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스타들에게, 이보다 달콤한 유혹이 있을까? 방송 출연은 단기간에 폭발적인 관심을 가져다주고, 이를 성과로 연결시키고픈 바람이 간절할 것이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정식 가수로 데뷔하는 순간, 이들은 아마추어 참가자가 아닌 프로들과 어깨를 견줘야 한다. ‘프로그램 빨’을 기대하며 어설프게 발을 담갔다가는, 호되게 당하는 수가 있다.

“하려면 잘 해야 한다.”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2′ 출신의 배수정은 이 같이 말했다. 준비 없는 노 젓기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는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배수정은 데뷔 대신 공부를 택했다. 1년 간 작곡 학원에 다녔고 기획사가 아닌 작곡 팀 아이코닉스에 몸을 담았다. 덕분에 자신의 노래를 부르기까지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달 22일, 배수정은 데뷔 싱글 ‘사랑할거예요’를 발매하며, 가수로서의 출발을 알렸다.

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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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위대한 탄생(이하 위탄)’ 이후 상당히 오랜만이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나?
배수정 : ‘위탄’이 끝난 뒤 바로 영국에 갔다. 1년 동안 머무르며 회계 자격증도 마저 땄고, 작곡 공부도 시작했다. 2년 반 전 쯤 한국에 들어와 몇 군데의 소속사돠 미팅을 했다. 당시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던 터라 싱어송라이팅 쪽으로 욕심이 생겼다. 결국 아이코닉스라는 팀에 합류하게 됐고,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쓰며 작곡을 익혔다. 그러다가 점점 내 곡도 쓰기 시작했는데, 사장님이 ‘사랑할 거예요’라는 노래를 좋아하셔서(웃음) 발매하게 됐다.

Q. 학벌이 워낙 좋아 ‘엄친딸’로 불리기도 한다. “뭐 하러 가수하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을 텐데.
배수정 : 처음에는 ‘엄친딸’이라는 말도 잘 몰랐다. 아는 언니가 설명해줬는데, 되게 웃겼다. 나한테도 ‘엄친딸’이 많았거든. 사실 가수의 꿈은 계속 갖고 있었지만, 그 꿈을 잡을 용기가 안 났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공부 쪽으로 기대를 많이 하시기도 했고, 영국에선 어떻게 가수가 되는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위대한 탄생’ 출연 기회가 왔고, ‘이때다.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는 심정으로 임했다.

Q. 노래에 소질이 있다는 것은 언제, 어떻게 알았나?
배수정 : 우리 집에 한국에서 공수해 온 노래방 기계가 있었다. 부모님이 음악을 좋아하셨거든. 어머니는 비틀즈를, 아버지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셨다. 덕분에 다양한 음악을 듣고 자랐다. 아무튼, 초등학교 5~6학년 때 그 기계로 노래를 부르면서 ‘음정이 잘 맞네. 내가 노래를 할 수 있네’라는 걸 알게 됐다. 부모님께서도 ‘얘 노래 좀 한다’고 칭찬해주셨고.

Q. 공부는 이성과 논리의 영역이잖아. 반면 음악은 감성을 써야 하는 일이고. 감수성의 원천은 무엇인가?
배수정 : 그냥 인생 경험에서 오는 것 같다. 내가 가수로 데뷔하기에 좀 늦은 나이이지 않나. 그렇지만 나에게는 (데뷔 전까지의 기간이)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어렸을 땐 그냥 음정만 맞추고 기교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위탄’을 통해서 감정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인식하고 인생을 살다 보니(웃음) 그 이상의 것들이 보였다. 영국으로 돌아간 뒤에 더 다양한 음악을 들으려고도 했고. 그리고 사실, 노래에도 논리와 이성의 영역이 있다. 예를 들어 작곡을 할 때, 사람들이 주로 좋아하는 음이나 대략적인 패턴이 있다. 그냥 감정만으로는 노래를 완성할 수는 없다. 이론과 감성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춰가야 한다.

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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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바로 가수 데뷔를 하지 않고 작곡 팀을 거친 이유는 무엇인가?
배수정 : ‘위탄’을 하면서 내 노래를 써야 내 감정이 나오고, 나한테 딱 맞는 곡을 쓸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정쩡하게 곡을 써서 나올 수는 없었다. 일단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쓰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 씨스타의 ‘굿 타임’처럼 내가 안 할 것 같은, 다양한 스타일의 장르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 목소리나 감성에 맞는 곡을 쓰게 된 것 같다.

Q. 작곡이라는 게, 그냥 멜로디를 만드는 것 이상의 작업이지 않나?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을 것 같다.
배수정 : 보통은 기획사에서 작곡 팀에 원하는 스타일을 요청을 한다. 거기에 가수의 음역대나 노래하는 스타일도 함께 생각한다. 멜로디를 짤 때에도 한국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뭔가 새로운 면이 필요하다. 시장의 트렌드도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과 똑같아지는 것도 안 된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Q.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상태로 곡을 쓰니까, 나름의 장단점이 있겠다.
배수정 : 전공은 하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도 배우고 노래도 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여러 장르의 음악을 많이 듣기도 했고. 그런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많이 쌓였다. 그래도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니니, 아직 트랙은 못 쓴다. 멜로디와 가사 위주로 작업하고 있다. 트랙을 써 보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머릿속에 그림은 있는데 어떻게 손으로 옮겨야 할지 몰라 답답하다. 반면, 전공을 하지 않은 덕에 이론에 덜 구애받으며 곡을 쓰는 것 같다.

