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가수 겸 작곡가 나원주 / 사진제공=젬컬처스
가수 겸 작곡가 나원주 / 사진제공=젬컬처스
음악인 나원주(44)의 시작은 1995년 제7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나의 고백>으로 대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이후 제8회 유재하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정지찬과 팀을 꾸려 자화상이란 그룹으로 데뷔했다. 두 사람은 1997년 1집 <별이 되어 내리는 비>, 1998년 <네가 내리는 날> 등을 발표하며 자신들의 색깔을 냈다. 데뷔 음반부터 전곡의 작사·작곡·편곡·연주·프로듀싱까지 맡으며 실력도 인정받았다.

나원주는 2003년 솔로 1집 <사랑했나요>로 2막을 열었다. 작곡가·프로듀서·연주자로서 다른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하며 20년 동안 왕성하게 음악을 했다. 그가 호흡을 맞춘 가수들은 이문세·임재범·신승훈·김동률·윤종신·이소라·김조한·성시경·박효신 등 수도 없이 많다. 다른 가수들의 곡을 만들 때는 폭넓게 재주를 발휘한다. 지난해 11월 가수 윤종신과 민서의 <좋아>도 그의 편곡을 거쳐 나왔다.

하지만 팬들은 그의 감성이 담긴 음반이 나오길 기다렸다. 2010년 3집 이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정규 음반은 뜸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그가 정규 4집 <아이 엠(I AM)>을 내놨다. 8년 만이다.

10. 새 정규 음반이 8년이나 걸린 이유가 있나요?
나원주 : 제 음반 작업에 게을렀던 것 같아요. 이번 음반 발매를 기념하며 콘서트를 열었는데, 저를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았죠. 너무 오래 걸려서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도 ‘언제 음반 나오냐?’고 더 이상 묻지 않더군요.(웃음) 사실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몰랐는데 세어보니까 그렇네요. 써놓은 곡들을 모아서 다시 녹음했고, 또 이번 음반을 위해서 쓴 곡도 있습니다.

10. ’20주년 기념 음반’이라는 수식이 붙어서 부담은 없었습니까?
나원주 : 예를 들어 지금까지는 어느 한 부분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모든 면에 신경을 썼어요. 녹음 때 타이틀곡이 아닌 곡도 다섯 번 이상씩 부르면서 욕심 냈어요. 힘들진 않고, 모든 작업이 재미있었습니다.

10. 곡 선정 기준은요?
나원주 : 우선 제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곡을 취합하고 회사 식구들과 상의해서 최종 결정을 했죠. 타이틀곡을 정해놓고 작업한 건 아니었어요. 녹음을 하면 조금씩 달라지겠지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선택된 곡이 <마중>입니다.

10. 시간이 흘렀는데 자신만의 감성을 고스란히 갖고 있어서 팬들의 반응이 더 좋았습니다.
나원주 : 밖에서 볼 때는 작은 변화일 수도 있지만 사실 저에게는 작지 않아요. 저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그때의 감성을 되새기고, 모르는 이들이 들었을 때는 나만의 색깔을 나타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10. 특별히 더 신경쓴 부분은요?
나원주 : 가사예요. 이번엔 정말 피 토하는 심정으로 썼어요. 음악에 많이 치우쳐 있었는데 이번엔 음악과 가사가 어우러지는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 작업이 좀 어려웠습니다. 굳이 어디에 비중을 뒀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번엔 곡 작업에 시간을 더 많이 할애했어요. 공을 들였죠.

8년 만에 정규 4집을 발표한 나원주 / 사진제공=젬컬처스
8년 만에 정규 4집을 발표한 나원주 / 사진제공=젬컬처스
10. 음반 제목을 <아이 엠>이라고 정한 이유도 있겠죠?
나원주 : 지금까지 발표한 노래 대부분이 사랑 이야기인데, 이번엔 저에 대해서도 썼어요. 20년 동안 음악을 하는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자신감보다 ‘이게 나야’라는 느낌입니다. ‘이게 나니까 한번 들어보세요’라는 거죠. 그래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가사예요. 곡 작업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했고, 하던 대로 하지 않은 건 가사입니다. 항상 시(詩) 같은 가사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노래의 음절도 꽉 차 있는 것보다 여백이 있는, 그런 노래를 쓰고 싶었어요. 거기에 제 색깔을 집어넣고요.

10. 다른 사람의 음악을 만들 때와 자신의 음악을 할 때 다른가요?
나원주 : 다른 이들의 곡을 만들 때 더 부담이 커요. 그 사람의 음악에 제가 끼는 거니까, 결과물이 좋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죠. 반대로 제 작업을 할 때는 오히려 재미있어요. 부담도 훨씬 줄고요.

