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 출연하는 배우 민우혁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 출연하는 배우 민우혁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인생이 확 바뀌었어요. 저를 보러 공연장을 찾는 분들이 생겼고, 시장에 가면 반응이 다르죠. 하하”
배우 민우혁이 2017년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내년 1월 15일 개막하는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와 오는 24, 25일 열리는 뮤지컬 콘서트 연습에 한창이다. 뿐만 아니라 KBS2 ‘불후의 명곡’과 ‘살림하는 남자2’ 등 다양한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16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다.

고등학생 때까지 야구 선수로 활동한 그는 부상으로 인해 꿈을 접었다. 4인조 그룹으로 데뷔한 2007년, 가수로서 인생 2막을 시작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10년의 무명시절을 거치며 매니저의 폭행도 견뎠다. 연기로 눈을 돌린 민우혁은 2013년 뮤지컬 ‘젊음의 행진’으로 새로운 삶을 열었다. 열정과 노력으로 다양한 작품의 배역을 따냈고, 김문정 음악감독의 눈에 띄어 출연한 2015년 ‘레미제라블’을 시작으로 ‘위키드’ ‘아이다’ ‘벤허’까지 굵직한 작품에 연달아 출연했다. 국내 초연되는 러시아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내년까지 기세를 이어간다.

10. ‘안나 카레니나’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민우혁 : ‘벤허’를 마칠 때 쯤 ‘안나 카레니나’의 오디션 소식을 들었어요. 영화와 실제 러시아 공연 영상을 봤는데, 오프닝 음악을 듣자마자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강렬한 넘버(뮤지컬 삽입곡)가 인상적이었고 무대 디자인도 화려해서 마음이 움직였어요. 우리나라에 또 하나의 대작이 탄생하겠다는 생각에 오디션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오디션을 위해 레슨을 받았을 정도예요.

10. 극중 브론스키란 역할에도 매력을 느꼈습니까?
민우혁 : 앞서 출연한 ‘아이다’의 라다메스, ‘위키드’의 피에로와 비슷한 상황이긴 하지만 전작의 인물들이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버렸다면, 브론스키는 달라요. 안나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인생, 또 다른 삶을 만들자고 생각하죠. 안나의 사랑만 원했던 게 아니라 가정을 만들고 부와 명예를 지키고 사회에 섞여서 살고자 했어요. 반면 안나는 브론스키의 사랑만을 원해요. 서로 다른 행복을 찾았기에 충족되지 않죠.

10.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특히 어떤 부분에 신경을 썼나요?
민우혁 : 발성입니다. 힘으로 내지르는 것보다 여자에게 사랑받기 위한 ‘따뜻한 소리’라고 해야 할까요? 하하. 목소리에 공기가 들어가면 분위기가 따뜻해져요. ‘안나 카레니나’의 넘버는 박자가 무척 어려워요. 단순히 좋은 음악이 아니라 상황의 분위기가 녹아 있어서 감정이 변할 때마다 박자가 바뀌죠. 최대한 악보대로 하기 위해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10. 전작인 ‘벤허’와 전혀 다른 캐릭터여서 더 욕심이 났겠지요?
민우혁 : 배우로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는 욕심은 당연해요.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연기한 인물과 비슷한 면도 있지만 저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고 접근했어요. 실제로 연습을 하다 보니 완전히 다른 캐릭터더라고요. ‘이 남자의 사랑은 뭘까?’ 궁금해졌죠.

10. 영화와는 무엇이 다릅니까?
민우혁 : 영화를 봤을 땐 브론스키가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렇게 사랑할 땐 언제고 안나를 저렇게 방치하지?’ 싶었거든요. 안나를 보면서도 ‘왜 저렇게 집착하지?’라며 궁금했어요. 그렇게 단순하게 봤는데, 공연을 준비하면서 러시아 창작팀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결국 여자와 남자의 차이란 걸 알았죠. 연애를 할 때도 그렇잖아요, 여자들이 원하는 게 있는데 그걸 남자들은 모르죠. 남녀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계속 충돌하는 것이고 안나는 그걸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겁니다. 남자는 ‘우리 가정을 위해 열심히 사는 거야!’라고 하지만 정작 여자가 가장 원하는 건 사랑이잖아요. ‘안나 카레니나’도 결국 비극으로 가는데 이런 것들을 명확하게 보여주면, 여성 관객들은 안나에게 공감하고 남성은 ‘여자들이 저런 마음이구나’라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웃음)

