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현지민 기자]
배우 소지섭은 그를 두고 “나보다 훨씬 작은 배우에게서 더 큰 무언가가 나온다”라고 했다. 영화 ‘군함도’에서 상대 배우로 호흡을 맞춘 이정현이다. 소지섭의 말대로 ‘군함도’ 속 이정현의 존재감은 거대하다. 일제강점기, 일본 군함도(하시마 섬)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이야기 안에서 이정현은 중국에 이어 일본에 오게 된 위안부 피해자 말년 역을 열연했다.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깡마른 체구에도 누구보다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인물이다.
이정현은 말년을 연기하며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요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국내외 위안부 관련 다큐멘터리를 섭렵했고 독하게 살을 뺐고 사투리를 공부했다. 입에 착 달라붙는 욕설을 사용하기 위해 ‘욕 강습’까지 받았단다. 그는 참으로 처절하게 몰입했고, 군함도의 ‘말년’이 됐다.
10. 연기하기 조심스러운 위안부 피해자 역을 맡았다.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이정현: 그간 많은 작품들이 위안부 피해자를 그렸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슬퍼하는 모습이 많았다. ‘군함도’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말년은 원더우먼 같았다. 함께 끌려온 여성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결국엔 총까지 들고 일본에 맞서 싸운다.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출연을 결정하고 나니 책임감이 뒤따랐다. 국내외 다큐멘터리를 다 섭렵했고 감독님이 굳이 주문하지 않았는데도 갈비뼈가 보일 만큼 살을 많이 뺐다.
10. 조선인 지주로 인해 위안부로 보내졌다고 고백하는 신이 기억에 남는다. 담담해서 슬펐다. 어떻게 연기했나?
이정현: 시나리오를 보면서 울었던 장면이다. 대본 리딩을 할 때도 슬프게 접근했다. 촬영 전 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북에 계신 위안부 할머니가 잔인하고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얘기하는데 담배를 피며 말을 툭툭 던지셨다. 오히려 더 가슴이 아팠다. 그런 모습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0. 사투리와 욕을 자연스럽게 써서 놀랐다. 어려운 점은?
이정현: 원래 말년은 서울말을 쓰는 설정이었다. 서울말로 대사를 하면 예뻐 보일 것 같아서 사투리를 쓰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준비를 하면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웃음) 사투리 토씨 하나라도 틀리면 촬영이 진행되지 않았다. 열심히 욕을 하는데도 감독님이 어색하다고 했다. 환쟁이 역의 윤경호 배우가 선생님이 돼 사투리와 욕을 가르쳐줬다. 그런데도 후시 녹음을 두 번이나 다시 했다. 한 번 녹음을 마친 후 다음 녹음을 준비하는 열흘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집에서도 사투리와 욕을 달고 살았다. 부모님이 놀라시더라. 사투리 연기는 다시는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0. 무거운 총을 들고 버거워하면서도 당당히 맞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촬영 뒷얘기는?
이정현: 5Kg의 총이라고 들었는데 체감하기론 훨씬 무거웠다. 총신도 길어서 휘청거리게 됐다. 하지만 그 장면에는 200여 명의 단역 배우들과 무술팀이 함께 했다. 내가 한 번 휘청거리면 모든 걸 다시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불안해하는 걸 알고 지섭 오빠가 옆에서 ‘지금 장전한다, 선(線) 조심하고 뒤로 가, 다시 장전’이라며 되새겨줬다. 그런 액션 신 촬영을 마친 후 숙소에 가서 보면 몸에 타박상이 꽤 있었다. 상처를 보면서 ‘내가 뭘 하긴 했구나’ 싶어서 안정됐다.(웃음)
10. 소희 역의 아역배우 김수안과 호흡도 좋았다. 김수안의 연기는 어떤가?
이정현: 3년 전 연상호 감독님과 단편영화제에서 심사를 한 적이 있다. ‘콩나물’이라는 영화를 통해 수안이를 봤는데 연기를 너무 잘했다. 당시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적극 밀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수안이의 팬이 됐다. 현장에서 수안이의 별명이 ‘수안슈퍼’였다. 젤리 같은 걸 들고 다니면서 나눠줬다. 촬영 말미에 손편지도 써줬다.
