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2018 연말 지상파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이영자, 이승기, 소지섭/ 사진=각 방송사 화면, 텐아시아DB
2018 연말 지상파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이영자, 이승기, 소지섭/ 사진=각 방송사 화면, 텐아시아DB
해마다 연말이면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는 연예대상, 연기대상 등의 시상식으로 성대한 잔치판을 벌인다.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활약을 펼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축하하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상은 상다워야 한다. 갈수록 상의 품격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아서 하는 얘기다. 억지로 늘려놓은 상의 종류가 많다 보니 시상식의 긴장감이 떨어진다. 공정성 시비도 여전하다. 한없이 늘어지는 시상식에 졸음을 참아가며 보는 시청자는 피곤하다. 방송사와 연예인들만의 잔치라면 굳이 이런 행사를 몇 시간씩 생방송으로 중계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가지치기 시상식, 떨어지는 상의 품격

지난 22일 KBS ‘연예대상’을 시작으로, 28일 SBS ‘연예대상’, 29일 MBC ‘연예대상’, 30일 MBC ‘연기대상’이 차례로 열렸다. 오늘(31일) SBS ‘연기대상’과 KBS ‘연기대상’을 끝으로 모든 시상식은 끝이 난다.

KBS ‘연예대상’에서는 참 많은 사람들이 상을 나눠 가졌다. 무려 27개 부문을 시상했고, 45명(팀 포함)에게 트로피가 돌아갔다. SBS ‘연예대상’에서는 22개 부문에서 약 30 명 정도가 트로피를 안았다. MBC ‘연예대상’에서도 20개 부분에서 무려 38 명이 트로피를 가져갔다. 예능상 뿐만 아니다. MBC ‘연기대상’에서는 27개 부문에서 39명이 상을 받았다.

시상식 하면 통상 신인상, 우수상, 최우수상, 공로상, 작품상, 대상 정도를 생각한다. 베스트 커플상, 팀워크상 정도는 시상식의 재미를 더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 줄 만하다. 한데 언젠가부터 하나의 상이 여러 갈래로 가지치기를 시작했다. ‘예능’의 경우 KBS는 코미디 부문, 토크&쇼 부문, 버라이어티 부문으로 나눠 신인상, 우수상, 최우상을 시상했다. SBS는 쇼토크 부문과 버라이어티 부분으로, MBC도 뮤직토크, 버라이어티 부문으로 나눠 상을 수여했다.

이렇게만 해도 양반이다. 듣도 보도 못한 온갖 상을 신설해 ‘베스트’를 붙여 나눠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베스트’라는 멋진 타이틀을 걸어 놓고 공동 수상은 기본이다.

시대가 변하고 콘텐츠가 다양해지면서 코미디언, 배우, 가수, MC 등 각각 다른 위치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이 예능에서 활약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다방면에서 고른 활약을 펼치는 만능 엔터테이너를 높이 평가하는 지금의 추세다. 따라서 분야별로 상을 주기 보다 코미디, 토크쇼, 버라이어티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약하는 예능인을 진짜 ‘베스트’로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드라마 시상식도 마찬가지다. MBC ‘연기대상’은 우수 연기상, 최우수 연기상을 주말특별기획 부문, 연속극 부문, 월화 미니시리즈 부문, 수목 미니시리즈 부문으로 나눠 시상했다. 공동 수상을 포함해 무려 10명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연기 잘하는 배우가 많다는 건 시청자도 다 안다. 요일을 막론하고 이른바 ‘미친’ 존재감을 보이고, 작품의 재미와 질을 높이고, 시청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 1인이 최우수상을 받아야 상의 품격에 걸맞다. 우수상, 신인상도 마찬가지다.

시상식 무대 앞 원형 테이블에 앉아있는 참석자들이 TV를 통해 보여진다. 설마 했지만, 앉아있는 대부분이 상을 받아간다. 현장에 참석한 연예인들에게 긴장감은 없다. 보고 있는 시청자도 마찬가지다. ‘상을 받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무슨 상을 주려나?’ 라고 생각한다. 상의 품격은 저절로 떨어진다.

