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매주 1회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명으로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영화에서 역사 문제를 다루는 것만큼 조심스러운 일은 없다. 영화의 허구적인 스토리가 실제 사건과 달라서 역사 왜곡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의 사건을 다루는 영화는 더욱 그렇다. 자칫하면 국민들의 공분을 살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잇달아 나오는 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 때문이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일제 강점기 위안부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룬다. 모티브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미국 의회 증언이었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김군자 할머니는 2007년 미국 의회 공개청문회에서 증언했다. 이후 미 하원은 일본군 위안부 사죄 요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영화는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를 기존의 영화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그리고 있다. 아픔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던 이전의 역사물과 달리 희극적인 연출 방법을 사용해 간접적으로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재래시장에서 수선집을 운영하는 괴짜 할머니 옥분(나문희)은 젊은 구청공무원 민재(이제훈)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조른다. 처음에는 미국으로 입양된 남동생과 대화를 하기 위해 영어를 배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옥분은 영어를 배운 뒤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하며 큰일을 해낸다.
영화의 구성도 뛰어나다. 김현석 감독은 뜻밖의 반전으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8000여 건의 민원을 넣으면서 구청에서 ‘도깨비 할매’로 알려진 옥분과 원칙주의자인 9급 공무원 민재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중반부터는 반전을 통해 감동을 폭발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옥분의 아픈 삶의 여정을 차분히 따라가던 관객들이 마지막에서 같은 위안부였던 정심(손숙)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큰 감동을 받도록 연출했다.
연기파 배우 나문희의 연기 또한 빛을 발했다. 올해로 76세인 나문희는 연륜과 경륜에 맞게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그가 백악관에서 했던 연설은 감동적이다. 차분하면서도 박력 있는 연설은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실제 영어 선생님이었던 남편과 미국에서 살고 있는 둘째 딸 덕분에 장문의 영어 대사를 능숙하게 소화해낼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동네사람들로 출연한 염혜란, 이상희, 성유빈은 물론 구청 직원인 박철민, 정연주, 이지훈까지 힘을 보탠다. 세대를 아우르는 개성 강한 연기파 배우들과 영화 ‘쎄시봉’을 연출한 김현석 감독 특유의 유머와 감동 코드가 잘 맞아 떨어졌다.
‘아이 캔 스피크’는 상업영화에서 민감한 역사문제를 어떻게 풀어내야하는 좋은 본보기를 제시했다. 아픔과 고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에게 큰 감동과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최근 광주 민주화 운동을 그린 ‘택시운전사’ 도 그랬다. ‘아이 캔 스피크’는 한국영화의 연출 기법을 한 단계 끌어올려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큰 울림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양경미(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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