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동네사람들’에서 비밀스러운 의문의 미술 선생님 지성 역으로 열연한 배우 이상엽. /사진제공=씨앤코이앤에스
영화 ‘동네사람들’에서 비밀스러운 의문의 미술 선생님 지성 역으로 열연한 배우 이상엽. /사진제공=씨앤코이앤에스
“영화로 무대 인사를 한 건 처음이에요. 영화를 선보이고 앞에서 인사하는 배우들이 부러웠거든요. ‘욕하면서 봤다’는 평가를 보고 ‘내가 못하진 않았구나’ 싶어서 좋았습니다. 어두운 역할을 맡았을 때는 그런 댓글이 선플이잖아요. 하하.”

배우 이상엽은 “‘동네사람들’로 5년 만에 영화에 출연했다”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 과오를 감추기 위해 악행을 저지르는 변호사를 맡아 불안에 휩싸이는 표정, 앞뒤가 다른 이중성을 세밀하게 표현했던 이상엽. 그가 ‘동네사람들’에서는 여고생 실종사건의 용의자 중 한 명인 지성 역으로 돌아왔다. 이상엽은 “촬영을 준비하기도 전인 이른 아침부터 감독님과 현장에 앉아 장면에 대해 얘기하고, 밤새 촬영한 후 아침에 막걸리 한 잔 하면서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게 그렇게 재밌었다”며 즐거웠던 현장을 떠올렸다.

이상엽은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 ‘시그널’에 이어 영화 ‘동네사람들’에서 어두운 인물의 내면을 세밀하게 표현해냈다./사진제공=씨앤코이앤에스
이상엽은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 ‘시그널’에 이어 영화 ‘동네사람들’에서 어두운 인물의 내면을 세밀하게 표현해냈다./사진제공=씨앤코이앤에스
극 중 지성은 잘생긴 외모와 수줍은 성격을 갖고 있는 여고의 인기 미술 선생님이지만 웃지 않는 얼굴과 무언가 감추고 있는 듯한 눈빛이 음흉하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아버지의 학대가 지성을 어둡고 비뚤어지게 만든 것이다.

“지성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할 시기에 학대를 받고 자랐어요. 피해자로 시작한 가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한 악역이었다면 더 소리를 지르고 악랄한 표정을 지었을 거예요. 학대는 지성에게 ‘버튼’ 같은 거예요. 학대를 받는 순간 어린 아이의 모습도 나타나죠. 광기의 적당한 선을 지키는 데 공을 많이 들였어요.”

감정을 억누르는 캐릭터 표현이 어렵지 않았을까. 이상엽은 “답답했다”고 했다. 이어 아쉬움이 남는 듯 “극 중 학생에게 음료수를 건네받으며 물이 묻은 손을 닦는 장면을 다시 찍고 싶다”고 말했다.

“지성이 참고 있던 복잡한 감정을 짧은 숨으로 내뱉는 모습을 제대로 표현했는지 모르겠어요. 찰나의 변화가 중요한 장면이었거든요. 특히 첫 촬영이었는데, 21번을 찍었어요. 그런 적은 저도 처음이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감독님이 저를 일부러 짜증나게 만들어서 그 감정을 끌어내려 했던 것 같아요.”

최근 ‘런닝맨’ ‘무확행’ 등 예능에서도 활약한 이상엽. /사진제공=씨앤코이앤에스
최근 ‘런닝맨’ ‘무확행’ 등 예능에서도 활약한 이상엽. /사진제공=씨앤코이앤에스
이상엽은 “사람들을 복잡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그가 한 일은 범죄자들의 사진을 찾아보며 그들이 가진 분위기를 살펴보는 것. 이상엽은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 정신세계에 ‘적신호’가 켜져서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 만큼 캐릭터에 대해 깊이 몰입해갔다. 그는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데도 오래 걸린다고 밝혔다. 이번 영화는 ‘당신이 잠든 사이’의 악역을 연기한 후 찍었기 때문에 어두운 캐릭터의 기운이 오래갔다. 이상엽이 ‘동굴’로 들어가던 그 때에 기분을 전환시켜 준 건 예능이었다. 최근 그는 ‘런닝맨’ ‘무확행’ 등을 통해 허당기 가득한 모습과 찰떡 같은 성대모사로 큰 웃음을 줬다.

“캐릭터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그래서 악역을 했던 ‘당신이 잠든 사이’와 ‘동네사람들’ 이후에 예능을 하면서 힐링을 받았어요. 시나리오 안의 캐릭터가 아니라 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가 TV에 나오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내가 저렇게 밝았나’ 하며 의외의 모습도 발견했죠.”

이상엽은 드라마 ‘시그널’에서 연쇄살인마를 연기하기도 했다. 그는 “‘시그널’이 연기의 전환점이었다면 ‘동네사람들’은 각인할 기회”라고 말했다.

“적어도 스크린 안에 잘 녹아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큰 스크린에서는 허점이 들킬 것 같아서 겁이 났거든요. 이상엽이 아니라 지성으로 보이고, 어색해 보이지 않으면 좋겠어요. 거창한 바람은 없지만 이게 작은 목표예요.”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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