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수정 기자]
선율 하나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또 그것을 해내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가슴 떨리는 일이다. 댄스, 록, 발라드, R&B, EDM, 힙합 등등 세상엔 정말 다양한 음악이 존재한다. 어떤 이는 발라드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어떤 이는 댄스를 들으며 흥을 돋우고, 어떤 이는 힙합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기도 한다. 작곡가가 없었다면 즐기지 못할 일들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곡가들의 세계는 어떨까. 음표를 그리며 감동을 전하는 작곡가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김형석
김형석
김형석 작곡가. 김광석 ‘사랑이라는 이유로’, 김건모 ‘첫인상’, 솔리드 ‘이 밤의 끝을 잡고’, 박진영 ‘너의 뒤에서’, 임창정 ‘그때 또 다시’, ‘늑대와 함께 춤을’, 성시경 ‘내게 오는 길’, 신승훈 ‘아이 빌리브(I Believe)’, 나윤권 ‘나였으면’ 등등 무수한 히트곡을 남기며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1,000곡 이상이 등록된, 그야말로 ‘레전드’ 작곡가다.

그저 신계의 영역에 있을 것만 같았던 김형석 작곡가에 대해 인간적으로 궁금해진 건 MBC ‘일밤-복면가왕’ 속 모습 덕분이다. 김형석 작곡가는 MBC ‘일밤-복면가왕(이하 복면가왕)’에서 작곡가지만, 번번이 틀리는 예측으로 웃음을 자아내며 친근하고 자상한 이미지로 사랑받고 있다. 치킨 할아버지라는 재미있는 별명도 생겼다. 그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건, 복면가수가 등장할 때마다 애정어린 조언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 김형석 작곡가의 따뜻한 눈빛이었다. 김형석 작곡가의 한 마디는 항상 묵직한 용기를 전했다.

‘복면가왕’에 이어 MBC뮤직 ‘슈퍼아이돌’ 출연까지, 중국 시장을 바라보는 그의 혜안에도 놀라웠다.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킨 만큼 자칫 자신의 위치에 안주할 수 있는데도 김형석 작곡가는 멈추지 않고, 더 넓은 곳을 바라봤다. 김형석 작곡가는 실용음악학원 케이노트 운영을 비롯해 재능 있는 후배를 양성하기 위한 노력도 펼치고 있다.

1989년 작곡가 활동을 시작해 2015년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중심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김형석 작곡가의 비결은 무엇일까. 천재적인 작곡 능력? 히트 작곡가로서 명성? 모두 아니다. 오히려 “나는 천재가 아니다”는 겸손이 김형석을 키웠고, 호기심이 많은 타고난 성격이 그의 현재를 만들었다. 김형석 작곡가는 중국 시장을 비롯해 재능 있는 후배들의 터전을 위한 미래까지 꿈꾸고 있다. 호기심으로 넓어진 그의 행보를 들여다보면, 마치 음악으로 꿈을 찾고 이루는 하나의 여정처럼 느껴졌다. ‘복면가왕’에서 봤던 따뜻한 눈빛 속 철학과 내공을 확인했다.

Q. 김형석 작곡가의 행보는 처음부터 흥미로웠어요. 원래 클래식을 전공했는데 유재하의 노래가 좋아 대중음악에 흥미를 갖게 됐다고요. 어떤 곡이었고, 어떤 점에 흥미를 갖게 된 건가요.
김형석 작곡가 :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와 영원히’를 처음 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메이저 발라드 곡이 많이 없었어요. 마이너 형식이 많았는데 ‘사랑하기 때문에’는 팝의 형식을 빌렸고, 메이저 구성 자체에 브릿지 개념이 있었고, 가사가 너무 너무 시적이고 참신했어요. 이런 것들을 만들었던 분이 학교 선배님이기도 했고 흥미를 가지게 됐어요.

Q. 솔리드, 김건모, 성시경, 임창정, 조성모, 박정현 등등 발라드 가수들과 호흡이 더 많이 돋보였었는데요. 선호하는 스타일의 보컬이나 음악이 있었나요?
김형석 작곡가 : 한양대학교 음대 작곡과에서 클래식을 전공했어요. 리듬보다는 선율적인, 오케스트라적인 것에 가까웠죠. 천성적인 부분도 그렇고.

