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한혜리 기자]
하지원 : 아쉽다. 아쉬울 뿐이다. 내가 3개월 동안 지냈던 공간, 함께했던 사람들을 갑자기 안보니까. 왠지 내(오하나) 사무실을 다시 나가야할 것 같다.(웃음)
Q. ‘너사시’의 마지막 회를 봤나? 만족스러웠는지 묻고 싶다.
하지원 : 드라마의 마지막은 항상 아쉽다. 그렇지만 하나랑 원이 잘 됐다. 해피엔딩이어서 나도 좋다.
Q. ‘하지원’하면 드라마 흥행보증 수표였지만 이번 ‘너사시’는 기대만큼 시청률이 나오지 않았다. 작품에 시청률이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을 것 같은데.
하지원 : 시청률 부분에선 아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촬영 당시엔 못 느꼈다. 철 없이 들릴 수 있겠지만 전혀 체감을 못했다. 나와 스태프들 주변 사람들은 다 보고 있더라. 심지어 욕하면서도 보는 사람도 있었다.(웃음) ‘너사시’는 분명 내가 선택한 작품이다. 성격일진 모르겠지만, 난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때로는 내 의지완 상관없는 작품 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작품들은 다 ‘내 새끼’지. ‘너사시’ 역시, 내겐 소중한 작품이었다. 사실 인터뷰 할 때, 다른 작품 때보다 많이 긴장했다. 생각보다 편안하다. 작품을 떠나보내기 전 정리하는 느낌이랄까.
Q. 잡음도 많았다. 중간에 작가가 교체되기도 했고. 배우로서 불안하지 않았나?
하지원 : 나는 현장에서 이미 ‘오하나’였다. 절대 흔들리거나 약해지면 안됐다. 연기에만 집중했고, 중요한 것은 오하나를 ‘어떻게 단단하게 잡아나갈 것이냐’였다. 감독님의 배려가 컸다. 배우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셨다. 사실 우리 촬영장이 밤샘작업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태프들, 배우들 너나할 것 없이 많이 웃었다. 분위기가 좋았다.
Q. 보통 드라마 촬영장은 시간에 쫓겨 힘들지 않나?
하지원 : 그렇지. 다른 촬영장도 그렇지만 특히 드라마 촬영은 몸이 힘들다. 그 속에서 스태프들, 배우들 모두 말 한마디라도 예쁘게 하려 노력했다. 일단 고맙게도 나는 현장에서 많은 사랑 받았다. 모든 팀들이 날 애기처럼 대해주셨다. 감독님은 내가 옷을 갈아입을 때 마다, “하나 옷 예쁘다. 어디 꺼야? 시계 어디 꺼야?” 물어봤다. 하하. 스태프들과 헤어지는 게 진짜 아쉬웠다.
Q. ‘너사시’ 조수원 감독은 전작 ‘피노키오’, 케이블채널 tvN ‘갑동이’ 등 스릴러를 많이 하지 해왔다. 그런 것치곤 매우 귀여우신 것 같다.
하지원 : 스릴러에 강하신 분이지. 그래서 그런가? 감독님이 키스신에 굉장히 쑥스러워하셨다. 소년 같은 모습이 많으신 분이다. 차서후(윤균상)와 키스신을 못하게 하더라.(웃음) 10회에서 피아노 연습하던 서후가 무릎 위에 날 앉히고 키스하는 신이 있었다. 원래 키스를 하는 거 였는데, 감독님이 갑자기 “하지마”라고 소리치더라. 그래서 가짜로 했다. 하하. 나중에 윤균상이 회식 자리에서 친구들에게 질타 받았다고 하더라. 하지원이랑 키스했다고. 그래서 내가 해보고나 욕먹으라고 했다. (일동 웃음) Q. 오하나는 무술을 하지도 않았고, 괴물과 싸우지도 않았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캐릭터를 선택했다. 특별한 마음의 변화가 있었나?
하지원 : 원래 도전을 좋아한다. 장르나 캐릭터 구분 없이 다 하고 싶었다. 좀 시간이 지나보니까 가볍고 경쾌한 캐릭터를 하고 싶더라. 때마침 ‘너사시’를 만났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평범한 사랑 얘기 해보고 싶었다. 나도 사람이니까. 그래서 하게 됐다.
