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심현보 : 지난해 봄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6개월 정도 썼어요. 학교나 아카데미에서 수업하면서 가르친 작사 기법과 곡에 얽힌 뒷이야기, 필사할 수 있는 쪽을 담았습니다. 차분하게 설명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6개월 동안 매일 2, 3시간 정도 작업실에서 썼습니다.
10.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오래됐습니까?
심현보 : 사실 출판 제안은 10년 전부터 있었어요. 그때마다 스스로 정리가 덜 됐다고 생각해 고사했죠. 어느덧 15년 넘게 가사를 쓰고 있으니 한번 정리를 하고 넘어가도 좋겠다 싶었고, 마침 좋은 제안을 받아서 시작했습니다.
10. 쓰면서 정리가 됐나요?
심현보 : 생각보다 더 어렵더라고요.(웃음) 쓰다 보니 ‘작사가 설명이 되는 일인가?’ 싶기도 하고 조심스러웠어요.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모두에게 도움이 되진 않더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입문서 혹은 설명서 정도는 되지 않을까?’ 바라며 썼습니다. 저만의 글쓰기 방식이에요. 딱딱하게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큰 줄기는 가사 쓰기와 관련된 책이지만 각자 감성적인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10. 작곡도 하고, 노래까지 부르는 특별한 작사가인 것 같습니다.
심현보 : 저는 상업 작사가와 싱어송라이터의 중간쯤 서 있어요. 작사가와 송라이터는 설명을 할 때 방식이 달라요. 책은 주요 독자를 고려해 ‘작사가’에 초점을 맞춰 풀어나갔습니다. 가사를 쓴다는 건 같지만 송라이터는 자기 작품 세계에 몰입할 수 있죠. 반면 상업 작사가는 의뢰를 한 이들에게 맞춰야 해요.
10. 작사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죠?
심현보 : 정보의 빠르기 때문이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파급의 폭이 이전과 달라졌어요. 작사가를 직업군의 일부로 생각하지 못하다가 최근 미디어를 통해 드러난 면도 있고요. 맛있는 식당이 있어도 예전엔 몰라서 못갔지만 이젠 각종 정보들이 쏟아지니까 쉽게 맛집을 찾을 수 있잖아요? 그와 비슷한 것 같아요. 준비하고 노력하면 접근할 수 있는 분야라는 인식이 생긴 게 아닐까요?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하면 종종 고등학생들이 오는데, 작사가에 대한 꿈이 확고해서 놀라죠.
10. 작사가란 직업에 너무 쉽게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까?
심현보 : 저 역시 상업 작사가지만 가사 쓰기란 게 취미와 일의 경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직업으로 가사를 쓰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에요. 작사가가 되기 위한 과정도 매우 고단하고 운도 따라야 하죠. 모든 일이 그렇듯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섣불리 “네가 너무 쉽게 접근하는 것 같은데…”라는 말은 못하죠. 쓰면 쓸수록 좋아지거든요. 저도 경험했고요. 가사를 쓰는 게 악기를 다루거나 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매일 꾸준히 하면, 늘어요. 그러다 보면 좋은 글, 가사가 나오죠.
10. 글을 쓰는 일이 오래 했다고 잘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고민의 연속일 것 같습니다.
심현보 : 맞아요. 15년 넘게 하면 뭐든 굉장히 잘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곡도, 가사도 오래 썼다고 잘하는 건 아닙니다. 요즘도 가끔 ‘어떻게 쓰는 거지?’란 생각이 들어요. 한 글자도 못 쓸 때도 있고요. 매일 꾸준히 써야 해요. 근육처럼 단련하면 능력에도 근력이 붙죠. 음악과 내 감성 사이에 연결지점을 찾으면서 말입니다. 저도 여전히 어려워요. 어느덧 제 나이가 4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데, 그렇다고 음악의 주 소비층이라고 할 수 있는 10, 20대에게 동떨어진 이야기를 할 순 없잖아요. 사랑의 본질은 같지만 표현방식이 다르니까요. 가사는 일상생활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입니다. ‘내 이야기 같아’란 느낌이 들게끔 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유행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반짝이는 감성과 감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요.
