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영화: 1인칭 관찰자 시점’이라는 명패를 달고 쓴 첫 칼럼에서 밝혔듯, 내가 극장에서 마주한 첫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이티(E.T.)’다. 영화에서 엘리엇은 그믐달이 뜬 밤에 외계인 이티를 만나 보름달이 뜬 밤에 떠나보냈다. 차마 이티를 떠나보내지 못했던 열 살의 나는 평범한 동네 소녀에서 비범한 지구 소녀가 되어서 무지개 포물선을 그리며 은하계를 날고 있었다. 그렇게 이티는 열 살, 즉 십대가 된 기분에 한껏 달뜬 나를 특별한 감성으로 끌어안았다.
‘트랜스포머’ 시리즈 그 어느 한 편에도 동하지 않았건만, ‘범블비’의 예고편을 보는데 가슴이 마구 뛰었다. 뭐랄까. 익숙한, 그리운 냄새가 피어올랐다. ‘트랜스포머’보다는 스티븐 스필버그, 보다 정확히는 ‘이티’였다.
사이버트론 행성을 함락한 디셉티콘에 의해 생존을 위협받는 오토봇 저항군의 리더인 옵티머스 프라임(피터 쿨렌)은 오토봇 B-127(딜런 오브라이언)에게 지구에 기지를 세우라는 임무를 내린다. 지구로 온 B-127은 숲에서 훈련 중이던 미국 정부의 비밀 기관 섹터-7의 번스(존 시나) 요원과 맞닥트리고 쫓기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밟은 디셉티콘의 공격으로 음성 기능을 잃고, 코어 기억 장치까지 파손되고야 만다.
샌프란시스코의 소녀 찰리(헤일리 스테인펠드)는 전자시계의 알람으로 부스스 일어나서, 고인이 된 사진 속 아빠를 쓰다듬으며 아침 인사를 건넨다. 닭살 돋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엄마와 동생 오티스(제이슨 드러커)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지만, 찰리에게는 아빠의 빈자리가 유달리 크고 저릿하다. 유원지의 핫도그가게에서 찬란한 색동 유니폼을 입고 알바를 하는 그녀의 곁에는 사는 곳부터 알바를 하는 곳까지 이웃인 메모(조지 렌드보그 주니어)가 있지만 관심 밖이다.
18살 생일을 맞이한 찰리는 선물이랍시고 받은 수선화 헬멧으로 울적하지만, 자동차 수리가 취미라서 즐겨 찾던 폐차장 사장으로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는다. B-127이 변신한 노란색 폭스바겐 비틀이다. 곧이어 찰리는 비틀의 진짜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기억과 목소리를 잃은 B-127에게 호박벌처럼 윙윙거린다며 ‘범블비’라는 이름까지 붙여준다. 둘은 점차로 서로에게 각별나고 애틋한 존재가 된다. 그렇지만 지구인에게 정체와 목적을 숨기고 평화유지군으로 포장한 디셉티콘 섀터(안젤라 바셋)와 드롭킥(저스틴 서룩스)이 범블비를 바짝 쫓고 있다.
지난 25일 개봉한 ‘범블비’는 ‘트랜스포머’라는 기존 프랜차이즈의 틀에서 벗어난 캐릭터 솔로 무비다.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아이디어를 출발점으로 원작의 디자인 뿐 아니라 아날로그한 감성 또한 한껏 끌어올렸다. 1987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답게 잊고 지냈던 시간의 향기까지. 그래서 영화 내내 찰리와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끼며 추억의 음악에 젖어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쉐보레 카마로 자동차로 변신했던 범블비가 원작의 설정을 바탕으로 동글동글 귀엽디귀여운 폭스바겐 비틀로 등장한다. 라디오나 노래를 통해 음성을 조합하는 범블비의 언어는 전달의 기능을 넘어서 감성의 촉수를 자극한다. 찰리를 맡은 헤일리 스테인펠드는 풍부한 색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가졌다. 앞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서도 그녀가 맡은 스파이더 그웬의 목소리가 도드라지게 기억에 남을 만큼.
찰리는 차고의 고장 난 차를 고쳐서 다시 시동을 걸려고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하늘나라에 있는, 심장마비로 작별인사도 채 못 나눈, 주말마다 함께 차를 수리했던 아빠가 들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조짐이 영 보이질 않는다. 그녀의 부루퉁한 일상에 범블비라는 낯선 존재가 스며든다. 수줍음을 타고, 툭하면 겁을 집어먹고 웅크리고, 호기심이 넘치는 푸르른 눈빛의 마치 소년과도 같은.