10. 실제로 한 가정의 가장이라서 더 이해되겠어요.
민우혁 : 공감 가죠.(웃음) 브론스키에게 특히 공감을 많이 하는데, 처음엔 저도 ‘재수없다’고 생각했어요. 하하. 근데 저 역시 일을 하다보니까 의도하지 않은 방치를 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죠. 우리 가족을 위해 일을 하다보니 집에 늦게 들어가고, 그러면서 가족들은 외로움을 느끼는거죠.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아내가 ‘외롭다’고 하는 걸 이해하게 됐습니다.

“KBS2 예능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2’ 출연으로 인지도가 올라갔다”고 밝힌 배우 민우혁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KBS2 예능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2’ 출연으로 인지도가 올라갔다”고 밝힌 배우 민우혁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자칫 여성 관객들을 적으로 만들 수도 있는 역할이에요.(웃음)
민우혁 : 맞아요. 처음엔 이 작품의 음악과 무대 연출에 푹 빠져서 출연하겠다고 했지만, 이후 브론스키에 집중하면서 충분히 욕 먹을 수 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저 행복을 찾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이에요. 그걸 명확하게 표현하면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건 저의 몫이겠죠.

10. 안나 역의 정선아, 옥주현과 호흡을 맞추는 것도 기대됩니다.
민우혁 : 정선아는 ‘위키드’에서도 같이 출연했어요. ‘꼭 한 번 더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호흡도 잘 맞고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죠. 다시 만나고 싶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이뤘네요. 옥주현은 워낙 뮤지컬 계에서 최고의 배우니까 당연히 상상은 했죠, ‘언제 옥주현과 한 무대에 설 수 있을까?’ 하고요. 사실 그래서 부담도 됩니다. 저 역시 최고의 상대배우가 돼야 하잖아요? 걱정도 큰데, 노력해야죠.(웃음)

10.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예정입니까?
민우혁 : 지금까지는 사랑이 넘치는 역할을 맡았을 때 ‘내 사랑을 받아줘’라며 갈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번엔 ‘어떻게 저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란 느낌으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저런 남자라면 누구라도 사랑에 빠지겠다’ 싶도록 말이죠. 워낙 의상이 멋있어서 서 있기만 해도 멋이 납니다. 하하. 그래서 요즘은 자세도 꼿꼿하게 펴고 다니고 있어요.

10. 안무의 볼거리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민우혁 : 러시아 배우들은 발레를 필수과목으로 전공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기본 자세가 나오죠. 극 중 왈츠 안무가 나오는데, 우리가 제대로 언제 춰봤겠어요?(웃음) 러시아 창작진이 놀라더군요. 그들은 필수니까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연습을 하고 있는데, 그 이후 왈츠까지 배우기로 했습니다. 브론스키와 안나 역의 배우들만요. 그만큼 배우들의 열정이 넘쳐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죠.

10. 하루 종일 연습을 하는데도 얼굴은 즐거워 보이네요.
민우혁 : 즐거운 작업인 것 같아요. 배우로서 이런 걸 언제 배워보겠어요? 이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나름 변신을 할 수 있는 것도 재미있어요. 사실 재미가 없으면 버티기 힘든 일이죠. 내년 1월 개막날이 됐을 때,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날을 위해 배우들이 똘똘 뭉쳐서 애쓰고 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오랫동안 재연될 것 같은 작품이에요. 그래서 초연 배우로서 자부심과 사명감을 안고 잘 만들어놓고 싶습니다.

