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연극 ‘엠.버터플라이’에 출연하는 배우 김도빈 / 사진제공=연극열전
연극 ‘엠.버터플라이’에 출연하는 배우 김도빈 / 사진제공=연극열전
안양예술고,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김도빈은 극단 인혁에서 2006년 연극 ‘이상한 동양화’로 데뷔했다. 2010년 서울예술단에 들어가 뮤지컬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2013) ‘블랙 메리 포핀스'(2013) ‘비스티 보이즈'(2014) ‘쓰릴미'(2014)를 거쳤다. 최근에는 연극 ‘모범생들’ ‘지구를 지켜라’ ‘엠.버터플라이’에 연달아 출연하며 활약 중이다. 특히 지난 9월 막을 올린 ‘엠.버터플라이'(연출 김광보)에서는 스파이를 사랑한 프랑스 영사관 직원 르네 갈리마르 역을 맡아 다채로운 감정을 분출하고 있다.

1986년 중국 경극 배우이자 스파이였던 여장남자가 프랑스 외교관을 속이고 국가기밀을 유출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엠.버터플라이’는 극적인 이야기만큼이나 등장인물의 감정 기복도 심하다. 김도빈은 매 순간 결이 다른 기분을 목소리의 높낮이, 눈썹의 움직임, 주저하는 발걸음 등으로 누구보다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캐스팅 발표 당시 “르네 역은 김도빈과 어울리지 않는다”던 일부 관객들의 우려는 김도빈이 거울 앞에 앉는 순간, 환상 속 나비가 날아오르듯 훨훨 날아간다.

10. ‘엠.버터플라이’가 개막한지 두 달이 흘렀습니다. 이젠 여유가 좀 생겼겠죠?
김도빈 : 초반엔 ‘대사를 틀리지 말아야지’란 생각이 컸어요. 적응이 됐긴 한데 그래도 아직 좀 틀려요.(웃음) 공연 전에 대사를 읊어보면서 혼자 런 스루(Run Through)를 해요. 주고받는 대사는 괜찮은데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방백 장면에서는 리액션 없이 하다 보니까 어려운 점도 있어요.

10. 감정의 기복이 심한 역할이라 에너지 소모도 엄청날 것 같습니다.
김도빈 : 공연 전 체력적으로도 사실 걱정을 좀 했어요. 3막에선 소리도 지르고 울기도 하잖아요. 목 상태나 이런 건 문제가 안되는데 끝나고 나면 진이 빠지긴 하죠.(웃음) 3막까지 하고 내려오면 ‘멍’해요. 2막과 3막 중간에 옷을 갈아입으러 잠깐 퇴장하는데, 그때 행복하죠. 하하.

10. 힘든 만큼 희열과 짜릿함도 클 것 같습니다.
김도빈 :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는 작품은 처음이에요. 그만큼 어렵기도 하고…아직도 하면서 찾고 있는 중입니다. 마지막쯤 되면 더 아쉽고 뿌듯하겠죠? 근데 저는 오히려 관객들이 더 대단한 것 같아요. 보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10. ‘엠.버터플라이’라는 작품, 르네란 인물을 어떻게 이해했습니까?
김도빈 : 우선 상황과 대본을 숙지하고, 상대 배우들과 연기를 하면서 하나씩 만들어갔어요. 먼저 만들어 두면 혼자 연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연구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같이 완성합니다.

10. 르네는 실존 인물이어서 표현하기 더 난해했을 것 같아요.
김도빈 : 과거 ‘엠.버터플라이’ 공연을 봤어요. 이번엔 좀 더 원작에 가깝게 각색을 해서 빠진 부분도 되살렸죠. 1950대의 중년 남자를 어떻게 표현할까?’에 대해 고민했는데, 나이에 국한되지 말고 이 상황과 인물에 집중해보자고 생각했죠. 평범한 한 남자가 동양인 여자를 만나 변해가는 과정을 재미있게 그려보려고 했습니다.

배우 김도빈 / 사진제공=연극열전
배우 김도빈 / 사진제공=연극열전
10. 여전히 적응하기 힘든 부분도 있습니까?
김도빈 : 마지막에 직접 화장을 하면서 대사를 하잖아요. 환상에 빠져서 말이죠. 아직까지 그 경계가 모호해요. 어느 순간 진짜 버터플라이가 돼야 하는데 지금은 그 중간 지점 어딘가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정말 환상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지만 분장을 하면서 ‘어, 이상하게 됐네. 아이고’ 싶기도 하고.(웃음) 가발과 화장을 완벽하게 완성하고 환상 속으로 들어가는 버터플라이를 만들고 싶습니다.