Q. 대중들은 액션하는 하지원, 극적인 하지원을 원했던 게 아닐까. 간간히 아쉽다는 평이 있었다.
하지원 : 배우는 한 가지 역할만 할 수 없다. 오하나 역시 나한테 수많은 역할 중 하나였고, 도전이었다. 많은 분들이 흙 묻히고, 칼싸움하는 하지원의 모습을 좋아해줬다. 평범한 모습이 낯설게 다가왔던 시청자들도 있었을 거다. 오하나가 난데? 생각해보니 아이러니했다.(웃음) ‘내가 강렬한 역할을 많이 맡았구나, 그럼 오히려 평범한 모습이 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들 많이 하게 됐다. 난 배우니까. 앞으로도 도전은 멈추지 않겠지. 시청자들이 적응해주길 바랄 뿐이다.
Q. 오하나는 일상을 보여줬다. 30대 직장 여성 그대로였다. 오히려 많이 해보지 않았던 일상 캐릭터여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
하지원 : 솔직히 나는 편했다. 하나는 옆집에 사는 언니 같은 인물이니까. 독특한 설정을 잡는 것 보다 그냥 일상을 슥슥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가? 친구들이 드라마를 보고 “너 연기를 해야지 그대로 보여주면 어떡해”라고 하더라.(웃음) 가끔 부끄럽기도 했다. 나를 보여주는 연기였으니까. 나도 집에선 편한 옷 입고 뒹굴 거린다. 그 모습을 보여 준거다.
Q. 뒹굴거리는 하지원은 상상이 안 간다. 일상이 궁금하다.
하지원 : 나는 집에 가면 아무것도 안한다. 밖에서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하하. 엄마나 아빠가 도와주시니까 피곤하면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철 없는 딸이다. 하지만 정리정돈 돼 있는 건 좋아한다. 그래서 한 번 물건을 놓으면 안 건드린다. (웃음)
Q. 드디어 ‘완판녀’(드라마 속에서 여배우가 입고 나오는 옷이 완전히 다 팔렸다는 뜻)라는 호칭을 얻었다. 오하나의 오피스 룩은 정말 예쁘더라.
하지원 : 기자 분들, 팬 분들에게 ‘왜 예쁜 역할 안 하냐’ 지겹게 들었다.(웃음) 오하나는 패션 쪽 종사자인 만큼 신경 많이 썼다. 가방 두, 세 개씩 들고, 구두 디자이너니까 구두로 포인트 주고. 예쁜 모습을 시청자들이 굉장히 원했던 걸로 안다. 나도, 스태프들도 오하나로 원없이 한 풀었다.(웃음) Q. 두 남자의 사랑받는 역할이었다. 특히 상대배우 이진욱은 하트 눈빛을 쏘더라. 실제 하지원까지 사랑받는 느낌이었다.
하지원 : 나도 방송을 봤는데, 장난 아니더라. 특히 하나랑 사귀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뭐지?’ 할 정도로 꿀이 떨어지더라.(웃음) 이진욱과 호흡은 진짜 잘 맞았다. 늘 하는 얘기가 아니라, 뭐랄까, 리허설인데 리허설 한 것 같은 리허설처럼? 하하. 너무 척척 잘 맞았다. 되게 재밌었다. 현장에서 리허설 하는 게 대본보다 재밌더라. 편안해서 그런가? 애드리브도 잘 나왔다.
Q. 연애세포가 좀 깨어난 느낌인가?
하지원 : 하하. 사실 연애세포는 항상 깨어있다. 연애는 항상 관심 있다. 내가 노력을 안 할뿐이지. 모임을 간다던가, 미팅을 한다던가, 이런 걸 해야 누군갈 만날 수 있는데 안 간다. 점점 노력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Q. 열애설이 터졌다. 그것도 중국배우 진백림하고.
하지원 : 드라마 막바지에 터진 열애설이었다. 데뷔 이후 첫 열애설이었는데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사실 열애설이 터진 느낌을 잘 몰랐다. 처음이었으니까. 사진 하나로 이렇게 연결될 수 있구나, 그게 놀라웠다. (웃음) 당시 주위 스태프들도 “언니 열애설 났던데요?”라고 가볍게 묻더라. 그냥 해프닝이었다.
Q. 실제로는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가? 연기해보니 ‘너사시’처럼 남사친(남자사람친구)과 사랑도 괜찮지 않나.
하지원 : 원래 첫 눈에 반하는 스타일인데, 드라마를 찍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최원(이진욱)처럼 잘 통하는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게 되게 좋을 것 같았다. 가슴 떨리는 사랑만 하는 게 아니라, 편안하게 내 고민도 얘기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Q. 하지원이라면 최원과 차서후(윤균상) 중 누굴 택했을까?
