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소맥’을 말 때는 스마트폰 앱을 켜 계량기로 적정 비율을 측정한다. 근무 시간에는 비커에 술을 제조해 마신다. 고기는 사후 강직이 적당히 풀린 상태의 것만을 찾는다. 연애에 있어서도 똑 부러진다. 무작정 들이대는 상대에게는 ‘성관계 표준 계약서’를 제시한다. ‘노력하겠다’는 상대의 말에는 “썸에 있어 필요한 것은 노력이 아니라 매력”이라고 단언한다. 지난달 17일 종영한 MBC ‘검법남녀’에서 스테파니 리가 보여준 독약박사 스텔라 황 얘기다. 단순히 엉뚱한 ’48차원’ 캐릭터라기보다는 기준이 확실하고 명석한 새 여성 캐릭터의 탄생이었다.
“뉴트로XX 딥클린”. 모 화장품 광고에서 활짝 웃으며 버터향 짙은 영어 발음으로 이렇게 외치던 소녀는 ‘검법남녀’를 통해 흰 가운을 입고 약독물을 분석하는 박사가 됐다. 2014년 JTBC ‘선암여고 탐정단’으로 모델에서 배우로 데뷔한 뒤 SBS ‘용팔이’ ‘끝에서 두번째 사랑’으로 연기력 논란을 겪었던 그다. ‘검법남녀’로 연기 합격점을 받은 그에게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차기작인 영화 ‘안시성’으로 또 한번 변신한다는 스테파니 리를 서울 중림동 텐아시아 인터뷰룸에서 만났다.
10.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약독물과 연구원 스텔라 황 역할을 맡았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캐릭터였는데,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어땠나?
스테파니 리: 확실히 스텔라가 너무 멋있었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키를 주는 역할이기도 했고 일단 일을 정말 잘하는 전문가 캐릭터니까. 보통 일을 잘하는 캐릭터는 연애에 있어서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일도 연애도 잘한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딱 봤을 때 ‘아, 멋있다’라고 생각했지만 부담감은 있었다.
10. 어떤 점이 부담이었나?
스테파니 리: 스텔라는 교포 출신이라는 설정에 영어를 많이 쓰는 캐릭터다. 내가 가진 ‘교포 이미지’의 선입견이 다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됐다. 한국말을 잘하는데도 내가 아예 외국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오해가 이어질까 두려웠지만, 그럼에도 스텔라가 너무 멋있었다. ‘이거는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들었다.
10. 2015년 ‘용팔이’의 신씨아 역도 그랬고 ‘키 크고 몸매 좋고 영어 잘 하는 캐릭터’가 계속 주어지니 배우로서 아쉬울 것 같기도 한데.
스테파니 리: 사실 내가 많은 드라마에 참여한 건 아니다. 4편의 작품 중 ‘검법남녀’와 ‘용팔이’ 두 작품에서만 그런 역할을 받았다. 그런데도 많은 분들이 나의 그런 이미지를 많이 기억하고 좋아해주셨다. 화장품 광고 속 이미지나 ‘영어를 쓰는 멋있고 당당한 여자’ 같은 이미지 말이다. 처음에는 고민이었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오히려 장점으로 가져가려고 했다. 이런 이미지를 좋아해주는 거라면 ‘일단은 감사하게 받아들자. 이걸로 얼굴을 알리고 그 이후에 다른 좋은 작품으로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10. 스텔라는 똑똑하고 정확한 전문직 여성이다. 하지만 단순히 장르물에서 ‘흰 가운을 입은 섹시한 여성 캐릭터’로 만들어졌다는 시선도 있었다. 스텔라의 어떤 부분에 집중해 표현했나?
스테파니 리: 똑똑함과 섹시함이 분리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섹시하려고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스텔라의 섹시한 이미지는 일에 대한 열정과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 부분에 집중했다. 극 중 스텔라가 갑자기 입술을 내밀면서 섹시한 척을 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의 당당함과 대사들 안에서 자연스럽게 섹시함이 느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10. 고규필과 이이경과 러브라인이 있었다. 고규필이 연기하는 정성주가 나의 직업적인 문제나 흥미를 나눌 수 있는 동종 업계 종사자라면, 이이경이 맡은 차수호 형사에게서는 반대의 매력을 느꼈을 것 같다. 스테파니 리의 선택은?
스테파니 리: 같은 업계 종사자가 좋다는 건 아니지만(웃음) 나는 정성주 쪽이다. 스텔라는 차수호를 자극하면서 그 귀여운 모습과 순수함을 즐기는 것 같았다. 반면 정성주는 스텔라에게 아주 편한 사람이고 일상적인 걸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극 중 스텔라는 정성주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나는 일상적인 대화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에 더 끌린다.