10. 관객으로 공연을 봤을 땐 어땠나요?
김도빈 : 사실 그때 공연볼 땐 집중을 잘 못했어요. 90% 이상이 여자 관객들인 데다 숨도 안쉬고 공연을 보더라고요.(웃음) 르네의 독백 때는 정말 한없이 조용했고요. 분위기에 압도 당했어요. 물론 배우의 입장에서 봤을 땐 ‘(연기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죠. ‘송은 여장을 해야 하니까 싫고, 르네는 중년 남자니까 나와는 어울리지 않겠지’란 생각만 잠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출연 제안받았을 때 당황했죠.

10. 예술고등학교에 예술대 연극과, 극단까지. 줄곧 연기에 대한 생각만 하고 살았겠군요.
김도빈 : 맞아요, 연기만 생각했어요. 서울예술단에 들어가 뮤지컬을 하면서는 노래도 신경을 써야 했죠. 노래는 사실 부담이 좀 있어요. 잘하지도 못하고 대사를 하다가 노래를 시작하면 어느 부분에선 고음을 내야하고, 또 어떤 부분은 기술을 써서 성량을 보여줘야 하니까 연기의 연결이 쉽지 않더군요.

10.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입니까?
김도빈 :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엠.버터플라이’를 시작할 즈음에 몸담고 있던 극단에서 나왔고, 게다가 이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끌고 가야 하는 주인공이잖아요. 그래서 책임감도 커졌고요.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 싶었죠. 지금까지는 즐기려고 했고 또 즐기면서 했습니다. 여전히 즐기고 있지만요.

10. 어딘가에 소속돼 있지 않다는 불안감도 있죠?
김도빈 : 우선 시간이 너무 많아요. 공연이 있든 없든 항상 아침마다 극단에 출근해 연습하고, 똑같은 시간에 밥을 먹었는데…지금은 오전에 시간이 많으니까(웃음) 뭔가… 정년퇴임한 아버지들의 마음이 이런 기분일까요? 하하.

10. 극단에서 나온 계기가 있습니까?
김도빈 : 변화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이 아니면 못나올 것 같았죠. 사실 극단에 있었을 때 정말 좋았어요. 좋은 작품도 많이 했고, 또래 배우들과 어울리고 연습하면서 항상 즐거웠어요. 다만 뭔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죠. 극단을 그만두는 시점에 ‘엠.버터플라이’를 시작하면서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는데, 작품을 마치면 아마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10. 데뷔한지 10년이 흘렀어요. 캐릭터와 일상의 분리는 잘 되는 편입니까?
김도빈 : 어떤 선배는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대본을 앞에 두고 캐릭터와 이별하며 술잔을 기울인다고 해요. 또 다른 선배는 분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는 순간 확 빠져나온다고 해요. 저는 공연할 때 확 집중하고 이후엔 금세 저로 돌아와요. 그렇지 않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여러 감정을 표현해내는 희열이 더 크지, 캐릭터의 감정이 일상에 침범해서 힘들어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면 풀려요.

배우 김도빈 / 사진제공=연극열전
배우 김도빈 / 사진제공=연극열전
10. 배우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습니까?
김도빈 : 예술단에서 문화소외 지역으로 정기 공연을 갔을 때였어요. 커튼콜 때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는데, 대학로 팬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에요. 따뜻함이 느껴졌죠.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와, 행복하다’란 생각을 했어요. 연기는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것이니까 가장 중요한 건 ‘관계’예요. 저는 사람을 대하는 것과 고민 상담도 잘하거든요. 그래서 배우란 직업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10. 연기자 김도빈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김도빈 :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너는 뭘 믿고 그렇게 긍정적이니?”라고 하셨어요.(웃음) 몸은 정신이 지배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사는 내 세상인데 주인공은 ‘나’잖아요.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마음먹은 대로 잘 해내야죠. ‘엠.버터플라이’를 끝내고 또 다른 작품을 시작합니다. 기대해주세요!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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