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맑~은 바람 쐬고 자란 흑돼지를 공수해서 달~달한 간장 소스에 하루 동안 푹~ 재운 돼지갈비를 숯불 향 머금게 지글지글 구워서….’
개그우먼 이영자의 말이 아니다. 지난달 26일 종영한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이하 ‘김비서’)에서 배우 이정민이 한 대사다. 이정민은 ‘김비서’에서 1년 내내 다이어트에 시달리는 이영옥을 연기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는 대신 먹었던 음식 맛을 떠올리는 것이 극 중 영옥의 유일한 낙이었다. 드라마 종영 후 텐아시아와 만난 이정민은 “대사를 리듬감 있게 전달하고 싶어서 이영자 선배님의 ‘먹방’을 보며 연구했다”고 했다.
‘먹방’ 공부…“인간미 보여주고 싶었죠”
만화적인 인물로 가득한 ‘김비서’에서 이영옥은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였다. 특히 다이어트 중이라며 회식 자리에서도 상추나 깨작거리던 그가 술에 취해 과일이나 뻥튀기 과자를 허겁지겁 먹는 장면에선 공감 어린 탄식이 자주 쏟아져 나왔다. 이영옥의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보여주자는 것이 이정민의 욕심이었다.
“원작 소설엔 없는 인물이었어요. 초반부터 등장인물이 많았던 데다가 통통 튀는 인물은 따로 있어서 처음엔 고민이 많았죠. 내가 너무 묻히지 않을까, 시청자들에게 안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요. 그런데 영옥이가 다른 사람들처럼 튀어버리면 매력이 반감될 것 같더라고요. 제 페이스대로 인물을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감독님께서 모든 인물들을 잘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은 탓에 이정민은 ‘먹방’을 보면서 대사를 연구했단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이영자의 모습이 큰 도움이 됐다. “‘소떡소떡’이나 육회 비빔밥 드시는 걸 특히 자주 봤어요.” 영옥처럼 이정민도 1년 내내 다이어트를 달고 산다. 대식가는 아니지만 먹는 걸 워낙 좋아해서 영옥에게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드라마가 종영한 뒤부터 긴장이 풀려서인지 식욕이 자꾸 돈다며 울상을 지었다. “달 보면서 빌었어요. 제발 먹는 것 좀 줄이게 해달라고. 하하하.”
촬영장 분위기는 언제나 화기애애했다. 나이대가 비슷한 배우들이 모인 덕분에 웃음이 끊일 날이 없었다고 한다. 회사 사무실을 배경으로 펼쳐지지만 이정민은 “제대로 일을 한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대신 지뢰 찾기와 타자연습은 원 없이 했다. 하루 중 대부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 덕분이다. 이정민은 “색칠연습 책을 챙겨간 적도 있다. 너무 티가 나서 촬영 때 쓰지는 못했다”며 웃었다.
중학생 때 본 ‘죽은 시인들의 사회’, 이정민의 삶은 달라졌다
이정민은 이른바 ‘고(高)스펙’ 소유자다. 공부를 제법 잘해서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이정민의 마음 속엔 누구에게도 내색 않던 열렬함이 있었다. 중학생 때부터 간직한 연기를 향한 열렬함이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그는 처음으로 용기를 냈다. 연극부에 들어가 연극 무대에 선 것이다.
“중학생 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처음으로 ‘나도 배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진 못했죠. 왠지 부끄럽고 창피하게 느껴졌거든요. 제가 연기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다만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제작사나 배급사에서 일할 순 있겠다고 여겼죠. 재밌는 건, 그 때 ‘죽은 시인의 사회’를 같이 봤던 친구는 제가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걸 알고 있었대요.”