10. 빨간 머리가 캐릭터와 너무 잘 어울렸다. 자신의 생각이었나?
스테파니 리: 드라마 인물들 대부분이 공무원이라서 모두 자연스러운 스타일이어야 했는데, 유일하게 용납되는 사람이 스텔라였다. 해외에서 온 설정이기도 하고. 자유로운 성격이었기 때문에 공무원이라는 것은 그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웃음). 감독님이 좀 튀는 머리를 원해서 내가 빨간 머리를 추천했다. 머리색이 지금은 좀 빠졌는데 너무 상해서 바꿔야 될 것 같긴 하다(웃음).
10. ‘검법남녀’를 보고 한 학생으로 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들었다.
스테파니 리: 그랬다. 한 학생이 내 역할을 보고 이런 직업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SNS로 DM을 보냈다. 스텔라 같은 약독물과 연구원이 되고 싶다고. 너무 기뻤다. 누군가에게 꿈을 줄 수 있다는 게 연기자의 가장 큰 특권이라고 생각하는데,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0. 차기작이 사극이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선택같다.
스테파니 리: 영화 ‘안시성’인데 이미 촬영을 다 마쳤다. 안시성에 사는 백성 ‘달래’ 역을 맡았다. 설현이 연기하는 ‘백하’의 평범한 친구이자 호위무사 같은 캐릭터다. 전쟁이 터지고 나서 백하와 달래가 무사가 되는데, 백하가 이끄는 ‘백하 부대’의 조력자이자 실세가 되는 인물이다. 나는 거의 액션으로 보여주는 역이다. 액션도 영화도 너무 해보고 싶었어서 재미있게 찍었다.
10. 이번에도 특별한 캐릭터를 맡은 것 같다. 첫 영화라 감회가 남달랐겠다.
스테파니 리: 떨리기도 했는데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정말 많이 배웠다. 연기도 배웠지만 현장을 이끄는 모습들이 대단했다. 조인성이 큐를 했을 때 촬영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니 소름이 돋았다.
10. 모델 출신인데 어떻게 연기를 하게 됐나?
스테파니 리: 모델 활동을 할 때는 사실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사실 잘 모르고, 나와는 먼 세계라고만 생각했다. ‘선암여고 탐정단’ 얘기가 들어와서 연기를 시작하게 됐는데, ‘내가 연기를요?’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걱정이 많았지만 그래도 새 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좋은 타이밍에 좋은 작품이 들어와 내 인생에 연기라는 직업이 찾아온 거였지만, 기초를 다지고 시작한 게 아니라서 부족함 점을 느꼈다.
10. 공백기에 뉴욕으로 가서 연기 공부를 했다고?
스테파니 리: ‘선암여고 탐정단’에 이어 ‘용팔이’를 끝냈을 때였다. 다른 선배님들과 촬영을 하면서 조언도 많이 듣고, 현장에서 배운 것도 많았지만 테크닉 같은 게 부족했다. 기초를 다져야겠다고 생각해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찾아봤다. 영어로 된 연기 관련 서적들부터 찾아 읽었고, 미국 할리우드 아카데미에 있는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런 캐릭터가 될거야!’라고 캐릭터 연구에만 몰두했는데, 그때 이후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기술적으로 조금은 다가가기가 쉬워진 것 같다. 이번에 ‘검법남녀’를 찍으면서 성장한 모습을 그래도 조금은 느꼈다.
10. 모델과 배우는 많이 다르지만 무언가를 표현하는 직업이라는 건 공통점 같다. 모델 출신이라는 점이 연기를 하는데 이점이 있나?
스테파니 리: 모델도 그렇지만, 사실 배우도 새로운 캐릭터를 표현해야 하는 거니까 나를 버려야 하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래도 장점들은 많다. 이미지를 표현할 때 패션이나 외적인 부분에서 아이디어를 만들 수가 있다. 특히 움직임에 예민할 수 있다는 점이 말이다. 걸음걸이라든지 디테일을 잡을 때 좋다.
10. 극 중 독약박사 스텔라의 생활신조는 “적정량을 지켜라”이다. 자신은 적정량을 지키는 사람인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넘칠 때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인가?
스테파니 리: 신선한 질문이다(웃음).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뭔가에 열정이 넘쳐나면 적정량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아주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보면 적정량을 지키기 싫어했던 것 같다(웃음).
10. 어느 것에 그렇게 열정을 가졌나?
