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외환위기를 투자 기회로 만드는 금융전문가 윤정학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 /사진제공=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외환위기를 투자 기회로 만드는 금융전문가 윤정학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 /사진제공=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각자가 가진 신념이 부딪히면 잡음이 일어나곤 한다. 배우 유아인은 그런 잡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필요한 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SNS를 통해서 내는 목소리도 당당하다. 그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 대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의문을 주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영화에서는 ‘국가부도’에 베팅해 돈을 버는 금융전문가 윤정학을 연기했다. 유아인은 “간지럽지만 더 가깝게 다가가고 소통하고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며 “그런 의지들이 내 작품, 그리고 인물에 표현됐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10. IMF 사태로 인해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상처를 들춰낼 수도 있는 이야기다.
유아인: 그 부분을 상당히 걱정했다. 하지만 영화가 다양한 인물을 통해 다양한 입장을 그려내며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내지도, 너무 사회 고발적이지도 않고 담백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 물론 그 담백함 안에 분노도 있다. 이야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것 같아 흡족하다.

10. 정학 역을 처음 제안 받았을 때부터 하고 싶었나?
유아인: 당시 ‘버닝’을 촬영하고 있었다. 작품을 하는 중간에는 다른 시나리오를 잘 보지 않는다. 이 영화 제작사 대표님과 친분도 있고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셔서 흔쾌히 출연 결정했다. ‘버닝’ 촬영이 끝나자마자 바로 이 영화 촬영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분량이 너무 많지도 않았고 극에 대한 책임을 나눠주는 선배들이 계셔서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했다. IMF 구제금융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그리는 이야기의 일원으로 참여할 기회도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10. 정학은 이기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인물이다. 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잡아나갔나?
유아인: 얄밉고 정의롭지 못한 게 정학이다. 외환위기 사태에서 기회를 얻으려 한다. 그런 그의 선택과 욕구들이 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지게 했다. 정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과 본질을 꿰뚫어보는 눈을 갖고 있다. 스쳐 지나가는 뉴스나 상황들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국가부도’에 과감히 베팅한다.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고 설득할 때 충분한 데이터가 있지 않음에도, 마치 사이비 교주처럼 자신의 에너지로 설명한다. 그래서 감정의 높낮이가 중요했다. 전사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도 않은 인물이기에 정학이 순간순간 맞닥뜨리는 희열, 자책, 허망함의 순간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사진제공=영화사 집,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사진제공=영화사 집, CJ엔터테인먼트
10. 극 중 어렵게 느껴질 경제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은데.
유아인: 경제용어나 상황을 절대적으로 이해시키기보다 관객들이 이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게 하는 게 더 중요했다. 정학은 심각하고 묵직한 상황들에서 약간 바깥에 있으면서 영화 안에 있는 인물이다. 관객들을 이야기에 더 흥미롭게 진입시키고 영화의 주요한 줄기에 다가가게 하자는 미션을 갖고 정학을 연기했다.

10. 극 중 주요 캐릭터들과 함께하는 장면이 거의 없는데 아쉽지 않은가?
유아인: 선배들과 밸런스를 잡으며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작품을 긍정적으로 느꼈던 부분 중 하나가 이런 상업영화를 끌고 가는 주연배우가 김혜수 선배라는 점, 또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김혜수 선배를 보면서 느꼈던 에너지와 성실함은 제게도 큰 본보기가 됐고 영감을 얻게 했다. 조우진 선배는 정말 예리하다. 아플 정도로. 허준호 선배는 배우가 가지는 존재감, 삶의 힘이 배역으로 전이됐을 때 가져오는 힘이 느껴진다. 힘이 세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 않나. 이번 영화는 힘이 참 적절했다고 본다.

10. 배우 류덕환, 송영창이 투자자인 오렌지, 노신사 역으로 나온다. 무거운 흐름에서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하는데.
유아인: 주된 흐름이 진중하기 때문에 우리 셋이 가져가야 할 가벼운 장난들이 영화에 누가 될까봐 걱정했다. 하지만 양념으로 잘 쓰인 것 같다. 김혜수 선배는 제가 외로웠을 것 같다고 했는데 류덕환, 송영창 선배 덕에 전혀 외롭지 않고 재밌게 촬영했다. 송영창 선배는 같은 작품 출연이 벌써 세 번째다. ‘깡철이’에서는 친구 아빠, ‘베테랑’에서는 친아버지, 이번에는 투자자다. 재밌는 흐름이다. 동생이지만 선배인 류덕환 씨는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다. 내가 갓 데뷔했을 때부터 부러워하고 동경했다. 미디어에서 각광을 받거나 광고를 많이 찍는 배우가 아니라 어린 나이부터 연기로 두각을 나타냈다. 함께 연기하면서 좋았다.

