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이승원 / 사진제공=㈜아이엠컬처
이승원 / 사진제공=㈜아이엠컬처
2007년 데뷔한 배우 이승원은 영화에 푹 빠져 연기를 시작했다. 매 순간 쉽지 않았고 지금도 어렵지만, 여전히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그때는 상상도 못한, 대극장과 소극장을 넘나들며 연기하고 노래하고, 또 춤까지 추는 배우로 산지 10년째다. 마냥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하기엔, 이제 그 의미가 무겁다. 잘 버텨온 덕분에 지난해에는 쉼 없이 무대에 올랐다. 1000여 명의 눈이 쏠리는 순간 버겁기도 하고, 혼란스러운 때도 있지만 그럴수록 캐릭터에 집중하며 소중한 공간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이겨냈다.

다른 이의 감정을 느끼고 그들의 삶을 살며 보낸 10년. 알 것도 같고, 또 모를 것도 같은 연기 인생이지만 시도하고 도전하며 처음처럼 묵묵히 걸어나갈 생각이다. 2017년의 포문을 열며 연극 ‘벙커 트릴로지'(연출 김태형)를 만났고, 이름도 문태유로 바꿨다. 지금까지는 이승원, 올해는 문태유로 다시 태어난다.


10. 날이 굉장히 추워졌다. 쉽지 않은 공연을 이어가고 있으니, 자기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겠다.

이승원 : 감기에 걸리면 안 되니까, 예방을 하려고 미리 약을 먹는 식이다. 지난해 여름부터 사실 쉬는 날이 없어서,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약을 먹고 있다.

10. ‘벙커 트릴로지’의 공연으로 한창 바쁠 테다.
이승원 : 뮤지컬 ‘스위니 토드’가 끝나기 전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의 첫 공연을 올렸고, 다음 날부터 ‘벙커 트릴로지’의 연습을 시작했다. ‘벙커 트릴로지’를 올리고 나니, 뮤지컬 ‘로기수’의 지방 공연이 시작됐다. 탭댄스도 8개월 정도 쉬다가 하는 것이라 그 연습도 시작했고, 지난해 여름부터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묘한 기분이다.

10. 빠듯한 일정이라는 걸 어느 정도 알았을 텐데,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벙커 트릴로지’만의 매력이 있었나.
이승원 : 사실 호흡을 맞춘 적 있는 제작사였고, 작업 방식이 좋았다. 물론 모든 공연이 그렇지만, 더욱 동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군다나 지난해 ‘카포네 트릴로지’를 봤고 작품에 매력을 느낀 차에 제안을 주신 거다.

10. 결정 후, 연습을 시작하고는 ‘아차’ 싶었을 것 같은데.(웃음)
이승원 : ‘아차’는 아니고, 아쉬움은 있었다. 이 작품에만 매달릴 수 있을 때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벙커 트릴로지’만 생각할 수 있었다면, 다양한 걸 찾고 좀 더 깊게 파고들 수 있지 않았을까.

10. 관객과의 거리가 굉장히 좁은 연극으로도 유명하다.
이승원 : 첫 공연의 첫 장면에서만 관객과의 거리에 대한 위화감과 압박을 느꼈다. 이후부터는 극중 인물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어 공연장 규모에 대한 부담은 사라졌다. 뮤지컬 ‘오케피’를 대극장에서 하고, ‘로기수’는 또 300석 규모의 공연장이었다. 이후 또 ‘스위니 토드’로 대극장, ‘블랙레리포핀스’로 중극장을 옮겨다녔다. 무대 변화에 따른 적응은 이미 연습이 됐다. 그래서인지, ‘벙커 트릴로지’도 금세 적응했다.

