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안나는 전쟁 중 사망한 약혼자 프란츠의 묘지에서 낯선 프랑스 청년 아드리앵을 발견한다. 아드리앵은 자신이 프란츠의 친구였고 둘은 파리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프란츠의 파리 유학 시절이 궁금한 안나와 프란츠의 부모는 아드리앵을 집으로 초대해서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이후 네 사람은 점차 가까워지고 아드리앵은 프란츠의 빈자리를 메우는 존재가 되어간다. 그런데 안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프란츠의 친구로서가 아니라 아드리앵만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그에 대한 감정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 한다.
‘프란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영화 대부분이 흑백 화면이라는 점이다. 이 영화에는 크게 5개의 시퀀스에서 컬러 화면이 등장한다. 매우 섬세하고 세련된 연출이 돋보이는 이 영화에서 몇 번 보이는 컬러화면은 의미심장하다.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 컬러로 촬영된 장면들은 거짓말, 착각, 죽음, 악몽을 재현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영화 중반까지 컬러로 보이는 장면들이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회고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현재와 과거,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 선명한 금을 긋는 대신 물감이 번지듯 두 층위가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만든 연출의 결과다. 오종 감독은 대립되는 두 명제의 경계를 허물기는 했지만 선택은 모호하지 않았다.
오종 감독은 아군과 적군이라는 뚜렷한 이분법을 만들어 내는 전쟁을 비판하면서 그것보다 상위에 용서와 사랑이라는 인간의 덕목을 놓고 있다. 거짓말, 살인, 배신처럼 어둡고 처참한 일들도 용서될 수 있고 사랑으로 구원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날것으로 풀어놓으면 유치하고 조악해지기 쉬운 주제를 설득력 있게 끌어가는 솜씨가 오종답다.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컬러로 전환되는 장면은 아드리앵이 프란츠와 보낸 과거를 회고하는 부분이다. 단조로운 흑백화면으로 이어지던 현재와 대조적으로 과거는 따뜻하고 화사한 색으로 빛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파티에서 흥겹게 춤을 추는 아드리앵과 프란츠는 행복해 보인다.
‘프란츠’는 1932년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내가 죽인 남자’를 리메이크 했다. ‘루비치 터치’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특유의 분위기를 가진 루비치의 고전영화가 오종의 손길과 숨결로 다른 옷을 입게 된다. 프랑스 남자에서 독일 처녀로 주인공이 바뀌고 결말도 달라졌다. 장면 전환이 참 유려한 ‘프란츠’의 대미는 마지막 장면이다. 변화무쌍했던 여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을 일단락짓는 적절한 열린 결말은 꽤 오래 뇌리에 남게 된다.
이현경(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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