10. 그래도 시간이 흐를수록 하고 싶은 이야기의 폭은 더 넓어지겠죠?
심현보 : 20, 30대에는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확장된 의미를 녹이죠. 하지만 제 음반을 만들 때와 다른 가수들의 음악을 작업할 땐 달라요. 후자는 부르는 사람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죠. 작사가는 부르는 사람을 떠올리며 그의 이미지에 어떤 글이 어울릴까를 상상하고 고민해요. 가수의 말투와 발음, 외모, 이미지 등을 고려해서 완성하죠. 반면 제 음반을 만들 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내면 되고요.
10. 아주 좋은 가사가 나왔을 땐, 직접 부르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 않나요?
심현보 : 싱어송라이터로서는 제 나이에 어울리는 노래, 가사가 있죠. 20대의 풋풋하고 귀여운 이야기? 부를 수는 있지만(웃음) 분명 어울리지 않을 거예요. 그 시절로 돌아가 곡과 가사를 쓰고, 20대의 가수가 불러주면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죠. 언제든 곡 안에서 다양한 나이대를 넘나들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음악을 하면서 깨친 게 있는데, 우선 제가 좋고 만족하는 게 중요해요. 대중들의 반응이 좋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작업물이 별로인 건 아니죠. 처음에는 상처도 받았어요. ‘왜 좋아하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죠. 그러다 결론을 냈어요. 제가 충분히 좋을 만큼, 만족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거예요. 그러면 결과가 다소 아쉬워도 견딜 수 있겠더라고요. 여린 면이 있어서 제가 쓴 노래의 음원차트 순위가 낮으면 좌절하곤 했어요. 반면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좋은 반응을 얻을 때도 있었죠. 혼란스럽더군요. 그러면 다음 작업이 어려워져요. 기복이 심하면 눈치를 보거든요, 그러면 글이 완성되지 않죠. 오래 하다 보니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란 걸 깨달았어요. 사실 가사만 좋다고 잘 될 순 없어요. 가수, 곡, 운 등 모든 게 어우러져야 하거든요. 여기에 초연해진 건 10년쯤 했을 때부터였어요. 여전히 이겨내고 있는 중이죠.(웃음)
10. 가사는 히트곡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부담도 클 것 같아요.
심현보 : 잘 될 수밖에 없는 가수도 있잖아요.(웃음) 쭉 승승장구하고 있는 가수의 곡을 맡을 경우엔 겁도 나죠. 그 마음조차 스스로 정돈이 안되면 한 줄 쓰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제가 마음에 들 때까지 작업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고요. 나를 믿고 맡겨준 사람과 합의점을 빨리 찾으면 가장 좋겠지만, 의논하는 과정이 힘들 때도 있거든요. 그리고 제가 쓴 가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요. 처음에는 그것도 마음이 상했는데 철저히 취향인 거예요, 상처받을 필요가 없죠.
10. ‘창작’과 ‘글쓰기’는 ‘비즈니스”의뢰인’이란 단어와 잘 붙지 않는 느낌이에요.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하며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심현보 : 음악을 듣고 글을 쓸 때는 감성적인 사람이 돼야 하고, 또 어떨 땐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가 있죠. 어렵지만, 상업 작사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계를 오가는 일이에요. 어떨 땐 ‘나는 시인이다’라고 생각하다가도, 또 어느 날은 목적을 떠올리며 광고 카피라이터처럼 움직이죠.(웃음)
10. 멜로디만 있는 상태에서 가사를 붙이는 건 음악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가능한가요?
