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액션이 없어도 액션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영화에요. ‘흑금성’의 첩보 대상인 리명운 역을 맡은 저의 첫 번째 미션은 관객들의 긴장감을 계속 유지시키는 거라고 생각했죠.”
오는 8일 개봉하는 영화 ‘공작’에서 리명운 역을 연기한 배우 이성민의 말이다.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활동하던 북파 공작원이 남북 고위층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첩보극. 2일 팔판동 한 카페에서 이성민을 만났다.
‘공작’은 실제 사건을 영화화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성민은 ‘흑금성’의 실제 인물인 박채서 씨를 만나기도 했다. “당시 신창원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해서 ‘흑금성’ 사건은 슬쩍 스쳐가는 이야기로 뉴스에 나왔을 것”이라며 “북쪽으로 간첩을 보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을 두 번이나 만난 스파이가 있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고 말했다.
이성민은 ‘공작’ 시나리오를 보고 ‘참 대사가 많다. 액션이 없다’고 생각했단다. 그는 “배우들과 여러 차례 회의를 하고 연습하면서 얻은 결론은 ‘이 영화는 구강액션이다’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공작’에서는 첩보물 하면 흔히 떠올리는 총격전이나 거친 몸싸움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윤종빈 감독도 배우들에게 “대사가 액션으로 느껴지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성민은 영화 속에서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말과 눈빛만으로 설득과 협박, 회유를 해낸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만 해도 극강의 긴장감을 느끼지는 못했죠.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서 연기를 하려니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잘 실연되지 않더라고요. 그때 가서야 숨 쉴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죠.”
극 중 리명운은 북경 주재 대외경제위원회 처장으로, 북한의 외화벌이를 책임지고 있다. 이성민은 리명운과 ‘흑금성’ 박석영(황정민 분)이 ‘고려관’ 식당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을 “말 그대로 정말 숨이 막혔다”고 표현했다. 그는 “보통은 호흡을 바꾸거나 자세를 바꾸며 환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그렇게 환기시키는 순간, 관객들의 긴장감이 떨어진다. 또 그런 움직임으로 인해 흑금성에게 약점을 잡힐 수 있는 상황이어서 자세 하나 바꾸기도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눈을 깜빡이거나 숨을 쉬는 시점까지도 다 계산하고 연기했어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대본에 그런 걸 하나하나 체크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하지 않았죠. 다시 그렇게 연기하려니 많이 부대꼈어요. 하면서 후회도 반성도 많이 했는데 지나고 나니 좋더라고요.”
북한 최고위 간부라고 하면 사리사욕만 채울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다. 이성민은 영화를 찍으면서 실제로 인민들을 위해 일하는 고위층 인사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했다. 그가 리명운이라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 것도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인민들을 생각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갖고 있어서였다. 이성민은 리명운에 대해 “굉장히 예민하고 강해보이지만 사실은 조심스럽고 연약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극 중 리명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지만 그가 하는 일들이 오로지 최고영도자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자문해 주시는 분께 북한에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느냐고 물었더니 많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북한이라는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라는 말에 놀랐죠. 나중에 그 분이 제게 북한 사람을 이렇게 묘사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성민은 이번 영화에 앞서 ‘군도:민란의 시대’(2014)에서 윤종빈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그때 생긴 믿음이 이번 영화 출연으로 이어졌다. 액션이 없이도 싱겁지 않은 첩보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윤 감독의 능력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윤 감독만이 가진 특유의 유머 감각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흑금성이 김정일을 만나러 가는 내내 긴장감이 계속 이어져요. 큰 문을 열고 김정일이 등장하는데 관객들이 한 번 쉴 수 있도록 윤 감독이 한 가지 장치를 했죠. 그런 장치가 아니었으면 (극심한 긴장감에) 힘들었을 거예요. 윤 감독은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이성민은 흑금성을 데리고 별장으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러 가는 이 장면은 기에 눌려서 촬영했다고 밝혔다. “일반 세트장에 세트를 짓지 못할 큰 공간이었어요. 거기에 들어가는 순간 압도됐죠. 알코올 수건으로 손을 닦는 순간에도 마음을 졸이게 되더라고요. 저도 그랬고, 정민이도 지훈이도 힘들어 했어요. 실제로도 (위압감이) 이 정도인가 싶었죠.”