범블비에게 나의 심장이 톡 쏘였다. 찰리가 범블비를 부르는 딱 그 톤으로, 콩닥콩닥하는 심장이 자꾸만 되뇐다. “비(Bee)~”하고.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 그 어느 한 편에도 동하지 않았건만, ‘범블비’의 예고편을 보는데 가슴이 마구 뛰었다. 뭐랄까. 익숙한, 그리운 냄새가 피어올랐다. ‘트랜스포머’보다는 스티븐 스필버그, 보다 정확히는 ‘이티’였다.
사이버트론 행성을 함락한 디셉티콘에 의해 생존을 위협받는 오토봇 저항군의 리더인 옵티머스 프라임(피터 쿨렌)은 오토봇 B-127(딜런 오브라이언)에게 지구에 기지를 세우라는 임무를 내린다. 지구로 온 B-127은 숲에서 훈련 중이던 미국 정부의 비밀 기관 섹터-7의 번스(존 시나) 요원과 맞닥트리고 쫓기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밟은 디셉티콘의 공격으로 음성 기능을 잃고, 코어 기억 장치까지 파손되고야 만다.
샌프란시스코의 소녀 찰리(헤일리 스테인펠드)는 전자시계의 알람으로 부스스 일어나서, 고인이 된 사진 속 아빠를 쓰다듬으며 아침 인사를 건넨다. 닭살 돋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엄마와 동생 오티스(제이슨 드러커)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지만, 찰리에게는 아빠의 빈자리가 유달리 크고 저릿하다. 유원지의 핫도그가게에서 찬란한 색동 유니폼을 입고 알바를 하는 그녀의 곁에는 사는 곳부터 알바를 하는 곳까지 이웃인 메모(조지 렌드보그 주니어)가 있지만 관심 밖이다.
18살 생일을 맞이한 찰리는 선물이랍시고 받은 수선화 헬멧으로 울적하지만, 자동차 수리가 취미라서 즐겨 찾던 폐차장 사장으로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는다. B-127이 변신한 노란색 폭스바겐 비틀이다. 곧이어 찰리는 비틀의 진짜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기억과 목소리를 잃은 B-127에게 호박벌처럼 윙윙거린다며 ‘범블비’라는 이름까지 붙여준다. 둘은 점차로 서로에게 각별나고 애틋한 존재가 된다. 그렇지만 지구인에게 정체와 목적을 숨기고 평화유지군으로 포장한 디셉티콘 섀터(안젤라 바셋)와 드롭킥(저스틴 서룩스)이 범블비를 바짝 쫓고 있다.
지난 25일 개봉한 ‘범블비’는 ‘트랜스포머’라는 기존 프랜차이즈의 틀에서 벗어난 캐릭터 솔로 무비다.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아이디어를 출발점으로 원작의 디자인 뿐 아니라 아날로그한 감성 또한 한껏 끌어올렸다. 1987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답게 잊고 지냈던 시간의 향기까지. 그래서 영화 내내 찰리와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끼며 추억의 음악에 젖어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쉐보레 카마로 자동차로 변신했던 범블비가 원작의 설정을 바탕으로 동글동글 귀엽디귀여운 폭스바겐 비틀로 등장한다. 라디오나 노래를 통해 음성을 조합하는 범블비의 언어는 전달의 기능을 넘어서 감성의 촉수를 자극한다. 찰리를 맡은 헤일리 스테인펠드는 풍부한 색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가졌다. 앞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서도 그녀가 맡은 스파이더 그웬의 목소리가 도드라지게 기억에 남을 만큼.
찰리는 차고의 고장 난 차를 고쳐서 다시 시동을 걸려고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하늘나라에 있는, 심장마비로 작별인사도 채 못 나눈, 주말마다 함께 차를 수리했던 아빠가 들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조짐이 영 보이질 않는다. 그녀의 부루퉁한 일상에 범블비라는 낯선 존재가 스며든다. 수줍음을 타고, 툭하면 겁을 집어먹고 웅크리고, 호기심이 넘치는 푸르른 눈빛의 마치 소년과도 같은.
범블비에게 나의 심장이 톡 쏘였다. 찰리가 범블비를 부르는 딱 그 톤으로, 콩닥콩닥하는 심장이 자꾸만 되뇐다. “비(Bee)~”하고.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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