심현보 : 지금까지 가사를 쓰면서 악보를 보여주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멜로디만 있는 곡을 듣고 음절을 계산해서 글을 쓰죠. 꼭 음악을 배우지 않아도 멜로디에 글을 쓰는 능력 역시 반복하면 늘어요. 종종 어떻게 훈련하면 되느냐고 질문을 받는데, 팝을 들으며 가사를 써보라고 추천해요. 계속 듣다 보면 어느새 멜로디가 파악되고, 그것도 가사를 쓰는 기능 중 하나라서 반복하면 근육이 생겨요. 작사가를 꿈꾸며 글에만 집중하는 이들도 있는데, 가사 쓰기에 앞서 필요한 기능들이 있어요. 그걸 잘 닦아두면 가능성은 더 높아지는 거죠.
10. 신승훈의 ‘폴라로이드’는 단순한 사랑이 아닌, 삶에 관한 내용이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심현보 : (신)승훈이 형이 곡을 주면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라고 했어요. 사랑도 아우를 수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 말이죠. 어떤 노래는 세 달 이상 고민할 때도 있는데 ‘폴라로이드’ 가사는 빨리 떠오른 편이었어요.
10. 소재나 주제를 정해줄 때 더 편한가요?
심현보 : 곡마다 달라요. 어떤 노래는 뭐라도 있는 게 편하고, 오히려 단어나 소재가 주어지면 어려울 때도 있어요. 작사가가 좋은 것 중 하나는 세상에 나오지 않은 노래를 가장 먼저 들어볼 수 있다는 거예요. 가사를 써야 하기 때문에 곡의 최초의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무(無)의 상태에서 감상할 수 있는 첫 사람인 거죠.
10. 유독 기억에 남는 곡이 있습니까?
심현보 : 몇 년 간 작업한 것 중에서 만족감이 컸던 곡은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이에요. 우선 노래가 무척 좋았죠. 평소에 가사에 쓰고 싶은 단어를 메모하는데 그중에 부사 ‘이윽고’가 있었어요. 저에게 ‘이윽고’는 비슷한 뜻의 ‘마침내’ ‘결국’보다 좀 더 규모가 큰 느낌이에요. 가사에 쓰고 싶어서 적어둔 건데 사실 문어체이기 때문에 잘 풀어내지 않으면 튈 수 있죠. ‘너의 모든 순간’이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OST였는데, 그 내용이 시공을 넘나드는 사랑 이야기잖아요, 거대하죠. ‘이윽고’를 써도 되겠다 싶었어요.(웃음) 하루 만에 완성했는데 쓰고 싶은 단어를 썼고, 떠오르는 문장도 마음에 들어 포만감이 컸어요. 심지어 가사를 맡겨준 (성)시경이도 좋아해 줘서 모든 게 다 좋았죠. 매번 그렇지는 않은데, 이렇게 가끔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질 때가 있어요.
10. 창작의 고통에 따른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
심현보 : 20년 가까이 하고 있지만 매번 공모전을 하는 기분이에요. 항상 압박을 동반한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한데, 일의 특성상 극복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자기방어 체계를 만든 거예요,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 말이죠. 다르게 생각하면 하나의 노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게 참 즐거운 일이죠. 결정을 해야 한다는 건 매번 부담이고 힘들지만 얻는 게 더 큽니다.
10. 잘 쉬어야 좋은 가사가 나올 것 같은데, 온전히 쉬는 시간은 있습니까?
심현보 : 가사 생각을 평소에도 많이 해요. 수집 혹은 채집이란 표현도 쓰는데, 일상 대화에서도 귀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으면 적어요. 동네 공원 벤치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걸 좋아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이죠. 주로 멍하게 있는 소극적 휴식을 취했는데 결혼하고 많이 바뀌었어요. 제가 사색형이라면 아내는 체험형이거든요.(웃음) 전혀 다른데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죠. 아내를 따라 다양한 경험을 하니까 곡을 쓸 때도 도움이 되더군요.
