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김도현
김도현
비 오는 날, 빗소리를 뚫고 나오는 차의 경적소리가 듣기 싫어 이어폰을 꽂았다. 순간, 숱하게 봐온 풍경들이 귓가에 들리는 멜로디와 가사에 꼭 맞아떨어지는 뮤직비디오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다. 이게 바로 노래, 음악이 갖고 있는 힘이다. 지긋지긋한, 혹은 몹시 지루한 일상을 일순 특별하게 만드는.

가수 김도현이 이름을 바꾼, 모든 걸 내려놓고 고향으로 갔다가 다시 온 이유도 모두 음악의 ‘힘’ 때문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하는, 음악이 좋은 이유에 대한 김도현의 답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말이었다. “좋아하는 노래는 100번 이상 들을 수 있다. 그러면서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거다.” 노래는 그렇게 누가 듣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작품이다.

그는 열여덟에 통기타를 잡았고, 노래 부르는 재미를 알았다. 2005년에는 ‘천우’라는 이름으로 솔로 음반도 냈다. 이후 두 차례, J-김재섭으로 신곡을 발표했다. 드라마 OST의 가창자로도 활약하며 ‘노래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런 그가 ‘김도현’으로 이름을 바꾸고, 첫 번째 이야기 ‘희망의 길을 묻다’로 제2막을 시작한다.

Q. 노래를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김도현 :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했어요. 노래로 먹고살 수 있겠구나 싶었죠(웃음). 고등학교 때 밴드를 했고, 교회에서 반주도 했으니까요. 스물두 살에 한 기획사에 들어가 연습생으로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기회였던 것 같아요.

Q. 그만둔 이유가 있었나요? 당시 스물둘이었으면, 정말 좋은 기회였을 것 같은데요.
김도현 : 집안 사정도 그랬고,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향이 부산인데, 그렇게 다시 내려가서 4년이 흘렀죠. 안 좋은 일들은 다 함께 온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때가 그랬던 것 같아요. 근데 스물여덟 살에 다시 서울로 왔죠. 노래가 하고 싶어서. 나름대로 또 기획사에 들어갔어요. 카페촌에서도 노래했고요.

Q. 연고도 없는데 서울에 올라가서 기획사에 들어가고, 카페에서 노래도 부르고. 노래에는 정말 자신이 있었나 봐요(웃음).
김도현 : 그렇죠(웃음). 무작정 ‘노래하고 싶다’고 찾아갔어요. 부딪혀 보는 거죠 뭐(웃음).

Q. 그래도 쉬운 길은 아니라서 힘들기도 했을 것 같아요.
김도현 : 나이는 먹고, 조급증이 났죠. 개인이 할 수 있는 부분이 한정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방황도 했고요. 음악을 확실히 그만두지도, 그렇다고 계속 끌고 나가지도 못 했던 시기였죠. 그러다, 연락처도 바꾸고 주위에 말없이 조용히 고향에 내려갔어요. 힘든 것이 몰아쳐 오더라고요.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하고요. 음악을 놓겠다고 했을 땐,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라이브 카페를 열었는데, 그 안에 계곡이 보이는 쪽에 방을 만들어서 시간을 보냈죠.
김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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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많은 걸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겠네요.
김도현 : 그 시간은 굉장히 의미 있었어요. 지금껏 노래를 잘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하려고만 했지, 듣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는 건 없었거든요. 제 자신에 대해, 인생에 대해서 오랫동안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때 종이를 펼쳐놓고 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적어보기도 했어요. 해보시면 아실 거예요, 어느 순간 딱 막힐 때가 있어요. 정작 나에게 이렇게 무관심했나 싶어지죠.

Q. 심오해요.
김도현 :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선택과 책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봤어요. 내가 음악을 선택했으면, 책임을 져야겠다고.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렇게 마음을 먹고, 지금의 소속사 이성권 대표님과 음악으로 연이 닿았습니다. 만난 건 처음 서울에 올라갔을 때였지만, 저의 가능성을 믿어주셔서 손을 잡게 됐죠.

