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2015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하 펜타포트)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7일부터 9일까지 총 3일간 이어진 이번 공연에는 전 세계 80여 개의 팀들이 참여해 뜨거운 무대를 꾸몄다. 특히 올해는 펜타포트가 개최 10주년을 맞이하는 해. 그간 명실 공히 대한민국 대표 록 페스티벌로 자리매김해온 펜타포트는, 영국 매체 타임아웃에도 소개되는 등 그 위상을 세계로 떨치고 있다.
[10현장] ‘2015 펜타포트’ 뛰고 흔들고 노래하라!
첫째 날, 금요일은 밤이 좋아

30여 년 전 쯤, 가수 김종찬은 ‘토요일은 밤이 좋아’라는 노래를 불렀다. 방송인 강호동은 모 프로그램에서 “신나는 토요일 불타는 이 밤”이라는 고정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은혜로운 주5일제의 실행과 함께, 이제 우리는 ‘불금’을 이야기하게 됐다.

지난 7일, 펜타포트에서 보낸 금요일은 ‘불’이라기보다는 ‘마그마’에 가까웠다. 이날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무려 34도까지 올라갔고, 급기야는 올해 첫 폭염 경보가 발령됐다. 때문에 공연장을 찾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더욱 솔직하게 말하자면, 울며 겨자 먹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새벽 2시, 숙소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는 정 반대의 생각이 들었다. ‘안 오면 어쩔 뻔했어!’

오후 9시 느지막이 공연장에 도착했다. 멀리서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가 들려와 마음이 다급해졌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고(故) 신해철을 생각하며 잠시 울적한 기분이 들 때 쯤, 우렁찬 브라스 연주와 함께 ‘그대에게’가 이어졌다. 내적 댄스가 폭발하던 순간. 말 그대로 축제의 장이었다.

올해로 개최 10주년을 맞이한 만큼, 3일 내내 굵직한 아티스트들이 헤드라이너로 출격했다. 첫날의 주인공은 록의 전설 스콜피언스. 지난 1965년 팀을 꾸린 이들은, 올해 결성 50주년을 맞았다. 원숙미와 열정이 고루 섞인 무대가 90여 분 간 펼쳐졌고 관객들은 뜀박질과 떼창, 뜨거운 눈물로 연주에 화답했다.

록의 여운을 떨치지 못한 관객들은 이어 신한카드 무대로 향했다. 한국 메탈의 조상님 디아블로를 만날 수 있는 곳. 멤버들은 장발과 가죽 재킷으로 무장, 록커의 정석 같은 모습으로 관객들을 맞았다. 넓지 않은 무대였지만 미치광이처럼 뛰고 놀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묵직한 기타와 드럼, 시원한 그로울링이 사정없이 이어졌다.

새벽 늦게까지 이어진 디제잉 공연은 펜타포트의 별미 메뉴였다. 타쿠 타카하시, 에어믹스(airmix), 바리오닉스(baryonyx), 바가지 바이펙스써틴(bagagee viphex13), DJ피치에이드(DJ peach ade) 등 총 다섯 팀이 무대에 올라 마지막 열기를 불태웠다. 해드뱅잉부터 클럽댄스, 막춤까지 온갖 종류의 춤사위가 한 데 모인 자리였다.

둘째 날, 비가 오지 않으면 펜타포트가 아니에요
윈디시티
윈디시티
더워서 죽는 것도 가능하겠다 생각했을 즈음, 반가운 비소식이 들려왔다. 그래. 비가 오지 않으면 펜타포트가 아니지! 비구름이 몰고 온 강바람에, 우산은 고물이 되고 비옷은 걸레짝이 됐지만, 덕분에 더위도 함께 날아갔다.

둘째 날 공연은 잔나비를 필두로 아시안체어샷, 소란, 셰퍼드, 김반장과 윈디시티, 김사랑, 에고래핑, 스완키덩크, 피아, 이승열, 더 쿡스, 10센치 그리고 서태지밴드가 무대를 꾸몄다. 공연 초반 궂은 날씨로 인해 뮤지션은 물론, 스태프와 관객들도 꽤나 애를 먹었지만 덕분에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가 새겨졌다.

김반장과 윈디시티의 차례가 되자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날씨가 갰다. 바람이 휩쓸고 간 자리를 김반장의 레게소울이 진하게 채웠다. 특히 이들의 무대에는 사랑과 평화의 이철호가 깜짝 등장했다. 그의 지휘를 따라 “행복은 내 마음 속에 있어”라고 목청껏 노래하니, 마음속엔 어느새 사랑과 평화가 자리했다.

김사랑과 에고래핑은 강렬한 무대를 선사했다. 김사랑을 처음 본 듯한 어느 여성 관객은 연신 “섹시하다”며 감탄을 늘어놨다. 반대로 김사랑을 오래 보아온 듯한 남성관객은 “얼마나 잘 컸는지 보러왔다”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서 건너 온 에고래핑은 서투른 한국말로 엄마 미소를 유발했다. 그러나 노래가 시작되자, 멘트를 할 때의 어리바리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날카로운 보컬이 사방으로 뻗어나갔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춤에선 상당한 에너지가 뿜어졌다.
서태지
서태지
피아의 공연에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무대 위 모니터에 불이 붙은 것. 말로만 이야기하던 ‘열기’가 물리적인 ‘불’이 되어 나타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보컬 옥요한은 “사전에 준비된 퍼포먼스다”고 너스레를 떨며 관객들을 진정시켰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광경은 바로 무지개. 객석을 향해 뿌린 물세례가 일곱 빛깔 무지개를 만들어냈다. 헤비메탈 밴드 피아와 맑고 깨끗한 무지개가 묘한 조화를 이뤘다.

