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사설탐정인 주인공 조(호아킨 피닉스)에게 어느 날 의뢰가 들어왔다. 윤락가에 납치된 상원의원 보토의 딸 니나(예카트리나 삼소노프)를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특수부대 출신답게 출중한 실력으로 단번에 니나를 구하긴 했지만 일이 꼬이는 바람에 조는 오히려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뒤에 더 큰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급기야 살인자들이 조의 집까지 찾아와 그의 홀어머니마저 살해한다. 어머니는 조가 삶을 이어가는 유일한 의미를 주는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현장에서 살인자를 잡아 배후를 알아낸 조는 악의 소굴로 들어가 모두 처단한다. 사실 이야기 자체로 보면 그리 특별할 게 없고 다른 폭력영화들과 비교할 때 큰 차이도 없다. 그러나 실제 영화에 들어가 보면 전혀 다른 감각이 발견된다.
전쟁터에서 조는 어느 소녀에게 초콜릿을 건네준 적이 있다. 그런데 어떤 소년이 갑자기 나타나 초콜릿을 뺏으려 소녀를 쏘아 죽이는 현장을 목격했다. 이 사건은 조가 어린 소녀에게 가해지는 폭행을 유난히 혐오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어린 니나와 얽힌 험난한 인연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그런 까닭에 조가 휘두르는 폭력이 아무리 거칠더라도 관객은 얼마든지 용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유의 범죄영화들이 보통 그렇듯, 조 역시 대단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 종종 강력한 장면이 연출된다. 총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은 순전히 완력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망치 한 자루뿐이다.
린 렘시는 스코틀랜드 출신 감독으로 학생 시절 만든 단편이 이미 칸 영화제에 수상했을 정도의 실력파다. ‘케빈에 대하여’ 이후 실로 오랜만에 ‘너는 여기에 없었다’를 내놓았는데 강렬한 이미지와 세밀한 클로즈업이 돋보였다. 게다가 그녀의 장기인 우울한 분위기까지 어우러지면서 연출 감각이 제대로 살아났다. 이 영화로 렘시 감독은 2017년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고 호아킨 피닉스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의 초기 저서 중 하나인 ‘비정상인들’에서는 정신의학이 어떻게 법적 지위를 획득했는지 그 궤적을 쫓는다. 책에 나오는 실제 예들을 보면 황당무계한 엽기 살인 사건들이 등장하는데 모두 정신과 의사의 소견이 판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경우들이다. 소견서에 사용된 언어들을 꼽아보면, 심리적 미숙성, 구조화되지 않은 인격,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깊은 감정적 불균형, 심각한 정서적 혼란, 도착된 자만심의 현시, 변태적 유희 등등이 있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에서 골고루 발견되는 심리현상들이다. 인간의 이상심리를 이렇게 잘 표현한 영화를 최근에 본 적이 없다.
박태식(영화평론가)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