하지원 : 나라도 당연히 최원이겠지. 왜냐하면 나는 하나잖아? 하하. 내가 다니는 사우나에서 아주머니들이 차서후한테 가지 말라더라.(웃음) 그래서 내가 역으로 물어봤다. ‘원이랑 서후 중에 누가 더 좋아요?’라고. 다들 원이라고 하더라. Q. 벌써 데뷔 20여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18년이고. 20여년 가까이 연기를 해온 소감이 어떤가?
하지원 : 와, 벌써 그런가? 내가 시간 개념이 별로 없다. 나로 있는 시간이 얼마 없으니.(웃음) 나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연기를 하는 게 꼭 열차를 타고 시간 여행을 가는 느낌이다. 갔다가 돌아오고, 갔다가 돌아오고를 반복한다. 지금 나는 돌아오는 시간이겠지? 현실의 하지원으로 돌아오는 시간. 이 시간이 때로는 뭔가 심심하기도 하고, 삼난하기도 했는데 이번엔 해피엔딩이라 그런가, 마음이 무겁지는 않다. 그냥 즐기고 있다. 나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중이다.
Q. 18년차인 만큼 연예계에서도 선배가 되고, 많은 후배들이 생겼다. ‘하지원’을 롤모델로 삼는 후배들도 많아졌고.
하지원 : 갑자기 긴장하게 된다.(웃음) 후배들 생각하면 감사함과 동시에 책임감이 많이 따른다. 더 멋진 선배가 되고 싶다. 사실 나는 그대로지만, 하지원이란 배우는 작품이 쌓여감에 따라 성숙하고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후배들이 계속 날 좋아해주지 않을까? 하하.
Q. 데뷔 20여년이 믿기지 않을 만큼 동안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원 : 하하. (손사레를 치며) 아니다. 그렇게 동안 아니다. 하하하.
Q. 이번 ‘너사시’는 30대 오하나의 로맨스였다. 같은 30대로서 느낌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하지원 : 그렇지. ‘너사시’는 30대에 할 수 있는 로맨스이기에 욕심내서 연기했다. 20대 때 할 수 있는 로맨스와 30대 때 할 수 있는 로맨스는 다르니까.
Q. 아무래도 대한민국 여배우는 나이 들어감에 따라 점점 로맨스의 기회를 잃게 되는 것 같다. 여성보다는 엄마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아진다. 여배우로서 아쉽지는 않은가?
하지원 : 영화 ‘맘마미아’ 메릴 스트립은 50대 임에도 멜빵바지를 입고 설레는 로맨스를 연기한다. 40대, 50대에도 충분히 로맨스를 연기할 수 있다. 오히려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아지지 않을까? 살면서 경험과 우여곡절을 통해 인생의 이야기는 풍부해진다.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겠지. 여배우라고해서 항상 주름 없고 예쁜 역할만 할 순 없다.
Q. 이제 현실의 하지원으로 돌아올 차례다. 애정담긴 오하나를 떠나보내며 적잖이 아쉽겠다.
하지원 : 하나를 억지로 떠나보낼 생각은 없다. 그냥 천천히 두고 싶다. 언제든지 시간 열차를 타고 갈 수 있도록. (인터뷰 내내 앞에 놓여진 향초를 가리키며) 이 향이 내가 ‘너사시’ 하면서 피웠던 향이다. 언니가 조향사다. 작품 들어가기 전 항상 언니가 내 향을 만들어준다. 이게 좋은 점이 뭐냐면, 향을 통해 과거에 공간에 들어설 수 있다. 나는 지난날이 그립거나 추억이 있다면 향을 피운다. 하나도 마찬가지다. 10년 뒤에 오하나가 그립다면 이 향을 피우면 된다.
한혜리 기자 hyeri@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연기는 열차를 타고 시간 여행을 가는 느낌. 갔다가 돌아오고, 갔다가 돌아오고를 반복한다.” 드라마가 끝난 후, 하지원은 시간 여행에서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을 할 때마다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다는 그는 데뷔 20여 년간 수많은 시간 여행을 즐겼다. 이번 SBS ‘너를 사랑한 시간(이하 너사시)’의 시간 여행은 뭔가 달랐다. 오하나 역을 맡은 하지원이 돌아오는 과정은 쉽지 않아 보였다. 오하나가 실제 하지원과 매우 닮았기 때문일까. 이날 만난 하지원은 사랑스럽고 애교 많은 오하나 그 자체였다. 하지원은 데뷔 18년만에 자신의 모습을 연기했던 것. 그는 인터뷰 내내 오하나의 사무실에서 쓰던 향초를 피워 기억을 남겼다. 현실로 돌아오는 길목에 선 하지원과 함께 오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Q. 또 하나의 드라마를 필모그라피에 기록했다. 드라마가 끝나고 기분이 어땠나?