돌이켜보면 이정민의 인생엔 늘 영화가 있었다. 외국어고에 진학한 것도 영화 ‘무간도’를 보고 중국어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정작 ‘무간도’는 광둥어라서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슬픈 사연이 있지만요. 하하하.”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한 때 자신의 이상형이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영화 ‘아멜리에’를 본 뒤엔 프랑스어를, ‘사토라레’를 본 뒤엔 일본어를 배웠다고 했다.
정식 데뷔한 것은 스물다섯 살 때인 2013년드라마 ‘몬스타’를 통해서다. 그는 “일을 좀 더 빨리 시작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가끔 한다. 하지만 시간을 돌려도 (배우를 꿈꾸기 시작한 때부터) 바로 시작하진 못했을 것 같다”며 “관객의 입장으로 본 작품들이, 그리고 그 작품들을 보던 순간이 지금의 저에게 좋은 양분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좋은 기운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정민은 영화만큼이나 음악도 좋아한다. 얼마 전엔 밴드 자우림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해외 유명 가수의 내한 공연도 자주 공연을 보러 간단다. 대학생 땐 건반 연주자로 대학가요제에 나가기도 했다. 실력이 뛰어난 모양이라고 칭찬을 건네자 “내가 (밴드에서) 한 건 별로 없다”는 겸손한 농담이 돌아왔다. 이정민은 “좋은 공연은 좋은 에너지를 준다. 그리고 그게 내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그가 좋아하는 건 또 있다. 자연이다. 때로 영화 보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한다는 그는 그 때마다 자연으로 떠난다고 했다. 자연 속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생각도 정리돼 좋단다. 가끔은 글도 쓴다. 비공개로 운영하는 블로그에 하루의 감정을 털어놓는다. 뭔가를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가득하다.
“저는 현실주의자보다는 몽상가에 가까워요. 항상 날 것의 상태로 사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문제에요.(웃음) 현실에 부딪혀 당황할 때가 종종 있거든요.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몽상가 같은 삶을 즐길 수 있겠어요.”
이정민의 다음 도전은 영화 ‘걸캅스’다. 오는 13일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다. 덕분에 ‘김비서’ 포상 휴가에는 함께 할 수 없게 됐지만 이정민은 씩씩했다. 한 작품씩 필모그래피를 늘리면서 자신의 연기를 더 많이 보여주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동안 밝은 캐릭터를 주로 맡았지만 장르물이나 여성이 주인공인 액션 영화에도 도전해보고 싶단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뒤부터 한 번도 후퇴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후회도 없고요. 이제 시작 단계이지만 언젠가는 영화가 됐든 공연이 됐든, 어떤 매체로든 좋은 기운을 주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개그우먼 이영자의 말이 아니다. 지난달 26일 종영한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이하 ‘김비서’)에서 배우 이정민이 한 대사다. 이정민은 ‘김비서’에서 1년 내내 다이어트에 시달리는 이영옥을 연기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는 대신 먹었던 음식 맛을 떠올리는 것이 극 중 영옥의 유일한 낙이었다. 드라마 종영 후 텐아시아와 만난 이정민은 “대사를 리듬감 있게 전달하고 싶어서 이영자 선배님의 ‘먹방’을 보며 연구했다”고 했다.
‘먹방’ 공부…“인간미 보여주고 싶었죠”
만화적인 인물로 가득한 ‘김비서’에서 이영옥은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였다. 특히 다이어트 중이라며 회식 자리에서도 상추나 깨작거리던 그가 술에 취해 과일이나 뻥튀기 과자를 허겁지겁 먹는 장면에선 공감 어린 탄식이 자주 쏟아져 나왔다. 이영옥의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보여주자는 것이 이정민의 욕심이었다.
