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키에틸(크리스토퍼 요너)은 유전에서 일하는 기술자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라서 모든 노르웨이인이 다 그럴지 모르지만 아무튼 삶의 윤택함이 곳곳에 묻어있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아내와 훌륭한 직장과 좋은 집과 성능이 우수한 자동차를 갖고 있다. 부모님과도 화목한 편이다.
다만 아이가 없는 게 문제였는데 이것 역시 아내 카밀라(엘렌 도리트 페테르센)가 해결해 주었다. 콜롬비아에서 어린 소년을 입양한 것이었다. 카밀라는 정성을 다해 아들 다니엘(크리스토퍼 베치)을 키웠고 키에틸은 드디어 모든 게 완벽한 지점에 도달한다.
‘나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Hjertestart, 극영화, 노르웨이, 2016년, 102분)는 한 남자가 최고에서 최악으로 추락하기까지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아무리 복지국가에 살더라도 단 한 번의 사건으로 인생이 곤두박질친다는 사실을 잘 알려주는 영화다. 키에틸은 과연 어디에서 재기의 기운을 받을 수 있을까?
영화의 도입부에 입양가정 공동체인 ‘고향 찾는 모임’에서 젊은 여성이 발표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한국에서 입양된 여성인데 노르웨이에서 좋은 부모를 만나 잘 적응했다. 출생지 한국에 가서 찍어온 생부와 생모의 사진을 보여준다. 비록 슬픈 과거가 있지만 잘 헤쳐 나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현재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앞으로 키에틸이 빠져들게 될 불행을 알려주는 복선으로 작용한다.
나는 한 번도 노르웨이에 가본 적이 없다. 저 북극 가까운 데 몹시 추운 나라, 여름이면 해가 자정까지 떠 있고 겨울에는 오후 두세 시에 해가 지는 나라, 나라면 그런 곳에 살지 않겠다. 하지만 다른 한 편 노르웨이는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완벽하게 책임져 주는 나라라고도 한다. 그러니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생활에 찌들 대로 찌든 사람이라면 나와 생각이 다를지 모른다. 추운 게 대수랴!
영화에는 노르웨이와 콜롬비아가 나온다. 참으로 다른 나라라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콜롬비아 버스에는 노래하는 가수, 잡상인, 구걸하는 이, 심지어 자기 배의 상처를 보여주며 돈을 뜯어내려는 협박범까지 있다. 다니엘은 콜롬비아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로또에 맞은 셈이었지만 키에틸에게는 춥고 쓸쓸한 노르웨이보다 밝고 활기찬 콜롬비아가 다니엘에게 훨씬 좋아 보인다. 게다가 그는 다니엘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줄 수 없음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감독은 여기서 중요한 제안을 한다. 다니엘의 말을 들어보자는 것이다. 영화에서 다니엘은 칭얼거리는 대신 딱 두 마디를 진지하게 키에틸에게 던진다. 그러고는 바로 사라져버렸다. 아들의 손을 잠시 놓쳤던 경험이 있는 나에게는 그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자식이 던지는 진지한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진정한 부모가 될 수 없다. 감독의 제작의도가 잘 살아나는 장면이었다. 모든 정황이 막판으로 치달아가도록 이야기를 잘 풀어나간 연출도 좋았다.특히 키에틸이 콜롬비아에서 대절한 택시의 운전사 티보 역의 말론 모레노의 연기와 콜롬비아 입양센터의 원장인 필라르역을 맡은 마르셀라 카를라젤의 연기가 눈에 띄었다. 배우를 캐스팅하는 감각이 있는 감독으로 보인다. 영화를 직접 보며 확인하시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필라르가 키에틸에게 한 말을 옮겨본다.
“제가 이 일을 한 지 20년이 넘었어요. 그 동안 여러 경우를 봐왔죠. 포기하기도 하고 새 가족으로 거듭나기도 하는데 왜 누구는 성공하고 왜 어떤 이들은 실패하는 지 아직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내가 믿는 것은 당신은 좋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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