스테파니 리: 너무 많다. 모델 일을 할 때도 열정적이었고, 덕분에 좋은 성과가 따랐다고 생각한다. 그 외의 취미에서도 열정이 있는 편이다. 사실 내가 애니메이션을 굉장히 좋아한다. 주변에서 뭐라고 할 정도로(웃음). 어떻게 보면 엉뚱하다고 할 정도로 좋아하는 것 같은데. 정말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많이 찾고 모으려고 한다.
10. 마니아 기질이 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캐릭터는?
스테파니 리: 디즈니, 픽사, 일본 애니메이션 등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한다. (핸드폰 케이스의 애리얼 캐릭터를 보여주며)특히 ‘인어공주’의 주인공 애리얼을 좋아한다. 나는 이 소녀가 굉장히 열정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 더 나은 걸 얻으려고 하는 캐릭터… 애리얼과 나는 외모는 다르지만, 닮고 싶은 캐릭터다. ‘검법남녀’ 스텔라의 빨간 머리도 애리얼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웃음). 그 외에도 픽사, 지브리 다 좋아한다. 이번에 나온 ‘인크레더블스’ 초반에 ‘바오’라는 단편이 나오는데, 본편보다 더 인상 깊어서 엄청 찾아봤다. 남자 성향이라는 미드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도 좋아하고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도 정말 좋아한다. 집에 극 중 주인공인 L(밀리 바비 브라운)의 코스튬도 있다. 이번 할로윈에서는 L을 할 것이다.
10. ‘기묘한 이야기도’도 그렇고, 은근히 강한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스테파니 리: 순수하지만 강한 여성 캐릭터를 보면 굉장히 끌린다. 아마 내가 그렇게 되고 싶어서 좋아하는 것 같다.
10. 얼마 전에 시구도 했다. 평소 스포츠를 좋아하나?
스테파니 리: 운동은 기본적으로 하는데, 계절 스포츠를 좋아한다. 새로운 걸 보려고 하는 스타일이다. 겨울에는 스키를 타고, 여름에는 워터 스포츠를 즐긴다.
10. 도전을 좋아하나보다. 앞으로 어떤 역할을 더 해보고 싶나?
스테파니 리: 물론 계속 다양한 작품들을 하고 싶다. 그래도 지금은 나이에 맞는 역할이 하고 싶다. 아직은 20대이니까 20대만 할 수 있는 로맨스 코미디 같은 것들?
10. 벌써 5년차 배우다. ‘선암여고 탐정단’부터 ‘검법남녀’까지. 무엇이 바뀌었나?
스테파니 리: 처음에는 부족한 상태로 시작했지만 점점 새로운 작품을 하면서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특히 이번 ‘검법남녀’를 통해 그런 변화를 느꼈다. 앞으로 성장해 나갈 모습이 나도 기대가된다. 물론, 노력은 엄청 해야 한다.
10. 어떤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나?
스테파니 리: ‘검법남녀’다. 조금은 자신감을 느껴도 되게 만들어줬으니까.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뉴트로XX 딥클린”. 모 화장품 광고에서 활짝 웃으며 버터향 짙은 영어 발음으로 이렇게 외치던 소녀는 ‘검법남녀’를 통해 흰 가운을 입고 약독물을 분석하는 박사가 됐다. 2014년 JTBC ‘선암여고 탐정단’으로 모델에서 배우로 데뷔한 뒤 SBS ‘용팔이’ ‘끝에서 두번째 사랑’으로 연기력 논란을 겪었던 그다. ‘검법남녀’로 연기 합격점을 받은 그에게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차기작인 영화 ‘안시성’으로 또 한번 변신한다는 스테파니 리를 서울 중림동 텐아시아 인터뷰룸에서 만났다.
10.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약독물과 연구원 스텔라 황 역할을 맡았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캐릭터였는데,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어땠나?
스테파니 리: 확실히 스텔라가 너무 멋있었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키를 주는 역할이기도 했고 일단 일을 정말 잘하는 전문가 캐릭터니까. 보통 일을 잘하는 캐릭터는 연애에 있어서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일도 연애도 잘한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딱 봤을 때 ‘아, 멋있다’라고 생각했지만 부담감은 있었다.
10. 어떤 점이 부담이었나?
스테파니 리: 스텔라는 교포 출신이라는 설정에 영어를 많이 쓰는 캐릭터다. 내가 가진 ‘교포 이미지’의 선입견이 다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됐다. 한국말을 잘하는데도 내가 아예 외국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오해가 이어질까 두려웠지만, 그럼에도 스텔라가 너무 멋있었다. ‘이거는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들었다.