10. 러시아 공연은 익숙하지 않은데, 한국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은 없을 까요?
민우혁 : 사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일단 소설, 영화로 충분히 알고 있는 단순한 이야기니까요. 여기에 뮤지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연출법과 조명을 사용해 볼거리가 다채롭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싶을 정도예요. 지금까지 좋은 작품을 많이 했지만 보다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올 거예요. 러시아 창작팀도 ‘이렇게 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있어요. 서로의 접점을 잘 찾아가면 큰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10. 올해 뮤지컬뿐만 아니라 예능에도 출연하면서 바쁘게 보냈습니다. 일상의 변화가 있습니까?
민우혁 : 많은 게 달라졌어요. 저의 2016년과 2017년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물론 지난해에도 좋은 작품을 하면서 뮤지컬 배우로 열심히, 성실하게 활동했지만 ‘불후의 명곡’을 통해 민우혁의 존재를 다시 한번 알리면서 뮤지컬 관계자들에게도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불후의 명곡’은 제가 직접 무대 연출을 했어요. 그간 배우로서 연출가가 시키는대로 했다면, 손수 많은 걸 준비하면서 성장했죠. 덕분에 저를 보러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도 생겼어요. 1년 사이에 확 바뀌어서 행복하지만, 또 한편으론 ‘언젠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란 걱정도 있습니다. 지금의 행보를 오랫동안 이어가고 싶다는 목표가 하나 더 생겼죠.

10. ‘살림하는 남자2’에 출연한 것도 올해 잘한 일 중 하나겠군요.
민우혁 : 사실 가족 이야기를 한번도 공개한 적이 없어서 걱정했어요. 솔직하게 일상을 보여드렸는데, 어머니 팬들이 많이 생겨서 좋습니다.(웃음) 10, 20대들이 많은 쇼핑몰을 가면 저를 몰라요. 그런데 40, 50대가 많은 백화점과 시장을 가면 반응이 달라요. 하하. 최근 해산물을 사러 시장에 갔다가 아주머니가 저를 알아보시고 더 많이 주시더라고요. 지방 공연을 하러가면 마치 선거하는 사람처럼 저를 기다리신 어머니들과 악수하면서 들어가요.(웃음)

배우 민우혁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배우 민우혁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과거 힘든 시절을 털어놓기도 했어요. 여유가 생겨서 일까요?
민우혁 : 사실 그런 이야기도 잘 하지 않는데,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어린 친구들이 많아요. 제가 운동선수를 하다가 뮤지컬 배우가 됐잖아요, 게다가 오랜 무명시절을 거쳐 앙상블부터 시작해 조연, 주연까지 올라와서 그런지 비법을 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연습을 어떻게 하느냐’고 묻기도 하고요.(웃음) 그렇게 묻는 친구들 중 대부분이 절망감에 휩싸여 있어요. 용기를 내서 그들에게 ‘나도 이렇게 힘든 일이 있었다.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더니 좋은 일이 생겼다’고 말하는 겁니다. 정확한 목적을 갖고 희생을 감수하고 사랑한다면 할 수 있다고요. 그런 것들을 방송을 통해 조금 더 알려주고 싶어서 얘기하게 됐어요.

10. 연기를 하는 태도 역시 달라졌습니까?
민우혁 : 배우로서 사명감이 생겼어요. 누군가 나를 보며 희망을 얻는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공연이 끝난 뒤 한 관객에게 ‘요즘 힘든 일이 있었는데 덕분에 희망을 찾았다’는 말을 듣고, 나를 통해 누군가 치유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누군가 희망을 얻고 인생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니 책임이 커졌죠. 실제로 여러 선배들이 그런 얘기를 해줘요. 매번 같은 공연을 하면 간혹 배우들이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는데, ‘레미제라블’을 할 때 정성화, 양준모 선배가 항상 공연 시작 전 ‘오늘 공연이 누군가에겐 처음’이란 마음을 가슴에 새기고 공연을 하자고요. 저도 그런 사명감을 지닌 배우가 돼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말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0.자신에게 뮤지컬은 무엇인가요?
민우혁 : 뮤지컬이란 장르는 5년 전에 알았어요. 저에게 뮤지컬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죠. 그저 노래하는게 좋았는데, 힘든 시절을 겪으며 그마저도 싫어졌어요. 그런데 인생의 절반을 야구와 노래를 하며 보냈더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군요. 그러다 연기를 선택했고, 노래와 연기를 종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뮤지컬을 알았죠. 연기를 하면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관객들의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져요. 그들이 집중하고 있는 순간이 피부로 전해지는데…그때 저도 몰랐던 것들이 튀어나와요. 시도해보지 않았던 소리가 나오기도 하고요.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나는거죠. 공연을 하는 건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지만, 그도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을 때의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이에요.

10.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민우혁 : 지금 저는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는데, 그건 연기를 잘하는 방법밖엔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