10. 곡의 영감은 어디서 얻습니까?
심현보 : 누군가 그러더군요, 영감으로 작업하는 건 아마추어라고요. 프로페셔널한 사람은 출근해서 작업한다고 말이죠. 영감으로 작업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해요. 영감이 오지 않을 땐 계속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되니까요. 음악을 한다고 하면 밤을 새우면서 작업할 것 같다고 하는데, 저는 반대예요. 부득이한 경우엔 그럴 때도 있지만 서서히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게 돼 있어요. 저는 아침에 작업실에 나가서 곡 쓰기를 시작하고 퇴근을 하는 식의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매일 규칙적으로 뭔가를 하는 게 중요해요. 무언가를 떠올리고 그걸 적는 일이 반복되면 그 걸음이 쌓여 결과물로 나오게 됩니다.
10. 올해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심현보 : 생각이 많아서 지난해에는 제 음반을 많이 못 냈어요. 올해는 미니음반을 내보려고 합니다. 또 수필집도 준비하려고요. 올해는 음반과 책을 발표하는 게 목표입니다.(웃음) 사람에 대한 관찰, 이해, 유행의 흐름도 민감하게 읽어야겠죠.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특별할 것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가사가 된다. 작사가 심현보(46)는 이를 ‘마법 같은 순간’이라고 했다. 무심코 적어놓은 단어와 길을 거니는 사람들의 소리, 봄날 동네 공원의 바람의 변화도 글로 옮겨 적으면, 근사한 노랫말이 된다. 그래서 심현보의 하루는 평범하지 않다. 누군가의 말도 함부로 흘릴 수가 없다.10. 책은 언제부터 준비했나요?
1992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한 그는 1998년 모던 록밴드 아일랜드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곡과 가사를 쓰고, 노래도 불렀다. 가사를 쓰는 일은 가수 정재형이 속한 그룹 베이시스의 2집 수록곡을 맡으면서 시작했다. 1997년 베이시스의 ‘세상의 모든 이별’의 가사를 완성하고 작사가로서 전환점을 맞았다. 이곡을 들은 가수 신승훈이 심현보에게 연락을 했고, 그렇게 길이 열렸다. 유리상자 ‘사랑해도 될까요’, 성시경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너의 모든 순간’, 박혜경 ‘하루’, 어쿠스틱콜라보 ‘묘해 너와’, 윤미래 ‘시간이 흐른 뒤’, 신승훈 ‘가잖아’ 등이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작사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이다. 20년을 가사를 쓰며 살아온 심현보는 지난해 11월, 작사가로서의 삶과 경험을 녹여 ‘작사가의 노트’라는 책을 펴냈다. 2018년은 자신의 음반과 수필집을 낼 계획이다. 그리고 추위가 풀리면 늘 그랬듯 공원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있을 생각이다. 신승훈이 지난 11월 발표한 ‘폴라로이드’의 가사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오늘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다 처음이라서 매일 낯설지만 그래서 두근거려.’
심현보 : 지난해 봄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6개월 정도 썼어요. 학교나 아카데미에서 수업하면서 가르친 작사 기법과 곡에 얽힌 뒷이야기, 필사할 수 있는 쪽을 담았습니다. 차분하게 설명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6개월 동안 매일 2, 3시간 정도 작업실에서 썼습니다.
10.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오래됐습니까?
심현보 : 사실 출판 제안은 10년 전부터 있었어요. 그때마다 스스로 정리가 덜 됐다고 생각해 고사했죠. 어느덧 15년 넘게 가사를 쓰고 있으니 한번 정리를 하고 넘어가도 좋겠다 싶었고, 마침 좋은 제안을 받아서 시작했습니다.
10. 쓰면서 정리가 됐나요?
