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김진엽/사진=이승현 기자 lsh87@
김진엽/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시청률은 저 말고 다른 배우들이 더 아쉬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큰 문제 없이 완수한 게 뿌듯해요. 연기에 점수를 매긴다면 한 75점 주고싶어요. 지금 보면 그때는 보이지 않던 문제가 보이기도 하고, 더 많은 분들이 보았으면 했다는 아쉬움은 있어요. 하지만 4개월 동안 좋은 배우들과 함께해 기뻤습니다”

지난 17일 종영한 MBC ‘사생결단 로맨스’에서 의사 차재환 역을 연기한 배우 김진엽의 말이다. 낮은 시청률과 함께 결말에 누구와의 ‘로맨스’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묻자 그는 “러브라인에 대해서는 별로 아쉬움이 없다”며 “오히려 지현우 형과의 ‘러브라인’이 있어 더 만족스러웠다”며 웃었다.

“형(지현우)이 정말 잘해줬어요. 첫 촬영지가 태국이었거든요. ‘우리가 극 중 친한 형, 동생으로 나오니까 편하게 대해 달라’며 말을 놓으라고 하셨어요. 제 입장에서는 그게 쉬운 건 아니었지만요, 하하. 주세라(윤주희)와의 관계는 그 정도로 끝나는 게 맞는 결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비슷한 듯 다른 아픔을 위로해주는 역할이었거든요. 오히려 한승주(지현우)와의 ‘러브라인’이 만족스러웠죠. 촬영을 하면서 기사나 영상을 많이 찾아봤는데, 지현우 형과 예쁘게 사진이 나오는 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따뜻한 관계이기도 했고요”

‘사생결단 로맨스’에서 김진엽이 연기한 차재환은 높은 아이큐에 미국 유학을 다녀온 수재이지만 속으로는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친구의 화재 사건을 은폐했던 아버지의 과거를 알고 죄책감에 시달렀다. 극 후반부에는 악역의 기로에 놓이기도 했다. 그는 재환의 여린 모습은 자신과도 닮았다고 말했다.

“처음 오디션을 볼 때 대본과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보고 재환 캐릭터가 되게 하고 싶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속으로는 부족함을 느끼는 캐릭터죠. 좋은 걸 많이 가졌다고 해도 부족한 부분은 스스로가 더 잘 알잖아요? 저도 재환이의 어릴 적처럼 학창시절에 사람들 앞에서 많이 주눅 드는 성격이었거든요”

김진엽/사진=이승현 기자 lsh87@
김진엽/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노래를 하면 사람들이 다가와 준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추리의 여왕2’(KBS2)에서 범인 역할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은 그는 사실 2012년 미니앨범 ‘이별 없는 사랑’으로 데뷔한 가수 출신이다. Mnet 음악 예능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서는 ‘고대 장학생’ 타이틀로 주목을 받았다. 종종 학력이 부각돼재능이 덜 주목받는 게 불편하지는 않으냐는 질문에는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제가 짧게 출연한 그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모았는지는 모르겠어요, 하하. 작가님들이 좋게 만들어주셨던 것 같아요. ‘고대 장학생’이라는 타이틀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열심히 했던 것에 대해 칭찬받는 기분입니다. 실제로 공부도 열심히했거든요. 나중에 그 때 출연을 얘기하며 저를 한번 더 기억해주시는 게 감사할 뿐입니다”

그는 ‘사생결단 로맨스’의 차재환처럼 어렸을 때는 소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의 성격을 바꿔준 건 ‘노래’였다. 중학교 1학년 학교 축제 때 성시경의 ‘미소천사’를 부른 게 시작이었다.

“남중, 남고를 나왔는데 ‘미소천사’를 불러서 느끼하다고 친구들이 많이 놀렸어요. 그런데도 박수와 응원을 많이 받았어요.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게 됐습니다. 노래를 정말 좋아하니까 남들 앞에서 부르고는 싶고, 축제라고 해봤자 그냥 장기자랑인데 엄청 주저주저하면서 나갔던 게 기억나요. 그 떨림을 한번 이겨내니까 좋았어요. 끝난 뒤에 ‘내가 해냈어’라는 마음이 중요했습니다”

노래는 대학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흑인 음악 동아리에 들어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학생으로는 큰 무대에도 섰다. 노래를 하면 사람들이 다가와준다는 걸 알게 됐다. 가수로도 데뷔했다. 그는 “데뷔하고 무대에 서면서 성격이 많이 변했다”며 “사실은 내 안에 있었을 밝고 적극적인 성격이 겉으로도 발현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노래,연기 모두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일”

김진엽은 신소재공학과를 나왔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즈음 수학에 재미와 재능을 느꼈고, 물리와 화학을 좋아해 신중하게 고른 전공이었다. 덕분에 대학 공부도 재미있게 했단다. 하지만 스물 아홉에 졸업하기까지, 가수 일을 하며 학업을 병행한 것은 그의 진로와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때 그를 잡아준 것이 연극이었다. 김진엽은 대학로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 120회차에 꾸준히 출연했다. 서로를 ‘배우’라고 부르는 환경이 ‘내가 지금 배우 일을 하고 있고, 해야겠다’는 자각을 줬단다.

가수 데뷔 이후 배우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뭐였을까. 그는 “가수로는 크게 유명한 사람은 못됐지만, 무대에 서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며 “노래가 아닌 걸로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어졌다”고 밝혔다. 연기가 노래보다 영향의 폭을 넓혔다고도 했다.

어쩌면 노래를 하고, 연기를 하는 건 무언가를 표현하고 영향력을 준다는 면에서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의 또다른 바람은 배우로서 에세이를 쓰는 것이다.

“한번은 ‘가출’이라는 시를 써서 교내 대회 금상을 받았어요. 좋은 시라고 생각하는 게, 결론이 다시 집에 돌아오는 거였거든요, 하하. 노래를 할 때도 가사를 쓰는 걸 좋아했어요. 단어를 열심히 선택해서 예쁘게 글이 써지는 게 좋았습니다. 짧은 글로 뭔가를 표현하는 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시인은 정호승 시인입니다. 시 말고도 나중에는 에세이를 써보고 싶어요. 실제로 배우들 중에 에세이를 쓰는 분들이 있잖아요. 좀 더 내공이 쌓이면 정말 조심스럽게 쓰고 싶습니다.”

김진엽/사진=이승현 기자 lsh87@
김진엽/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추석은 가족들과, 그리고 007 시리즈

‘사생결단 로맨스’ 촬영을 마친 그는 추석 연휴를 가족과 보낼 계획이다. 4개월 간의 드라마 촬영을 끝내고는 그동안 못 봤던 마블시리즈를 몰아서 다 봤단다. 이번 추석에는 ‘007 시리즈’를 다시 볼 예정이다. 한복을 입는 건 중학교 때 이후 16년 만이다. 미국 홈스테이 때 외국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입고 갔다 그대로 선물하고 왔던 게 마지막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경험이 연기에 자양분이 될 거라고 믿는다. 늦게 데뷔했지만 연기가 두렵지 않은 이유다.

“보기에 ‘편안한 연기’를 하는 게 목표입니다.‘사생결단 로맨스’를 통해 친해진 배우들을 보면서 ‘아,저 사람이 다른 연기를 하는 걸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제 연기를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저를 그렇게 궁금하게 여겨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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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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