10. 수록곡 중 <엄마>란 곡도 눈에 띄었어요.
나원주 : 엄마를 소재로 한 곡들은 대부분 좋지 않은 상황에 가사를 쓰잖아요. 저는 엄마가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10. 자화상의 음반은 현재 음원으로 들을 수 없는데, 이번 음반에 <나의 고백>을 실었더군요.
나원주 : 자화상 활동 당시 소속사가 곡의 저작권을 갖고 있어서 시스템이 바뀌었는데도 들을 수가 없어요. <나의 고백>은 워낙 많이 부른 노래여서 잘 못 느꼈는데 완성된 곡을 들어보니 좋더라고요. 이어폰으로 길거리에서 들으니까 더 새로웠고요. 이 노래를 좋아한 팬들도 기뻐해줬으면 했습니다.

10. 편곡을 많이 하지 않은 이유는요?
나원주 : 음악 실력을 떠나서, 20년 전 원곡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작업했어요. 사실 연주까지 예전 방식대로 할 수는 없었지만, 최대한 살리려고 했어요. 원곡과 비슷하게 말이죠. 녹음을 마치고 그때와 목소리가 비슷해서 놀랐어요.(웃음)

10. 이번 음반의 만족도는 높습니까?
나원주 :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어떤 곡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으면, 최근 만든 곡이라고 해요. 이번엔 더 그렇죠. 신경을 2배 더 썼으니까요.

10.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며 공연도 크게 열었어요. 김동률·양파·정준일·박원·한동근·조은희·적재 등 여러 가수들이 참여했고요.
나원주 : 재미있었습니다. 관객들을 보고 앞으로도 종종 공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서요. 음원이 너무 소모품이 돼 있고 다른 새로운 게 금방 쏟아지니까 이젠 공연으로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0. 음악 시장의 변화를 몸소 느끼죠?
나원주 :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신인들에게는 쉽게 음악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게 장점이죠. 단점은 너무 많이 쏟아지는 것이고요. 소장하는 가치보다 유행에서 끝나는 게 안타까워요. 낭만이 사라져버리는 것 같습니다.

나원주 / 사진제공=젬컬처스
나원주 / 사진제공=젬컬처스
10. 20년 동안 정체기는 없었나요?
나원주 : 10년 전쯤 2년 동안 음악을 안 듣고 산 적 있었어요.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해서 그것 때문에 힘들었죠. 10시간 녹음하고 집에 오면 또 음악을 들을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음악과 해야 하는 음악의 접점을 찾는 게 힘들어요. 그때 슬럼프가 오는데, 저는 어렸죠. 지금은 선택할 수 있는 나이가 됐고, 음악 하는 폭도 넓어졌어요. 하기 싫은 걸 하는 상황이 요즘엔 거의 없어요. 옛날처럼 곤두서 있는 느낌이 아니죠. 사실 슬럼프를 겪으면서 다른 일을 해보려고 여러 시도를 해봤어요. 결국 음악 외에 다른 걸 한다는 상상을 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마음먹었죠.

10. 창작의 고통은 삶의 일부죠?
나원주 : 이렇게 이야기 하면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지치고 힘들 때 피아노 앞에 앉았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입니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나 공부를 해야 하는 여러 상황에서 피할 수 있는 돌파구가 피아노였죠. 그래서 음악을 하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다만 가사를 쓰는 건 연구 해온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좋은 걸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어요.

10. 그럼에도 가사를 직접 쓰는 이유는요?
나원주 : 남들과는 달라야 하니까요. 저만의 색깔이 있고, 듣기도 좋아야 하죠. 두 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직접 써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면 저는 기대가 더 높아지겠죠. 제가 쓴 것보다 더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10. 음악을 하면서 이것만큼은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있습니까?
나원주 : ‘재미’예요. 늘 재미있게 해야죠. 한때 재미없게 음악 했던 날들이 수치스럽고, 음악을 듣지 않고 살았던 2년은 지금 돌아보면 이해가 안 될 정도예요.

10. 20년이 흘러도 자신의 음악을 들으며 추억하는 이들을 보면, 음악 하는 책임감도 더 커질 것 같습니다.
나원주 : 그동안은 간과하고 살았죠. 혹독하게 생각이 바뀌었고, 중심을 잘 잡고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음악 하는 이들이 ‘뮤지션의 뮤지션’이라고 불러주는 걸 듣고서였어요. 부담스럽긴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하게 됐죠. 또 어떤 이는 제 노래를 듣고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린다며 글을 올렸는데,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10. 올해 계획은요?
나원주 : 공연도 열고, 음악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합니다. 새롭고 흥미로운 결과물이 나올 거예요. 오랜만에 새 음반이 나왔으니까 당분간은 다른 가수들의 곡 작업과 저의 공연 준비를 하면서 보낼 것 같습니다.(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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