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슬기 기자]
한 시상식에서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탄 최초의 여배우가 아닐까 싶다. 최희서는 올해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며 업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어차피 신인여우상은 최희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시상식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었다.
최희서는 제26회 부일영화상 신인여자연기상을 시작으로 제54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 제1회 더 서울어워즈 영화 부문 여우신인상, 제3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 제38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제18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자연기자상, 제17회 디렉터스컷어워즈 ‘올해의 새로운 여자배우상’까지 7개의 신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09년 영화 ‘킹콩을 들다’로 데뷔한 최희서는 10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 연극 무대 등에서 단역, 조연 등을 거치며 연기력을 쌓았다. 이후 데뷔 8년 만에 그는 영화 ‘박열’(감독 이준익)로 관객과 영화계에 얼굴을 알리며 인정받았다. 서른 살, 신인상을 받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스스로 입증했다.
최희서는 국내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을 따라 간 일본 오사카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박열’과 ‘동주’에서 유창한 일본어를 선보였던 건 이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연극 ‘심청전’에서 주인공 심청을 연기했는데 이를 계기로 배우를 꿈꾸게 됐다. 이후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연세대에 입학한 최희서는 연극동아리 연희극회에 들어가 매일같이 연극 연습을 하며 배우의 길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미국 UC버클리에 교환학생으로 가서는 공연예술을 부전공으로 공부했다.
화려한 이력 덕분에 ‘엄친아’라는 수식어를 얻었지만 배우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학교 졸업 후 최희서는 수많은 오디션을 봤지만 떨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소중했기에 그는 드라마를 제외하면 교통비 정도만 받았고 무보수로도 출연했다. ‘박열’로 빛을 보기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생계를 위해 결혼식 하객, 영어 과외, 번역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하지만 한 번도 후회하거나 한눈을 판 적은 없다고 했다.
최희서는 영국 드라마스쿨에 진학하려다 실패한 뒤 2009년 영화 ‘킹콩을 들다’에서 역도 소녀 역으로 데뷔했다. 이후 ‘어떻게 헤어질까’ ‘시선사이’ ‘동주’ ‘완전 소중한 사랑’ ‘577 프로젝트’ 등 영화와 다수의 연극을 통해 연기력을 다졌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포기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박열’을 통해 마침내 빛을 보게 됐다.
‘박열’은 1923년 도쿄에서 6000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청년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실화를 그린 영화다. 최희서는 일본 여성 후미코 역을 맡아 열연했다. 최희서는 캐릭터를 밀도 있게 표현하기 위해 후미코의 자서전을 읽고 당시 재판기록도 살펴봤다고 했다. 실제 후미코가 영면한 경북 문경의 산소를 찾아 인물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도 했다. 한국어로 표현해도 어려울 후미코의 감정선을 최희서는 철저한 준비 끝에 완성시켰다.
최희서라는 배우를 발견한 사람은 영화 ‘동주’의 각본을 쓴 제작자 신연식 감독이다. 그는 지하철에서 대사를 연습하던 최희서를 보고 명함을 건넸고 덕분에 최희서는 ‘동주’의 이준익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됐다. 최희서는 극 중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는 일본인 쿠미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이준익 감독은 ‘박열’을 준비하며 출연을 제안했고 최희서는 후미코라는 인생 캐릭터를 만나게 됐다. 이준익 감독은 최희서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잘 하는 배우가 필요했는데 최희서를 찾았다. 그는 일본어보다 연기를 더 잘 하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오랜 기간 무명의 설움을 겪으며 단련해온 최희서는 끝없는 노력 끝에 마침내 인정을 받았다. 탄탄한 연기력과 탁월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준 그이기에 2018년에는 어떤 작품과 캐릭터로 관객 앞에 나타날지 기대된다.
박슬기 기자 psg@tenasia.co.kr
신예의 발견부터 베테랑의 활약까지. 각 분야에서 유독 많은 스타들이 빛난 2017년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주목받은, 주목해야 할 스타들을 텐아시아가 꼽았다. [편집자주]
최희서는 제26회 부일영화상 신인여자연기상을 시작으로 제54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 제1회 더 서울어워즈 영화 부문 여우신인상, 제3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 제38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제18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자연기자상, 제17회 디렉터스컷어워즈 ‘올해의 새로운 여자배우상’까지 7개의 신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09년 영화 ‘킹콩을 들다’로 데뷔한 최희서는 10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 연극 무대 등에서 단역, 조연 등을 거치며 연기력을 쌓았다. 이후 데뷔 8년 만에 그는 영화 ‘박열’(감독 이준익)로 관객과 영화계에 얼굴을 알리며 인정받았다. 서른 살, 신인상을 받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스스로 입증했다.
최희서는 국내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을 따라 간 일본 오사카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박열’과 ‘동주’에서 유창한 일본어를 선보였던 건 이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연극 ‘심청전’에서 주인공 심청을 연기했는데 이를 계기로 배우를 꿈꾸게 됐다. 이후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연세대에 입학한 최희서는 연극동아리 연희극회에 들어가 매일같이 연극 연습을 하며 배우의 길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미국 UC버클리에 교환학생으로 가서는 공연예술을 부전공으로 공부했다.
화려한 이력 덕분에 ‘엄친아’라는 수식어를 얻었지만 배우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학교 졸업 후 최희서는 수많은 오디션을 봤지만 떨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소중했기에 그는 드라마를 제외하면 교통비 정도만 받았고 무보수로도 출연했다. ‘박열’로 빛을 보기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생계를 위해 결혼식 하객, 영어 과외, 번역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하지만 한 번도 후회하거나 한눈을 판 적은 없다고 했다.
최희서는 영국 드라마스쿨에 진학하려다 실패한 뒤 2009년 영화 ‘킹콩을 들다’에서 역도 소녀 역으로 데뷔했다. 이후 ‘어떻게 헤어질까’ ‘시선사이’ ‘동주’ ‘완전 소중한 사랑’ ‘577 프로젝트’ 등 영화와 다수의 연극을 통해 연기력을 다졌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포기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박열’을 통해 마침내 빛을 보게 됐다.
‘박열’은 1923년 도쿄에서 6000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청년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실화를 그린 영화다. 최희서는 일본 여성 후미코 역을 맡아 열연했다. 최희서는 캐릭터를 밀도 있게 표현하기 위해 후미코의 자서전을 읽고 당시 재판기록도 살펴봤다고 했다. 실제 후미코가 영면한 경북 문경의 산소를 찾아 인물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도 했다. 한국어로 표현해도 어려울 후미코의 감정선을 최희서는 철저한 준비 끝에 완성시켰다.
최희서라는 배우를 발견한 사람은 영화 ‘동주’의 각본을 쓴 제작자 신연식 감독이다. 그는 지하철에서 대사를 연습하던 최희서를 보고 명함을 건넸고 덕분에 최희서는 ‘동주’의 이준익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됐다. 최희서는 극 중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는 일본인 쿠미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이준익 감독은 ‘박열’을 준비하며 출연을 제안했고 최희서는 후미코라는 인생 캐릭터를 만나게 됐다. 이준익 감독은 최희서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잘 하는 배우가 필요했는데 최희서를 찾았다. 그는 일본어보다 연기를 더 잘 하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오랜 기간 무명의 설움을 겪으며 단련해온 최희서는 끝없는 노력 끝에 마침내 인정을 받았다. 탄탄한 연기력과 탁월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준 그이기에 2018년에는 어떤 작품과 캐릭터로 관객 앞에 나타날지 기대된다.
박슬기 기자 ps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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