“원작 소설엔 없는 인물이었어요. 초반부터 등장인물이 많았던 데다가 통통 튀는 인물은 따로 있어서 처음엔 고민이 많았죠. 내가 너무 묻히지 않을까, 시청자들에게 안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요. 그런데 영옥이가 다른 사람들처럼 튀어버리면 매력이 반감될 것 같더라고요. 제 페이스대로 인물을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감독님께서 모든 인물들을 잘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은 탓에 이정민은 ‘먹방’을 보면서 대사를 연구했단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이영자의 모습이 큰 도움이 됐다. “‘소떡소떡’이나 육회 비빔밥 드시는 걸 특히 자주 봤어요.” 영옥처럼 이정민도 1년 내내 다이어트를 달고 산다. 대식가는 아니지만 먹는 걸 워낙 좋아해서 영옥에게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드라마가 종영한 뒤부터 긴장이 풀려서인지 식욕이 자꾸 돈다며 울상을 지었다. “달 보면서 빌었어요. 제발 먹는 것 좀 줄이게 해달라고. 하하하.”
촬영장 분위기는 언제나 화기애애했다. 나이대가 비슷한 배우들이 모인 덕분에 웃음이 끊일 날이 없었다고 한다. 회사 사무실을 배경으로 펼쳐지지만 이정민은 “제대로 일을 한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대신 지뢰 찾기와 타자연습은 원 없이 했다. 하루 중 대부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 덕분이다. 이정민은 “색칠연습 책을 챙겨간 적도 있다. 너무 티가 나서 촬영 때 쓰지는 못했다”며 웃었다.
중학생 때 본 ‘죽은 시인들의 사회’, 이정민의 삶은 달라졌다
“중학생 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처음으로 ‘나도 배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진 못했죠. 왠지 부끄럽고 창피하게 느껴졌거든요. 제가 연기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다만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제작사나 배급사에서 일할 순 있겠다고 여겼죠. 재밌는 건, 그 때 ‘죽은 시인의 사회’를 같이 봤던 친구는 제가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걸 알고 있었대요.”
돌이켜보면 이정민의 인생엔 늘 영화가 있었다. 외국어고에 진학한 것도 영화 ‘무간도’를 보고 중국어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정작 ‘무간도’는 광둥어라서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슬픈 사연이 있지만요. 하하하.”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한 때 자신의 이상형이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영화 ‘아멜리에’를 본 뒤엔 프랑스어를, ‘사토라레’를 본 뒤엔 일본어를 배웠다고 했다.
정식 데뷔한 것은 스물다섯 살 때인 2013년드라마 ‘몬스타’를 통해서다. 그는 “일을 좀 더 빨리 시작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가끔 한다. 하지만 시간을 돌려도 (배우를 꿈꾸기 시작한 때부터) 바로 시작하진 못했을 것 같다”며 “관객의 입장으로 본 작품들이, 그리고 그 작품들을 보던 순간이 지금의 저에게 좋은 양분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좋은 기운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가 좋아하는 건 또 있다. 자연이다. 때로 영화 보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한다는 그는 그 때마다 자연으로 떠난다고 했다. 자연 속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생각도 정리돼 좋단다. 가끔은 글도 쓴다. 비공개로 운영하는 블로그에 하루의 감정을 털어놓는다. 뭔가를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가득하다.
“저는 현실주의자보다는 몽상가에 가까워요. 항상 날 것의 상태로 사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문제에요.(웃음) 현실에 부딪혀 당황할 때가 종종 있거든요.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몽상가 같은 삶을 즐길 수 있겠어요.”
이정민의 다음 도전은 영화 ‘걸캅스’다. 오는 13일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다. 덕분에 ‘김비서’ 포상 휴가에는 함께 할 수 없게 됐지만 이정민은 씩씩했다. 한 작품씩 필모그래피를 늘리면서 자신의 연기를 더 많이 보여주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동안 밝은 캐릭터를 주로 맡았지만 장르물이나 여성이 주인공인 액션 영화에도 도전해보고 싶단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뒤부터 한 번도 후퇴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후회도 없고요. 이제 시작 단계이지만 언젠가는 영화가 됐든 공연이 됐든, 어떤 매체로든 좋은 기운을 주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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