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캐스커
캐스커
지난달 23일 발매된 캐스커의 7집 ‘그라운드 파트 원(ground part.1)’은 캐스커의 전작들을 곱씹는 계기가 됐다. 캐스커의 음악이 전에도 이랬었나. 새로웠고 신선했다. 이준오는 “우리가 그동안 타이틀곡을 잘못 골랐다”며 웃었지만, 무언가 다른 결이 느껴졌다.

하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이질감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모든 트랙들은 자연스러웠다. 말하자면 캐스커는 어떤 방향으로든 청자를 이끌고 가는 묘한 힘을 갖고 있었다.

Q. 오랜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융진 : 3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그만큼 바쁘게 지냈다. 준오 오빠는 영화 음악을 했는데, 2013년부터 올해까지 벌써 네 작품이나 했더라. 여행 갔다 와서 책(‘세상의 모든 고독 아이슬란드’)도 내고. 그러다보니 팀은 잠깐 물러났다가 지금 다시 시작하게 됐다. 일부러 쉰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렀다.

Q. 준오는 솔로 앨범이나 영화 음악 작업 등으로 심심찮게 소식을 접했는데, 융진의 근황은 도통 알 수가 없더라.
융진 : 솔로 앨범 준비하던 게 있었는데 아직 완성되진 않았다. 광고 내레이션도 하고.

Q. 이번 앨범이 파트 원이면, 파트 투도 곧 나오는 건가?
융진 : 파트 원이 이제 나왔는걸. 하하.

Q. 프로젝트 성으로 파트를 나눈 게 아니었나?
이준오 : ‘그라운드’라는 앨범 콘셉트가 나쁘지 않아서 다음 앨범까지 확장하면 좋겠다는 의미로 파트를 나누게 됐다. 연달아 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Q. 앨범 콘셉트 역시 곡이 다 나온 다음에 툭 던지듯 고른다고 들었다.
이준오 : 앨범 콘셉트라는 게 없다. 항상 없었다. 콘셉트를 정해놓고 곡 작업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앨범 타이틀도 곡이 다 나온 다음에 정한다. 이번에도 곡을 다 모아놓고 몇 가지 단어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다가 ‘그라운드’가 나왔다. ‘텐더’도 그랬다. 곡을 다 틀어놓고 듣다가, ‘어? 이거 텐더의 느낌인데’ 해서 타이틀을 정했지.

Q. 파트 투는 작업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그라운드’라는 콘셉트가 미리 정해진 상태니.
이준오 :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여행가서 써온 곡들이 더 있는데, 비슷한 컬러로 작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앨범 타이틀을 또 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하하. 이름 짓는 게 너무 싫다. 힘들어.

Q. 그럼 아예 타이틀을 ‘7집’이라고 해버리는 방법도 있을 텐데. 그것 역시 별론가 보다.
융진 : 우리가 벌써 7집이더라. 7집…. 괜히 나이만 들어 보이고(웃음).
이준오 : 7집까지 나오는 팀이 많지 않아서, 부담스럽기도 하다.

Q. 두 사람은 세련된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비주얼 작업에도 신경을 많이 쓸 것 같은 느낌이다.
융진 : 예전에는 뮤직비디오 촬영을 할 때에도 아이디어를 많이 내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맡겼다.
이준오 : 외부작업을 하면서 느낀 건데, 단지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전문가들이 감 놔라 배 놔라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뭘 해도 전문가들이 훨씬 잘하는 게 정상이니, 믿고 맡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인 느낌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다 전문가의 손에 넘겼다.

Q. 아트 디렉터 이욱영과는 6집부터 함께 작업했다. 호흡은 괜찮나?
이준오 : 우리의 오랜 팬이었던 친구라서, 우리 음악이나 생각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내가 머릿속에 뭘 그리고 있는지 아는 친구 같다. 그래서 더 터치를 안 하고.

캐스커
캐스커


Q. 수록곡 얘기를 해보자. 인트로도 그렇고 ‘만월’도 그렇고, 기존에 알던 캐스커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EDM 같은 느낌도 들고.
융진 : 그런데 우리 앨범에 항상 다른 느낌의 곡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이준오 : 공연 때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사실 내가 EDM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류의 음악은 전혀 안 만들었다. 쫙 고조시켰다가 드랍이 나오고, 중간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이 빤한 전개의 구성을 우리가 하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에서 해본 게 ‘만월’이다. 드랍을 크게 터뜨리지도 않고 의도적으로 밴드 사운드를 같이 넣은 게, 전형적인 EDM처럼 들리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있었다.

Q. 타이틀곡 ‘웃는 사람’ 역시 전작과 다르게 간 느낌이다. 가장 익숙한 느낌의 트랙은 ‘얼룩’이었거든.
융진 : 우리도 ‘얼룩’을 타이틀곡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회사 분들 의견은 그렇지 않더라.
이준오 : 타이틀곡을 우리 생각대로 정하자고 고집하는 편은 아니다. 사실을 ‘얼룩’을 만들 때 타이틀곡으로 쓸 만 한 곡이 없는 것 같았다. 거의 ‘자, 그럼 이제 타이틀곡을 만들어볼까?’라는 마음으로 쓴 건데(웃음), ‘웃는 사람’ 쪽에 표가 조금 더 많았다.