10. 2015년 ‘용팔이’의 신씨아 역도 그랬고 ‘키 크고 몸매 좋고 영어 잘 하는 캐릭터’가 계속 주어지니 배우로서 아쉬울 것 같기도 한데.
스테파니 리: 사실 내가 많은 드라마에 참여한 건 아니다. 4편의 작품 중 ‘검법남녀’와 ‘용팔이’ 두 작품에서만 그런 역할을 받았다. 그런데도 많은 분들이 나의 그런 이미지를 많이 기억하고 좋아해주셨다. 화장품 광고 속 이미지나 ‘영어를 쓰는 멋있고 당당한 여자’ 같은 이미지 말이다. 처음에는 고민이었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오히려 장점으로 가져가려고 했다. 이런 이미지를 좋아해주는 거라면 ‘일단은 감사하게 받아들자. 이걸로 얼굴을 알리고 그 이후에 다른 좋은 작품으로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스테파니 리: 똑똑함과 섹시함이 분리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섹시하려고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스텔라의 섹시한 이미지는 일에 대한 열정과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 부분에 집중했다. 극 중 스텔라가 갑자기 입술을 내밀면서 섹시한 척을 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의 당당함과 대사들 안에서 자연스럽게 섹시함이 느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10. 고규필과 이이경과 러브라인이 있었다. 고규필이 연기하는 정성주가 나의 직업적인 문제나 흥미를 나눌 수 있는 동종 업계 종사자라면, 이이경이 맡은 차수호 형사에게서는 반대의 매력을 느꼈을 것 같다. 스테파니 리의 선택은?
스테파니 리: 같은 업계 종사자가 좋다는 건 아니지만(웃음) 나는 정성주 쪽이다. 스텔라는 차수호를 자극하면서 그 귀여운 모습과 순수함을 즐기는 것 같았다. 반면 정성주는 스텔라에게 아주 편한 사람이고 일상적인 걸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극 중 스텔라는 정성주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나는 일상적인 대화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에 더 끌린다.
10. 빨간 머리가 캐릭터와 너무 잘 어울렸다. 자신의 생각이었나?
스테파니 리: 드라마 인물들 대부분이 공무원이라서 모두 자연스러운 스타일이어야 했는데, 유일하게 용납되는 사람이 스텔라였다. 해외에서 온 설정이기도 하고. 자유로운 성격이었기 때문에 공무원이라는 것은 그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웃음). 감독님이 좀 튀는 머리를 원해서 내가 빨간 머리를 추천했다. 머리색이 지금은 좀 빠졌는데 너무 상해서 바꿔야 될 것 같긴 하다(웃음).
10. ‘검법남녀’를 보고 한 학생으로 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들었다.
스테파니 리: 그랬다. 한 학생이 내 역할을 보고 이런 직업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SNS로 DM을 보냈다. 스텔라 같은 약독물과 연구원이 되고 싶다고. 너무 기뻤다. 누군가에게 꿈을 줄 수 있다는 게 연기자의 가장 큰 특권이라고 생각하는데,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0. 차기작이 사극이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선택같다.
스테파니 리: 영화 ‘안시성’인데 이미 촬영을 다 마쳤다. 안시성에 사는 백성 ‘달래’ 역을 맡았다. 설현이 연기하는 ‘백하’의 평범한 친구이자 호위무사 같은 캐릭터다. 전쟁이 터지고 나서 백하와 달래가 무사가 되는데, 백하가 이끄는 ‘백하 부대’의 조력자이자 실세가 되는 인물이다. 나는 거의 액션으로 보여주는 역이다. 액션도 영화도 너무 해보고 싶었어서 재미있게 찍었다.
10. 이번에도 특별한 캐릭터를 맡은 것 같다. 첫 영화라 감회가 남달랐겠다.
스테파니 리: 떨리기도 했는데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정말 많이 배웠다. 연기도 배웠지만 현장을 이끄는 모습들이 대단했다. 조인성이 큐를 했을 때 촬영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니 소름이 돋았다.
스테파니 리: 모델 활동을 할 때는 사실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사실 잘 모르고, 나와는 먼 세계라고만 생각했다. ‘선암여고 탐정단’ 얘기가 들어와서 연기를 시작하게 됐는데, ‘내가 연기를요?’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걱정이 많았지만 그래도 새 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좋은 타이밍에 좋은 작품이 들어와 내 인생에 연기라는 직업이 찾아온 거였지만, 기초를 다지고 시작한 게 아니라서 부족함 점을 느꼈다.
10. 공백기에 뉴욕으로 가서 연기 공부를 했다고?
