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의 도입부, 거대 법률회사에 변호사로 취직한 데릭(스티븐 연)이 열정 가득한 신입사원으로 출근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엘리베이터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일상이 반복되며 점점 지쳐가는 모습을 짧고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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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은 눈이 충혈 되면서 분노에 휩싸이게 만드는 분노 바이러스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데, 짐을 싸서 쫓겨나는 순간, 분노 바이러스가 퍼진 건물은 폐쇄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데릭이 일하는 법률회사가 앞서 분노 바이러스로 인한 살인혐의를 무죄로 밝혀냈다는 것이다.
분노 바이러스는 온 빌딩에 퍼지고, 격리된 빌딩 속 직원들은 폭력적으로 변한다. 그들은 마치 좀비가 된 것처럼 분노에 가득 차 타인을 공격한다. 피칠갑 난도질을 자극적으로 나열하고 있지만 ‘메이헴’이 가진 가장 큰 정서적 장점은 회사라는 공간에서 쌓인 인간관계, 그리고 수직적 상하관계를 상징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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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악인은 아니겠지만, 모두가 악인일 수 있는 관계 속에서, 경쟁하고 생존해야 하는 삶 속에서 이미 누군가는 마음 속으로 잔인한 복수를 꿈꾸거나, 스스로에게 칼날을 겨누고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메이헴’에는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수직관계가 주는 불안과 공포가 바탕에 깔려 있다. 서열에 따라 높은 곳에 위치한 나쁜 상사들을 한 명씩 처단하려고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전용카드와 암호가 필요한데, 그 코드를 얻기 위한 과정은 ‘큐브’의 생존단계처럼 퍼즐 맞추기의 재미를 더한다. 여기에 분노 바이러스가 소멸되는 8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이 주는 속도감이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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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연의 조력자이자 영화 속 러브라인을 이끄는 사마라 위빙은 넷플릭스의 ‘사탄의 베이비시터’ 등에 출연했지만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특유의 이죽거리는 표정과 개성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앞으로의 활동을 주목해 봐도 좋겠다.
‘메이헴’이 보여주는 잔인한 살해와 복수의 장면은 심각하지 않고, 경쾌해서 죄의식 없이 즐길 수 있다. 조 린치 감독은 쉽게 대해지고, 함부로 버려지는 약자들이 언젠가는 내 뒤통수를 내리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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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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