심현보 : 생각보다 더 어렵더라고요.(웃음) 쓰다 보니 ‘작사가 설명이 되는 일인가?’ 싶기도 하고 조심스러웠어요.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모두에게 도움이 되진 않더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입문서 혹은 설명서 정도는 되지 않을까?’ 바라며 썼습니다. 저만의 글쓰기 방식이에요. 딱딱하게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큰 줄기는 가사 쓰기와 관련된 책이지만 각자 감성적인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10. 작곡도 하고, 노래까지 부르는 특별한 작사가인 것 같습니다.
심현보 : 저는 상업 작사가와 싱어송라이터의 중간쯤 서 있어요. 작사가와 송라이터는 설명을 할 때 방식이 달라요. 책은 주요 독자를 고려해 ‘작사가’에 초점을 맞춰 풀어나갔습니다. 가사를 쓴다는 건 같지만 송라이터는 자기 작품 세계에 몰입할 수 있죠. 반면 상업 작사가는 의뢰를 한 이들에게 맞춰야 해요.
10. 작사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죠?
심현보 : 정보의 빠르기 때문이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파급의 폭이 이전과 달라졌어요. 작사가를 직업군의 일부로 생각하지 못하다가 최근 미디어를 통해 드러난 면도 있고요. 맛있는 식당이 있어도 예전엔 몰라서 못갔지만 이젠 각종 정보들이 쏟아지니까 쉽게 맛집을 찾을 수 있잖아요? 그와 비슷한 것 같아요. 준비하고 노력하면 접근할 수 있는 분야라는 인식이 생긴 게 아닐까요?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하면 종종 고등학생들이 오는데, 작사가에 대한 꿈이 확고해서 놀라죠.
10. 작사가란 직업에 너무 쉽게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까?
심현보 : 저 역시 상업 작사가지만 가사 쓰기란 게 취미와 일의 경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직업으로 가사를 쓰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에요. 작사가가 되기 위한 과정도 매우 고단하고 운도 따라야 하죠. 모든 일이 그렇듯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섣불리 “네가 너무 쉽게 접근하는 것 같은데…”라는 말은 못하죠. 쓰면 쓸수록 좋아지거든요. 저도 경험했고요. 가사를 쓰는 게 악기를 다루거나 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매일 꾸준히 하면, 늘어요. 그러다 보면 좋은 글, 가사가 나오죠.
심현보 : 맞아요. 15년 넘게 하면 뭐든 굉장히 잘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곡도, 가사도 오래 썼다고 잘하는 건 아닙니다. 요즘도 가끔 ‘어떻게 쓰는 거지?’란 생각이 들어요. 한 글자도 못 쓸 때도 있고요. 매일 꾸준히 써야 해요. 근육처럼 단련하면 능력에도 근력이 붙죠. 음악과 내 감성 사이에 연결지점을 찾으면서 말입니다. 저도 여전히 어려워요. 어느덧 제 나이가 4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데, 그렇다고 음악의 주 소비층이라고 할 수 있는 10, 20대에게 동떨어진 이야기를 할 순 없잖아요. 사랑의 본질은 같지만 표현방식이 다르니까요. 가사는 일상생활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입니다. ‘내 이야기 같아’란 느낌이 들게끔 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유행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반짝이는 감성과 감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요.
10. 그래도 시간이 흐를수록 하고 싶은 이야기의 폭은 더 넓어지겠죠?
심현보 : 20, 30대에는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확장된 의미를 녹이죠. 하지만 제 음반을 만들 때와 다른 가수들의 음악을 작업할 땐 달라요. 후자는 부르는 사람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죠. 작사가는 부르는 사람을 떠올리며 그의 이미지에 어떤 글이 어울릴까를 상상하고 고민해요. 가수의 말투와 발음, 외모, 이미지 등을 고려해서 완성하죠. 반면 제 음반을 만들 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내면 되고요.
10. 아주 좋은 가사가 나왔을 땐, 직접 부르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 않나요?