10. 오렌지가 나라의 위기를 보면서 돈을 벌었다고 좋아하자 정학이 뺨을 때린다. 하지만 정학도 번 돈으로 집을 산다. 양면성을 띈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나?
유아인: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집이 주는 의미가 있지 않나. 욕망의 전차를 타고 달려온 정학에게 전 주인의 자살 목격은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니라 충격적임에도 마음을 다잡고 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암시한다. 영화에서 정학은 비중이 적은 인물임에도 입체적으로 그려진 것 같다. 평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면서 인간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인물인 게 만족스럽다. 앞서 다른 작품에서도 그랬지만 연기하는 내가 일단 캐릭터에 공감해야 한다. 모호한 자책을 하면서도 인생의 트랙에서 벗어나지 않고 끊임없이 달려가는 모습. 내가 그와 같은 형태로 살지 않더라고 비슷한 성분들이 내 안에 있을 거라고 본다. 그런 성분들을 극대화하며 순간순간 몰입했다.

유아인은 정학에 대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제공=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유아인은 정학에 대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제공=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10. 어떤 측면에서 보면 정학은 경제 상황에 대해 진실을 말하고 있는 인물이다. 자신도 남들이 아니라고 하는 순간에 맞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인가?
유아인: 살다 보면 그런 순간도 있다. 조금 더 자신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의지의 여부에서 본다면,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깊숙이 모험하려는 편이다.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때론 그런 모습이 고집스럽게 비춰지기도 한다.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영감을 주고, 또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영감을 받으며 일한다. 작품을 통해 감동을 전할 수도 있지만, 삶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직업인으로서, 내가 좀 더 나 자신으로, 또 사람들이 더 자기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끔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10. SNS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잦았는데.
유아인: 그런 논란들이 명확하게 얘기할 수 없을 만큼 민감한 일이 돼 버렸다. 마치 ‘볼드모트’를 ‘그 사람’이라고 칭하는 것처럼. 더 정성스럽게,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 순간들이 지나고 나면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어느 한편에 서야 안전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더 긍정적 영향을 주기 위해 철저히 고민한다. 고민의 순간들도 지속적으로 맞게 된다. 다양한 이슈를 본의 아니게 혹은 내 의지로 만들어 왔다. 나는 인간으로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10. 일부 대중들의 날선 비판이 억울하지 않나?
유아인: (나와 다른 생각들이 표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누군가를 비난하고 폭력을 일삼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다. 일상에서 잡음을 내는 걸 두려워하진 않는다. 필요한 잡음이라고 생각하기에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보다 더 자연스러운 내일을 희망하는 바다. 정말로.

유아인은 자신의 SNS와 관련돼 논란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필요한 잡음이라고 생각하기에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유아인은 자신의 SNS와 관련돼 논란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필요한 잡음이라고 생각하기에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10. 요즘에도 계속 글을 쓰나?
유아인: 메모나 하는 정도다. 쓰다가 공유하고 싶은 게 있으면 SNS에 올린다. 글쓰기는 나의 표현 방식 중 하나고, 내 마음을 덜어내기 위해 가까이 하는 방법이다. 얼마 전 ‘내가 쓰는 글은 마음을 담은 글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건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이상해질 때가 많다. 잘하는 것,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접근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왜 이런 일들을 하는가 생각해 보면 결국 내 마음을 담아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게 글이건 연기건 더 떳떳하게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10. 영화를 보고 나면 깨어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계속 깨어있기 위해 노력하나?
유아인: 계속 들여다보고 시도하고 도전하고 실험한다. 밥그릇을 지키기보다 나를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가려고 노력한다. 내가 깨어있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가치를 거기에 두면 더 선명한 눈을 가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듣기 좋은 말도, 그렇지 않은 말도 인정하는 태도를 가지려고 한다. 다양한 관계를 통해서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게 영향을 주는 이들에게 나도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서 그렇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