을 내가 조금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웃음) ‘여기서 조금만 더 울면 궁상맞고 징징거리는 것처럼 보이겠다’는 것을 안다. 처절하다 싶다가도 감정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걸 잘하는 것 같다. 완급조절을 잘하는 게 아닐까 한다. 계속 울기만 하면 사람들이 피곤하다. 목이 멘 느낌이랄까, 눈물이 확 터지진 않지만 눈물을 터트리는 울먹임이 뭔지 아는 것 같다. 내 생각에는 그걸 내가 알고 연기를 하는 것 같다. (웃음)
10. 대본을 재밌게 읽었지만 영화 일정 때문에 촬영 시기가 맞지 않아 출연을 몇 번 고사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결국 출연한 이유는 대본에 대한 신뢰와 흥미가 컸던 것 같다.
공효진 :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가 영화 ‘뺑반’이 끝나고 ‘가장 보통의 연애’ 촬영을 준비 중이었다. 영화를 미룬 다음에 촬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동백꽃 필 무렵’은 올해 초 편성이 예정됐기에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다. 근데 대본이 너무 재밌었다. 당시 4부까지 나온 상태였는데 대본에 생소한 단어도 많았고 요즘 사람들이 쓰는 말, 예전에 썼던 대사들이 섞여있어서 놀라웠다. 대본을 보면서 사전을 많이 찾아봤다. 시기를 맞출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편성은 바꿀 수 없는 거라 고사했다. 그러면서 임상춘 작가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해서 문자를 했다. 같이 일을 하지 않는데 문자 보낸 건 처음이었다. 작가님께 ‘대본이 너무 재밌어요. 함께 못해서 아쉽지만 5부를 보여주면 안 될까요? 다음에 꼭 해요. 너무 재밌게 봤어요. 감사해요. 방송되면 재밌게 볼게요’라고 했다. 작가님이 그 말에 나를 포기 못 하겠다고 하셨다. 편성이 5월로 미뤄졌다가 다시 9월로 미뤄져서 결국 하게 됐다.
10. 임상춘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 노출을 꺼려서 굉장히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공효진 : 드라마를 보신 분들이 작가님에 대해 궁금해하는데 딱 동백이 같은 사람이다. 작가님이 외모를 언급해서 상상을 주지 말라고 하시더라. (웃음) 실제로 특이한 분은 아니고 말을 잘 들어주고 동백이처럼 선한 부분은 모두 갖고 계신 분이다. 대본을 읽고 궁금하거나 수정하고 싶은 부분을 말하면 잘 들어주고 바로 고쳐주셨다. 변주가 빠른 사람이고 칭찬밖에 못 하시는 분이다. 탁구공을 주면 배구공으로 만들어서 주는 분이다. 드라마가 끝난 후 ‘저한테 또 와주세요’라고 하셨다. 정말 말을 예쁘게 하시지 않나. 동백이 같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작가님일 거다. 선(善)으로 가득한 사람이다.
10. 드라마가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갔다. 인물마다 반전의 요소가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도록 이어졌다. 모든 상황들과 딱딱 맞아떨어져서 연기하면서도 놀랐을 것 같다.
공효진 : 우리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웃음) 엄마가 치매인데 치매가 아닌 것도 놀라웠고 까불이 흥식(이규성 분)에게 아버지가 있는 것도 놀라웠다. 정숙이 동백을 버리기까지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있었다는 것도 너무 놀라웠다. 그런 이야기가 다 있는 상태에서 반전을 거듭하는 게 신기했다. 참 많은 것들이 놀라는 포인트가 됐다. 무엇보다 내가 마지막 회에서 까불이를 손으로 때려잡는 것도 놀라웠다.
공효진 : 마지막 회에서 용식에게 ‘내가 용식 씨를 만난 게 기적일까요?’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용식은 ‘복권 같은 거 믿어요?’라고 되묻고 동백은 ‘나는 나를 믿어요’라고 대답한다. 그 장면을 찍고 나서 ‘아, 동백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동백이가 본인을 믿어주는 아이로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옥같은 장면이 많았지만, 내가 동백이를 연기하면서도 그런 대사를 할지 예상하지 못했기에 제일 인상 깊다.
10. 상대역인 강하늘은 어떤 배우였나?
공효진 : (강) 하늘이는 잘생김을 애써 감추는 배우다. 연기할 때 멋진 척하는 걸 진짜 힘들어하더라. (웃음) 사실 강하늘이 출연한 작품 중 기억에 남는 멜로가 없었다. 드라마 초반에는 로맨스가 강했기 때문에 강하늘의 로맨스와 멜로를 보고 싶었다. 연기력은 믿어 의심치 않았고 잘할 거라는 예상도 했지만 첫 대사를 듣고 감이 딱 왔다. 진짜 잘하더라. 강하늘은 어느 배우와 붙어도 잘 맞는 사람이다. 준비된 연기파 배우다. 나무랄 데가 없어서 짜증이 날 정도다. (웃음)
10. 향미 역의 손담비와는 실제로 친한 사이다. 사적으로 친하기 때문에 연기할 때 더 도움을 줬거나 조언을 해준 부분이 있었나?
공효진 : 도움이나 조언보다 지금 생각하면 향미와 (손)담비는 운명인 것 같다. 내가 대본을 보면서 가장 혹했던 캐릭터가 향미였다. 그래서 향미를 내가 아끼고 잘 됐으면 하는 친구가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사실 내가 친한 사람에게 작품을 먼저 제안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긴 기다림이나 작품 결말의 불투명성 등은 내가 겪는 건 괜찮아도 지인이 겪는 건 불편하다. 그런데 향미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 배역이기 때문에 남을 주기가 아까웠다. 어느 순간 담비를 보는데 향미 같이 보였다. 그게 운명이었던 것 같다.
10. 내년에 만 40세다. ‘로코퀸’이라는 수식어가 있을 만큼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강자인데, 로맨스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 나이가 주는 특별한 생각들이 있나?
공효진 : 감독님도 처음에는 (강) 하늘이와 10살 차이가 나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극 중에서 동백이와 용식이가 두 살 차이가 나는 설정인데, TV에서 나이 차가 더 많아 보일까봐 걱정하셨다. 기분이 나쁠 정도로 (웃음). 하지만 반응을 보고 ‘미안해요, 용식이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것 같아’라고 하셨다. 사실 나이에 대해서 별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지 않나. 어렸을 때는 그 말을 잘 모르기도 했고, 선배님이 ‘내가 37세인가 38세인가’라고 하실 땐 그냥 ‘왜 나이를 헷갈리시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 나이를 지나고 보니 그냥 괜찮은 것 같다.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괜찮다. 굳이 따진다면 다음 작품에선 몇 살 연하와 연기를 해야 하나, 이런 우스운 생각을 한다.
우빈 기자 bin0604@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