Q. 김도현에게 음악은 도저히 놓을 수가 없는 것이었네요. 뭔가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 하는 거라 전과는 확실히 마음가짐도 달라졌겠죠.
김도현 : 누군가의 성공 일화를 들어보면, 묘한 공통점이 있어요. 모두에게 절박함이 있죠. 또 자기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고요. 저도 음악을 누가 때려서 시킨 것도 아니고(웃음), 제가 좋아서 한 거잖아요. 전과는 많이 달라요. 조금은 여유가 생겼어요. 무대에 설 수 있다면, 노래를 할 수 있다면 그저 좋아요.

Q. 그렇게 탄생한 음반이라 더 의미가 깊을 것 같아요. ‘희망의 길을 묻다’라는 타이틀도 의미심장하고요.
김도현 : 음반의 준비는 대표님이 5, 6년 해온 거예요. 곡을 수집하고 또 맡는 가사를 찾으면서.

Q. ‘힘내라 친구야’ ‘웃어넘겨’ 등 수록곡이 모두 희망을 이야기하는 노래예요.
김도현 : 대표님께서 ‘웃어넘겨’를 처음 듣고 제작을 하려고 마음 먹으셨대요. 가사도 200번을 받고요(웃음). 타이틀곡 ‘힘내라 친구야’는 노래는 신나지만, 듣고 있으면 눈물이 나는, 굉장히 마음에 들고 애착 가는 곡이에요. 유해준 작곡가의 곡인데, 배울 점이 많은 분이죠. 대화를 하면서 음악을 만들어가는 게 즐거웠어요.

Q. ‘웃어넘겨’도 인상적이에요.
김도현 : ‘알고 썼나?’ 생각했을 정도로 내 이야기였어요. 많이 치이고 힘들었지만, ‘웃어넘겨라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다’라는 것이.

Q. 요즘에 가사에 집중할 수 있는 곡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웃어넘겨’는 제가 봐도 찡한 것이 있어요.
김도현 : 가사는 시잖아요. 대중들이 점점 그걸 원하는 것 같은데, 음악이 세분화되지 않으니까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곡에 희소성이 있었는데, 요즘은 유행을 좇기에 바쁘죠.
김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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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음반을 만들면서 예전 생각도 많이 났을 것 같아요.
김도현 : 마스터링 하는 날, 그게 음반 완성의 마지막이잖아요. 그래서 괜히 차려입고 갔어요. ‘웃어넘겨’를 듣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예전에는 내가 왜 음악을 해서 이렇게 힘들까라는 생각에 하기 싫었는데, 지나고 보니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면서 나이 든 가수가 이렇게 올라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Q. 앞으로 ‘음악’을 대하는 마음도 달라졌겠죠.
김도현 : 음악을 듣는 분들도 나이가 드는 것뿐이지, 감성이 늙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 음반으로 100%를 다 보여드렸다고는 못하지만, 80점 이상은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녹음에도 공을 많이 들였고요.

Q. 김도현이란 가수의 터닝포인트, 어쩌면 진짜 출발이네요.
김도현 : 노력 없이 변할 수는 없으니까요. 노력도 하고, 비우기도 하겠죠.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걸 대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나만의 상상에 빠져 음반을 내놨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진짜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원 없이 했으니까 또 도전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절박함도 있고요.

Q.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김도현 : 소극장에서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소리를 많이 질러도 목소리는 그대로예요. 성대는 타고났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공연에서 마음껏 노래 부르고 싶습니다. 고3 때 친구들이랑 서울 와서 강산에의 공연을 본 적 있어요. 그때의 기억이 또렷해서, 공연장에서 관객들과 호흡하면서 노래하고 싶습니다.

음악이 좋은 건, ‘이 노래 좋다’하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그 음악을 듣잖아요. 들으면서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죠. 누군가 제 노래를 들으면서 자기만의 영화를 완성했으면 좋겠습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
사진. 더하기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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