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국민 트로트 ‘자기야’를 부른 가수 박주희 / 사진=이승현 기자
국민 트로트 ‘자기야’를 부른 가수 박주희 / 사진=이승현 기자
“재미있게 공연하고 싶어요. 노래하면서 ‘깔깔깔’ 웃는 게 좋습니다.” 인기 트로트곡 ‘자기야’를 부른 가수 박주희가 말했다. 어떤 목표와 실리만을 위해 노래한다면 보람을 찾기 어려워서다. 2001년 1집 ‘럭키'(Lucky)로 데뷔한 박주희는 시원시원한 가창력과 미모로 일찌감치 존재감을 알렸다. 2005년 2집 ‘자기야’로 ‘대박’을 터트리면서 장윤정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인기는 정체성의 혼란과 슬럼프로 이어졌다. 2012년 우여곡절 끝에 3집 ‘섹시하게’를 발표하면서 재기에 박차를 가했다. 전국각지를 돌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가 최근 방송된 MBC 음악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에 출연했다. 모두의 예상을 깬 깜짝 등장이었다. 그는 ‘자기야’가 아닌 ‘박주희’라는 이름 석자를 제대로 알렸다.

10. ‘복면가왕’은 어떻게 준비했나?
박주희: 녹화 2주 전에 연락을 받았다. 이렇게 연습을 못하고 무대에 선 건 처음인 것 같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트로트 가수들에게 일이 많다. ‘복면가왕’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콘서트를 했고 방송, 행사를 소화하면서 틈틈히 연습했다. 대결을 위해 ‘듀엣곡’을 준비해야 하지 않나. 혼자 서는 무대가 아니기에 더 힘들었던 것 같다.

10. 모두가 ‘아수라 백작’을 ‘마야’라고 생각했다. 생각지도 못한 등장으로 더 화제가 됐다.
박주희: 트로트 창법을 일부러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니다. 빅마마의 ‘거부’와 임정희의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를 각각의 창법에 맞게 부르려고 했다. ‘반전 인물’이라며 다들 놀라더라. 제작진의 말로는 정체가 공개됐을 때 ‘음악대장’ 이후 가장 높은 시청률을 찍었다고 했다.

10. 1라운드에서 탈락해 아쉽지 않나?
박주희: 듀엣곡 연습할 때부터 예상했다. 복면을 써서 누군지 모르지만 상대가 고수라는 걸 직감했다. ‘지겠다’ 싶었다. 마음을 비우고 음원이 잘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습을 많이 못 한 건 아쉽지만 최선을 다해 공연했다.

10. ‘복면가왕’ 출연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박주희: 정말 많은 분들이 봤더라. 그렇게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인 줄 몰랐다. 라디오 방송을 하는데 ‘복면가왕’을 봤다는 댓글이 정말 많았다. 제가 댓글에 관심이 많아서 다 읽어봤다. ‘트로트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숨은 실력자가 있는 줄 몰랐다’ ‘트로트를 좋아하게 됐다’ 등의 글을 보면서 ‘트로트 가수는 트로트밖에 못한다는 편견이 있구나’ 생각하면서도 뭔가 보여드렸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10. 실제 트로트 외에 다른 장르의 노래도 많이 부르나?
박주희: 공연을 할 때 제 곡이 아닌 다른 노래를 많이 부른다. ‘소녀시대’ ‘붉은노을’ 등을 펑키나 힙합 스타일로 편곡해서 보여드린다. ‘복면가왕’ 때 모두가 록커로 예상했단다. 무대에서 파워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던 건데 록커의 성향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웃음)

10. 처음에는 발라드 가수가 되고 싶었다고? 어릴 때부터 꿈이 가수였나?
박주희: 가수가 되고 싶었다. 동요대회나 합창대회에 나가서 상도 많이 탔다. 어쩌다보니 법학을 전공했는데, 고시 공부 중에 ‘딱 한 번만 도전해 봐야지’ 했다가 가수가 됐다. 4학년 겨울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오디션을 봤다. 신생 회사였는데 현장에 설운도 선배님이 계셨다. 원래는 R&B 성향이 강해서 트로트의 ‘트’도 몰랐다. 내 스타일대로 노래를 불렀는데 설운도 선배님이 ‘R&B나 트로트나 꺾는 건 거기서 거기’라며 좋게 봐 주셨다. 그러면서 ‘너한테 맞는 노래를 써줄게’라고 하셨는데 그때 받은 곡이 데뷔곡 ‘럭키’였다.

