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이자람 : 판소리를 만드는 사람이에요. 그런 저에게 ‘서편제’는 우리 동네가 아닌 다른 동네에 놀러 가는 기분이죠. 반갑고 늘 생경한 경험이에요. ‘서편제’ 자체도 각별한 느낌의 공연이어서 매번 준비하는 마음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각오를 해야 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날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하죠. 그것이 좋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요. 매번 ‘서편제’에 임하는 마음은 좋은 전투를 치르는 기분입니다.(웃음) 우리 동네에만 사느라고 매너리즘을 느낄 때, 환기 할 수 있는 귀한 경험이에요. 저에겐 다양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무섭고, 기쁜 놀이터죠.
10. 극을 이끌어가는 송화를 연기하는 것이 버겁지는 않습니까?
이자람 : 저는 소리꾼도 배우라고 생각해요. 두 시간 반 동안 홀로 여러 명의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투어 공연도 했기 때문에 ‘서편제’ 속에서 배우로 임하는 것이 특별히 다른 느낌은 없어요. 다만 넘버(뮤지컬 삽입곡)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 괴롭고 두렵고 또 기쁜 숙제예요. ‘살다보면’을 하기 전에 ‘이런 노래를 내가 살면서 부를 기회가 얼마나 찾아올 것인가?’란 생각을 하면 감사하죠. 무대에 설 때마다 떨어요.
10. 송화와 이자람의 싱크로율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이자람 : ‘사람들은 나와 송화를 닮았다고 생각하겠구나’란 생각도 해요. 처음엔 그걸 부정했어요. 송화처럼 그렇게 궁상맞은 인생은 살기 싫어요.(웃음) 잘 생각해보면, 어느 시점의 송화와 저는 비슷한 것 같아요. 송화가 혼자 길을 걸으며 ‘아리랑’을 부를 땐 그냥 저예요.
10. 송화란 인물을 어떻게 그리려고 했나요?
이자람 : 세 번째 공연까지는 나와 100km쯤 거리를 두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외롭고 궁상맞은 삶은 살고 싶지 않았어요.(웃음) 한 여인이 사건을 겪고 나서 슬픔, 분노를 느끼죠. 그걸 이겨내며 소리로 가는 긴 여정을 2시간 반에 압축해서 보여주잖아요. 이번엔 이상하게 송화처럼 살고 싶지 않지만, 모두가 이런 힘든 시간을 버티고 있을 텐데…’이 여자는 어떻게 여기까지 갔을까?’란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어요. 그녀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관객이 송화에게 왜 위로를 받는지 알겠더군요. 삶에 대한 궁금증을 가졌을 때, 일말의 답을 송화가 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10. ‘서편제’를 두고 일부에서는 시대와 맞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이자람 : 이청준 작가의 소설 ‘서편제’가 그런걸요.(웃음) 근대 문학, 특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과거 예술은 가부장적이고 여성은 배제된 채 도구로서 표현되죠. ‘과거의 일들을 현실의 평등을 위해서 함구해야 할 것인가?’란 고민을 해요. ‘서편제’를 하면서도 이 부분에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사실을 바꾸지 않고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고민했죠. 이지나 연출이 “송화가 아버지로 인해 눈이 멀고, 피해자로만 남는다면 우리는 내용과 함께 추락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우리는 송화가 그걸 딛고 일어서는 걸 보여줘야죠. 일은 아버지 유봉이 벌였지만 송화도 자기 안에 욕망이 워낙 커서 어떻게든 소리를 찾아가는 여자로 말이죠. 연출이 그걸 표현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서편제’를 할 때 큰 감정 소모가 두 번 있는데, 한 번은 아버지가 제 눈을 멀게 했을 때예요. 손이 떨리는데,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떨림이에요. 이후 아버지가 먼저 죽었을 때, 또 화가 나요. 사실 송화는 동생 동호를 보낼 때도 소리를 찾으려고 했고, 눈이 먼 것과 상관없이 ‘심청가’를 하는 사람이에요. 이야기의 흐름 상 두 번의 큰 화가 올라올 수밖에 없고요. 송화는 그래요, 그렇게 해석했어요.
