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정상이 손에 잡힐 듯 눈 앞에 보인다. 올라서기만 하면 아름다운 풍경이 눈 아래 펼쳐질 것 같다. 하지만 가는 길이 너무 험하다. 산소도 희박하고 다리도 풀렸다. 지금까지 온 것만 해도 지쳐 쓰러질 것 같은데 더 가다가는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여기서 일행들 간에 의견이 갈린다. 그만 내려가자는 사람과 죽더라도 끝까지 가보자는 사람.
영화 ‘상류사회’의 두 부부도 그랬다. 2등까지 올라가니 1등이 손에 잡힐듯 보이고, 그래서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1등으로 가는 길은 험하다. 더럽고 치사하기까지 하다. 양심을 버리고 불의를 눈감아야 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래도 갈 것인가, 멀 것인가. 남자는 그만두자고 하고, 여자는 계속 가자고 한다. 현실을 직시한 남자는 하루 빨리 욕망의 굴레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상책이라며 더는 선을 넘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는 여자는 “우리, 그냥 개같이 살자”고 고집한다. 기어코 끝을 보겠다는 심산이다. 남자는 한 발짝 더 가려는 여자에게 “선을 넘지 말라”고 제동을 건다.
‘상류사회’는 각자의 욕망으로 얼룩진 부부가 아름답고도 추악한 상류사회로 들어가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경제학과 교수 장태준(박해일)은 생존권 보장을 외치는 영세 상인 집회에서 분신을 시도한 노인을 구하면서 ‘민국당’의 눈에 들게 된다. 이를 계기로 민국당으로부터 공천 기회를 잡은 장태준은 국회의원이 돼 상류사회로 진입하겠다는 ‘야망’을 품게 된다. 미래그룹이 설립한 미래미술관 부관장 오수연(수애)은 관장 자리에 오르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재벌가가 누리는 삶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온 그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진한다.
호락호락할 리 없다. 상위 1%에 올라있는 그들이 옆자리를 쉽게 내어줄 리 없었다. 두 다리 쭉 뻗을 공간이 줄어들지 모르는 데 누가 좋다고 그러겠는가. 그들을 이용하려던 두 부부는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된다.
장태준은 자신의 ‘욕망’에 스스로 제동을 건다. 하지만 오수연은 멈추지 못한다. 자신의 민낯이 다 드러났는데도 오히려 더 가속 페달을 밟는다. 폭주 기관차 같은 그녀를 멈춘 것은 남편이다.
장태준과 오수연, 참 독특한 부부다. 침실에는 고급 호텔 트윈룸처럼 두 개의 침대가 있다. 만날 때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한두 마디 농담으로 넘어간다. 둘 사이에 아이는 없다. 순간의 욕구를 참지 못하고 다른 이성과 잠자리를 갖는다. 치부가 드러났는데도 헤어지지 않겠다고 한다. ‘사랑’이란 범주를 정확히 정의하긴 어렵지만 ‘사랑’보다는 함께 걷는 ‘동지’의 느낌이 강하다.
박해일과 수애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실제로도 연배나 데뷔 시기가 비슷한 두 사람은 부부의 감정보다 ‘동지애’에 초점을 맞춰 연기했다. 이미 많은 작품을 통해 연기력을 검증받은 이들은 독특한 부부 사이를 설득력 있게 표현해냈다.
그동안 드라마, 영화 등 장르를 불문하고 재벌, 정치인 등이 등장하는 ‘상류층’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많았다. 영화 ‘상류사회’ 도 ‘뻔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정치권, 재벌, 조폭들과의 연결고리 등 지금껏 봐 왔던 것과 크게 다르진 않다. 다만 실제 있을 법한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재현하기 위해 기존의 어떤 작품들보다 묘사가 노골적이다.
정치권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진 미래그룹 회장 한용석(윤제문)의 개인 취향은 일부 관객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을 만큼 적나라하게 표현됐다. 일본 AV 배우인 하마사키 마오까지 섭외해 정사 장면을 촬영했다.
‘사업가’라는 명분으로 한용석 밑에서 일하는 조직폭력배 백광현(김강우)만 봐도 그렇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고, 여차하면 칼부림을 마다않는 다른 영화들에서의 조폭 모습이 아니다. 장태준과 날 선 대립을 보이지만 단번에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지는 않는다. 장태준과 오수연 사이도 마찬가지다. 흔치는 않겠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부부관계다.