10. 발라드는 바로 포기한 건가?
박주희: ‘럭키’로 데뷔했고,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발라드를 하고 싶은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소속사에서 2집에 발라드 곡을 넣어 주겠다고 해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태진아 선배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너 댄스 트로트 잘 하겠다’고 하시더니 ‘자기야’를 주셨다.

인기 트로트곡  ‘자기야’를 부른 가수 박주희. / 사진=이승현 기자
인기 트로트곡 ‘자기야’를 부른 가수 박주희. / 사진=이승현 기자
10. ‘자기야’의 첫 느낌이 어땠나.
박주희: 노래가 너무 신나고 좋았다.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말해서 소름이 끼쳤다. 원래 제목은 ‘여보야’였다. 당시에 내가 어렸고 결혼도 안 했기 때문에 ‘여보야’는 맞지 않았다. 곡을 만든 태진아 선배님과 이루, 이승수 씨가 다시 편곡을 했고, 제목을 ‘자기야’로 바꿨다.

10. 발라드 가수를 하려다 트로트 가수를 한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었나?
박주희: 거부감이라기보다 트로트를 몰라서 겁이났다. ‘자기야’를 들었을 때 ‘발라드고 뭐고 이 노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마음을 접었다. 트로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다. ‘목포의 눈물’을 다섯 시간 씩 불렀고, ‘트로트 천곡’이라는 책을 다 외워 버렸다. 입시, 고시 공부 할 때보다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10. ‘자기야’로 이른바 ‘대박’을 쳤다. 그런데 ‘자기야’ 이후 슬럼프가 왔다고?
박주희: ‘자기야’ 때가 가장 힘들었다. 5~ 6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방송보다 행사를 더 많이 했다. 체력적으로 힘든 것보다 정체성의 혼란이 왔다. 매일 기계처럼 노래했다. 많은 관심을 받으니 행복한 건데 왜 무대에 서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느날 그런 내 자신을 바라봤을 때 ‘노래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소속사와도 갈등이 생겼다. 회사를 나오면서 가수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고, 1년 정도 활동을 하지 않았다.

10.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했나?
박주희: 어느날 가수 허영란의 ‘날개’라는 노래를 들었다. ‘일어나 뛰어라 눕지 말고 날아라’라는 가사가 크게 와 닿았다. 노래를 들으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다. 그들에게 노래로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보람 있겠다’ 싶었다. 그러던 중 지금의 회사를 만났다. 대표가 원래 알던 동생이다. 내가 힘들어 하는 걸 알고 있었고, ‘정체성’을 찾아 주고 싶다고 했다. 덕분에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10. 바쁜 건 여전한 것 같다.
박주희: 행사도 많고, 방송도 많다. 오랜시간 방송보다 행사를 많이 하다 보니 노래는 떴는데 ‘박주희’라는 이름은 많이 안 알려졌다. 그래서 방송 쪽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균형을 맞추려 한다. 행사를 예전처럼 기계적으로 하진 않는다.하루에 섭외 전화가 20통이 넘게 오지만, 동선상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만약 거제도 공연이 잡히면, 어디선가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마다한다. 먼저 약속을 하면 지키는 걸 우선으로 한다. ‘의리’를 지키는 가수다.(웃음) 하루에 10개씩 하는 것보다 4~5개씩 꾸준하게 하려고 한다.

