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조용한 가족’ ‘반칙왕’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악마를 보았다’ ‘라스트 스탠드’ ‘밀정’. ‘김지운’이라는 이름 석 자를 지우면, 누가 보아도 배우의 필모그래피다.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로서나 가능할 법한, 다양한 장르다. 이번에는 한국 영화에서 흔치 않았던 SF 영화 ‘인랑’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그와 꽤 어울리는 선택이기도 하다. 다양한 장르로 다져진 감독의 장기는 ‘인랑’에서도 액션, 느와르, 스파이 등의 모습으로 유감없이 발휘되면서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완성됐다.
‘인랑’은 재패니메이션의 거장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각본을 쓴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다. 김지운 감독은 근 미래인 2029년 통일을 앞둔 한반도라는 시공간으로 작품의 배경을 재설정하면서도 강화복, 지하수로, 빨간 망토 등 원작의 향기는 품고 나아간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 원작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읽혀진다. 원작보다 남녀 주인공에게 서사를 부여하면서 새로운 인물도 추가했다. 지난 2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김지운 감독을 만났다.
10. 원작 애니메이션의 시공간을 근 미래인 2029년 통일을 앞둔 한반도라는 시공간으로 재부팅했다. 선택의 기준이 있었는지?
김지운 : ‘인랑’은 원작에 대한 오마주와 재해석이 들어간 작품이다. 시점을 언제로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각각의 시점마다 난맥이 있었다. 원작의 세계관을 갖고 오려면 정치적인 격동기가 필요했다.
10. ‘인랑’은 138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지루할 틈 없이 관객을 끌어당기지만, 파고들 틈을 내어주지 않는다. 특히 임중경(강동원)과 이윤희(한효주)의 관계가 그랬다.
김지운 : ‘인랑’을 하면서 인물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다뤘다. 이전의 영화에서는 인물들을 따라다녔다. 대표적인 작품이 ‘달콤한 인생’ ‘밀정’이다. 인물들의 심상을 계속 쫓아가면서 그 인물 내면의 음영, 굴절, 혼란 같은 것들을 많이 다뤘다. 이번에는 프로세스가 보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프로세스를 통해서 인물의 내면이 드러나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멜로 부분이 약간 아쉬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름대로 해보고 싶었던 영화적 전개 방식이다.
10. 원작과는 다른 선택, 다른 결말이었는데.
김지운 : 기차역 장면은 추신 같은 느낌으로 들어갔다. 관객에게는 방점을 찍는 느낌이 드니까 남녀 주인공의 감정을 복기하면서 호불호가 갈린 것 같다. 서브플롯인 사랑보다 집단과 개인의 이야기가 중요했다. 집단에서 개인으로 빠져나오는 이야기. 집단의 말에서 자신의 말을 번역할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로 옮길 수 있는 그런 과정이 중요했다. 그래서 인물의 감정 같은 것들이 설명이 덜 됐을 수도 있다.
10. 남산 서울타워와 이어진 장면들에서 강동원의 맨몸 액션이 인상적이었다. 임중경이라는 인물에게 감정 이입이 되면서 서글픈 마음까지 들었다.
김지운 : 불꽃이 막 튀는 폐허에서 달빛을 등지고 MG42를 들고 서있는 인랑의 모습이 원작의 대표적인 이미지다. 이 이미지를 살릴 가장 근사한 사람이 누구일까 했을 때 처음부터 강동원이었다.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만화 같은, 만화의 인물을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배우가 필요했다. 현실적인 감정을 주는 사람보다 범접하지 못할 만큼 비현실적인 아우라가 필요했다. 강동원만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무드가 있다.
10. 그렇다면 상대 역으로 한효주를 택한 기준은?
김지운 : 기존의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주 안정된 연기를 보였다. 연기 잘하는 배우에게 새로운 활기를 주고 싶었다. 연기는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는 연기가 재미있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 송강호, 이병헌, 하정우가 그렇다. 특히 한효주한테 들었던 생각이 되게 안정감 있고 연기를 잘하니까 장르 영화를 가지고 들어오면 재미있는 연기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밀정’의 한지민을 캐스팅할 때도 비슷했다.