이승원 / 사진제공=㈜아이엠컬처
이승원 / 사진제공=㈜아이엠컬처

10. 대극장 중극장, 소극장을 넘나들며 공연 중이다. 배우로서 관객이 두려워지는 것만큼 힘든 건 없을텐데, 쉼 없이 달려온 만큼 멈추게 된 순간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승원 : 그 순간은 정말 힘들다. 다만 공간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대극장은 대극장대로, 1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나를 보는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실수를 하거나 극중 캐릭터로 존재하지 않고 이승원으로서 혼란에 빠졌을 때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다. 종종 그럴 때가 있는데, 최대한 역할에 집중하려고 한다. 아무래도 무대 경험이 쌓이다 보니, 그 횟수는 많이 줄고 있는 것 같다. 무서움보다 즐긴다고 할까, 마냥 관객을 무서워만 한다고 해서 잘 되는 건 아니더라. 무대를 소중히 여기고 신성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땀 흘려야 하는 건 맞지만, 공연이 시작됐을 때는 즐길 줄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사실 관객들도 공연 보러 올 때, 누가 실수하나 보러 오는 건 아니지 않나. 배우는 긴장을 풀고 좀더 극에 집중해서 에너지를 충분히 보여드려야 한다. 관객의 시선을 즐기고, 말 그대로 같이 만들어가는 파트너처럼, 그렇게 느끼려고 노력한다.

10. 어느덧 공연 무대에 오른지 10년째다. 스스로도 대견할 것 같다.
이승원 : 잘 버텨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10년이 지났는데 배우로 행위 하며 굶지 않고 있구나.(웃음) 좋아서 시작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버틴다는 게 아니라 이제는 해야만 하는 것 같다. 어떨 때는 연기가 정말 싫을 때도 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드니까. 매일을 수백, 수십 명 앞에 선다는 게 피로할 때가 있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일은 ‘멍 때리기’이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무(無)인 상태. 10년을 해오며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다. 잘해서 버틴 게 아니라,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10. 터닝 포인트가 있었을까.
이승원 : 2011년과 2012년, 가장 힘들었다. 당시 신예 배우들을 육성하자는 취지의 워크숍이 열렸는데, 공연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 모여 공연을 올리는 거였다. 한 문화재단에서 기획해 이뤄졌고, 당시 나는 원미솔 음악감독의 추천을 받아 참가하게 됐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만두려고 할 때 손을 잡아 주신 거다.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

10. 선배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포기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기에, 후배들에게 하고픈 이야기도 있겠다.
이승원 :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준다. 사실 처음 공연을 시작했을 때, 키와 목소리, 외모에 어울리는 하나의 캐릭터를 파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일종의 통통 튀는 역할을 말했는데, 사실 성향적으로는 맞지 않는다. 진지하고, 필요 없을 정도로 생각이 많은 편인데가 춤 실력도 뛰어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고집을 피웠다. 그대로 있어보자 하고. 물론 고민은 했다. 왜소해 보인다는 말에 근육을 키워볼까도 했지만, 오히려 더 평범해지는 것 같았다. 쉬는 날이 늘어나니, 이 길이 아닌가 보다 싶기도 했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득이 됐다. 지금 하고 있는 ‘벙커 트릴로지’의 가웨인부터 전작들의 캐릭터도 비정상적인 느낌의 코드를 갖고 있다. 어느 누구도 데뷔 당시에는 이 같은 캐릭터를 해보라고 하지 않았지만, 분명 내 안에 하나의 재료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이야기해줄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자신만의 재료를 찾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물론 나 역시도 지금 배워가는 중이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고 발전시켜야 하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이승원 / 사진제공=㈜아이엠컬처
이승원 / 사진제공=㈜아이엠컬처

10. 처음과 달리, 작품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졌겠다.