심현보 : 싱어송라이터로서는 제 나이에 어울리는 노래, 가사가 있죠. 20대의 풋풋하고 귀여운 이야기? 부를 수는 있지만(웃음) 분명 어울리지 않을 거예요. 그 시절로 돌아가 곡과 가사를 쓰고, 20대의 가수가 불러주면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죠. 언제든 곡 안에서 다양한 나이대를 넘나들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음악을 하면서 깨친 게 있는데, 우선 제가 좋고 만족하는 게 중요해요. 대중들의 반응이 좋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작업물이 별로인 건 아니죠. 처음에는 상처도 받았어요. ‘왜 좋아하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죠. 그러다 결론을 냈어요. 제가 충분히 좋을 만큼, 만족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거예요. 그러면 결과가 다소 아쉬워도 견딜 수 있겠더라고요. 여린 면이 있어서 제가 쓴 노래의 음원차트 순위가 낮으면 좌절하곤 했어요. 반면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좋은 반응을 얻을 때도 있었죠. 혼란스럽더군요. 그러면 다음 작업이 어려워져요. 기복이 심하면 눈치를 보거든요, 그러면 글이 완성되지 않죠. 오래 하다 보니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란 걸 깨달았어요. 사실 가사만 좋다고 잘 될 순 없어요. 가수, 곡, 운 등 모든 게 어우러져야 하거든요. 여기에 초연해진 건 10년쯤 했을 때부터였어요. 여전히 이겨내고 있는 중이죠.(웃음)
10. 가사는 히트곡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부담도 클 것 같아요.
심현보 : 잘 될 수밖에 없는 가수도 있잖아요.(웃음) 쭉 승승장구하고 있는 가수의 곡을 맡을 경우엔 겁도 나죠. 그 마음조차 스스로 정돈이 안되면 한 줄 쓰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제가 마음에 들 때까지 작업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고요. 나를 믿고 맡겨준 사람과 합의점을 빨리 찾으면 가장 좋겠지만, 의논하는 과정이 힘들 때도 있거든요. 그리고 제가 쓴 가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요. 처음에는 그것도 마음이 상했는데 철저히 취향인 거예요, 상처받을 필요가 없죠.
10. ‘창작’과 ‘글쓰기’는 ‘비즈니스”의뢰인’이란 단어와 잘 붙지 않는 느낌이에요.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하며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심현보 : 음악을 듣고 글을 쓸 때는 감성적인 사람이 돼야 하고, 또 어떨 땐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가 있죠. 어렵지만, 상업 작사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계를 오가는 일이에요. 어떨 땐 ‘나는 시인이다’라고 생각하다가도, 또 어느 날은 목적을 떠올리며 광고 카피라이터처럼 움직이죠.(웃음)
10. 멜로디만 있는 상태에서 가사를 붙이는 건 음악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가능한가요?
심현보 : 지금까지 가사를 쓰면서 악보를 보여주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멜로디만 있는 곡을 듣고 음절을 계산해서 글을 쓰죠. 꼭 음악을 배우지 않아도 멜로디에 글을 쓰는 능력 역시 반복하면 늘어요. 종종 어떻게 훈련하면 되느냐고 질문을 받는데, 팝을 들으며 가사를 써보라고 추천해요. 계속 듣다 보면 어느새 멜로디가 파악되고, 그것도 가사를 쓰는 기능 중 하나라서 반복하면 근육이 생겨요. 작사가를 꿈꾸며 글에만 집중하는 이들도 있는데, 가사 쓰기에 앞서 필요한 기능들이 있어요. 그걸 잘 닦아두면 가능성은 더 높아지는 거죠.
심현보 : (신)승훈이 형이 곡을 주면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라고 했어요. 사랑도 아우를 수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 말이죠. 어떤 노래는 세 달 이상 고민할 때도 있는데 ‘폴라로이드’ 가사는 빨리 떠오른 편이었어요.
10. 소재나 주제를 정해줄 때 더 편한가요?
