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는 ‘가출팸’을 소재로 하고 있고, ‘일탈하는 10대의 사실적인 세계’를 다루는 영화의 계보를 일단은 잇고 있다. 하지만 익숙한 장르 기시감만으로 이 영화를 설명하기에는 뭔가가 부족하다. ‘곡성’을 보고 그랬던 것처럼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동안 ‘이 영화는 무슨 영화지?’하는 의문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여기에 이 영화의 미덕이 있다. ‘박화영’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박화영에서 시작해 박화영으로 끝이 난다.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서사구조가 약하고 주제를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도 아니어서 인물만 남기도 하고 실은 이 캐릭터가 너무 강력하다. 그래서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리얼리즘영화 보다는 캐릭터 영화로 읽을 때 더 흥미롭다.
최소한의 생존이 위태로운 화영은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극빈층에 가깝지만 여고생, 청소년, 소녀,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못한 결핍을 채우기 위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다. 그 뒤에 돌아오는 상대의 기만을 유머나 긍정의 환상으로 전환하는 것은 화영의 특기다. 포스터를 장식한 유쾌한 대사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는 화영의 강렬하고 원초적 욕망이기도 한 존재에 대한 인정욕구가 들어있는 쓸쓸한 대사다.
화영은 이 세계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때문에 대신 매를 맞고 분노의 쓰레기통이 되고 복수를 사주받고 심지어는 살인사건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또래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지불하는 혼신을 다한 ‘열정페이’인 셈이다.
‘너무 위로되지도 않게, 너무 냉정하지도 않게’는 박화영을 연기한 배우 김가희가 폭력 장면을 만들 때 카메라 밖에서 상대 배우와의 관계에 대해 한 말이기도 하고, 이 영화와 현실 세계 혹은 감독과 관객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다. 이 거리에서만 영화는 발화한다. 이 이야기가 익히 들은 그들만의 이야기라거나 계급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있었던 오래된 이야기라고 생각지 않는 것은 혹시 내가 박화영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안간힘을 쓰며 세계에 속하기 위해 가진 최대치의 열정페이를 지불 할 수밖에 없는 을(乙)들의 행복 회로에 관한 이야기 혹은 행복회로를 정지하고 박화영의 구원을 궁리하며 나 자신의 진짜 행복 회로를 작동시키는 이야기 ‘박화영’을 추천한다.
정지혜(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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