10. 처절했던 촬영장인 만큼 배우, 스태프들과의 우애도 돈독해졌을 것 같은데.
이정현: 내 촬영을 마친 이후에도 현장에 남아있던 게 처음이다. 함께 고생을 해서 그런지 가족 같은 마음이 생겼다. 촬영 3개월 후쯤 중국에서 공연 스케줄을 마치고 곧바로 촬영장에 갔는데 다들 피곤한 와중에도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놀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니 ‘와’가 흘러나왔고 자동차에서 부채까지 꺼내 춤을 췄다.
10. 연기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하다. 작품 선택의 기준은?
이정현: 내가 재미있게 촬영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30대가 되면서 여유가 생겼다. 돈이나 명예를 좇고자 했다면 중국에서 드라마만 찍고 상업영화만 찍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게 목표가 아니니 행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게 된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는 제작비가 6000만 원이었다. 이번 ‘군함도’는 220억이다. 두 작품을 촬영할 때 내 행복지수는 같다. 영화에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현장이라면 어디든 좋다. 1000만 원? 아니 재미있다면 500만 원 짜리 영화도 할 수 있다.
10. 그간 센 역할을 많이 보여줬다. 일상 연기에 대한 갈망은 없나?
이정현: 독특한 캐릭터가 재미있는 건 사실이지만 자연스러운 연기도 하고 싶다. 그래서 ‘스플릿’(2016)에 출연했다. 분장을 할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 촬영장에 가서 연기했다. 뭔가를 쏟아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니 재미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역할도 만나고 싶다.
10. 배우로서 지키고자 하는 신념은?
이정현: 책임감이다. 열다섯 살 때 ‘꽃잎’(1996)을 찍었다. 미친 소녀 역이었는데 내가 연기를 너무 못 하니 장선우 감독님이 대본을 던졌다. 숙소에서 한참을 울며 ‘어떻게 미친 연기를 하지’ 고민했다. 결국 진짜로 미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촬영 전부터 의상을 갈아입고 미친 사람처럼 현장을 돌아다녔다. 제작팀 언니가 돌아다니는 나를 끌고 가서 촬영을 했다. 나중엔 감독님이 ‘얘 촬영 끝나고도 이러면 어떡하지’ 걱정할 정도였다. 책임감이 있으니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
이정현은 말년을 연기하며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요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국내외 위안부 관련 다큐멘터리를 섭렵했고 독하게 살을 뺐고 사투리를 공부했다. 입에 착 달라붙는 욕설을 사용하기 위해 ‘욕 강습’까지 받았단다. 그는 참으로 처절하게 몰입했고, 군함도의 ‘말년’이 됐다.
10. 연기하기 조심스러운 위안부 피해자 역을 맡았다.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이정현: 그간 많은 작품들이 위안부 피해자를 그렸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슬퍼하는 모습이 많았다. ‘군함도’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말년은 원더우먼 같았다. 함께 끌려온 여성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결국엔 총까지 들고 일본에 맞서 싸운다.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출연을 결정하고 나니 책임감이 뒤따랐다. 국내외 다큐멘터리를 다 섭렵했고 감독님이 굳이 주문하지 않았는데도 갈비뼈가 보일 만큼 살을 많이 뺐다.
10. 조선인 지주로 인해 위안부로 보내졌다고 고백하는 신이 기억에 남는다. 담담해서 슬펐다. 어떻게 연기했나?
이정현: 시나리오를 보면서 울었던 장면이다. 대본 리딩을 할 때도 슬프게 접근했다. 촬영 전 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북에 계신 위안부 할머니가 잔인하고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얘기하는데 담배를 피며 말을 툭툭 던지셨다. 오히려 더 가슴이 아팠다. 그런 모습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0. 사투리와 욕을 자연스럽게 써서 놀랐다. 어려운 점은?