10. 관객 평 중에 마음을 울린, 기억에 남는 말이 있습니까?
이자람 : 관객평은 일부러 보지 않아요. 무섭기도 하고 저를 방해하는 것들이 생길까 봐요. 대신 동료 배우들이 힘을 주는 말을 많이 해줘요. 그들이 무대 위에서 손하트를 날려주면서 “소리 잘 들었다”고 해주거든요. 어떤 날은 재연부터 함께한 배우가 “그때의 떨림이 왔다. 고맙다”고 할 때도 있죠. 굉장히 큰 힘이 돼요.
10. 다른 뮤지컬 배우와 달리 소리꾼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있겠지요?
이자람 : 소리꾼이어서 ‘서편제’를 하면서 간혹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기도 하거든요. 소리꾼만이 할 수 있는 힘을 내죠. 예를들면 ‘살다보면’이 잘 안됐어도 ‘심청가’를 공들여 해야겠다고요. ‘최고의 심청가를 보여줘야지!’ 하면서 이겨내는 날도 있어요. 소리꾼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격려랄까요?(웃음)
10. 가장 힘줘서 부르는 노래는 ‘심청가’입니까?
이자람 : 힘을 안주는 노래가 없는 것 같아요. 가장 무서운 노래는 ‘살다보면’이고요. 극의 상황으로 ‘사랑가’는 힘을 빼고 부르죠. 못 불러도 되니까요.
10. 판소리를 흔히 한(恨)의 정서라고 하는데, 한스러움을 ‘서편제’ 안에서는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이자람 : 한에 방점을 찍지 않았어요. 판소리가 ‘한’이라고 얘기하는 걸 반대하는 입장이라, 제가 해석하는 송화에겐 ‘쾌(快)’가 있어요. 제발 그걸 잃지 않고 ‘심청가’까지 갔으면 하는 바람이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어깨를 누가 치고 지나갈 때 조그맣게 쌓이는 분노 같은 것까지 포함해 수많은 것들이 한이라면, 편협한 해석이죠. 판소리는 인생을 다 담는 예술이지, 한만 담는 예술이 아니에요. ‘서편제’는 소리밖에 없는 여자가 소리와 자신을 일치시키는 과정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10. 이번엔 배우 외에 국악 선생님 역할도 했습니다.
이자람 : 사실 특별히 많이 도운 건 없어요. 어린 송화, 동호를 맡은 아역 배우들에게 국악을 가르쳤죠. 송화 역의 이소연 배우는 소리꾼이기 때문에 알아서 척척이었고요.
10. 뮤지컬은 협업이라는 점에서 소리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르겠죠?
이자람 : 혼자 소리를 할 땐 그날 저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죠. 뮤지컬은 상대방의 액션이 다르면 저의 리액션도 달라요. 그렇게 그날 작품의 분위기가 달라질 때도 있는데, 그게 재미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배우 개개인의 기본값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상대의 기량을 믿기 때문에 리액션이 달라져도 작품의 노선은 바뀌지 않죠. 서로에 대한 믿음, 그게 뮤지컬의 재미입니다.
10. ‘서편제’를 하면서 실수한 적도 있습니까?
이자람 : 서범석 아버지랑 할 때 미워서 마구 흔드는 장면이 있는데, 아버지의 가방끈이 내려와서 양팔이 묶인 것처럼 됐어요. 그 모습이 정말 귀여웠거든요.(웃음) 가방이 내려오면 안 되는 건데, 일종의 사고잖아요. 휴식시간에 서로 이야기했어요. “우리 어마어마하게 집중했다. 한 명이라도 웃었으면 끝났다”고요.(웃음)
10. ‘서편제’ 외에 다른 뮤지컬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이자람 : 없어요. 하하.
10. 판소리를 소재로 하는 뮤지컬이 또 나올 수 있도 있을 텐데요.
