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윤종신 더 랍스터
윤종신 더 랍스터
윤종신의 스펙트럼은 넓다. ‘오래전 그날’의 속 깊은 남자도, ‘애니(Annie)’ 속 찌질한 남자도 모두 윤종신이다. 그런가 하면, ‘망고 쉐이크’에서는 “빨대속의 망고, 빨아봐요”와 같은 ‘병맛’ 가사를 묵직한 헤비메탈 사운드에 버무려내기도 했다. EDM 장르의 ‘상념’은 비슷할 발음의 욕설이 연상되는 재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랍스터(The Robster, 월간 윤종신 9월 호)’의 색깔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무려 일렉트로니카 장르. 3분 50초에 달하는 러닝타임동안 윤종신의 생목소리는 단 1초도 들을 수 없다. 대신 기계음이 덮인 목소리가 주구장창 이어진다. 가사는 어떤가. 절반 이상이 영어인데다가, 간간히 등장하는 한국어 가사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 보다는 텍스트마저도 사운드적인 장치로 사용하는 모양새다.

동명의 영화 ‘더 랍스터’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된 이 곡은 정석원이 멜로디를 만들고 윤종신이 가사를 썼다. 발매에 앞서 윤종신은 “영화 ‘더 랍스터’는 거의 모든 장면이 창의적이고 천재적”이라며 “독특하고 파격적인 설정을 한 영화에 모티브를 얻은 만큼, 그동안 월간 윤종신에서 보지 못했던 장르가 될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과연, 장르와 가사 모두 실험적이고 파격적이다.
더 랍스터 MV
더 랍스터 MV
이러한 시도는 곡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윤종신은 “룰을 지키지 않으면 처참하게 응징 당하는 영화 속 모습들이 다수의 의견을 ‘상식’으로 규정하고 다양성을 말살시키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닮았다”면서 가사의 키워드를 ‘블라인드(Blind, 눈이 먼)’로 설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같은 주제는 비단 가사 내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운드와 테마, 심지어 비주얼까지 노래는 온 몸으로 다양성을 외친다.

노래를 찬찬히 뜯어보면, 묘한 매력도 발견된다. 심플한 비트는 감각적이고 유려한 피아노 연주는 매혹적이다. 오토튠의 보컬은 차갑고 날카롭지만, 윤종신의 아날로그적인 감성도 곳곳에 엿보인다.

음원차트에서는 찾을 수 없는 노래다. 그렇다고 해서 프로모션을 활발하게 펼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꾸준히 시도를 하고, 누군가는 꾸준히 그 시도를 듣는다. 다양성을 지탱해주는 힘이다. 오토튠 입은 윤종신, 낯설지만 반갑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미스틱89, ‘더 랍스터’ MV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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