Q. 임창정 ‘늑대와 함께 춤을’이라든지 베이비복스 노래라든지 댄스곡도 많이 만드셨어요.
김형석 작곡가 : 하다보면 장르가 확장돼요. 세션을 많이 했었어요. 댄스 음악 세션도 많이 했죠. 솔리드, 김원준, 김건모, 박미경 등 댄스 음악 편곡, 세션을 많이 했었고 자연스럽게 작곡도 하게 됐죠.

Q. 정말 많은 곡을 만들었고, 쉴 새 없이 달려왔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어떤 원동력이었나요?
김형석 작곡가 : 클래식만 하다보니까 타 장르에 대한 허기짐이 있었어요. 계속 닥치는 대로 듣고, 가리지 않고 표현했어요. 아마 어떤 탈수 증상 같은 것이었어요. 탈수증 걸리면 자기도 모르게 물과 소금을 찾듯이 뚜렷한 열망이나 욕구보다는 그 환경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으려고 했어요.

Q. 원래 전공했던 클래식에 대한 미련은 없었나요?
김형석 작곡가 : 음악에 대한 미련은 항상 있어요. 1,000곡을 넘게 썼지만, 미련이라는 것은 최고의 어떤 것을 만들고 싶은 것이죠. 작가라는 것이 ‘최고다’라는 기준은 있을 수 없고, 어떻게 오차범위 안에 가까이 가느냐 고민하다 죽는 것 같아요.

Q. 작곡, 프로듀싱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 제작도 하고 있어요. 한계를 느낄 때는 없나요?
김형석 작곡가 : 제작은 출판사 사장 같은 거예요. 프로듀서나 작곡가는 그 사람의 씨를 갖고 기획을 하는 것이죠. 천성적으로 제가 뭔가를 강압적으로 해가면서 원하는 것을 취하지 못해요. 제작 PD는 그러면 안 돼요. 음악PD는 그래도 돼요. 제작PD는 이 아이의 예산을 잡아야 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몰아가야 하는데 저는 풀어놓는 스타일이에요. 각자 자기의 인생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풀어놓으면 사업은 아니죠. 어찌 보면 제가 갑이 되고 싶냐, 멘토가 되고 싶냐의 이야기예요. 저는 멘토가 더 맞는 것 같아요.
김형석 작곡가
김형석 작곡가
Q. 실용음악학원도 운영하고 계시는데요. 후학 양성에도 큰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요.
김형석 작곡가 : 우연한 기회로 시작하게 됐어요. 기획사를 상장까지 했는데 여차저차해서 음악파트 직원들이 다 잘리게 생겼었죠. 그 친구들을 데리고 만든 게 학원이에요. 지금은 또 다들 좋은 곳에도 가고, 다른 학원에도 있어요. 학원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와서 중국 쪽하고 큰 작업을 하게 됐네요.

Q. 요즘은 제작자나 기획자로 더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군요.
김형석 작곡가 : 음악은 꾸준히 하는데 옛날처럼 다작을 하진 않아요. 대신 중국과 엄청나게 큰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아이돌을 인큐베이팅하는 것인데 다각적으로 10년까지 열심히 일해 보려고요. 곡은 시간이 많아야 쓸 수 있어요. 90년대는 곡 쓰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곡만 계속 썼어요. 하하. 이 바닥에 있으면서 기웃거리다보니 호기심도 생기고 일이 커졌네요. 사실 곡 쓰는 게 제일 편하죠. (웃음)

Q. 중국과 관련한 큰 프로젝트가 ‘슈퍼아이돌’이죠?
김형석 작곡가 : ‘슈퍼아이돌’ 뒤에는 중국 시장이라는 더 큰 게 있어요. 재능에 국경이 없다는 이런 말 보다는 중국 시장을 바라봐야 해요. 향후 2년에서 5년 사이에는 모든 것이 바뀔 거예요. 그들은 쓰나미나 마찬가지에요. 어떻게 그 다음을 살아남을 것인지 생각해야 해요. 중국 프로그램도 있고, 아카데미가 진출할 수 있고, 퍼블리싱이 진출할 수도 있어요. 옛날 CD 시절에는 보통 12개의 수록곡이 있으니까 한 번 발매하면 12명이 일할 수 있어요. 지금은 음원 하나 내잖아요. 내가 제작자라도 검증이 된 작곡가만 쓸 거예요. 그 재능 있는 실용음악과 졸업생들이 다 놀고 있어요. 중국시장의 문이 열린다면 그쪽 하고 싸워서 이기려면 뭐가 있어야 겠죠. 노래, 외모, 가사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기획, 작곡, 춤입니다. 그런데 춤은 저작권이 없어요. 기획은 회사 베이스에요. 가장 큰 경쟁력은 작곡, 편곡이에요. 수많은 인재들이 교두보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중국에서 나에 대한 명성이 있어야 해요. 퍼블리싱 컴퍼니를 만들면 중국 각 성에 영업할 수 있고, 재능을 펼칠 수 있어요.

