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영화 ‘영주’ 스틸컷/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영화 ‘영주’ 스틸컷/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사고로 부모를 잃고 급작스레 남동생의 생계 부양자가 된 영주(김향기). 자신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어두운 물류창고에서 혼자 김밥을 씹어먹지만, 동생 영인(탕준석)에게만큼은 치킨을 사 먹이고, 대학에도 보내줄 예정이다. 조명 하나 켜 둔 식탁 앞에서 ‘너는 누나가 있어서 참 좋겠다’며 너스레를 떠는 당찬 생계 부양자. 하지만 그 또한 보호자가 필요한 어리고 혼란스런 열아홉 인생이다.

오는 22일 개봉하는 영화 ‘영주’는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영주가 부모를 죽게 한 교통사고 가해자를 만나 느끼는 갈등과 성장을 담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죽인 이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대체로 처절한 복수극이 되기 마련이고, 가해자의 얼굴 또한 악인을 상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물질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의지할 곳 없는 가난한 10대를 내세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해자에게 온정을 느끼고, 그들에게서 환대 받고 동화되는 영주의 모습은 어쩌면 충격적이고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금전적으로 벼랑 끝에 몰린 10대 가장이 손을 뻗을 곳이라고는 길바닥에 쌓인 대출 광고 뿐이다. 그래서 영주의 선택과 혼란은 동의할 순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여기에 힘을 싣는 존재가 가해자 상문(유재명)의 아내 향숙(김호정)이다. 가해자의 아내지만 그 자신 또한 코마 상태의 아들을 떠안고 살아간다.

‘영주’ 해외 포스터/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영주’ 해외 포스터/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영주’는 이경미 감독의 영화 ‘비밀은 없다’(2016) ‘미쓰 홍당무’(2008)에서 스크립터로 활동했던 차성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주처럼 사고로 부모를 잃었던 차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부모를 죽게 한 가해자의 얼굴을 보고싶다”는 감정을 한 편의 영화로 끝까지 밀고나간 점이 대단하다.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포기하지 않는 점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차 감독은 ‘영주’를 통해 “삶에서 뜻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람들의 애도와 성장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여기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해당될 것이다. 영화의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인 ‘영주’는 ‘빛나는 구슬’을 뜻한다. 실제로 가해자의 주변과 피해자의 속죄, 고통이 연결되는 지점이 제법 단단하게 이어져있다.

역설적으로 이 영화가 둥글지 않고 가장 날카로워지는 순간은 영주를 그저 영주라고 호명할 때다. 그 누구의 딸도, 생계부양자도 아닌 그저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열아홉 영주가 절망 끝에서 뻗은 손이 부모를 죽게 한 가해자를 향한다는 것은 영화의 희망적인 메시지와는 별개로 ’10대’와 ‘가난’을 곱씹게 만든다. 극장을 떠나서도 세상의 ‘영주’들과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작지만 강한 영화다.

주인공의 세밀한 감정선을 조용히 따라가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수 있다. 김향기의 첫 단독 주연작으로, 돈 때문에 분노하고 복수를 위해 찾아간 상대에게 마음을 여는 그의 다양한 얼굴을 만날 수 있다. 10대 남학생의 날선 모습을 처음 보는 표정으로 풀어내는 탕준상도 인상적이다. 12세 관람가.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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