‘공작’은 제 71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돼 주목받았다. 이성민은 “칸에서는 국내 시사 때와 달리 객석에서 웃음이 거의 안 나왔다. 우리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정서와 웃음 코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칸에서 배우가 복 받은 직업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레드카펫을 지나서 계단을 올라가 중간에 한 번 섰을 때 밑을 내려다봤는데 엄청 높아 보이더라고요. 계단 아래에서 제작사, 투자사 분들이 손을 흔드는데 기분이 묘했어요.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순간적으로 욕까지 나오려고 하더라고요. 뒤풀이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계단을 다시 봤더니 별로 높지도 않더라고요. 하하”
그가 ‘공작’의 대본을 처음 본 것은 2015년이었다. 남북한 간의 긴장이 고조되던 때였다. 그는 “올해 들어 남북 관계가 급격히 개선되고 두 정상이 만나는 모습을 보며 ‘윤종빈 감독은 미래에서 온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그에게 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우리 민족에게 작은 희망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남과 북을 위해 노력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오는 8일 개봉하는 영화 ‘공작’에서 리명운 역을 연기한 배우 이성민의 말이다.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활동하던 북파 공작원이 남북 고위층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첩보극. 2일 팔판동 한 카페에서 이성민을 만났다.
‘공작’은 실제 사건을 영화화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성민은 ‘흑금성’의 실제 인물인 박채서 씨를 만나기도 했다. “당시 신창원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해서 ‘흑금성’ 사건은 슬쩍 스쳐가는 이야기로 뉴스에 나왔을 것”이라며 “북쪽으로 간첩을 보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을 두 번이나 만난 스파이가 있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고 말했다.
이성민은 ‘공작’ 시나리오를 보고 ‘참 대사가 많다. 액션이 없다’고 생각했단다. 그는 “배우들과 여러 차례 회의를 하고 연습하면서 얻은 결론은 ‘이 영화는 구강액션이다’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공작’에서는 첩보물 하면 흔히 떠올리는 총격전이나 거친 몸싸움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윤종빈 감독도 배우들에게 “대사가 액션으로 느껴지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성민은 영화 속에서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말과 눈빛만으로 설득과 협박, 회유를 해낸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만 해도 극강의 긴장감을 느끼지는 못했죠.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서 연기를 하려니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잘 실연되지 않더라고요. 그때 가서야 숨 쉴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죠.”
“눈을 깜빡이거나 숨을 쉬는 시점까지도 다 계산하고 연기했어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대본에 그런 걸 하나하나 체크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하지 않았죠. 다시 그렇게 연기하려니 많이 부대꼈어요. 하면서 후회도 반성도 많이 했는데 지나고 나니 좋더라고요.”
북한 최고위 간부라고 하면 사리사욕만 채울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다. 이성민은 영화를 찍으면서 실제로 인민들을 위해 일하는 고위층 인사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했다. 그가 리명운이라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 것도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인민들을 생각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갖고 있어서였다. 이성민은 리명운에 대해 “굉장히 예민하고 강해보이지만 사실은 조심스럽고 연약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극 중 리명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지만 그가 하는 일들이 오로지 최고영도자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자문해 주시는 분께 북한에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느냐고 물었더니 많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북한이라는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라는 말에 놀랐죠. 나중에 그 분이 제게 북한 사람을 이렇게 묘사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흑금성이 김정일을 만나러 가는 내내 긴장감이 계속 이어져요. 큰 문을 열고 김정일이 등장하는데 관객들이 한 번 쉴 수 있도록 윤 감독이 한 가지 장치를 했죠. 그런 장치가 아니었으면 (극심한 긴장감에) 힘들었을 거예요. 윤 감독은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이성민은 흑금성을 데리고 별장으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러 가는 이 장면은 기에 눌려서 촬영했다고 밝혔다. “일반 세트장에 세트를 짓지 못할 큰 공간이었어요. 거기에 들어가는 순간 압도됐죠. 알코올 수건으로 손을 닦는 순간에도 마음을 졸이게 되더라고요. 저도 그랬고, 정민이도 지훈이도 힘들어 했어요. 실제로도 (위압감이) 이 정도인가 싶었죠.”
“배우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칸에서 배우가 복 받은 직업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레드카펫을 지나서 계단을 올라가 중간에 한 번 섰을 때 밑을 내려다봤는데 엄청 높아 보이더라고요. 계단 아래에서 제작사, 투자사 분들이 손을 흔드는데 기분이 묘했어요.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순간적으로 욕까지 나오려고 하더라고요. 뒤풀이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계단을 다시 봤더니 별로 높지도 않더라고요. 하하”
그가 ‘공작’의 대본을 처음 본 것은 2015년이었다. 남북한 간의 긴장이 고조되던 때였다. 그는 “올해 들어 남북 관계가 급격히 개선되고 두 정상이 만나는 모습을 보며 ‘윤종빈 감독은 미래에서 온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그에게 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우리 민족에게 작은 희망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남과 북을 위해 노력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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