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음악에 빠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던 경험이 있는가? 노래가 종일 귓가에 맴돌고 입 밖으로 튀어나와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는가? 완벽하게 취향을 저격해 한 시도 뗄 수 없는 음악, 때문에 ‘일상 파괴’라는 죄목으로 지명 수배를 내리고 싶은 음악들이 있다.

당신의 일상 브레이커가 될 이 주의 음반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개리
개리


사건명 2002
용의자 개리
사건일자 2015.09.21
첫인상 2002년. 리쌍의 첫 앨범이 발매된 해다. 초심으로 돌아갔다는, 다소 진부할 수 있는 상징. 그러나 이건 ‘진짜배기’다. 음악적인 부족함과 갈망은 개리를 더욱 자극했고, 그는 스케줄이 빈 날마다 작업에 몰두했다. 박재범, 존박, 정인, 쿤타, 스컬 등 막강한 피처링진이 모든 트랙에 포진돼 있지만, 이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은 개리 그 자신이다.
추천트랙 ‘뚝방의 꿈’. 언제부턴가 래퍼들의 자기 고백은 온통 과시와 허영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모두가 “내가 최고”라 떠들어대지만 그 의미도, 근거도 알 수 없다. “온종일 음악을 틀 수 있는 작업실과 배고플 날 없는 지갑”을 가진 개리는, 그러나 으스대지 않는다. “내 손금에 성공의 선을 긋고 싶어 더 길게”라고도 하지만, 탐욕스럽지 않다. 오히려 곡 전반에 흐르는 기조는 쓸쓸함에 가깝다. “내 앞길을 막지 마”라는 개리의 일갈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다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서른여덟의 강개리는 이렇게 스스로를 돌아본다.
출몰지역 10월 9일부터 11일까지 경기도 과천시에서 열리는 ‘레츠런파크 뮤직페스티벌’에 그룹 리쌍으로 참가한다. 첫 날 공연 예정.

밤의피크닉
밤의피크닉


사건명 어지러진
용의자 밤의피크닉 (안치범, 정은영, 최현민, 황주연)
사건일자 2015.09.21
첫인상 밤의 피크닉. 낭만적인 이름이다. 일본 작가 온다 리쿠가 쓴 소설책과 동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멤버들은 책은 읽어보지도 않고 이름만 따왔단다. 재밌는 팀이다. 이들은 변두리 밴드임을 자처한다. 아무도 자신의 음악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그러면서도 중심부로 치고 나갈 생각도 딱히 없어 보인다. 역시나, 재밌는 밴드다. 지난 번 ‘씨에스따’ 이후 약 2년 만에 발매되는 앨범. 밤의 피크닉은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
추천트랙 ‘티티카카’. 앨범의 포문을 여는 곡. 1분 30초가 넘는 상당히 긴 시간동안 연주가 곡 초반 이어지지만 지루하지 않다. 몽롱하고 나른하며, 어딘가 달콤한 느낌도 감돈다. 긴 연주는 후주에서도 이어진다. 전주에 비해 분위기는 더 달아올랐지만 멜랑꼴리한 느낌은 여전하다. 아스라한 보컬과 “한 땐 나도 모든 걸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라는 가사는 곡의 무드와 찰떡궁합으로 어울린다. 남색의 밤, 혹은 새벽 어스름께가 떠오르는 분위기. 이름 참 잘 지었다.