이승원 : 매일을 다시 느껴보려고 하고, 접근하려고 한다. 연습실에서 어떤 느낌이라는 걸 정했다고 해서 계속 갈 수 있는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순간 달라지는 게 공연의 묘미, 또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첫공과 막공이 늘 같을 수가 없다. 자잘한 애드리브나 호흡에서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무대에서 공연을 할 때 집중해서 인물로 살아보면, 감정의 해석이 조금씩 바뀌기 마련이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이 얼마 안 됐다. 연습에서 최고를 찾으면 공연 내내 재연을 하는 것이 나의 연기법이었다. 무대에서의 즉흥적인 충동을 믿지 않았다. 분명 연습 때 최고의 무언가를 찾았는데, 그렇다면 연습한 이유가 없지 않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10년을 반으로 나눴을 때 초반이 그랬다면, 후반은 달라졌다. ‘드라큘라’를 기점으로 많이 바뀌었다. 무대에서 그 인물로 살아야 하고 대사를 하고, 상대의 눈빛을 보고 연기를 한다. 매일 에너지가 다르고, 목소리와 느낌이 다르다는 걸 공연을 해보니 알겠더라. 큰 약속만 두고, 인물로 살아보자란 생각을 했다. 사실 뭐가 정답인지는 모른다. 해보니까 후자쪽이 좋은 것 뿐이다. 그게 보는 분들도 살아있다고 느낄 것 같다. 하지만 또 모른다. 이후 생각이 달라질지, 정답은 없는 거니까.

10. 연기자로서 중심을 잘 잡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도 분명 있을 테고.
이승원 : 배우로, 또 예술가로 관객에게 최대한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자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관객들이 어떻게 느낄지는 자유에 맡긴다. 물론 최대한 진실하면서 말이다. 분명한 건, 자신만의 가치관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벙커 트릴로지’의 가웨인도 진심으로 생각해보려고 한다. 극적인 요소가 떨어질지라도 진심으로 믿어보려 하는 거다. 이 가치관이 사실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장담은 못 한다. 우선 현재는 능력이 안되기 때문에 어떤 장면에선, 선배님들이 보실 때 아쉬운 부분도 있을 거다. 동료 배우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고, 같은 역을 맡은 배우에게 자극도 받는다. 기본적으로 아직 미완성이고 부족하다는 걸 완벽하게 인정하고 인지하기 때문에 계속 배우려고 한다. 고집은 없는 편이다. 무조건 남에 눈을 믿는다. ‘거기서 그건 아니다’라고 하면 또 다른 진심을 찾는 식이다. 상충된다고 해서 싸우지 않는다. 또 다른 진심을 찾아보면 되고, 다른 가능성을 열면 되는 거다.

10. 근래 정신적으로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 역할을 연이어 했다. 스스로 혼란스럽기도 했을 것 같다.
이승원 : 자주 쓰는 비유인데, 어깨를 많이 쓰는 야구 선수들이 어깨 탈골에 자주 걸리는 것처럼, 또 축구 선수들이 십자인대 파열과 같은 부상을 입는 것처럼 많이 써서 특정 부위가 튼튼하고 또 자주 사용해서 탈이 오는 건 맞는 거다. 어쩌면 숙명 같은 건데, 배우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한 감성을 가져서 배우가 됐다면, 부상이 오기 마련이다. 순간적으로 겁이 날 때도 있고, 묘한 감정에 휩싸일 때도 있다. 그래서 잘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연기라는 행위를 통해 느낀 허함을 완벽한 휴식을 통해 채워야 하는 것 같다.

10. 2017년의 시작을 ‘벙커 트릴로지’로 열었다. 올해의 계획이 궁금하다.
이승원 : 사실 ‘벙커 트릴로지’까지 이승원이란 이름으로 활동한다. 문태유로 개명했다. 지난해 연말쯤 이름에 대해 생각했고, 바꿔볼까 고민하다 작명소에 갔다. 혼자 수만 가지 조합을 떠올리기도 했고, 추천도 받았지만 뭔가 부족했다. 작명소에서 ‘이거다!’하면 더 쉽겠다고 생각해서 받았고, 그게 ‘문태유’이다. 사실 아직 쑥스럽고 민망하고 적응도 쉽지 않다(웃음). 관객을 만날 때, 조금 더 좋은 방향을 찾으려는 마음에서 바꾼 것이다.

올해는 소속사도 생겼고, 지난해 감사하게도 작품을 많이 하며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났다. ‘벙커 트릴로지’ 이후 오는 3월, 연극 ‘나쁜자석’이란 또 하나의 작품을 할 계획이다. 기회가 되면 연극과 영상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 좋은 쪽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노래 레슨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목표다. 또, 늘 유연한 배우로 무대에 오르고 싶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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