이자람 : 어떤 작품을 만날 때, ‘내가 이곳에서 잘 놀 수 있을까?’를 가장 먼저 생각해요. 얻어 갈 것이 쓰는 것과 균형이 맞는가를 따져보죠. 그게 연극이든 창이든, 뮤지컬이든 그렇다면 할 거예요. ‘서편제’는 초연 당시 이지나 연출이 “네가 가려고 하는 길에 도움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손을 내밀었어요. 그 말은 현실이 됐어요. 정말 많은 걸 얻었죠. 모르는 세상을 엿볼 수 있었고, 평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 모든 걸 가져다준 작품이에요.
10. 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까?
이자람 : 노는 욕망이 사라지면 예술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 같아요. 판소리를 하는데 무거운 책임이 따를 때, 저는 놀아야 하기 때문에 밴드 음악을 미친 듯이 해요. 또 밴드 음악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올 때 대본을 쓰러 가요. 어떤 시선에서 ‘대본이 엉망이다’ 싶을 땐, 또 음악으로 도망가고요. 제가 하고 있는 것들이 서로의 일들을 위로해요.
10. 가장 신나게 놀 수 있는 판은요?
이자람 : 하나만 꼽을 수가 없는데…’서편제’가 끝나면 뭘 할 것인가?로 대답을 하자면, 밴드 음악을 쓸 거예요. 창작하는 일을 1년간 멈춘 상태인데, 창작 욕망이 올라오고 있어요. 다행히도 첫 순서는 밴드 음악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대본도 좀 쓰고 싶고요.(웃음) ‘서편제’를 끝내면 마음껏 게으르게 보내면서 거기서 태어나는 창작물을 뱉어내고 싶습니다.
10.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습니까?
이자람 : 아무 데서나 얻어요. 소설을 보다가 올 때도 있고, 지금 이렇게 노트북 타자 소리를 들으면서도 오고요. 아무 때나 도둑처럼 찾아오는 것 같아요.
10. 무대에 오르기 전에 특별히 하는 것이 있나요?
이자람 : 요가를 30분 정도 해요. 숨을 열어놓는 거예요. 판소리는 흉성을 많이 쓰는데 뮤지컬은 두성을 쓰거든요. 둘 다 열어놔야 갖가지 노래가 나올 수 있어서 요가로 가슴을 풀죠. “자람이도 목을 그렇게 풀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뮤지컬을 위해 목을 풀어요.
10. 판소리의 대중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자람 : 국수 가게라고 하면, 여기 저기 홍보를 하는 쪽보다 국수를 더 맛있게, 더 다양하게 메뉴를 발전시키는 방향을 선택할 거예요. 판소리의 대중화보다 제 작품을 통해 이야기를 잘 빗어내는 것에 더 관심을 둬요.
10. 소리꾼에 밴드 음악, 뮤지컬, 작가까지 다양한 재주가 있어요. 가장 자신 있는 건 뭔가요?
이자람 : 지금도 늘 고민해요. 무대에 서는 걸 가장 잘하는 것 같아요. 제가 가진 재능 중에 무대에 서는 재능이 가장 발달됐죠. 지금 저는 기로에 서 있어요. ‘언제 가장 행복한가?’를 탐구할 시간이 온 거죠. 하나를 선택한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다음 방향이 달라지겠죠.
10. 바라는 수식어는요?
이자람 : 한글로는 못 찾았는데 표현하면 ‘창작자’가 가장 가깝고, 영어로는 ‘아티스트(Artist)’가 가까워요. 무언가를 계속 창조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10. 오는 11월 5일 ‘서편제’를 마친 뒤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자람 : 올해는 제 작업을 안 하고 쉬는 해였어요. 내년엔 국립창극단에서 올리는 공연의 대본을 쓸 거예요. 1년 만의 대본 작업이 되겠군요. 그리고 밴드의 2집이 나올겁니다.(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국악인이자 밴드 보컬, 작가로도 활동 중인 이자람(39). 중요 무형 문화재 판소리(춘향가·적벽가)의 이수자로, 1999년 ‘춘향가’ 8시간 완창에 성공해 최연소 완창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판소리단편선1_주요섭’을 작창해 2014년 공연을 올렸다. 2004년 결성된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이다. 2010년부터 뮤지컬 ‘서편제'(연출 이지나)의 주인공 송화 역을 맡아 연기했다. 2014년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지난 8월부터 네 번째 송화로 살고 있는 ‘공연인’ 이자람을 만났다.10. 2010년 초연 이래 네 번 연속 ‘서편제’를 선택했습니다.