하지원 : 아쉽다. 아쉬울 뿐이다. 내가 3개월 동안 지냈던 공간, 함께했던 사람들을 갑자기 안보니까. 왠지 내(오하나) 사무실을 다시 나가야할 것 같다.(웃음)
Q. ‘너사시’의 마지막 회를 봤나? 만족스러웠는지 묻고 싶다.
하지원 : 드라마의 마지막은 항상 아쉽다. 그렇지만 하나랑 원이 잘 됐다. 해피엔딩이어서 나도 좋다.
Q. ‘하지원’하면 드라마 흥행보증 수표였지만 이번 ‘너사시’는 기대만큼 시청률이 나오지 않았다. 작품에 시청률이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을 것 같은데.
하지원 : 시청률 부분에선 아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촬영 당시엔 못 느꼈다. 철 없이 들릴 수 있겠지만 전혀 체감을 못했다. 나와 스태프들 주변 사람들은 다 보고 있더라. 심지어 욕하면서도 보는 사람도 있었다.(웃음) ‘너사시’는 분명 내가 선택한 작품이다. 성격일진 모르겠지만, 난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때로는 내 의지완 상관없는 작품 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작품들은 다 ‘내 새끼’지. ‘너사시’ 역시, 내겐 소중한 작품이었다. 사실 인터뷰 할 때, 다른 작품 때보다 많이 긴장했다. 생각보다 편안하다. 작품을 떠나보내기 전 정리하는 느낌이랄까.
Q. 잡음도 많았다. 중간에 작가가 교체되기도 했고. 배우로서 불안하지 않았나?
하지원 : 나는 현장에서 이미 ‘오하나’였다. 절대 흔들리거나 약해지면 안됐다. 연기에만 집중했고, 중요한 것은 오하나를 ‘어떻게 단단하게 잡아나갈 것이냐’였다. 감독님의 배려가 컸다. 배우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셨다. 사실 우리 촬영장이 밤샘작업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태프들, 배우들 너나할 것 없이 많이 웃었다. 분위기가 좋았다.
Q. 보통 드라마 촬영장은 시간에 쫓겨 힘들지 않나?
하지원 : 그렇지. 다른 촬영장도 그렇지만 특히 드라마 촬영은 몸이 힘들다. 그 속에서 스태프들, 배우들 모두 말 한마디라도 예쁘게 하려 노력했다. 일단 고맙게도 나는 현장에서 많은 사랑 받았다. 모든 팀들이 날 애기처럼 대해주셨다. 감독님은 내가 옷을 갈아입을 때 마다, “하나 옷 예쁘다. 어디 꺼야? 시계 어디 꺼야?” 물어봤다. 하하. 스태프들과 헤어지는 게 진짜 아쉬웠다.
Q. ‘너사시’ 조수원 감독은 전작 ‘피노키오’, 케이블채널 tvN ‘갑동이’ 등 스릴러를 많이 하지 해왔다. 그런 것치곤 매우 귀여우신 것 같다.
하지원 : 스릴러에 강하신 분이지. 그래서 그런가? 감독님이 키스신에 굉장히 쑥스러워하셨다. 소년 같은 모습이 많으신 분이다. 차서후(윤균상)와 키스신을 못하게 하더라.(웃음) 10회에서 피아노 연습하던 서후가 무릎 위에 날 앉히고 키스하는 신이 있었다. 원래 키스를 하는 거 였는데, 감독님이 갑자기 “하지마”라고 소리치더라. 그래서 가짜로 했다. 하하. 나중에 윤균상이 회식 자리에서 친구들에게 질타 받았다고 하더라. 하지원이랑 키스했다고. 그래서 내가 해보고나 욕먹으라고 했다. (일동 웃음) Q. 오하나는 무술을 하지도 않았고, 괴물과 싸우지도 않았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캐릭터를 선택했다. 특별한 마음의 변화가 있었나?