Q.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 가수에게 곡을 주는 등 한 발 빠른 행보를 보이기도 했던 것도 중국 시장을 노린 것인가요?
김형석 작곡가 : 중국 가수들과 한 것도 다 미래를 본 것이에요. 이제 해야 하는 것이에요. 중국 시장이 그만큼 너무 커요.

Q. 90년대와 2010년대에 음악 환경을 보면 정말 많이 달라졌죠?
김형석 작곡가 : 요즘 트렌드는 다른 게 음악성으로 음악에 기대서 가는 것보다 기획 단계부터 기획사, 프로듀서, 가수, 모든 색깔을 한꺼번에 같이 돌아가요. 사전 마케팅이든 프로모션도. 아이들의 특성, 만들고자 하는 팀, 패션이 모두 맞물려서 돌아가는 시스템이죠. 옛날처럼 곡 하나로 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 옛날에는 곡 하나 주고 정장 입고 무대에 드라이아이스 깔면 그냥 나왔죠. 이제는 곡을 그냥 쓰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이나 실행이 돼야 해요.

Q. 이렇게 계속 새롭게 끊임없이 시도하는 힘이 뭔가요?
김형석 작곡가 : 저는 호기심이 많아요. 천생 게으른 놈인데 호기심이 많아요. (웃음) 그냥 저지르는 거죠. 40대 때는 더 해요. 득인지 실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저질러요. 숫자로 보면 실이 많아요. 하하. 천성이 그런 것 같아요. 지금은 조금 조심하고 있어요.

Q. 제작보다 멘토가 맞다고 했지만, 나윤권 등 제작에 계속 도전하고 있어요.
김형석 작곡가 : 재능이 있는 애들을 보면 못 참으니까. 하하. 그 재능이 너무 예쁜데 그 재능 때문에 얼마를 벌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Q. 어떤 친구들을 보면 마음이 움직이나요?
김형석 작곡가 : 일단 열정이 있고,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무대나 곡에만 관심이 있지 그 순간까지 열심히 하는 것에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하는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잘되는 것을 보고 싶어요. 그런 물건들을 보면 가슴이 뛰어요. 잘되는 건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에요. 동기부여는 처음에 던져주는 거지만 결국 시스템이 움직여야 해요. 케이노트는 그걸 도와주는 시스템이에요. 대신 여기는 수동적인 것보다 자율적으로 배우려는 애들이 얻어가는 것이 많아요. 기획사는 그냥 시키는데 케이노트는 그런 것들이 편해요.

Q. 예전 인터뷰에서 재능이 60, 본인의 노력이 40이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김형석 작곡가 : 제가 그랬나요? 이제 노력이 훨씬 중요해요. 사람은 얼마나 연습했는지에 관심이 없잖아요. 저는 무대를 위해 연습하고 만들어낸 노력도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재능이 30, 노력이 70이면 노력의 70도 재능으로 인정해 줘야 해요.
김형석 작곡가
김형석 작곡가
Q. 요즘은 음원차트 1위가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뀌어요. 유재하나 김광석처럼 시대를 넘어서 풍미하는 노래가 없는 것 같아요.
김형석 작곡가 : 유재하, 김광석 그런 노래가 있는데 그런 노래가 안 뜨는 것이에요. 그런 노래를 진열대에 안 올려놔요. 아까 어떻게 팔아야 하느냐는 고민이 있다고 했잖아요. 결국 마케팅이에요. 어떻게 마케팅 해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 곡 좋고, 노래 잘한다고 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대가 아니에요. 진짜 산업이고 시스템이고, 결국 돈이에요. 노래 잘하는 친구들이 노래해놓고, 왜 안 뜨는지 궁금하잖아요. 그 사람에 대한 매력이 없으면 매력이 있는 것처럼 만들어주는 그런 것들이 중요해졌어요. 사람들은 갈수록 자극적인 걸 원하기 때문에 기다리지 않고 사색하지 않아요. 옛날에는 약속 시간에 친구를 기다리면서 창밖도 보고 생각도 했는데 요즘은 핸드폰으로 언제 오는지 물어보고 자기 할 일 하잖아요. 그런 사색에 대한 시간들이 없어졌어요. 음악도 똑같아요. 듣고 향유하지 않아요. 그때그때 듣고 말죠.

