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장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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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일은 상당히 진취적인 뮤지션이다. 서울대학교 신문학과를 졸업한 후 광고회사에 다니던 그는 1990년 정석원, 조형곤, 조현찬과 함께 그룹 015B를 결성해 가요계에 데뷔했다. 1집 ‘015B’가 엄청난 히트를 치며 소위 ‘벼락스타’가 됐고, 이후 발매하는 앨범마다 대박 행진을 이어가며 승승장구했다. 객원 가수 시스템의 도입, 밀리언셀러 달성, 실험적인 사운드 등 대중음악 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 신인 밴드 이젠(EZEN)으로 다시 데뷔했다. 데뷔앨범 ‘1st EP’를 발매하고 거의 매 주말마다 공연을 펼쳤다. ‘형님’의 위엄으로 으스대기보다는 ‘현직’의 열기로 뛰어들었다. 지난 15일 열린 미스틱 오픈런 공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젠은 거침없는 연주와 망설임 없는 뜀박질로 분위기를 달궜다. 처음엔 다소 어색해하며 쭈뼛거리던 관객들도 어느새 몸을 흔들고 팔을 휘저으며 음악을 즐겼다.

중년의 재데뷔. 제법 심각하고, 어딘가 결의에 찬 느낌까지 풍긴다. 그러나 공연을 앞두고 만난 장호일은 그저 즐거워보였다. 그의 에너지는 뜨거웠고, 여전히 순수했으며 때문에 건강했다.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란 인생의 모토를 장호일은 충실히 지키고 있었다.

Q. 밴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장호일 : 팝록을 지향하는 5인조 밴드입니다. 공일오비의 장호일을 주축으로 2014년에 결성된 밴드고요. 브레이브(리듬기타), 홍성호(드럼), 장호일(리드기타), 헥스(보컬), 김현지(베이스)로 이뤄진 팀입니다.

Q. 방금 ‘팝록’이라고 하셨잖아요. 다른 인터뷰를 보니 ‘하드록 밴드’라고 소개하기도 하던데요.
장호일 : 처음 밴드를 만들었을 때에는 하드록을 추구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하드한 쪽은 우리와 잘 안 어울리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좀 더 말랑말랑한 쪽으로 바뀌었어요. 변절했죠. 하하.

Q. 어쩐지. 팝록과 하드록은 상당히 다르게 느껴졌어요.
장호일 : 1집에서는 하드한 쪽으로 가려고 했어요. 2집도 제작 초반에는 헤비한 노래들이 있었고요. 우리 딴에는 마초적인 이미지를 지향했는데, 주변에서 안 어울린다고 하더군요. 꽃미남 밴드 이미지냐고요? 착한 교회 오빠 같은 이미지에요. 실제로 멤버 두 명이 교회에 다니기도 하고요. ‘아 유 레디~!’ 같은 것들이 잘 안 어울리죠. 하하. 그리고 국내에서는 록이 아직 비주류에요. 처음부터 먹기 힘든 음악을 주기보다는 설탕 발림된 것부터 복용시키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익숙해졌을 때 넘어가려고요. 일단은 방향을 좀 바꾸었으니 이 쪽으로 이어갈 생각이에요.

장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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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데뷔 24년 차에 신인밴드로 나왔어요. 기분이 어떠세요?
장호일 : 저는 신인이 된 걸 즐겨요. 새로 만들어야 하는 힘듦을 즐기죠. 015B는 이제 큰형님밴드가 됐어요. 제가 속해 있긴 하지만,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밴드에요. 만들어진 이미지, 나아가야할 방향이 있죠. 반면 새로운 팀은 완전히 바닥에서 시작해요. 힘들지만 익사이팅합니다.

Q. 멤버들 모두 음악 활동 경력이 제법 있는 걸로 아는데요. 의견 조율은 잘 되시나요?
장호일 : 저와 브레이브가 경력이 좀 있죠. 덕분에 2~30대의 다른 친구들도 같이 큰형님 취급을 받고요. 그래도 우리 나름대로 민주적인 밴드에요. 회의를 통해 의견은 듣고 결정은… 저 혼자 하죠. 하하하. 사실 밴드는 서로 부딪치는 게 맛인 것 같아요. 멤버 간에 색깔이 섞이는 게요. 음악적 부딪침은 밴드 안에서 당연히 있어야 하고요, 조율도 잘 됩니다.

Q. 얼마 전에는 베이시스트를 새로 영입하셨다고요.
장호일 : 네. 김현지 양입니다. 20대 홍일점이고요, 우리 밴드의 셀링포인트죠.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이 우리 얘기는 안 하고 현지 양 얘기만 합니다. 하하하. 농담이고요, 팀에 합류한 지 두 달 정도 됐는데 공연을 자주 하다 보니 빠르게 친해지고 있어요. 연주도 굉장히 잘하고요. 아직 어린데도, 수많은 밴드를 거치면서 거칠게 생활해서 그런지 내공이 대단해요. 가끔 ‘너 이거 할 수 있어?’ 하고 시키면 뚝딱 해냅니다. 멤버들 중 연주를 제일 잘 하는 것 같아요. 하하하.