하지원 : 원래 도전을 좋아한다. 장르나 캐릭터 구분 없이 다 하고 싶었다. 좀 시간이 지나보니까 가볍고 경쾌한 캐릭터를 하고 싶더라. 때마침 ‘너사시’를 만났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평범한 사랑 얘기 해보고 싶었다. 나도 사람이니까. 그래서 하게 됐다.
Q. 대중들은 액션하는 하지원, 극적인 하지원을 원했던 게 아닐까. 간간히 아쉽다는 평이 있었다.
하지원 : 배우는 한 가지 역할만 할 수 없다. 오하나 역시 나한테 수많은 역할 중 하나였고, 도전이었다. 많은 분들이 흙 묻히고, 칼싸움하는 하지원의 모습을 좋아해줬다. 평범한 모습이 낯설게 다가왔던 시청자들도 있었을 거다. 오하나가 난데? 생각해보니 아이러니했다.(웃음) ‘내가 강렬한 역할을 많이 맡았구나, 그럼 오히려 평범한 모습이 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들 많이 하게 됐다. 난 배우니까. 앞으로도 도전은 멈추지 않겠지. 시청자들이 적응해주길 바랄 뿐이다.
Q. 오하나는 일상을 보여줬다. 30대 직장 여성 그대로였다. 오히려 많이 해보지 않았던 일상 캐릭터여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
하지원 : 솔직히 나는 편했다. 하나는 옆집에 사는 언니 같은 인물이니까. 독특한 설정을 잡는 것 보다 그냥 일상을 슥슥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가? 친구들이 드라마를 보고 “너 연기를 해야지 그대로 보여주면 어떡해”라고 하더라.(웃음) 가끔 부끄럽기도 했다. 나를 보여주는 연기였으니까. 나도 집에선 편한 옷 입고 뒹굴 거린다. 그 모습을 보여 준거다.
Q. 뒹굴거리는 하지원은 상상이 안 간다. 일상이 궁금하다.
하지원 : 나는 집에 가면 아무것도 안한다. 밖에서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하하. 엄마나 아빠가 도와주시니까 피곤하면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철 없는 딸이다. 하지만 정리정돈 돼 있는 건 좋아한다. 그래서 한 번 물건을 놓으면 안 건드린다. (웃음)
Q. 드디어 ‘완판녀’(드라마 속에서 여배우가 입고 나오는 옷이 완전히 다 팔렸다는 뜻)라는 호칭을 얻었다. 오하나의 오피스 룩은 정말 예쁘더라.
하지원 : 기자 분들, 팬 분들에게 ‘왜 예쁜 역할 안 하냐’ 지겹게 들었다.(웃음) 오하나는 패션 쪽 종사자인 만큼 신경 많이 썼다. 가방 두, 세 개씩 들고, 구두 디자이너니까 구두로 포인트 주고. 예쁜 모습을 시청자들이 굉장히 원했던 걸로 안다. 나도, 스태프들도 오하나로 원없이 한 풀었다.(웃음) Q. 두 남자의 사랑받는 역할이었다. 특히 상대배우 이진욱은 하트 눈빛을 쏘더라. 실제 하지원까지 사랑받는 느낌이었다.
하지원 : 나도 방송을 봤는데, 장난 아니더라. 특히 하나랑 사귀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뭐지?’ 할 정도로 꿀이 떨어지더라.(웃음) 이진욱과 호흡은 진짜 잘 맞았다. 늘 하는 얘기가 아니라, 뭐랄까, 리허설인데 리허설 한 것 같은 리허설처럼? 하하. 너무 척척 잘 맞았다. 되게 재밌었다. 현장에서 리허설 하는 게 대본보다 재밌더라. 편안해서 그런가? 애드리브도 잘 나왔다.
Q. 연애세포가 좀 깨어난 느낌인가?
하지원 : 하하. 사실 연애세포는 항상 깨어있다. 연애는 항상 관심 있다. 내가 노력을 안 할뿐이지. 모임을 간다던가, 미팅을 한다던가, 이런 걸 해야 누군갈 만날 수 있는데 안 간다. 점점 노력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Q. 열애설이 터졌다. 그것도 중국배우 진백림하고.
하지원 : 드라마 막바지에 터진 열애설이었다. 데뷔 이후 첫 열애설이었는데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사실 열애설이 터진 느낌을 잘 몰랐다. 처음이었으니까. 사진 하나로 이렇게 연결될 수 있구나, 그게 놀라웠다. (웃음) 당시 주위 스태프들도 “언니 열애설 났던데요?”라고 가볍게 묻더라. 그냥 해프닝이었다.
