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작가]
8월이 시작되면 벌써 가슴이 아려 온다. 머리가 놓친 기억을 심장이 붙들고 있나 보다. 기억을 이리저리 헤집으면, 저만치 흐릿하게 로빈 윌리엄스가 보인다. 특유의 푸근한 미소가 점차 또렷해진다.
한때 배우라는 단어에 로빈 윌리엄스가 자동반사적으로 떠올랐던 적이 있다. 미지의 누군가에게 직업을 대표하는 얼굴로 떠오르는 것만 봐도 그는 타고난 배우였다. 그가 하늘의 별이 된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해마다 내가 그를 추모하는 방식은 영화를 한편 골라서 그의 연기를 찬찬히 음미하는 것이다. 밤하늘의 숱한 별처럼 많은, 빛나는 작품에 출연했기에 한 편을 꼽기는 늘상 어렵다. 문득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재단이 SNS에서 ‘알라딘’(감독 존 머스커, 론 클레멘츠)의 스틸컷에 “Genie, you`re free(지니, 넌 자유야)”라는 글을 곁들여서 그를 애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올해는 램프의 요정 ‘지니’로 정했다.
이래 봬도 나와 요정 간에는 나름의 역사, 서사가 있다. 나는 다소 늙은 어린이일지도 모를 13살까지 거의 매일 밤 요정을 기다렸다. 여덟 살 때 딱 한 번 선물을 주고 돌아선 산타클로스보다 미지의 요정이 훨씬 실재 같았다. 소녀였던 나를 찾아올 요정의 역할은 분명했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줄 것. 기다림의 시간만큼 소원은 더욱 견고해졌다. 각본을 수정하듯 세 가지 소원에 대한 퇴고를 거듭했으므로. 어쩌면 알라딘보다, 쟈파보다 요정 지니를 기다렸던 사람은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
애니메이션 ‘알라딘’은 동쪽의 바람과 서쪽의 태양이 정답게 마주보는, 신비하면서도 매혹적인 도시 아그라바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이 도시에서 뷰가 기막힌 곳에 사는 이는 좀도둑 알라딘(스콧 와인거)이다. 진흙 속의 보석 같은 자로 예언되어 있지만 현실은 그저 진흙탕 같다. 그는 우연히 궁궐을 탈출한 술탄의 딸 쟈스민(린다 라킨)을 만나고 첫눈에 반한다. 램프를 노리는 간악한 마법사 쟈파(조나단 프리먼)의 꾐에 넘어가서 신비의 동굴에 갔다가 램프의 요정 지니(로빈 윌리엄스)를 만난다. 알라딘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지니에게 약속한다. 그 중 하나는 램프에 갇혀 있는 너에게 자유를 주는데 쓰겠노라고.
지니는 세 가지 소원을 흔쾌히 들어주지만 철칙이 있다. 첫째 사람을 죽일 수 없고, 둘째 누구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고, 셋째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없다는 것. 만년을 갇혀 있어야 했던, 서글픈 팔자를 가진 램프의 요정이건만 호연지기를 아는 친구다. 호방하고, 여리고, 생뚱하고, 장난스럽고, 따사롭고…. 하나의 단어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지니의 매력은 넘쳐난다.
‘알라딘’에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총출동한다. 알라딘의 짝꿍 원숭이 아부, 쟈스민의 짝꿍 호랑이 라쟈, 심지어 쟈파의 짝꿍 앵무새 이아고까지. 그러나 이들의 귀여움과 견주어도 절대 밀리지 않는 캐릭터가 있으니 최고령인 쟈스민의 아빠 술탄이다. 그리고 언제 들어도 좋은, 귀에 익은 노래들이 흐른다. 주제곡 ‘A whole new world’와 알라딘과 지니의 첫만남송 ‘Friend Like Me’. 특히 후자는 지니의, 정확히는 로빈 윌리엄스의 매력이 뿜뿜 터지는 곡이다.
집밖으로 나가려던 발목도 붙잡는 폭염이다. 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 ‘알라딘’을 봐도 좋을 듯싶다. 1992년도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인지라 조악한 그림체, 대놓고 악당스러운 빌런 등 선뜻 눈길이 안 갈 수 있다. 그러나 마법의 양탄자처럼 금세 탄탄한 이야기에 올라탈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지니, ‘로빈 윌리엄스’가 더위에 혹은 삶에 지친 당신을 끌어안을 것이다.
“지니, 네가 보고 싶을 거야.”
지니와의 이별이 못내 아쉬운 알라딘의 대사다. 알라딘의 마음에 나의 마음이 완벽하게 포개진다. 이렇게 슬픈 대사였던가. 이다지도 아픈 대사였던가. 지니의 목소리만으로도 로빈 윌리엄스가 마구 그려진다.