이승열의 무대는 신보 ‘SYX’ 위주로 채워졌다. 유영하듯 유유히 흐르던 멜로디에 자연스레 몸이 움직였다. 여유롭게 즐겼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잘생긴 그의 외모가 선글라스에 가려졌던 것이 다소 아쉬웠으나, 시간을 확인하며 씨익 미소 짓던 얼굴은 ‘심쿵’을 부르기에 충분했다.

이어 무대를 꾸민 더 쿡스는, 펜타포트를 통해 한국 관객들과 처음 만났다. 팬들은 ‘나이브(Naive)’ 떼창으로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팝의 느낌이 더해진 경쾌한 음악이 선선한 저녁날씨와 퍽 잘 어울렸다. 반면 10센치는 인디 계의 아이돌이라고 불릴 만큼 대중과의 친밀도를 자랑하는 그룹. 거의 모든 곡에서 떼창이 터져 나왔다. 10센치는 “우리 음악이 펜타포트와 잘 어울리는지 모르겠다”면서도 “내년에는 더 늦은 시간(마지막 공연)에 서고 싶다”고 야망(?)을 드러냈다.

마지막 서태지밴드의 무대는, 아마 가장 많은 이들의 관심사였을 테다. 공연장 곳곳에 서태지의 이름이 적힌 깃발들이 나부꼈고 티셔츠를 맞춰 입은 팬들도 눈에 띄었다. 록과 댄스, 힙합을 오가는 서태지식 하이브리드 음악은, 그가 어떻게 전설이 되었는지를 입증했다. 현장의 분위기가 어찌나 열광적이었던지 땅이 쿵쿵 울리기까지 했다. 앙코르는 없었으나 관객들은 한참동안 공연장을 떠나지 못했다.

셋째 날, 출근 걱정은 뒤로 하고
펜타포트
펜타포트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일요일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매 시간 가까워지는 출근의 압박 때문. 그러나 펜타포트 현장에서는 월요일에 대한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날 비가 왔던 덕분인지 하루 종일 선선한 날씨가 이어졌다. 심지어는 하루 중 가장 덥다는 2시 무렵에도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리플렉스와 레이븐의 뒤를 이어 무대에 오른 넘버원코리아&사우스카니발은 이국적인 음악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특히 제주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서울은 촌스럽게 록 음악을 좋아하냐. 제주도에서는 월드뮤직을 듣는다”는 도발로 자신을 소개하며 색다른 인상을 남겼다.

퓨처 팝 밴드 솔루션스는 작열하던 태양과 무척 잘 어울렸다. 댄서블한 음악과 보컬 박솔의 청량한 목소리는 한줄기 바람처럼 상쾌했다. 관객들은 덥고 싶어 안달 난 것 마냥 시종 뜀박질을 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땀을 흘렸다. 이 정도면 더 늦은 시간대의 공연을 욕심낼 만 하겠지만, 그래도 역시 솔루션스의 음악은 태양 아래서 듣는 것이 최고였다.

선우정아는 최근 가장 큰 주목을 받는 뮤지션답게 강한 카리스마로 관객들을 휘어잡았다. 마녀 같은 음색과 거침없는 가창이 재즈와 록을 넘나들었다. 그는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을 통해 우울한 감성을 노래하다가도 ‘봄처녀’에서는 숨겨온 록 스피릿을 발산했다. 신고 있던 신발마저 벗어던지고 맨발로 무대에 선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국의 애시드 재즈 밴드 마마스 건도 이날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끊임없이 객석에 말을 던지고 호응을 유도하며 적극적인 소통에 나섰다. 보컬 앤디 플랫츠는 “안녕하세요”나 “사랑해요”가 아닌 “소리 질러”라는 말을 한국어로 외쳐 관객들의 환호를 샀다. 보컬 레슨에 가까운 떼창 연습도 무척 즐거웠다.
펜타포트
펜타포트
메인 스테이지로 걸음을 옮기니 크래쉬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크래쉬는 한국 헤비메탈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밴드. 묵직한 기타가 현장을 가득 메웠다. “가운데에 자리를 비워 달라”는 안흥찬의 요청이 떨어지자마자 객석엔 긴 복도가 생겼고 이곳은 곧 슬램의 장이 됐다. 당시 안흥찬이 했던 말이 마치 그들의 음악을 설명하는 듯 했다. “앞으로 뛰쳐나가는 거야. 인생은 그렇게 사는 거거든.”

이후에도 쏜애플, YB, 뮤가 강렬한 음악을 선보였다. 이날 마지막 공연은 프로디지가 꾸몄다. 프로디지의 이번 펜타포트 출연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지난 1999년 트라이포트 페스티벌(펜타포트의 전신) 당시 이들의 공연이 예정돼 있었으나, 폭우로 인해 무대에 서지 못했던 것. 16년 만의 한풀이가 드디어 이루어진 셈이다.

주최 측은 3일 간의 공연 동안 최대 12만 명의 관객이 모였던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10만 명보다 많은 수이자 역대 최다 수치. 폭염과 비바람도, 록 스피릿을 꺾지 못했다. 뛰고 흔들고 노래 부르며, 모든 관객들의 근심과 슬픔이 날아가 버렸기를 부디 희망한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예스컴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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