10. 트로트 가수로서 고충은 뭘까?
박주희: 예나 지금이나 힘든 건 마찬가지다. 전국 각지를 돌면서 TV, 라디오 일정까지 소화하는 게 쉽지는 않다. 새벽에 시장 가서 노래하고, 방송국 가서 녹화하고… 꽤 버라이어티하다.(웃음) 아이돌을 비롯한 다른 가수들은 일정 기간 활동을 끝내고, 다시 준비하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쉬지 않나. 트로트 가수들은 그건 게 없다. 그래서 끈기와 인내력이 필요하다. 움직이는 것에 비해 드러나지 않는 점이 아쉽다. 지방 방송이나 라디오 활동은 많은데, 지상파 방송에 자주 출연하지 못하니 ‘쉬고있나’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아이돌 매니저들이 지방 공연장에 오면 많은 관객들을 보고 놀란다. 지방 관객들은 일 다 제치고 가수를 보겠다고 모여든다. 매체에서는 어르신 시청자들이 많다는 걸 아셨으면 한다. ‘복면가왕’처럼 다양한 연령층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10.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박주희: 서울 압구정동에 살 때 동장님 부탁으로 경로잔치에 찾아가 재능기부를 했다. ‘잘 사는 동네’라는 인식이 있어서 ‘많이들 오실까’ 싶었다. 즐겨 주실 지 걱정도 했다. 노래를 부르니까 모든 분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시는 거다. ‘나이가 들면 외로운 건 마찬가지구나’라고 생각했다. 수입이 있는 무대가 아니었지만 소통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르신들이 웃는 모습을 보니 ‘뭉클’했다. 그날 공연에서 유난히 많은 생각을 했다.

조용필처럼 되고 싶다는 가수 박주희. / 사진=이승현 기자
조용필처럼 되고 싶다는 가수 박주희. / 사진=이승현 기자
10. 롤모델로 삼고 있는 가수가 있나?
박주희: 조용필 선배님처럼 되고싶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음악과 공연을 보여 주시지 않나.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동요, 민요, 발라드, 트로트, 댄스 등을 다 하셨다. 늘 어색함이 없이 자연스러웠다. 사실 박주희 앞에 ‘트로트 가수’라는 수식어가 붙여지는 게 별로다. 저 또한 다양한 장르를 하고 싶다. ‘가수 박주희’라고 불리고 싶다.

10.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뭘 했을 것 같나?
박주희: 그러게 말이다. 뭘 했을까? 고시를 봤을 때 점수를 봤더니 안 되겠더라. 가수가 아니라면 음악 프로듀서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10. ‘8등신 미녀’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몸 관리는 어떻게 하나?
박주희: 공연할 때가 제일 운동이 된다. 공연을 마치면 입었던 옷이 헐렁해진 느낌이 든다. 그만큼 에너지를 쏟는다. 사실은 저질 체력이다. 평상시에 시체처럼 맥빠져 있다가 공연할 때 다 쓴다. 그래도 하루에 한 시간 씩 스트레칭은 한다.최근에는 건강관리를 위해 절 체조를 시작했다. 90배, 100배 하고 나면 하체가 튼튼해지고 몸매 교정도 된다.

10. 새로 준비하는 프로젝트가 있나?
박주희: 지난해 하반기부터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 클래식 팀과의 협업이다. 우쿨렐레, 튜바, 바순, 드럼 등으로 1920~1930년대 근대 가요를 편곡해 들려 드릴 예정이다. 근대 가요는 ‘슬픈 노래’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만요'(漫謠)라고 해서 해학적이고 재미있는 노래가 많다. 암울했던 시기를 그런 곡들로 극복한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현 시대에도 ‘청년실업’ 등 힘든 일이 많지 않나. 이번 협업을 통해 조상들의 지혜를 재현하고 싶다. 오는 5월 쯤 앨범을 발매하고 ‘뮤직쇼’ 개념으로 공연할 생각이다. 특히 국내보다 세계 뮤직 페스티벌에 가서 공연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근대 가요를 한국어로 그대로 부를 예정이다.

10. 본격적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건가?
박주희: 2015년 2월 미국 LA에서 열린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했는데 그 때 첫 해외 공연을 했다. 아카데미상의 초청을 받은 목은정 한복디자이너의 패션쇼 갈라 파티에서 ‘사랑의 아리랑’을 불렀다. ‘앵콜곡’까지 열띤 반응을 보여주셨다. 최근에는 하와이 공연도 다녀왔다. 앞으로 중국, 미국 등에서 활발하게 공연할 생각이다. 전 세계 투어가 목표다. 근대 가요를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

10. 가수로서 목표는?
박주희: 사람들이 활기차고 행복하게 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가수가 되고싶다. 재미있게 공연하고 싶다. 노래하면서 ‘깔깔깔’ 웃는 게 좋다. ‘최고의 가수’가 되겠다고 생각하면 조급해진다. 실리만 추구하면 목표지향적이게 돼서 흥미를 잃기 쉽다. 음악은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내 인생 목표는 잘 죽는 거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서 미련없이 죽는 게 소원이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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