마음 가득, 그리움이 차오른다.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한때 배우라는 단어에 로빈 윌리엄스가 자동반사적으로 떠올랐던 적이 있다. 미지의 누군가에게 직업을 대표하는 얼굴로 떠오르는 것만 봐도 그는 타고난 배우였다. 그가 하늘의 별이 된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해마다 내가 그를 추모하는 방식은 영화를 한편 골라서 그의 연기를 찬찬히 음미하는 것이다. 밤하늘의 숱한 별처럼 많은, 빛나는 작품에 출연했기에 한 편을 꼽기는 늘상 어렵다. 문득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재단이 SNS에서 ‘알라딘’(감독 존 머스커, 론 클레멘츠)의 스틸컷에 “Genie, you`re free(지니, 넌 자유야)”라는 글을 곁들여서 그를 애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올해는 램프의 요정 ‘지니’로 정했다.
이래 봬도 나와 요정 간에는 나름의 역사, 서사가 있다. 나는 다소 늙은 어린이일지도 모를 13살까지 거의 매일 밤 요정을 기다렸다. 여덟 살 때 딱 한 번 선물을 주고 돌아선 산타클로스보다 미지의 요정이 훨씬 실재 같았다. 소녀였던 나를 찾아올 요정의 역할은 분명했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줄 것. 기다림의 시간만큼 소원은 더욱 견고해졌다. 각본을 수정하듯 세 가지 소원에 대한 퇴고를 거듭했으므로. 어쩌면 알라딘보다, 쟈파보다 요정 지니를 기다렸던 사람은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
애니메이션 ‘알라딘’은 동쪽의 바람과 서쪽의 태양이 정답게 마주보는, 신비하면서도 매혹적인 도시 아그라바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이 도시에서 뷰가 기막힌 곳에 사는 이는 좀도둑 알라딘(스콧 와인거)이다. 진흙 속의 보석 같은 자로 예언되어 있지만 현실은 그저 진흙탕 같다. 그는 우연히 궁궐을 탈출한 술탄의 딸 쟈스민(린다 라킨)을 만나고 첫눈에 반한다. 램프를 노리는 간악한 마법사 쟈파(조나단 프리먼)의 꾐에 넘어가서 신비의 동굴에 갔다가 램프의 요정 지니(로빈 윌리엄스)를 만난다. 알라딘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지니에게 약속한다. 그 중 하나는 램프에 갇혀 있는 너에게 자유를 주는데 쓰겠노라고.
지니는 세 가지 소원을 흔쾌히 들어주지만 철칙이 있다. 첫째 사람을 죽일 수 없고, 둘째 누구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고, 셋째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없다는 것. 만년을 갇혀 있어야 했던, 서글픈 팔자를 가진 램프의 요정이건만 호연지기를 아는 친구다. 호방하고, 여리고, 생뚱하고, 장난스럽고, 따사롭고…. 하나의 단어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지니의 매력은 넘쳐난다.
‘알라딘’에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총출동한다. 알라딘의 짝꿍 원숭이 아부, 쟈스민의 짝꿍 호랑이 라쟈, 심지어 쟈파의 짝꿍 앵무새 이아고까지. 그러나 이들의 귀여움과 견주어도 절대 밀리지 않는 캐릭터가 있으니 최고령인 쟈스민의 아빠 술탄이다. 그리고 언제 들어도 좋은, 귀에 익은 노래들이 흐른다. 주제곡 ‘A whole new world’와 알라딘과 지니의 첫만남송 ‘Friend Like Me’. 특히 후자는 지니의, 정확히는 로빈 윌리엄스의 매력이 뿜뿜 터지는 곡이다.
집밖으로 나가려던 발목도 붙잡는 폭염이다. 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 ‘알라딘’을 봐도 좋을 듯싶다. 1992년도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인지라 조악한 그림체, 대놓고 악당스러운 빌런 등 선뜻 눈길이 안 갈 수 있다. 그러나 마법의 양탄자처럼 금세 탄탄한 이야기에 올라탈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지니, ‘로빈 윌리엄스’가 더위에 혹은 삶에 지친 당신을 끌어안을 것이다.
“지니, 네가 보고 싶을 거야.”
지니와의 이별이 못내 아쉬운 알라딘의 대사다. 알라딘의 마음에 나의 마음이 완벽하게 포개진다. 이렇게 슬픈 대사였던가. 이다지도 아픈 대사였던가. 지니의 목소리만으로도 로빈 윌리엄스가 마구 그려진다.
마음 가득, 그리움이 차오른다.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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