‘인터뷰'(2000), ‘주홍글씨'(2004) 등 전작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심리를 예리하게 담아낸 변혁 감독은 ‘상류사회’에 대해 “높은 곳으로 달려가는 게 조금 지나치면 욕심이 되고 탐욕이 된다. 멈출 것인가, 계속 갈 것인가, 그 선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류층’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왜 그곳을 가려 하는지를 다루고 싶었다. 꼴등이 일등이 되는 전형적인 플롯과 달리 이미 가진 듯 보이는 2등, 3등 하는 사람들이 더 올라가고 싶어 하는 욕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 덕에 ‘욕망’을 품은 인물들의 심리와 갈등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지극히 적나라한 묘사로 보여주는 상류사회의 ‘민낯’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오는 29일 개봉.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정상이 손에 잡힐 듯 눈 앞에 보인다. 올라서기만 하면 아름다운 풍경이 눈 아래 펼쳐질 것 같다. 하지만 가는 길이 너무 험하다. 산소도 희박하고 다리도 풀렸다. 지금까지 온 것만 해도 지쳐 쓰러질 것 같은데 더 가다가는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여기서 일행들 간에 의견이 갈린다. 그만 내려가자는 사람과 죽더라도 끝까지 가보자는 사람.
영화 ‘상류사회’의 두 부부도 그랬다. 2등까지 올라가니 1등이 손에 잡힐듯 보이고, 그래서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1등으로 가는 길은 험하다. 더럽고 치사하기까지 하다. 양심을 버리고 불의를 눈감아야 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래도 갈 것인가, 멀 것인가. 남자는 그만두자고 하고, 여자는 계속 가자고 한다. 현실을 직시한 남자는 하루 빨리 욕망의 굴레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상책이라며 더는 선을 넘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는 여자는 “우리, 그냥 개같이 살자”고 고집한다. 기어코 끝을 보겠다는 심산이다. 남자는 한 발짝 더 가려는 여자에게 “선을 넘지 말라”고 제동을 건다.
‘상류사회’는 각자의 욕망으로 얼룩진 부부가 아름답고도 추악한 상류사회로 들어가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경제학과 교수 장태준(박해일)은 생존권 보장을 외치는 영세 상인 집회에서 분신을 시도한 노인을 구하면서 ‘민국당’의 눈에 들게 된다. 이를 계기로 민국당으로부터 공천 기회를 잡은 장태준은 국회의원이 돼 상류사회로 진입하겠다는 ‘야망’을 품게 된다. 미래그룹이 설립한 미래미술관 부관장 오수연(수애)은 관장 자리에 오르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재벌가가 누리는 삶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온 그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진한다.
호락호락할 리 없다. 상위 1%에 올라있는 그들이 옆자리를 쉽게 내어줄 리 없었다. 두 다리 쭉 뻗을 공간이 줄어들지 모르는 데 누가 좋다고 그러겠는가. 그들을 이용하려던 두 부부는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된다.
장태준은 자신의 ‘욕망’에 스스로 제동을 건다. 하지만 오수연은 멈추지 못한다. 자신의 민낯이 다 드러났는데도 오히려 더 가속 페달을 밟는다. 폭주 기관차 같은 그녀를 멈춘 것은 남편이다.
장태준과 오수연, 참 독특한 부부다. 침실에는 고급 호텔 트윈룸처럼 두 개의 침대가 있다. 만날 때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한두 마디 농담으로 넘어간다. 둘 사이에 아이는 없다. 순간의 욕구를 참지 못하고 다른 이성과 잠자리를 갖는다. 치부가 드러났는데도 헤어지지 않겠다고 한다. ‘사랑’이란 범주를 정확히 정의하긴 어렵지만 ‘사랑’보다는 함께 걷는 ‘동지’의 느낌이 강하다.
그동안 드라마, 영화 등 장르를 불문하고 재벌, 정치인 등이 등장하는 ‘상류층’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많았다. 영화 ‘상류사회’ 도 ‘뻔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정치권, 재벌, 조폭들과의 연결고리 등 지금껏 봐 왔던 것과 크게 다르진 않다. 다만 실제 있을 법한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재현하기 위해 기존의 어떤 작품들보다 묘사가 노골적이다.
정치권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진 미래그룹 회장 한용석(윤제문)의 개인 취향은 일부 관객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을 만큼 적나라하게 표현됐다. 일본 AV 배우인 하마사키 마오까지 섭외해 정사 장면을 촬영했다.
‘사업가’라는 명분으로 한용석 밑에서 일하는 조직폭력배 백광현(김강우)만 봐도 그렇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고, 여차하면 칼부림을 마다않는 다른 영화들에서의 조폭 모습이 아니다. 장태준과 날 선 대립을 보이지만 단번에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지는 않는다. 장태준과 오수연 사이도 마찬가지다. 흔치는 않겠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부부관계다.
‘인터뷰'(2000), ‘주홍글씨'(2004) 등 전작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심리를 예리하게 담아낸 변혁 감독은 ‘상류사회’에 대해 “높은 곳으로 달려가는 게 조금 지나치면 욕심이 되고 탐욕이 된다. 멈출 것인가, 계속 갈 것인가, 그 선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류층’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왜 그곳을 가려 하는지를 다루고 싶었다. 꼴등이 일등이 되는 전형적인 플롯과 달리 이미 가진 듯 보이는 2등, 3등 하는 사람들이 더 올라가고 싶어 하는 욕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 덕에 ‘욕망’을 품은 인물들의 심리와 갈등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지극히 적나라한 묘사로 보여주는 상류사회의 ‘민낯’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오는 29일 개봉.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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