스테파니 리: ‘선암여고 탐정단’에 이어 ‘용팔이’를 끝냈을 때였다. 다른 선배님들과 촬영을 하면서 조언도 많이 듣고, 현장에서 배운 것도 많았지만 테크닉 같은 게 부족했다. 기초를 다져야겠다고 생각해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찾아봤다. 영어로 된 연기 관련 서적들부터 찾아 읽었고, 미국 할리우드 아카데미에 있는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런 캐릭터가 될거야!’라고 캐릭터 연구에만 몰두했는데, 그때 이후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기술적으로 조금은 다가가기가 쉬워진 것 같다. 이번에 ‘검법남녀’를 찍으면서 성장한 모습을 그래도 조금은 느꼈다.
10. 모델과 배우는 많이 다르지만 무언가를 표현하는 직업이라는 건 공통점 같다. 모델 출신이라는 점이 연기를 하는데 이점이 있나?
스테파니 리: 모델도 그렇지만, 사실 배우도 새로운 캐릭터를 표현해야 하는 거니까 나를 버려야 하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래도 장점들은 많다. 이미지를 표현할 때 패션이나 외적인 부분에서 아이디어를 만들 수가 있다. 특히 움직임에 예민할 수 있다는 점이 말이다. 걸음걸이라든지 디테일을 잡을 때 좋다.
스테파니 리: 신선한 질문이다(웃음).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뭔가에 열정이 넘쳐나면 적정량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아주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보면 적정량을 지키기 싫어했던 것 같다(웃음).
10. 어느 것에 그렇게 열정을 가졌나?
스테파니 리: 너무 많다. 모델 일을 할 때도 열정적이었고, 덕분에 좋은 성과가 따랐다고 생각한다. 그 외의 취미에서도 열정이 있는 편이다. 사실 내가 애니메이션을 굉장히 좋아한다. 주변에서 뭐라고 할 정도로(웃음). 어떻게 보면 엉뚱하다고 할 정도로 좋아하는 것 같은데. 정말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많이 찾고 모으려고 한다.
10. 마니아 기질이 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캐릭터는?
스테파니 리: 디즈니, 픽사, 일본 애니메이션 등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한다. (핸드폰 케이스의 애리얼 캐릭터를 보여주며)특히 ‘인어공주’의 주인공 애리얼을 좋아한다. 나는 이 소녀가 굉장히 열정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 더 나은 걸 얻으려고 하는 캐릭터… 애리얼과 나는 외모는 다르지만, 닮고 싶은 캐릭터다. ‘검법남녀’ 스텔라의 빨간 머리도 애리얼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웃음). 그 외에도 픽사, 지브리 다 좋아한다. 이번에 나온 ‘인크레더블스’ 초반에 ‘바오’라는 단편이 나오는데, 본편보다 더 인상 깊어서 엄청 찾아봤다. 남자 성향이라는 미드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도 좋아하고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도 정말 좋아한다. 집에 극 중 주인공인 L(밀리 바비 브라운)의 코스튬도 있다. 이번 할로윈에서는 L을 할 것이다.
10. ‘기묘한 이야기도’도 그렇고, 은근히 강한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스테파니 리: 순수하지만 강한 여성 캐릭터를 보면 굉장히 끌린다. 아마 내가 그렇게 되고 싶어서 좋아하는 것 같다.
10. 얼마 전에 시구도 했다. 평소 스포츠를 좋아하나?
스테파니 리: 운동은 기본적으로 하는데, 계절 스포츠를 좋아한다. 새로운 걸 보려고 하는 스타일이다. 겨울에는 스키를 타고, 여름에는 워터 스포츠를 즐긴다.
10. 도전을 좋아하나보다. 앞으로 어떤 역할을 더 해보고 싶나?
스테파니 리: 물론 계속 다양한 작품들을 하고 싶다. 그래도 지금은 나이에 맞는 역할이 하고 싶다. 아직은 20대이니까 20대만 할 수 있는 로맨스 코미디 같은 것들?
10. 벌써 5년차 배우다. ‘선암여고 탐정단’부터 ‘검법남녀’까지. 무엇이 바뀌었나?
스테파니 리: 처음에는 부족한 상태로 시작했지만 점점 새로운 작품을 하면서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특히 이번 ‘검법남녀’를 통해 그런 변화를 느꼈다. 앞으로 성장해 나갈 모습이 나도 기대가된다. 물론, 노력은 엄청 해야 한다.
10. 어떤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나?
스테파니 리: ‘검법남녀’다. 조금은 자신감을 느껴도 되게 만들어줬으니까.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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