김마리아
김마리아


사건명 도우스 센티멘털 씽스(Those Sentimental Things)
용의자 김마리아(Mafia Kim)
사건일자 2015.09.22
첫인상 김마리아는 젊고 재능 있는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보컬리스트다. 3살 때 처음 피아노 앞에 앉기 시작한 그는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재즈씬에 데뷔해 이름을 알려왔다. 미국 버클리 음대와 뉴잉글랜드 음악원(NEC)에서 재즈 음악을 공부했고, 현재는 광운대학교 실용음악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첫 앨범 ‘도우스 센티멘털 씽스’는 김마리아가 전곡을 작사/작곡/편곡했으며, 베이시스트 김대호, 드러머 김민찬 등이 연주에 도움을 보탰다.
추천트랙 ‘도우스 센티멘털 씽스’. 김마리아의 목소리는 묘하다. 허스키한데 가볍다. 이국적이면서도 듣기 편하다. 정확하게 음을 짚지만, 동시에 유려하다. 피아노가 만들어가는 아기자기한 비트에 자유로운 드럼 리듬이 더해져 제 3세계 음악 같은 인상도 준다. 간결한 편곡이 여백을 남겨 더욱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실험적인 멜로디도 흥미롭고, 임프로비제이션이 더해질 라이브 연주는 더더욱 멋스럽겠다.

라이프앤타임
라이프앤타임


사건명 랜드(LAND)
용의자 라이프앤타임(진실, 박선빈, 임상욱)
사건일자 2015.09.22
첫인상 삶과 시간에 대해 노래한다는 의미의 밴드, 라이프앤타임. 로로스의 기타리스트 진실, 칵스의 베이시스트 박선빈, 재즈 드러머 임상욱까지 동갑내기 친구 셋이 모여 결성한 팀이다. 지난해 첫 EP ‘더 그레이트 딥(The Great Deep)’ 이후 처음 발매하는 정규앨범. ‘양평이 형’ 하세가와 요헤이가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해 힘을 보탰고 김민태 감독, 김지현, 지승욱, 영상 창작자 집단 트램퍼 등이 아트워크에 도움을 줬다.
추천트랙 ‘마이 러빙 시티(My Loving City)’. 앨범 발매 하루 전, 합정 로랑에서는 라이프앤타임의 쇼케이스가 열렸다. 이들의 라이브는 그날 처음 접한 것이었는데, 멤버 개개인의 연주 실력이 엄청났다. 고작 세대의 악기만으로도 무척 묵직한 소리를 냈으며, 반면 무겁지는 않아서 시시각각 다양하게 변하는 소리를 들려줬다. 뜨거운데 쿨하다. 예감컨대, 이태원이나 가로수길 등 내로라하는 핫플레이스에서 올 가을 내내 이들의 노래가 울려 퍼지지 않을까.
출몰지역 10월 3일 대전 카이스트 잔디광장에서 개최되는 ‘카이스트 아트 & 뮤직 페스티벌’에 출연한다. 이어 18일에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그랜드민트페스티벌’에 참가한다.

걸


사건명 20주년 프로젝트
용의자 걸 (김성하, 이영석)
사건일자 2015.09.23
첫인상 지난 1995년 데뷔한 걸은 당시 진지하고 무거운 사운드의 록 밴드들과 달리 로큰롤과 소프트 록에 기반을 둔 듣기 편한 음악을 선보였다. 데뷔앨범 타이틀곡 ‘아스피린’은 MBC 드라마 ‘사춘기’에도 수록됐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그 후로 벌써 20년의 시간이 지났다. 외모도 변했고, 음악도 변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앨범 커버도, ‘어느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마지막 일기’라는 타이틀곡 제목도, 유난히 씁쓸하다.
추천트랙 ‘어느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마지막 일기’.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걸이 8년 만에 발표한 새 앨범에는 흥겨움은 사라지고, 지독한 우울함만이 가득하다. 로큰롤 대신 사이키델릭한 사운드가 전반에 흐르고 톤도 훨씬 무거워졌다. 가사 내용은 또 어떤가. “낮에 밝음을 피해서 밤에 난 움직였었지/난 쓰레기 같은 바퀴벌레야.” 충격적일 정도로 절망적이다. ‘마지막’이라는 곡 제목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분명, ‘내 이야기다’라며 흐느껴 우는 사람도 있으리라. 참으로 쓰리고 아프다.

이은호 기자 wild37@
편집. 김민영 kim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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