Q. 실제로는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가? 연기해보니 ‘너사시’처럼 남사친(남자사람친구)과 사랑도 괜찮지 않나.
하지원 : 원래 첫 눈에 반하는 스타일인데, 드라마를 찍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최원(이진욱)처럼 잘 통하는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게 되게 좋을 것 같았다. 가슴 떨리는 사랑만 하는 게 아니라, 편안하게 내 고민도 얘기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Q. 하지원이라면 최원과 차서후(윤균상) 중 누굴 택했을까?
하지원 : 나라도 당연히 최원이겠지. 왜냐하면 나는 하나잖아? 하하. 내가 다니는 사우나에서 아주머니들이 차서후한테 가지 말라더라.(웃음) 그래서 내가 역으로 물어봤다. ‘원이랑 서후 중에 누가 더 좋아요?’라고. 다들 원이라고 하더라. Q. 벌써 데뷔 20여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18년이고. 20여년 가까이 연기를 해온 소감이 어떤가?
하지원 : 와, 벌써 그런가? 내가 시간 개념이 별로 없다. 나로 있는 시간이 얼마 없으니.(웃음) 나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연기를 하는 게 꼭 열차를 타고 시간 여행을 가는 느낌이다. 갔다가 돌아오고, 갔다가 돌아오고를 반복한다. 지금 나는 돌아오는 시간이겠지? 현실의 하지원으로 돌아오는 시간. 이 시간이 때로는 뭔가 심심하기도 하고, 삼난하기도 했는데 이번엔 해피엔딩이라 그런가, 마음이 무겁지는 않다. 그냥 즐기고 있다. 나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중이다.
Q. 18년차인 만큼 연예계에서도 선배가 되고, 많은 후배들이 생겼다. ‘하지원’을 롤모델로 삼는 후배들도 많아졌고.
하지원 : 갑자기 긴장하게 된다.(웃음) 후배들 생각하면 감사함과 동시에 책임감이 많이 따른다. 더 멋진 선배가 되고 싶다. 사실 나는 그대로지만, 하지원이란 배우는 작품이 쌓여감에 따라 성숙하고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후배들이 계속 날 좋아해주지 않을까? 하하.
Q. 데뷔 20여년이 믿기지 않을 만큼 동안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원 : 하하. (손사레를 치며) 아니다. 그렇게 동안 아니다. 하하하.
Q. 이번 ‘너사시’는 30대 오하나의 로맨스였다. 같은 30대로서 느낌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하지원 : 그렇지. ‘너사시’는 30대에 할 수 있는 로맨스이기에 욕심내서 연기했다. 20대 때 할 수 있는 로맨스와 30대 때 할 수 있는 로맨스는 다르니까.
Q. 아무래도 대한민국 여배우는 나이 들어감에 따라 점점 로맨스의 기회를 잃게 되는 것 같다. 여성보다는 엄마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아진다. 여배우로서 아쉽지는 않은가?
하지원 : 영화 ‘맘마미아’ 메릴 스트립은 50대 임에도 멜빵바지를 입고 설레는 로맨스를 연기한다. 40대, 50대에도 충분히 로맨스를 연기할 수 있다. 오히려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아지지 않을까? 살면서 경험과 우여곡절을 통해 인생의 이야기는 풍부해진다.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겠지. 여배우라고해서 항상 주름 없고 예쁜 역할만 할 순 없다.
Q. 이제 현실의 하지원으로 돌아올 차례다. 애정담긴 오하나를 떠나보내며 적잖이 아쉽겠다.
하지원 : 하나를 억지로 떠나보낼 생각은 없다. 그냥 천천히 두고 싶다. 언제든지 시간 열차를 타고 갈 수 있도록. (인터뷰 내내 앞에 놓여진 향초를 가리키며) 이 향이 내가 ‘너사시’ 하면서 피웠던 향이다. 언니가 조향사다. 작품 들어가기 전 항상 언니가 내 향을 만들어준다. 이게 좋은 점이 뭐냐면, 향을 통해 과거에 공간에 들어설 수 있다. 나는 지난날이 그립거나 추억이 있다면 향을 피운다. 하나도 마찬가지다. 10년 뒤에 오하나가 그립다면 이 향을 피우면 된다.
한혜리 기자 hyeri@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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