Q. 그런 자극이 계속되니까 더 큰 자극을 원하는 거군요.
김형석 작곡가 : 2D, 3D, 4D로 계속 가는 이유도 그런 거잖아요. 낭만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가만히 있고 자극을 주고 움직이게 해요. 음악이 점점 더 원시적으로 가는 것 같아요. 원시인이 음악을 표현할 때 타악기를 쳤어요. 지금 음악은 패턴화됐어요. 문명이 발달할수록 감성이나 감각이 조미료처럼 사용돼요. 감성적인 부분들이 어떤 마케팅을 택해야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갈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요. 사람이 그렇다고 해서 감성적인 걸 원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팔아먹는 방법, 알리는 방법 속에 진정성, 섬세함이 가장 중요해요. ‘요즘 이런 음악 안돼’라고 자조하는 게 아니라 요즘 세상에 이런 음악을 어떻게 할 것이냐 고민이 필요해요.

Q. 작곡가 입장에서는 안타까울 것 같아요 .
김형석 작곡가 : 내 직업이 음악을 만드는 사람인데 나를 위해서 만드는 사람이 아니고 대상을 위해서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이 현실이죠. 그게 프로가 되는 과정이에요. 그래서 나한테 미안한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뮤지컬, 영화 음악, 드라마 음악 등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힘들 때도 있었을 텐데요.
김형석 작곡가 : 힘들 때는 많았죠. 음악 외적인 일을 할 때가 훨씬 힘들었어요. 곡 쓰는 게 그나마 제일 안 힘들었어요. ‘나는 천재가 아니다’는 것이 그것을 넘어서게 했어요. 잘하는 것 별로 없는데 존재 가치가 곡 쓰는 것이었어요.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고, 키 작고 통통하고 이런 콤플렉스가 음악을 하게 해주는 건전지 역할을 하고 있어요.

Q. 지금도 생각하면 심장이 뛰게 만드는 추억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형석 작곡가 : 제 음악을 처음 리어카에서 들었을 때요. 그 당시에는 리어카에서 테이프를 깔고 음악을 틀고 팔았잖아요. 압구정동에서 울려 퍼졌던 그때를 못 잊죠. 그 곡이 김광석 ‘사랑이라는 이유로’에요. 사람들이 노래방 가서 내 노래를 부를 때도 좋아요.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거잖아요. 고작 그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죠.

Q. 최근에 작품 활동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아요. 자주 봤으면 좋겠어요.
김형석 작곡가 : 영화 음악을 자주 하는데 멜론 차트에서 많이 볼 수 없어요. 히트곡을 쓰면 저작권료도 많고 좋긴 하죠. 박진영이 감성과 기획이 같이 간다면 나는 좀 더 감성 쪽이 아닐까요. 그 나이 대에 해야 하는 음악이 있고, 그 나이 대에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천성이나 스타일도 있어요. 저도 역시 내 나이 대에 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있어요.

Q. 또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김형석 작곡가 : ‘슈퍼아이돌’, ‘복면가왕’을 계속 할 것이고, ‘엽기적인 노래2′ 영화 음악도 하고 있어요. 나윤권도 작업하고 있어요. 계속 곡을 쓰고 있어요. 좀 다른 것을 해보는 게 뭐냐면 실용음악과 졸업생들 설 자리가 별로 없잖아요. 다 아이돌을 원하고. 그들이 한 번이라도 음악 발표를 해보게 하려고요. 지금 이마트와 이야기 중인데 이마트가 전국에 150개 매장이 있어요. 이마트 몰까지 하면 도합 400만 명이 왔다 가요. 거기에 매장음악을 연결시키고, 공연을 하고, 수익금을 돌려주고 그런 프로젝트를 하려고 해요.