Q. 그러면 공동 작곡이라는 게, 트랙과 멜로디 작업으로 나뉘는 건가?
배수정 : 그렇기도 한데, 우리는 멜로디 작업도 두 사람 정도가 같이 한다. 멜로디를 만들 때는, 보통 후렴구의 트랙을 반복 재생 해놓고 흥얼흥얼 거리면서 아이디어를 나눈다. 그 자리에서 피드백이 바로바로 온다. 트랙만 있으면, 하루 안에 멜로디와 가사를 쓰고 가이드 녹음까지 마친다. 처음에는 속도가 빨라서 놀랐는데 이젠 적응이 됐다.

Q. 즐겨 듣는 작곡가의 노래가 있나? ‘이 사람이 쓴 곡은 내 감성과 잘 맞더라’ 하는.
배수정 : SM 송라이팅 캠프에 몇 번 들어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켄지 작곡가님을 뵀는데, 굉장히 존경스럽다. 사람이라면, 어떤 날은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고 컨디션이 안 좋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켄지 작곡가님은 꾸준히, 그리고 항상 좋은 곡을 쓰신다. 게다가 발라드, 댄스 등 다양한 노래를 쓰시잖아. 정말 최고인 것 같다. 감성적으로 잘 맞는 건, 아델이나 에드 시런 같이 소울풀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다. 그들을 보면서 싱어송라이터의 욕심이 생겼다.

Q. 곡을 쓸 때는 피아노로 작업하나?
배수정 : 그렇다. 그런데 내가 배운 건 클래식 쪽이라, 팝 스타일의 연주는 아직 부족하다. 좀 더 연습이 필요하다.

Q. 그러면 좀 더 배우고 배워서, 나중에 편곡까지 손을 댈 생각은?
배수정 : 생각은 있는데 다른 일을 많이 하다 보니…(웃음). 하려면 잘해야 하는데, 잘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팀에 워낙 잘하는 분들이 많으니 당분간은 그 분들의 힘을 빌리고, 나는 멜로디와 가사, 노래에 집중하려고 한다.

Q. 작곡가로서, 곡을 주고 싶은 뮤지션도 있나?
배수정 : 에일리. 벌써 몇 번 곡을 쓴 적도 있다. 사실 미쓰에이가 부른 ‘스턱(Stuck)’이라는 곡이, 에일리를 생각해서 쓴 노래다. 소울풀한 느낌을 넣어 만들었는데, 미쓰에이가 부르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멋진 분들이 불러주셔서 다행이다. 언젠가는 에일리와도 작업해보고 싶다.

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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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신곡 ‘사랑할 거예요’는 어떤 곡인가?
배수정 : 내 잘못으로 연인과 이별을 하게 된 거다. 그래서 다시 나를 봐달라고 하기도 어려운 상태인 거고. 체념은 했는데 미련은 남아있는 감정을 그렸다.

Q.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어줬으면 하는 포인트가 있나?
배수정 : 일단 싱어송라이터로 나온 만큼, 어색함 없이 프로 작곡가가 쓴 노래처럼 받아들이셨으면 좋겠다. 작곡가로서도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듣고 싶다.

Q. 작사는 어땠나? 한글로 가사를 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배수정 : (단숨에)어렵다. ‘사랑할 거예요’도 하루 안에 작업을 다 하려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게다가 첫 한글 가사였기도 하고. 그래도 시간적인 압박이 있으니 어떻게든 써지더라. 사실 그렇게 쓰는 게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다. 시간이 많아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되면, 뭔가 어색하고 인위적인 가사를 쓰게 된다.

Q. 요즘엔 아예 영어로만 가사를 쓰는 팀들도 있다.
배수정 : ‘사랑할 거예요’는 발라드 곡이라서, 영어를 섞으면 이상할 것 같았다. 나중에 알엔비 스타일의 곡을 내면 영어가 많이 들어갈 것 같다. 예를 들어 디아크 ‘빛’ 같은 경우에도 영어가 꽤 섞여 있다.

Q. 발라드를 택한 건 대중성 때문인가?
배수정 : 그렇다. 오랜만에 나오다 보니까 다가가기 쉬운 스타일로 접근했다.

Q. 노래를 들어보면,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의 느낌도 난다.
배수정 :그 때 케이팝을 엄청 많이 들었다. H.O.T.로 시작해서 휘성, 애즈원, 린 등 발라드를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런 감성들이 흡수가 됐나 보다.