Q. 지난 번 앨범 소개 자료를 보면 ‘8-90년대 밴드 발라드를 지향한다’던데요. 이번 앨범은 어떤가요?
장호일 : 이번에는 트렌드를 반영했어요. 모던록이나 팝록으로 색을 바꿨죠. 처음 밴드를 결성했을 때에는 80년대, 소위 LA 메탈 시절의 그룹사운드를 표방했어요. 트렌드가 돌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80년대의 구닥다리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그 때의 음악을 복고적으로 트렌디하게 해석하려고 했죠. 그런데 그렇게 안 봐주시더라고요. ‘되게 옛날 음악 한다. 저런 거 아직도 해?’라는 반응이었죠. 하하하. 아무래도 대중은 우리만큼 디테일하게 나눠서 듣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장호일_05
장호일_05
Q. 이젠을 하기 전에는 준세이어라는 팀도 하셨죠?

장호일 : 네. 015B 객원보컬을 했던 케이준이라는 친구와 함께 꾸린 팀이에요. 어쿠스틱한 음악을 하던 팀이었죠. 그런데 하면 할수록, 음악이 저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속이 뻥 뚫리지 않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각자 하는 일이 바빠져서 자연스럽게 중단 됐고요. 그러던 중에 이젠을 결성한 거죠.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에요.

Q. 015B는요?
장호일 : 015B는 항상 있는 팀이에요. 꾸준히 전진하는 팀이고 저의 친정 같은 팀이죠. 조만간, 빠르면 두 달 내에 새 싱글이 나올 것 같아요. 그 전에도 주기적으로 싱글을 발매해서 활동해왔고요.

Q. 90년대에는 015B가 엄청난 인기를 누렸잖아요. 96년 이후로 휴지기가 길기도 했고 가요 시장도 많이 바뀌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젠 주류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계시고요.
장호일 : 팀이 오래되다 보니, 이제 그런 것에 대해 별 신경은 안 써요. 015B는 이제 훈장처럼, 명예처럼 남아있는 팀이에요. 그 정도로 충분합니다. 음악을 하면서 그런 훈장을 달고 있는 팀이 얼마나 될까 싶어요.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015B가 화석화된 팀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싱글 앨범도 계속 내고 있고요. 동시에 새 밴드를 하며 새 에너지를 부을 수 있어서 복 받은 것 같아요. 이렇게 공연을 하러 올 때마다, ‘내가 기타를 메고, 공연장에 공연을 하러 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고 뿌듯해요.

장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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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러고 보니 015B 멤버 정석원 씨와 같은 소속사 식구가 됐네요.
장호일 : 네. 정석원 씨는 미스틱 프로듀서로서 윤종신 사장님을 모시고 있죠. 전화를 굉장히 공손히 받더라고요. 욕하다가도 전화가 오면 ‘네 사장님’하며 두 손으로 받더군요. 하하하.

Q. 장호일 씨는 어떠세요? 윤종신 씨와 갑을 관계가 바뀐 것 아닌가요? 하하.
장호일 : 잘 보여야죠. 예전에는 방송을 같이 할 때에도 말을 막 했는데, 이제는 고상하게 해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려고요. 하하. 안 그래도 계약 후에 윤 사장님이 전화를 주셨어요. 일종의 환영전화죠. “어, 계약했어? 환영해” 하시더라고요. (* 윤종신은 현재 미스틱엔터테인먼트의 대표 프로듀서 직을 맡고 있다. 대표 이사는 이학희)

Q. 윤종신 씨를 비롯해 정석원, 조규찬 씨 같은 고수들과 소속사 식구가 됐는데요. 서로 자극도 될 것 같아요. 워낙 왕성하게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니까요.
장호일 : 그렇죠. 사실 미스틱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돼서 다 같이 만날 기회가 많지는 않은데요, 그래도 자극은 돼요. ‘내가 더 잘해야지’ 하면서요. 사장님한테 예쁨 받아야죠. 하하하.

Q. 공연도 많이 하시니, 젊은 밴드에게서 얻는 에너지도 있을 거고요.
장호일 : 네. 작년부터 공연을 정말 많이 했어요. 만화를 보면, 쿵푸 고수들끼리 만나는 장면이 있잖아요. 꼭 그거 같아요. 정말 재밌어요. 잘 하는 팀을 보면 승부욕도 생기고요. 워낙 라이브를 하는 것도 좋아하고 보는 것도 좋아해요.

Q. 이 많은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요?
장호일 : 성격 아닐까요? 제가 워낙 호기심도 많고요, 뭔가 흥미로운 게 있으면 꼭 해야 해요. 인생의 모토가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에요.

Q.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장호일 :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홍대에서 공연을 하다 보면 관객이 없을 때도 있고 많을 때도 있거든요. 일단 우리가 즐기려고 해요. 사실 관객 분들이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시는 거잖아요. 아무리 관객이 많아도 다들 얼어있으면 할 맛이 안 나요. 반면 같이 호흡해주고 열광해주시면 신이 납니다. 그러니 들으시는 분들도 그렇게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미스틱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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