이자람 : 판소리를 만드는 사람이에요. 그런 저에게 ‘서편제’는 우리 동네가 아닌 다른 동네에 놀러 가는 기분이죠. 반갑고 늘 생경한 경험이에요. ‘서편제’ 자체도 각별한 느낌의 공연이어서 매번 준비하는 마음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각오를 해야 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날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하죠. 그것이 좋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요. 매번 ‘서편제’에 임하는 마음은 좋은 전투를 치르는 기분입니다.(웃음) 우리 동네에만 사느라고 매너리즘을 느낄 때, 환기 할 수 있는 귀한 경험이에요. 저에겐 다양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무섭고, 기쁜 놀이터죠.
10. 극을 이끌어가는 송화를 연기하는 것이 버겁지는 않습니까?
이자람 : 저는 소리꾼도 배우라고 생각해요. 두 시간 반 동안 홀로 여러 명의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투어 공연도 했기 때문에 ‘서편제’ 속에서 배우로 임하는 것이 특별히 다른 느낌은 없어요. 다만 넘버(뮤지컬 삽입곡)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 괴롭고 두렵고 또 기쁜 숙제예요. ‘살다보면’을 하기 전에 ‘이런 노래를 내가 살면서 부를 기회가 얼마나 찾아올 것인가?’란 생각을 하면 감사하죠. 무대에 설 때마다 떨어요.
10. 송화와 이자람의 싱크로율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이자람 : ‘사람들은 나와 송화를 닮았다고 생각하겠구나’란 생각도 해요. 처음엔 그걸 부정했어요. 송화처럼 그렇게 궁상맞은 인생은 살기 싫어요.(웃음) 잘 생각해보면, 어느 시점의 송화와 저는 비슷한 것 같아요. 송화가 혼자 길을 걸으며 ‘아리랑’을 부를 땐 그냥 저예요.
10. 송화란 인물을 어떻게 그리려고 했나요?
이자람 : 세 번째 공연까지는 나와 100km쯤 거리를 두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외롭고 궁상맞은 삶은 살고 싶지 않았어요.(웃음) 한 여인이 사건을 겪고 나서 슬픔, 분노를 느끼죠. 그걸 이겨내며 소리로 가는 긴 여정을 2시간 반에 압축해서 보여주잖아요. 이번엔 이상하게 송화처럼 살고 싶지 않지만, 모두가 이런 힘든 시간을 버티고 있을 텐데…’이 여자는 어떻게 여기까지 갔을까?’란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어요. 그녀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관객이 송화에게 왜 위로를 받는지 알겠더군요. 삶에 대한 궁금증을 가졌을 때, 일말의 답을 송화가 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10. ‘서편제’를 두고 일부에서는 시대와 맞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이자람 : 이청준 작가의 소설 ‘서편제’가 그런걸요.(웃음) 근대 문학, 특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과거 예술은 가부장적이고 여성은 배제된 채 도구로서 표현되죠. ‘과거의 일들을 현실의 평등을 위해서 함구해야 할 것인가?’란 고민을 해요. ‘서편제’를 하면서도 이 부분에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사실을 바꾸지 않고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고민했죠. 이지나 연출이 “송화가 아버지로 인해 눈이 멀고, 피해자로만 남는다면 우리는 내용과 함께 추락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우리는 송화가 그걸 딛고 일어서는 걸 보여줘야죠. 일은 아버지 유봉이 벌였지만 송화도 자기 안에 욕망이 워낙 커서 어떻게든 소리를 찾아가는 여자로 말이죠. 연출이 그걸 표현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서편제’를 할 때 큰 감정 소모가 두 번 있는데, 한 번은 아버지가 제 눈을 멀게 했을 때예요. 손이 떨리는데,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떨림이에요. 이후 아버지가 먼저 죽었을 때, 또 화가 나요. 사실 송화는 동생 동호를 보낼 때도 소리를 찾으려고 했고, 눈이 먼 것과 상관없이 ‘심청가’를 하는 사람이에요. 이야기의 흐름 상 두 번의 큰 화가 올라올 수밖에 없고요. 송화는 그래요, 그렇게 해석했어요.