Q. 그래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듣게 될 곡이 타이틀곡이 될 텐데, 원하는 곡으로 고집하고 싶지 않았나?
융진 : 어차피 들을 사람은 전곡을 다 들으니까…
이준오 : 우리 음악을 많은 사람들이 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팬들은 앨범 전체를 다 들을 거고. 개인적으로는 타이틀곡을 어두운 곡으로 하고 싶었다. 사실 우리가 앨범을 내면 그 안에 밝은 음악은 1~2곡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런데 항상 가장 많이 알려지는 곡들이 밝고 샤방샤방한 노래다보니까, 우리가 그런 음악을 하는 팀인 줄 아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더라. 거기에 충격을 받아서, 타이틀곡은 어둡게 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앨범 작업을 쉬고 있을 때, 가끔 페스티벌을 하면서 느꼈던 것도 비슷하다. 페스티벌에서는 사람들에게 호응을 끌어낼 수 있는 선곡을 해야 한다는 묘한 강박이 있다. 지금까지 10년을 그렇게 해왔는데 갑자기 ‘왜 그래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우중충한 셋 리스트로 해봤다. 그랬더니 우리도 좋고 보는 사람도 편안해 보이더라. 어차피 신나는 팀은 우리 말고도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잘하는 걸 하기로 했다. ‘웃는 사람’이 타이틀이 된 건 그런 면에서는 다행인 것 같다.

Q. 나는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내가 그동안 캐스커를 띄엄띄엄 들었나 생각하게 됐다. ‘얼룩’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곡들이 다르게 느껴졌거든.
이준오 : 거봐. 역대 타이틀을 잘못 정했다니까.(일동 웃음) 6집 ‘여정’도 정말 많이 변화한 앨범이라고 생각했다. 만들면서 ‘6집은 4집과도 다르고 5집과도 다르고 그 어떤 앨범의 연장선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언두(Undo)’만 듣는 거다. 그러면 캐스커가 해왔던 음악의 연장선 밖에 안 되는 거고. 그게 참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엔 한 가지 톤을 가지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둘 다 밝은 성격의 사람들이 아닌데, 어떻게 하다 보니 밝은 음악들이 많이 알려졌던 거 같다. 이제 안 그럴까 싶다. 밝고 희망찬 노래를 하기에는 이제 우리 둘 다 나이도 있고. 이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야겠다. 공백동안 가장 많이 느꼈던 게 그거다. 예전에 융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하면 ‘넌 속 편하게 그런 말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라고 생각했는데(웃음), 이제는 둘 다 똑같이 하고 싶은 거 하자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앨범 만들 때 되게 재밌었다.

이준오
이준오


Q. ‘산’은 여름에 미리 공개됐던 곡이다. 아이슬란드 여행 당시 썼던 곡이지? 들으면서 정말 궁금했다. 어떤 풍경을 봤기에 이렇게 슬픈 곡을 썼을까.
이준오 : 이걸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하지. (잠시 생각) 아름답다, 추하다의 느낌이 아니라 매 순간이 처음 보는 무언가였다. 세상에 이런 게 있었구나. 짧지 않은 세월을 살면서 내가 보는 우주가 이만큼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구나. 그 쪽으로 여행가는 모든 사람들이 얘기하기를,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잖아. 굉장히 철학적이게 돼서 왔다.
융진 : 거기 가면 다 그렇게 된다더라. 다들 사색적으로 변한다고.

Q. 그곳의 자연이 너무나 거대해서?
이준오 : 그렇기도 하고…’산’을 만들 때가 여행 후반이었다. 좋잖아. 말도 안 되게 먼 곳으로 가서 매일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새로운 것을 접하고. 하지만 그 산은 내가 태어나기 몇 억 년 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거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내가 거기서 감동을 받아서 영감을 얻고 어쩌고저쩌고 해봐야 그 산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거지. 하루살이가 하나 왔다가는, 티도 안 나는 느낌. 나의 감상이 이렇게까지 무력하구나. 차를 타고 가다보면 산의 풍경이 리어 뷰로 점점 사라지는데, 그런데 사실은 내가 사라지는 거지 그 산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사람의 감정을 대입해보면, 우리가 막연히 누군가를 영원히 기다린다고 얘기하잖아. 그래봐야 몇 십 년 뿐이겠지만, 어쩌면 그렇게 있는 사랑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산처럼 기다리는.