Q. 그럼 한국 활동을 준비하면서, 이질감에 대한 걱정은 덜했겠다.
배수정 : 케이팝의 감성이 나에게 완전히 베어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도움이 됐다. 나는 싱어송라이터는 자기 색깔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케이팝의 감성을 잘 섞으면 독특한 색깔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주변 반응은 어떤가?
배수정 : 지인들은 ‘정말 네가 쓴 거냐’라고 신기해한다. 톤이 좋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아! 아는 사람의 친구 분이 이 곡의 스토리가 너무 와 닿았다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더라. 이게 음악의 힘이구나 생각했다. 반응은 전체적으로 좋은 것 같다.

Q. 대중의 반응이 향후 음악적 방향에 대한 지표가 될 수도 있을까?
배수정 : 이미 몇 곡 써놓은 게 있어서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발라드보다는 알엔비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노래하기도 더 편해서, 점점 그 쪽으로 가게 될 것 같다. 일단 지금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한다.

Q. 최근 국내에서는 자이언티나 크러쉬처럼 트렌디하고 세련된 스타일의 알엔비가 인기다. 본인은 어떤 방향은 어느 쪽인가?
배수정 : 아무래도 너무 소울풀한 음악을 하게 되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니, 크러쉬·자이언티처럼 한국적인 알엔비로 가게 될 것 같다. 고민을 더 해봐야겠다. (Q. 지금 써 놓은 곡은 어디에 가깝나?) 소울 발라드도 있고 크러쉬처럼 힙합의 느낌이 더해진 것도 있다. 진짜 미국 알앤비에 가까운 곡도 있고, 어쿠스틱 포크 쪽인 노래도 있다. 다양한 곡을 쓰려고 했다. 그 중에서 어떤 게 나올지는 아직 모르지만, 나한테 맞는 걸 찾는 과정이니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려고 한다.

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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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위탄’에서는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불렀고, 이젠 본인의 노래를 부른다. 둘이 어떻게 다른가?
배수정 : ‘위탄’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퍼포먼스 위주가 된다. 그러다 보니 노래와 무대가 살짝 안 어울릴 때도 있었던 것 같다. 1주일 안에 노래를 익혀야 하니, ‘가사 잘 외워야지. 음정 잘 맞춰야지’라는 생각이 컸다. 또 사람들마다 원하는 게 하도 많고 각각 달라서, 그걸 맞추는 데 에너지를 다 썼다. 이제는 내 노래고, 가사 암기 보다는 감정 표현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심사위원들도 없고(웃음).

Q. 심사위원은 없지만 음원 차트라는 게 있잖아. 순위에는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가?
배수정 : 데뷔부터 확 뜰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차트 순위보다는 ‘이런 가수가 있다’ ‘재능이 있다’ ‘ 노래가 좋다’ 정도의 인식만 심어졌으면 한다. 다행히 ‘복면가왕’ ‘라디오스타’가 도움이 많이 됐다. 회사 입장은 잘 모르겠지만(웃음) 개인적으로는 만족한다. 앞으로가 중요하겠지.

Q. ‘복면가왕’ ‘라디오스타’ 출연 이후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에도 올랐다. 기분이 어땠나?
배수정 : 영국에서는 실검이라는 게 없다. 내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게, 진짜가 아닌 것 같았다. 신기했다. 사실 평소에는 밖에서 나를 알아보는 분들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방송에 한 번 나가고 나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검색을 하시더라. 새삼 방송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Q. 실검의 부작용도 있다. 상당히 자극적인 기사가 많이 나온다는 거다. 그런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는 됐는가?
배수정 : 솔직히 말하자면, 인터넷을 잘 안 보려고 한다. 일단 악플을 읽으면, 그게 다른 아티스트를 향한 것이라도 기분이 안 좋아진다. 90%의 좋은 말이 있더라도, 10%의 악플을 보게 되면 그것만 생각나지 않나. 그래서 잘 안 보려고 한다. 아무래도 런던 올림픽 당시 얘기가 많이 나오곤 하는데, 처음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다. 어떻게 보면 그 때부터 지금까지 활동한 게 없으니, 내 과거 이력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열심히 활동하면, 커리어에 관련된 내용으로 기사가 채워지지 않을까.

Q. 얼마 전에는 버스킹 공연을 했다. 어땠나?
배수정 : 재밌었다. 내가 버스킹을 하는 대부분의 가수들과는 스타일이 좀 다르지 않나. 그래서 ‘어? 쟤 뭐지?’라는 반응이 있었던 것 같다. ‘L.O.V.E’나 ‘배배(BAE BAE)’ 같은 곡도 새로 편곡해서 불렀는데, 그런 노래를 들으시고 특이하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다. 첫날에는 MC가 관객들에게 3행시를 시켰다. 제일 좋았던 삼행시를 뽑아서 그 분에게 CD도 드렸다. 마침 그 때 뽑혔던 분과 그 친구들이 기타를 연주하시던 분들이라, 즉석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거기에 맞춰 노래도 불렀다. 신기하고 짜릿했다. 관객들과 직접 얘기를 나누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Q. 이제 첫 걸음을 내딛은 셈이다. 앞으로 어떤 가수가 되고 싶나?
배수정 : 좋은 음악인. 예능보다는 진짜 음악으로 알려졌으면 한다. 뛰어난 가창력 말고도, 뭔가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 하잖아. 그걸 어떻게 배워야 하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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