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 출연한 배우 이순재(왼쪽), 정영숙 / 사진제공=극단 사조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 출연한 배우 이순재(왼쪽), 정영숙 / 사진제공=극단 사조
화려하지 않아도 은은한 향이 돋보이는 들꽃처럼, 노(老) 부부의 하루가 담담하게 흐른다. 아내의 기억이 하나둘 지워지고 지나치게 우직했던 남편도 어느새 쇠약해져 일상마저 버겁다. 노부부는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하루 또 하루를 버티고 견딘다.

연극 ‘사랑해요 당신'(연출 이재성)이 지난달 29일부터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다시 막을 올렸다. 지난 4월에 이은 앙코르 공연이다. 작품이 내내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전하는 만큼 추석을 맞아 가족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뚝뚝한 남편 한상우(이순재·장용)에게 계속 “여행 가자”고 조르는 아내 주윤애(정영숙·오미연). 평범한 일상으로 시작된 극은 아내가 치매 진단을 받은 이후부터 달라진다.

연극 ‘사랑해요 당신’ 한 장면 / 사진제공=극단 사조
연극 ‘사랑해요 당신’ 한 장면 / 사진제공=극단 사조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서 한상우 역을 맡은 배우 이순재 / 사진제공=극단 사조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서 한상우 역을 맡은 배우 이순재 / 사진제공=극단 사조
1막이 단조로운 하루를 보내는 아내 중심으로 흘러간다면, 2막은 상태가 악화된 아내의 애처로운 모습과 그 옆에서 서서히 작아지는 남편을 조명한다. 무대는 주로 거실과 부엌을 오가며 대화하는 남편과 아내의 모습을 잘 비추도록 꾸몄다.

무대는 군더더기를 빼고 단순하게 구성했지만,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다. 떨리는 손짓 하나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노배우들의 눈빛과 목소리는 길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극적인 상황 연출, 격한 감정 표현은 없지만 가슴을 파고들 수 있는 건 한상우와 주윤애를 연기하는 네 배우가 있기에 가능했다.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윤애의 시선, 허리를 감싸 쥐며 가늘게 한숨을 내쉬는 상우의 소리는 극장 전체를 울리기에 충분하다.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 출연한 배우 오미연(왼쪽), 장용 / 사진제공=극단 사조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 출연한 배우 오미연(왼쪽), 장용 / 사진제공=극단 사조
아내와 남편의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의 반복이 이어지는데도 지루하지 않은 건 관객을 향한 두 사람의 방백 덕분이다. 그때그때 상황과 감정을 관객에게 털어놓는데, 그 한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자꾸 깜빡 잊어버리는 아내가 “여러분은 이런 기분을 아실는지요? 아침마다 해가 뜨는 게 무섭습니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눈시울을 붉히는 남편이 지난날을 후회하는 대목에선 어김없이 울음이 터진다.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나 혹은 내 가족과 닮아 울림은 배가된다.

노부부의 하루는 묵직하게 다가와 한동안 가슴속에 맴돈다. 오는 10월 29일까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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