Q. 최근 K-POP이 중국에 많이 진출하는데, 앞으로 K-POP이 어떻게 흘러가야 할까요?
김형석 작곡가 : 다양한 K-POP의 미래가 열려야 겠죠. K-POP이 획일적이면 망해요. 그래서 중국을 더 가야해요. 중국은 커요. 우리 5,000만의 30배니까 K-POP에 대한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또한 매스컴으로 다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공급은 많은데 수요가 작으니까. 세컨 플랫폼, 세컨 미디어는 뭐냐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해요.

Q. 통일 노래 ‘원드림 원코리아’ 재능 기부를 비롯해 사회적 활동에도 관심이 높으신 것 같아요.
김형석 작곡가 : 잘하는 것도 중요한데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함께 생각하게 되요. 젊을 때 잘 하는 게 중요했죠. 잘 만들고, 나은 멜로디를 쓰고.. 나이가 들수록 왜 무엇을 이것을 하느냐 생각들이 넓혀지더라고요. 지금 하는 일들이 의미 있는 것들, 욕망의 하나겠지만 내 나이에 해야 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 아닐까요. 나이가 드니까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와요.

Q. 요즘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도 있을 것 같아요.
김형석 작곡가 : 누가 그이야기를 하더라고요.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들이 불과 1~2년 전 고등학생 때도 손들고 화장실 갔다 와도 되냐고 물었던 사람이에요. 고작 1~2년 지났다고 바로 꿈을 찾으라고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가장 혼돈의 시기일 것이고, 동시에 과도기일 텐데 그럴 때일수록 필요한 게 기준이 아닐까요. 그건 가정교육일 수도 있고, 그중 하나가 정치가 아닐까 싶어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에 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물론 취업률도 낮고, 등록금 인상 등 현실적으로 닥친 문제들이 있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20대가 투표를 해야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 앉아서 소주잔 기울이며 기성세대 욕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아요. 물론 스펙을 쌓아야 하고, 좋은 회사 들어가려면 그럴 시간 어디 있냐고 할 수 있지만, 오늘부터 그런 것이 바뀌지 않으면 내일은 똑같아요. 시작이 반이다. 관심을 가져야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권리는 요구하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요. 내가 요구하고, 내가 디펜스를 해야지. 그런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어요.

Q. 작곡가가 되고픈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세요.
김형석 작곡가 : 일단 음악 많이 듣고요. 음악 많이 써보고요. 잘 쓰기 위해서 악기나 미디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똑같아요. 내가 말해보고 써봐야 영어가 늘잖아요. 음악을 많이 듣거나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거나 써보면 곡이 늘어요. 음악도 하나의 외국어처럼 나를 표현하는 언어에요. 외국어 공부에 재능이 있나 없나 물어본다면, 죽어라고 하면 다 해요. 작곡도 마찬가지에요. 본인의 열정에 이유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대신 내가 좋아하냐 안 좋아하냐를 깊숙이 고민해야 해요. 좋아하면 내가 인내하는 시간이 덜 힘들어요. 사람의 열정의 법칙이 뭐냐고 물으면 열정은 이유가 없고 법칙이 없다고 말해요. 자기는 너무 좋아하는데 좋아하는지 안하는지 본인도 모를 때가 있어요. 그럴 때 한 달 동안 무엇을 가장 즐겨 찾았는지 찾아봐요. 그게 좋아하는 거죠.

Q. 김형석 작곡가의 꿈은 무엇인가요?
김형석 작곡가 : 계속 곡을 쓰는 것이죠. 새로운 환경 혹은 새로운 대상에 대한 호기심이 곡을 쓰게 만들어요. 죽기 전까지 계속 곡을 의뢰받으면 좋겠지요. 어느 순간에 연락이 없으면 비참하잖아요. 내가 써서 누군가를 줬을 때 흔쾌히 불러주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행복해요.

음표를 그리는 사람들② 김형석 작곡가, ‘복면가왕’으로 깬 아이돌 편견

박수정 기자 soverus@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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