10. 관객 평 중에 마음을 울린, 기억에 남는 말이 있습니까?
이자람 : 관객평은 일부러 보지 않아요. 무섭기도 하고 저를 방해하는 것들이 생길까 봐요. 대신 동료 배우들이 힘을 주는 말을 많이 해줘요. 그들이 무대 위에서 손하트를 날려주면서 “소리 잘 들었다”고 해주거든요. 어떤 날은 재연부터 함께한 배우가 “그때의 떨림이 왔다. 고맙다”고 할 때도 있죠. 굉장히 큰 힘이 돼요.
10. 다른 뮤지컬 배우와 달리 소리꾼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있겠지요?
이자람 : 소리꾼이어서 ‘서편제’를 하면서 간혹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기도 하거든요. 소리꾼만이 할 수 있는 힘을 내죠. 예를들면 ‘살다보면’이 잘 안됐어도 ‘심청가’를 공들여 해야겠다고요. ‘최고의 심청가를 보여줘야지!’ 하면서 이겨내는 날도 있어요. 소리꾼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격려랄까요?(웃음)
10. 가장 힘줘서 부르는 노래는 ‘심청가’입니까?
이자람 : 힘을 안주는 노래가 없는 것 같아요. 가장 무서운 노래는 ‘살다보면’이고요. 극의 상황으로 ‘사랑가’는 힘을 빼고 부르죠. 못 불러도 되니까요.
10. 판소리를 흔히 한(恨)의 정서라고 하는데, 한스러움을 ‘서편제’ 안에서는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이자람 : 한에 방점을 찍지 않았어요. 판소리가 ‘한’이라고 얘기하는 걸 반대하는 입장이라, 제가 해석하는 송화에겐 ‘쾌(快)’가 있어요. 제발 그걸 잃지 않고 ‘심청가’까지 갔으면 하는 바람이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어깨를 누가 치고 지나갈 때 조그맣게 쌓이는 분노 같은 것까지 포함해 수많은 것들이 한이라면, 편협한 해석이죠. 판소리는 인생을 다 담는 예술이지, 한만 담는 예술이 아니에요. ‘서편제’는 소리밖에 없는 여자가 소리와 자신을 일치시키는 과정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자람 : 사실 특별히 많이 도운 건 없어요. 어린 송화, 동호를 맡은 아역 배우들에게 국악을 가르쳤죠. 송화 역의 이소연 배우는 소리꾼이기 때문에 알아서 척척이었고요.
10. 뮤지컬은 협업이라는 점에서 소리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르겠죠?
이자람 : 혼자 소리를 할 땐 그날 저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죠. 뮤지컬은 상대방의 액션이 다르면 저의 리액션도 달라요. 그렇게 그날 작품의 분위기가 달라질 때도 있는데, 그게 재미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배우 개개인의 기본값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상대의 기량을 믿기 때문에 리액션이 달라져도 작품의 노선은 바뀌지 않죠. 서로에 대한 믿음, 그게 뮤지컬의 재미입니다.
10. ‘서편제’를 하면서 실수한 적도 있습니까?
이자람 : 서범석 아버지랑 할 때 미워서 마구 흔드는 장면이 있는데, 아버지의 가방끈이 내려와서 양팔이 묶인 것처럼 됐어요. 그 모습이 정말 귀여웠거든요.(웃음) 가방이 내려오면 안 되는 건데, 일종의 사고잖아요. 휴식시간에 서로 이야기했어요. “우리 어마어마하게 집중했다. 한 명이라도 웃었으면 끝났다”고요.(웃음)
10. ‘서편제’ 외에 다른 뮤지컬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이자람 : 없어요. 하하.