이정현: 원래 말년은 서울말을 쓰는 설정이었다. 서울말로 대사를 하면 예뻐 보일 것 같아서 사투리를 쓰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준비를 하면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웃음) 사투리 토씨 하나라도 틀리면 촬영이 진행되지 않았다. 열심히 욕을 하는데도 감독님이 어색하다고 했다. 환쟁이 역의 윤경호 배우가 선생님이 돼 사투리와 욕을 가르쳐줬다. 그런데도 후시 녹음을 두 번이나 다시 했다. 한 번 녹음을 마친 후 다음 녹음을 준비하는 열흘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집에서도 사투리와 욕을 달고 살았다. 부모님이 놀라시더라. 사투리 연기는 다시는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0. 무거운 총을 들고 버거워하면서도 당당히 맞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촬영 뒷얘기는?
이정현: 5Kg의 총이라고 들었는데 체감하기론 훨씬 무거웠다. 총신도 길어서 휘청거리게 됐다. 하지만 그 장면에는 200여 명의 단역 배우들과 무술팀이 함께 했다. 내가 한 번 휘청거리면 모든 걸 다시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불안해하는 걸 알고 지섭 오빠가 옆에서 ‘지금 장전한다, 선(線) 조심하고 뒤로 가, 다시 장전’이라며 되새겨줬다. 그런 액션 신 촬영을 마친 후 숙소에 가서 보면 몸에 타박상이 꽤 있었다. 상처를 보면서 ‘내가 뭘 하긴 했구나’ 싶어서 안정됐다.(웃음)
10. 소희 역의 아역배우 김수안과 호흡도 좋았다. 김수안의 연기는 어떤가?
이정현: 3년 전 연상호 감독님과 단편영화제에서 심사를 한 적이 있다. ‘콩나물’이라는 영화를 통해 수안이를 봤는데 연기를 너무 잘했다. 당시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적극 밀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수안이의 팬이 됐다. 현장에서 수안이의 별명이 ‘수안슈퍼’였다. 젤리 같은 걸 들고 다니면서 나눠줬다. 촬영 말미에 손편지도 써줬다.
10. 처절했던 촬영장인 만큼 배우, 스태프들과의 우애도 돈독해졌을 것 같은데.
이정현: 내 촬영을 마친 이후에도 현장에 남아있던 게 처음이다. 함께 고생을 해서 그런지 가족 같은 마음이 생겼다. 촬영 3개월 후쯤 중국에서 공연 스케줄을 마치고 곧바로 촬영장에 갔는데 다들 피곤한 와중에도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놀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니 ‘와’가 흘러나왔고 자동차에서 부채까지 꺼내 춤을 췄다.
10. 연기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하다. 작품 선택의 기준은?
이정현: 내가 재미있게 촬영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30대가 되면서 여유가 생겼다. 돈이나 명예를 좇고자 했다면 중국에서 드라마만 찍고 상업영화만 찍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게 목표가 아니니 행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게 된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는 제작비가 6000만 원이었다. 이번 ‘군함도’는 220억이다. 두 작품을 촬영할 때 내 행복지수는 같다. 영화에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현장이라면 어디든 좋다. 1000만 원? 아니 재미있다면 500만 원 짜리 영화도 할 수 있다.
10. 그간 센 역할을 많이 보여줬다. 일상 연기에 대한 갈망은 없나?
이정현: 독특한 캐릭터가 재미있는 건 사실이지만 자연스러운 연기도 하고 싶다. 그래서 ‘스플릿’(2016)에 출연했다. 분장을 할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 촬영장에 가서 연기했다. 뭔가를 쏟아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니 재미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역할도 만나고 싶다.
10. 배우로서 지키고자 하는 신념은?
이정현: 책임감이다. 열다섯 살 때 ‘꽃잎’(1996)을 찍었다. 미친 소녀 역이었는데 내가 연기를 너무 못 하니 장선우 감독님이 대본을 던졌다. 숙소에서 한참을 울며 ‘어떻게 미친 연기를 하지’ 고민했다. 결국 진짜로 미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촬영 전부터 의상을 갈아입고 미친 사람처럼 현장을 돌아다녔다. 제작팀 언니가 돌아다니는 나를 끌고 가서 촬영을 했다. 나중엔 감독님이 ‘얘 촬영 끝나고도 이러면 어떡하지’ 걱정할 정도였다. 책임감이 있으니 그렇게 할 수 있었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