S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승기(위)와 무관에 그친 백종원./ 사진=SBS 방송화면
S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승기(위)와 무관에 그친 백종원./ 사진=SBS 방송화면
◆공정성 논란…받아야 할 사람은 못 받고

방송인 이영자가 KBS ‘연예대상’과 MBC ‘연예대상’을 차지하며 2관왕에 올랐다. KBS에서 여성 연예인이 대상을 받은 건 2002년 ‘연예대상’ 시상식이 처음 생긴 이후 15년 만에 최초다. MBC에서도 2001년 박경림 이후 17년 만이다. 이영자의 수상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오랜 시간 남성 예능인들이 주도해온 예능판에서 독보적인 ‘먹방’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이영자의 대상 수상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인정하는 분위기다.

다만 시청률, 화제성 등을 다 잡은 ‘나 혼자 산다’의 인기를 견인한 박나래가 ‘올해의 예능인상’에 그친 것은 아쉽다는 시청자가 많다. ‘이영자와 공동으로 상을 줬어야 했다’ ‘최우수상은 줘야 하지 않았느냐’는 반응이다. 박나래는 MBC가 배려의 차원에서 대상 후보 모두에게 전한 올해의 예능인상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특히 SBS ‘연예대상’에서는 대상 수상자를 놓고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집사부일체’는 올해 일요일 황금시간대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대상을 받은 이승기는 ‘집사부일체’에서 메인 MC 격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하지만 프로그램 특성상 이승기가 원톱은 아니다. ‘사부’가 중심이고, 나머지 세 명의 멤버들의 팀워크가 돋보였다. 이승기가 프로그램의 인기에 상당 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꼭 대상을 줘야만 했느냐”는 반응이 많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함께 대상 후보에 오른 백종원이 진정한 ‘대상감’이라며 아쉬움과 분노까지 드러내고 있다. 백종원은 ‘골목식당’에서 진행은 물론 출연자 평가와 솔루션까지 담당하며 분투했다. ‘골목식당’은 무려 11년 동안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고수해온 MBC ‘라디오스타’마저 무너뜨리며 인기를 끌었다. 많은 사람들이 ‘골목상권’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는 등 사회적 파장도 만만찮았다.

이승기가 대상을 받은 다음날 각 포털 사이트와 SNS는 ‘대상 자격 논란’ ‘공정성 논란’ 등으로 하루 종일 시끌벅적했다. ‘이승기의 상을 박탈해 백종원에게 주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사실 이런 논란은 단지 이승기가 대상을 차지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이날 시상식에 참석한 백종원이 최우상도, 공로상도 받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더욱 격화됐다.

대상뿐만 아니다. 방송사 시상식의 수상자 명단을 살펴보면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많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수상자를 선정했는지 모호하다. 모두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야 할 자리가 ‘나눠먹기’ 같은 말과 함께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MBC의 연말 연예대상, 연기대상 시상식 방송화면./ 사진=MBC
MBC의 연말 연예대상, 연기대상 시상식 방송화면./ 사진=MBC
◆심야 편성…연예인도 시청자도 고달프다

대부분의 방송사 시상식은 오후 9시 가까이 돼서야 시작한다. 시작 시간부터 늦은 데다 온갖 상을 만들어 주다 보니 전체 행사 시간은 4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시상자들이 등장해서 대본에 쓰여진 대로 의미없는 대화를 몇 마디 나누다가 수상자를 발표한다. 공동수상도 많아 두 명 씩 무대에 오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수상자마다 일일이 수상 소감을 말하다 보니 시간이 늘어진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개인의 종교적인 감사까지 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데다 제작진, 스태프, 스타일리스트, 가족 등등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시간을 끈다. 시청자들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름을 들으며 졸음을 참아야 한다.

굳이 자정을 넘겨야 할까. 시청자가 졸린 눈을 비비며 지켜보고 있을 때쯤, 시상식 현장 곳곳에서도 빈자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의미없다고 여긴 몇몇 연예인들은 아마도 다른 일정을 이유로 일찌감치 자리를 떴을 것이다. 나이 지긋한 연예인들은 졸음을 참거나 짜증을 참는 표정이 화면을 통해서도 전해진다.

자정을 훌쩍 넘은 시각까지 시상식이 이어지는 동안, 시청자가 재미를 느낄 만한 요소는 별로 없다. 모르는 사람들 이름을 듣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예전과 달리 긴장감도 거의 없다. 수상자를 발표하기 전의 긴장감을 높이는 타악기 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유치원 학예회나 재롱잔치에 가면 모두에게 메달을 걸어준다. 아이들 모두를 격려하고 북돋우기 위해서다. 하지만 방송사의 시상식이 이런 학예회를 닮아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상이 진정한 상으로서 의미와 가치를 가지려면 그만한 품격이 필요하지 않을까.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