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조현주 기자]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포스터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포스터
홍상수 감독이 “자전적 영화는 아니다”고 말할 때 고개를 갸우뚱했다.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감독 홍상수, 제작 영화제작사 전원사)는 유부남 영화감독 상원(문성근)과 불륜에 빠진 여배우 영희(김민희)에 대한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현재 아내와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홍상수 감독은 김민희와 “사랑하는 사이”라고 관계를 공식 인정했다. 영화에는 두 사람이 처한 처지와 상황처럼 보이는 대사들이 곳곳에 녹여져 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속 상원과 영희는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홍상수 감독의 19번째 장편 영화이자 김민희에게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여우주연상을 안긴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영희가 사랑과 갈등을 겪으면서 그 본질에 대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크게 독일 함부르크에서 지내는 영희와 그의 지인 지영(서영화)의 모습을 담은 1부와 영희가 강릉 여행을 하면서 지인들과 술자리를 하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상원과 만나는 2부로 나뉘어 구성됐다.

영희는 한국에서 유부남과의 만남이 주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다. 다 포기하고 길을 나섰다. 영희는 복잡한 인물이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절을 한다. “왜 그랬냐”고 묻는 지영에게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다짐하고 싶었어”라며 “내가 원하는 건 나답게 사는 거야. 흔들리지 않고 나답게 사는 거야”라고 말한다. 영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담담하다. “왜 헤어졌냐”는 질문에 “내가 감당이 안 되나봐”, “그 사람 자식도 있거든. 자식이 무서운 거 같아, 좀 구질구질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나 진짜 많이 놀았어”, “잘생긴 남자들 다 얼굴 값해”, “나 이제 얼굴 안 봐”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은 뒤 “그런데 그 사람 진짜 보고 싶네”, “그 사람도 나처럼 내 생각 할까?”라고 툭 진짜 속마음을 전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스틸
‘밤의 해변에서 혼자’ 스틸
영희가 강릉에 왔다. 홀로 영화를 봤다. 예술영화관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선배 천우(권해효)가 그를 아는 체 한다. 소문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영희를 카페로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영희는 지인들과 술자리를 갖는다. 함부르크에서와 달리 영희는 조금 격해졌다. “남자들, 다 병신 같다”고 말하거나 사랑에 대해서 “사랑이 어디 있나. 보이질 않는데. 가치 없는 것들 생각하기 싫다. 곱게 사그러들었으면 좋겠다. 다 자격 없다. 비겁하고 추하다. 다들 사랑 받을 자격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준희(송선미)는 그런 영희에게 “넌 아직도 사랑을 찾고 있구나”라고 위로한다. 영희가 웃는다. 상근과 만난 자리에서 영희는 한층 더 격앙된다. 그런 영희에게 상근은 안톤체홉의 ‘사랑에 관하여’ 속 한 구절을 읽어준다. “헤어질 때가 온 것입니다. 그 객실 안에서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우리 둘 다 자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았고, 그녀는 내 가슴에 몸을 맡겼습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라는 성근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영희는 자신의 마음을 달래본다.

김민희의 존재감은 단연 빛난다. 결코 단선적이지 않은,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영희를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공개 이후 김민희에 대한 쏟아지는 호평에 수긍이 갔다. 조용조용한 영희가 갑자기 정색하고 불 같이 화를 내는 모습 역시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다만 영화는 현실과 픽션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어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자전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 강조했던 홍상수 감독이지만 영화 속에는 불륜을 저지른 그들에 대한 세상의 시선과 그들의 항변이 담겨 있다. 천우는 상근과 영희를 나무라는 사람들을 향해 “자기들은 잔인한 짓을 다 하면서 왜 그렇게 난리를 치냐”라고 화를 낸다. 지영은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 뒤에 “필요해서 산 거지, 원해서 산 건 아니다”고 오히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수 없이 많은 장면들이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본질, 진짜를 묻는 홍상수 감독의 메시지는 와 닿는다. 그는 “가짜로 하는 건 다 없애야 돼”라고 영희를 통해 말한다. 지금 김민희와 진짜 사랑을 하고 있다는 홍상수 감독의 예술을 대중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조현주 기자 jhjdh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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