10. 판소리를 소재로 하는 뮤지컬이 또 나올 수 있도 있을 텐데요.
이자람 : 어떤 작품을 만날 때, ‘내가 이곳에서 잘 놀 수 있을까?’를 가장 먼저 생각해요. 얻어 갈 것이 쓰는 것과 균형이 맞는가를 따져보죠. 그게 연극이든 창이든, 뮤지컬이든 그렇다면 할 거예요. ‘서편제’는 초연 당시 이지나 연출이 “네가 가려고 하는 길에 도움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손을 내밀었어요. 그 말은 현실이 됐어요. 정말 많은 걸 얻었죠. 모르는 세상을 엿볼 수 있었고, 평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 모든 걸 가져다준 작품이에요.
10. 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까?
이자람 : 노는 욕망이 사라지면 예술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 같아요. 판소리를 하는데 무거운 책임이 따를 때, 저는 놀아야 하기 때문에 밴드 음악을 미친 듯이 해요. 또 밴드 음악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올 때 대본을 쓰러 가요. 어떤 시선에서 ‘대본이 엉망이다’ 싶을 땐, 또 음악으로 도망가고요. 제가 하고 있는 것들이 서로의 일들을 위로해요.
10. 가장 신나게 놀 수 있는 판은요?
이자람 : 하나만 꼽을 수가 없는데…’서편제’가 끝나면 뭘 할 것인가?로 대답을 하자면, 밴드 음악을 쓸 거예요. 창작하는 일을 1년간 멈춘 상태인데, 창작 욕망이 올라오고 있어요. 다행히도 첫 순서는 밴드 음악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대본도 좀 쓰고 싶고요.(웃음) ‘서편제’를 끝내면 마음껏 게으르게 보내면서 거기서 태어나는 창작물을 뱉어내고 싶습니다.
10.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습니까?
이자람 : 아무 데서나 얻어요. 소설을 보다가 올 때도 있고, 지금 이렇게 노트북 타자 소리를 들으면서도 오고요. 아무 때나 도둑처럼 찾아오는 것 같아요.
10. 무대에 오르기 전에 특별히 하는 것이 있나요?
이자람 : 요가를 30분 정도 해요. 숨을 열어놓는 거예요. 판소리는 흉성을 많이 쓰는데 뮤지컬은 두성을 쓰거든요. 둘 다 열어놔야 갖가지 노래가 나올 수 있어서 요가로 가슴을 풀죠. “자람이도 목을 그렇게 풀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뮤지컬을 위해 목을 풀어요.
10. 판소리의 대중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자람 : 국수 가게라고 하면, 여기 저기 홍보를 하는 쪽보다 국수를 더 맛있게, 더 다양하게 메뉴를 발전시키는 방향을 선택할 거예요. 판소리의 대중화보다 제 작품을 통해 이야기를 잘 빗어내는 것에 더 관심을 둬요.
10. 소리꾼에 밴드 음악, 뮤지컬, 작가까지 다양한 재주가 있어요. 가장 자신 있는 건 뭔가요?
이자람 : 지금도 늘 고민해요. 무대에 서는 걸 가장 잘하는 것 같아요. 제가 가진 재능 중에 무대에 서는 재능이 가장 발달됐죠. 지금 저는 기로에 서 있어요. ‘언제 가장 행복한가?’를 탐구할 시간이 온 거죠. 하나를 선택한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다음 방향이 달라지겠죠.
10. 바라는 수식어는요?
이자람 : 한글로는 못 찾았는데 표현하면 ‘창작자’가 가장 가깝고, 영어로는 ‘아티스트(Artist)’가 가까워요. 무언가를 계속 창조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10. 오는 11월 5일 ‘서편제’를 마친 뒤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자람 : 올해는 제 작업을 안 하고 쉬는 해였어요. 내년엔 국립창극단에서 올리는 공연의 대본을 쓸 거예요. 1년 만의 대본 작업이 되겠군요. 그리고 밴드의 2집이 나올겁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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