Q. 이준오는 음악 작업을 할 때 엄청난 완벽주의자가 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산’과 인트로, 아웃트로는 아이슬란드에서 작업한 곡들이잖아. 좀 더 즉흥적인 상태가 됐을 것도 같은데.
이준오 : 확실히 그렇다. 그 세 곡의 공통점이 즉흥성이다. 물론 한국에서 후반 작업을 할 때에는 다시 집착이 생겼지만, 곡을 쓰는 느낌과 형식에 있어서 그 세 곡과 다른 곡들은 완전히 달랐다. 거기에서 만들어온 프로젝트 파일들을 서너 달 정도 안 열어봤다. 그대로 놔두고 있다가 3개월 정도 지나서 서울에 완전한 적응을 마치고 난 뒤에 열어보니까,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만들었던 곡 같았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들을 열면서 그 때의 나를 복기하게 되고. 이번 작업 내내 그 때의 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Q. ‘세상의 끝’이라는 노래는 제목이 상당히 비장하다. 가사를 보면 이별 노래 같은데, 이렇게 무거운 제목을 쓴 이유가 있나?
이준오 : 비장한가, ‘세상의 끝’이라는 말이? 그게 사실은 사랑이 끝나는 노래가 아니고, 이 팀이 끝나는 상황을 가정한 얘기다. 캐스커가 해체되는 이야기. 그 관점으로 가사를 보면 무슨 말인지 정확히 다 알 수 있을 거다.

Q. 그렇지 않아도, 앨범 발매 전 SNS에 비슷한 내용의 글을 올렸더라. 해체를 생각했던 이유엔, 아까 말했던 것처럼 밝은 음악으로 알려지는 것에 대한 괴리감 같은 것도 있었을까?
융진 : 그냥 오래했으니까. 벌써 캐스커를 한 지 10년이 넘었으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준오 : 쉬고 싶은 것도 있었고, 각자의 음악에 대한 생각을 더 해야 할 때라는 생각도 있었다. 캐스커를 그만 두고 각자의 음악을 하는 것도 전혀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한 게지. 지금은 각자의 건 각자의 것이고, 캐스커는 캐스커로 하면 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이 캐스커의 파트 투 같은 느낌이 있다. LP를 한 번 뒤집은 것 같은. 다시 열심히 해야지.

Q. 나를 다 써버린 것 같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건 캐스커라는 포맷 안에서의 이야기인가?
이준오 : 그런 것도 있었고, 몇 년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을 해서 작년엔 더 이상 뭔가를 만들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연료가 완전 0으로 떨어진 상태.
융진 : 그걸 아이슬란드에 가서 꽉 채워서 왔다.
이준오 : 채운 걸로 올해 또 해먹는 거지(웃음).

Q. 아이슬란드에서의 경험이 퍽 인상 깊었나 보다.
이준오 : 책을 내고 나서 아이슬란드 여행 경험자들과 만났는데, 서로 얘기하지 않아도 공유하게 되는 게 있다. 참전용사 향우회처럼(일동 웃음). 어떤 기분이었는지 말 안 해도 알게 되는 거다. 다른 어떤 여행지보다 굉장히 강렬한 곳이었다.

융진
융진


Q. 프로듀서인 이준오가 저 지경(?)이 돼 있는 동안, 파트너 융진은 어땠나? 조바심이 나진 않았나?
이준오 : 이융진에게 절대 없는 것. 조바심.
융진 : 나는 그냥 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내가 욕심내서 작업한다 해도, 그게 재밌게 될 것 같지도 않고. ‘때가 오면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Q. 지난 번 앨범에서는 융진도 작사/작곡에 참여했잖아. 그런데 이번 앨범에서는 전곡이 이준오의 작품이다.
융진 : 아까도 얘기했듯이 준오 오빠가 아이슬란드에 다녀온 뒤에 아이디어가 폭발했다(웃음). 그래서 나는 얼른 노래를 했지.
이준오 : 다녀와서 약간 두 달 정도는 완전히 패닉 상태가 됐다. 그러다 올 초에 다시 작업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앨범 발매 전 주까지 “으아아악”하면서 달린 것 같다. 숨 한 번 안 쉬고. 앨범 다 만들고, 책 내고, 영화 한 편 개봉하고, 지금 딱 멈춰선 거다. 융진이의 아이디어나 아이템을 솔로 앨범에서 빨리 했으면 좋겠어서 곡을 뺏고 싶지 않았다.

Q. ‘세상의 끝’ 설명 글에 “전자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의 기분들이 떠올랐다”고 했는데, 10년 전과 지금 어떻게 달라졌나?
융진 : 나는 똑같은 것 같다. 시간만 지난 것 같다.
이준오 : 전자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걸 얼마나 비슷하게 구현해내느냐가 실력이잖아. 예전에는 머릿속의 그림을 ‘그나마’ 가깝게 그리는 작업이었는데, 10년이 지나니 ‘실제’ 머릿속에 있는 것들에 거의 가깝게 구현할 수 있는 것 같다. 좋은 점이지. 나쁜 건…머릿속에 그림이 떠오르는 빈도가 적다. 같이 음악을 해온 친구들과 농담처럼 그런 얘기를 한다. 20대 중반에는 누가 쿡 찌르기만 해도 곡이 줄줄 나오고 눈물이 펑펑 나왔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그 땐 앨범이 발매되는 날 그 다음 앨범의 노래를 만들고 있었지. 이제는 옆에서 누가 쥐어흔들어야 한다(웃음).

Q. 캐스커의 파트 투, 그 시작이다. 만족스러운가?
준오 : 그렇다. 분량이든 뭐든 딱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Q. 그러면 이제 캐스커는 계속되는 거지?
캐스커 : 물론이지.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파스텔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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