10. 2008년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후 다시 현장에서 만난 정우성은 어떠했는지?
김지운 : 특기대 훈련소장 장진태 역에 전형적인 타입이 아닌 다른 색깔을 입혀보고 싶었던 차에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떠올랐다. 이전의 묵직하고, 단호하면서 폭발하거나 쏟아내는 연기를 거의 안하면서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연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정우성은 나이가 들면서 조지 클루니 같은 느낌이 든다. 사회적 발언이나 얼굴에 관록이 묻어나는 모습이 그렇다.
10. 전작들을 보면 매력적인 악당들이 많았다. ‘인랑’에서는 특기대 출신의 공안부 차장 한상우(김무열)가 그 역할을 하는데 전작들에 비해 무게감이 조금 약하지 않나?
김지운 : 나는 약간 배우를 타는 스타일이다. 설명하자면, 배우가 캐릭터를 연기할 때 그 사람만의 색깔이 묻어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김무열에게 본 모습은, 자신이 갖고 있는 떨림이 강해서 이것을 감추려고 오히려 더 포악한 약간의 레이어가 있는 악당의 모습이었다. 배우의 맞춤형으로 연출을 한다.
10. 이번 작품에서도 익숙한 이름들인 음악 모그(Mowg), 촬영 이모개, 프로덕션디자인 조화성 감독이 보인다. 오랜 시간 협업이 잘 되는 특별한 비결이 있는지?
김지운 : 영화를 만들기 전에 항상 그 영화의 무드를 먼저 생각한다. 시나리오를 쓰거나 촬영 중간에도…. 그래서 핸드폰으로 영화의 무드에 맞는 곡들을 계속 서치해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든다. 영화를 찍은 후 음악을 입히지 않고, 영화를 찍으면서 계속 생각나는 음악을 모그 감독한테 전달한다. 모그 감독은 클래식부터 힙합, 영화음악까지 해박해서 대화가 막힘이 없이 잘 통한다. 이모개 감독은 묵직하면서도 수려한 화면을 잘 끌어낸다. 조화성 감독은 감히 엄두를 못 낼 세트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다. 지하수로, 남산세트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10. 관객에게 한 마디를 남기자면?
김지운 : 이 영화를 만들 때 한국영화에서 처음 보는 새로운 비주얼, 새로운 스타일을 의도한 것이 있다. 만약 관객들이 마음껏 즐긴다면 한국영화의 새로운 활로, 활력 같은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형 히어로 무비의 가능성을 열고 싶다.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
‘인랑’은 재패니메이션의 거장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각본을 쓴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다. 김지운 감독은 근 미래인 2029년 통일을 앞둔 한반도라는 시공간으로 작품의 배경을 재설정하면서도 강화복, 지하수로, 빨간 망토 등 원작의 향기는 품고 나아간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 원작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읽혀진다. 원작보다 남녀 주인공에게 서사를 부여하면서 새로운 인물도 추가했다. 지난 2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김지운 감독을 만났다.
10. 원작 애니메이션의 시공간을 근 미래인 2029년 통일을 앞둔 한반도라는 시공간으로 재부팅했다. 선택의 기준이 있었는지?
김지운 : ‘인랑’은 원작에 대한 오마주와 재해석이 들어간 작품이다. 시점을 언제로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각각의 시점마다 난맥이 있었다. 원작의 세계관을 갖고 오려면 정치적인 격동기가 필요했다.
10. ‘인랑’은 138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지루할 틈 없이 관객을 끌어당기지만, 파고들 틈을 내어주지 않는다. 특히 임중경(강동원)과 이윤희(한효주)의 관계가 그랬다.
김지운 : ‘인랑’을 하면서 인물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다뤘다. 이전의 영화에서는 인물들을 따라다녔다. 대표적인 작품이 ‘달콤한 인생’ ‘밀정’이다. 인물들의 심상을 계속 쫓아가면서 그 인물 내면의 음영, 굴절, 혼란 같은 것들을 많이 다뤘다. 이번에는 프로세스가 보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프로세스를 통해서 인물의 내면이 드러나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멜로 부분이 약간 아쉬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름대로 해보고 싶었던 영화적 전개 방식이다.
