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현지민 기자]
배우 김남길 / 사진제공=NEW
배우 김남길 / 사진제공=NEW
“아이 윌 비 백”을 외치며 용광로 속으로 사라지는 터미네이터는 없었다. ‘판도라’ 속 재혁은 눈앞에 펼쳐진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고, 지켜야할 사람을 생각하며 겨우 힘을 냈다. 그럼에도 그는 무서움과 억울함에 오열했다.

김남길은 현실적이어서 더 가슴 아픈 캐릭터를 누구보다 잘 소화하고 싶었다. 재난 현장을 방불케 하는 촬영장에서 누구보다 열정을 쏟았던 이유다. 피폭 분장 없는 말끔한 모습의 김남길을 만났다.

10. 살이 많이 빠졌다.
김남길: ‘판도라’에서는 캐릭터를 위해서 일부로 살을 쪘었다. 이전엔 도시적이고 나쁜 남자 이미지를 고수해 항상 날렵했다. 배우에게 확고한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부작용이 있더라. 이번 작품을 통해 경상도 남자의 츤데레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다. 게다가 막내아들 캐릭터니 수더분한 모습을 완성하고 싶어 살을 찌운 거다. 촬영 내내 거의 씻지도 않았다. 물론 오늘은 양치질도 하고 세수도 했다.

10. 고수하던 이미지를 벗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김남길: 공익 이후 정체기가 왔다. 연기가 적성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 배우를 그만두면 뭘 먹고살지 고민도 하게 됐다. 생각해보니 주변에서 나를 너무 강하게만 보더라. 힘을 빼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10. 변신을 감행할 만큼 김남길이 판도라에 끌렸던 이유가 있나?
김남길: 시나리오를 보는 데, 엔딩으로 갈수록 욕심나는 장면이 많았다. 감독님이 ‘기존 이미지를 벗고 편한 네 모습을 보여주자’고 제안해 흔들리기도 했다.

10. 욕심났던 장면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김남길: 많은 장면이 있는데, 특히 엔딩 장면이 좋았다. 재난영화 속 주인공이지만 할리우드의 히어로 같지 않은 현실적인 캐릭터가 좋았다. 무섭고 처절한 상황 속에서 어린애처럼 엄마를 부르며 우는 모습을 잘 연기하고 싶었다.

10. 그렇게 재혁을 만났다. 어떻게 분석을 했나?
김남길: 외국 히어로 물에서는 죽으러 가더라도 엄지를 세우고 윙크를 한다. 실제로 죽으러 가는 상황에서 쿨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현실적인 재난영화를 만들고 싶어 재혁의 한국적 정서에 집중했다.

10. 사투리 연기가 눈에 띄었다.
김남길: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 경상도 사투리를 했는데, 현장의 경상도 출신 스태프들도 서로의 악센트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말이 많았다. 사투리를 쓸 때마다 고개가 먼저 움직여 굉장히 부자연스러웠다. 감독님께 서울문화가 좋아 사투리를 쓰지 않는 캐릭터로 바꾸면 어떻겠냐고 제안까지 했었다. 결국 사투리보다는 정서를 전달하는 것에 목표를 두기로 했다. 6개월 쯤 지났는데 사적인 자리에서 한 선배가 경상도 출신이냐고 물어보시더라. 영화가 다 끝나니 입에 붙었다.

10. 체력적으로도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김남길: 원자력 발전소에 들어갈 때 입는 옷이 폐쇄공포증을 일으킨다. 공기가 안통하고 답답하다. 혼자 입을 수도, 벗을 수도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른 적도 있다. 그런데 선배들은 무거운 산소통까지 다 매고 묵묵하게 연기를 하더라. 힘들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10. 배우들과 함께 고생해 현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겠다.
김남길: 재난이었다. 현장 분위기가 재밌고 즐겁다는 말은 거짓말이다.(웃음) 긴박한 재난 상황을 그려야 하니 고성이 난무했고 정신이 없었다. 소리도 잘 안 들리니 모두 목소리를 높였다. ‘이쪽으로 이동해라’라는 말도 화를 내는 것처럼 들렸다. 물론 배우들과의 사이는 돈독해졌다.

10. 열심히 준비한 작품이다. 흥행에 대한 부담은?
김남길: 내려놨다. 우리나라는 영화의 흥행 기준을 ‘1000만 관객’으로 따진다. 그러니 작은 영화는 더더욱 제작이 힘들고 소재의 다양성도 없어진다. 흥행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 영화보다 시국이 먼저인 것이 당연하다. 단지 ‘판도라’를 본 사람들이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

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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