심현보 : 곡마다 달라요. 어떤 노래는 뭐라도 있는 게 편하고, 오히려 단어나 소재가 주어지면 어려울 때도 있어요. 작사가가 좋은 것 중 하나는 세상에 나오지 않은 노래를 가장 먼저 들어볼 수 있다는 거예요. 가사를 써야 하기 때문에 곡의 최초의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무(無)의 상태에서 감상할 수 있는 첫 사람인 거죠.
10. 유독 기억에 남는 곡이 있습니까?
심현보 : 몇 년 간 작업한 것 중에서 만족감이 컸던 곡은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이에요. 우선 노래가 무척 좋았죠. 평소에 가사에 쓰고 싶은 단어를 메모하는데 그중에 부사 ‘이윽고’가 있었어요. 저에게 ‘이윽고’는 비슷한 뜻의 ‘마침내’ ‘결국’보다 좀 더 규모가 큰 느낌이에요. 가사에 쓰고 싶어서 적어둔 건데 사실 문어체이기 때문에 잘 풀어내지 않으면 튈 수 있죠. ‘너의 모든 순간’이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OST였는데, 그 내용이 시공을 넘나드는 사랑 이야기잖아요, 거대하죠. ‘이윽고’를 써도 되겠다 싶었어요.(웃음) 하루 만에 완성했는데 쓰고 싶은 단어를 썼고, 떠오르는 문장도 마음에 들어 포만감이 컸어요. 심지어 가사를 맡겨준 (성)시경이도 좋아해 줘서 모든 게 다 좋았죠. 매번 그렇지는 않은데, 이렇게 가끔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질 때가 있어요.
10. 창작의 고통에 따른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
심현보 : 20년 가까이 하고 있지만 매번 공모전을 하는 기분이에요. 항상 압박을 동반한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한데, 일의 특성상 극복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자기방어 체계를 만든 거예요,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 말이죠. 다르게 생각하면 하나의 노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게 참 즐거운 일이죠. 결정을 해야 한다는 건 매번 부담이고 힘들지만 얻는 게 더 큽니다.
10. 잘 쉬어야 좋은 가사가 나올 것 같은데, 온전히 쉬는 시간은 있습니까?
심현보 : 가사 생각을 평소에도 많이 해요. 수집 혹은 채집이란 표현도 쓰는데, 일상 대화에서도 귀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으면 적어요. 동네 공원 벤치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걸 좋아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이죠. 주로 멍하게 있는 소극적 휴식을 취했는데 결혼하고 많이 바뀌었어요. 제가 사색형이라면 아내는 체험형이거든요.(웃음) 전혀 다른데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죠. 아내를 따라 다양한 경험을 하니까 곡을 쓸 때도 도움이 되더군요.
10. 곡의 영감은 어디서 얻습니까?
심현보 : 누군가 그러더군요, 영감으로 작업하는 건 아마추어라고요. 프로페셔널한 사람은 출근해서 작업한다고 말이죠. 영감으로 작업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해요. 영감이 오지 않을 땐 계속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되니까요. 음악을 한다고 하면 밤을 새우면서 작업할 것 같다고 하는데, 저는 반대예요. 부득이한 경우엔 그럴 때도 있지만 서서히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게 돼 있어요. 저는 아침에 작업실에 나가서 곡 쓰기를 시작하고 퇴근을 하는 식의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매일 규칙적으로 뭔가를 하는 게 중요해요. 무언가를 떠올리고 그걸 적는 일이 반복되면 그 걸음이 쌓여 결과물로 나오게 됩니다.
10. 올해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심현보 : 생각이 많아서 지난해에는 제 음반을 많이 못 냈어요. 올해는 미니음반을 내보려고 합니다. 또 수필집도 준비하려고요. 올해는 음반과 책을 발표하는 게 목표입니다.(웃음) 사람에 대한 관찰, 이해, 유행의 흐름도 민감하게 읽어야겠죠.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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