10. 원작과는 다른 선택, 다른 결말이었는데.
김지운 : 기차역 장면은 추신 같은 느낌으로 들어갔다. 관객에게는 방점을 찍는 느낌이 드니까 남녀 주인공의 감정을 복기하면서 호불호가 갈린 것 같다. 서브플롯인 사랑보다 집단과 개인의 이야기가 중요했다. 집단에서 개인으로 빠져나오는 이야기. 집단의 말에서 자신의 말을 번역할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로 옮길 수 있는 그런 과정이 중요했다. 그래서 인물의 감정 같은 것들이 설명이 덜 됐을 수도 있다.
김지운 : 불꽃이 막 튀는 폐허에서 달빛을 등지고 MG42를 들고 서있는 인랑의 모습이 원작의 대표적인 이미지다. 이 이미지를 살릴 가장 근사한 사람이 누구일까 했을 때 처음부터 강동원이었다.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만화 같은, 만화의 인물을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배우가 필요했다. 현실적인 감정을 주는 사람보다 범접하지 못할 만큼 비현실적인 아우라가 필요했다. 강동원만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무드가 있다.
10. 그렇다면 상대 역으로 한효주를 택한 기준은?
김지운 : 기존의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주 안정된 연기를 보였다. 연기 잘하는 배우에게 새로운 활기를 주고 싶었다. 연기는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는 연기가 재미있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 송강호, 이병헌, 하정우가 그렇다. 특히 한효주한테 들었던 생각이 되게 안정감 있고 연기를 잘하니까 장르 영화를 가지고 들어오면 재미있는 연기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밀정’의 한지민을 캐스팅할 때도 비슷했다.
10. 2008년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후 다시 현장에서 만난 정우성은 어떠했는지?
김지운 : 특기대 훈련소장 장진태 역에 전형적인 타입이 아닌 다른 색깔을 입혀보고 싶었던 차에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떠올랐다. 이전의 묵직하고, 단호하면서 폭발하거나 쏟아내는 연기를 거의 안하면서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연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정우성은 나이가 들면서 조지 클루니 같은 느낌이 든다. 사회적 발언이나 얼굴에 관록이 묻어나는 모습이 그렇다.
10. 전작들을 보면 매력적인 악당들이 많았다. ‘인랑’에서는 특기대 출신의 공안부 차장 한상우(김무열)가 그 역할을 하는데 전작들에 비해 무게감이 조금 약하지 않나?
김지운 : 나는 약간 배우를 타는 스타일이다. 설명하자면, 배우가 캐릭터를 연기할 때 그 사람만의 색깔이 묻어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김무열에게 본 모습은, 자신이 갖고 있는 떨림이 강해서 이것을 감추려고 오히려 더 포악한 약간의 레이어가 있는 악당의 모습이었다. 배우의 맞춤형으로 연출을 한다.
김지운 : 영화를 만들기 전에 항상 그 영화의 무드를 먼저 생각한다. 시나리오를 쓰거나 촬영 중간에도…. 그래서 핸드폰으로 영화의 무드에 맞는 곡들을 계속 서치해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든다. 영화를 찍은 후 음악을 입히지 않고, 영화를 찍으면서 계속 생각나는 음악을 모그 감독한테 전달한다. 모그 감독은 클래식부터 힙합, 영화음악까지 해박해서 대화가 막힘이 없이 잘 통한다. 이모개 감독은 묵직하면서도 수려한 화면을 잘 끌어낸다. 조화성 감독은 감히 엄두를 못 낼 세트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다. 지하수로, 남산세트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10. 관객에게 한 마디를 남기자면?
김지운 : 이 영화를 만들 때 한국영화에서 처음 보는 새로운 비주얼, 새로운 스타일을 의도한 것이 있다. 만약 관객들이 마음껏 즐긴다면 한국영화의 새로운 활로, 활력 같은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형 히어로 무비의 가능성을 열고 싶다.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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