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이정재: “인생을 살면서 누구에게나 몇 번의 슬럼프는 온다. 당시에야 내가 어떻게 되는 게 아닌가 싶고, 하늘이 꺼지는 것 같지.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어? 꺼질 줄 알았던 하늘이 그대로네’를 알게 된다. 연륜이 쌓인다는 말이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게, 인생인거다.” (2012년 ‘무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전의 이정재는 다양한 캐릭터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젊은 남자’ 같아 보였다. 그러니까 배역을 아무리 갈아입어도 변하지 않는 어떠한 ‘고정된 연기 톤’이 있었다. 그것이 변화의 시기를 놓치고 그대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식상하게 다가온 면이 없지 않았다. 그랬던 이정재가 최근 다르게 보이는 것은 캐릭터 덕분이라기보다는 스스로가 자신의 이미지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조율하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자신이 지닌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거나 끌어안으려 하기보다는, 핵심을 간파하고 즐길 줄 아는 모습에서 비로소 대중의 신뢰를 이끌어낸 것이다. “잘 관리한 40대 남자가 제일 멋있어 보인다”고 말한 이정재의 그렇게 40대를 통과하는 중이다. 하용수: 이정재를 연예계로 이끈 인물. 재수 시절 이정재는 밤엔 신사동 디자인 학원을 다니고, 낮엔 압구정 카페에서서빙을 했다. 신이 주신 타고난 외모는 그가 나르던 팥빙수 보다 손님들에게 더 매혹적이었을 것이다. 연예 에이전트이자 디자이너 하용수는 그런 이정재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한 달에 아르바이트비로 38만 원을 받던 이정재는 하용수의 소개로 일당 20만 원을 받는 모델 일에 뛰어들었다. 기회는 빨리 왔다. 이정재는 한 잡지 화보 모델이 펑크를 낸 자리에 대타로 긴급 기용됐는데, 상대는 톱모델 박영선이었다. 박영선과 함께 찍은 사진은 업계에 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후 초콜릿 광고를 통해 X세대를 대표하는 얼굴이 됐고,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안방극장에 데뷔했다. 모든 게 1년 안에 일어난 일이다.
배창호: 영화 ‘젊은 남자’(1999)의 감독. ‘공룡선생’에 출연했을 뿐 스크린에서는 무명이었던 그를 ‘젊은 남자’ 주연으로 과감하게 캐스팅 한 것은 배창호 감독이었다. 성공과 욕망을 위해 내달리는 3류 모델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에서 이정재는 곧 이한이었고, 이한이 곧 이정재 같았다. ‘젊은 남자’를 통해 이정재는 제33회 대종상, 16회 청룡영화상, 15회 영평상, 31회 한국백상예술대상 신인남우상을 휩쓸었다. .
고현정: ‘모래시계’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귀가시계라 불렸던 드라마 ‘모래시계’(1995)에서 보디가드 백재희로 분한 이정재는 말이 없었다. 그저 사랑하는 여인(고현정)을 한 발짝 뒤에서 조용히 지켜내고,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까지 묵묵히 바라보다가, 급기야 그녀를 위해 장렬히 전사했다. 이정재는 ‘말’보다 호소력 있는 것은 ‘몸의 언어’임을 보여주며 전국 여성들의 잠들어 있는 연애세포를 깨웠다. ‘모래시계’가 끝났을 때 이정재는 언론과 광고주와 대중이 가장 주목하는 배우가 돼 있었다. 이정재가 연기한 백재희는 대한민국 드라마/영화 속 보디가드의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
정우성: (이쯤이면) 이정재의 소울 메이트? 이정재와 정우성은 ‘태양은 없다’(1998)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태양은 없다’는 ‘정사’를 통해 다시 한 번 도약한 이정재와 ‘비트’로 청춘의 아이콘이 된 정우성의 만남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작품. 권투가 전부인 삼류복서 도철(정우성)과 흥신소에서 폼나게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기꾼 홍기(이정재)의 우정은 스크린 밖으로 이어졌다. 흥신소 사장이 홍기를 해고하자 “저도 그만둘래요!”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도철의 모습에는 현실의 이정재와 정우성이 투영돼 있다. 영화 촬영이 끝난 뒤에도 두 사람은 꾸준히 연락하며 우정을 나눴고, 지금은 명실상부한 영화계 ‘절친’으로 불린다.
장동건: 이정재 정우성 등과 함께 90년대를 대표한 청춘스타. 일찍이 정상의 인기를 맛본 이정재는 ‘태양은 없다’ 이후 예술영화에도 눈길을 돌렸다.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함이었다. ‘이재수의 난’(1998)과 ‘순애보’(2000)는 그러한 선택의 산물이었다. 특히 그의 작품선택은 장르를 불허했는데, ‘모래시계’ 백재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긴 시간 고군분투했던 그는 배우를 옭아매는 이미지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고 있었다. 도전이라 불릴만한 의외의 선택들이 이어진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성과 작품의 운이 늘 함께한 건 아니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정재에게 침체기가 찾아온다. 이정재에게 장동건과 함께 한 대작 블록버스터 ‘태풍’(2005)의 흥행실패는 특히 뼈아팠다 이후 5년여 간의 정체기. 이정재 스스로가 슬럼프라 부르는 암흑기가 찾아온다.
전도연: ‘하녀’에서 함께 한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 ‘1724 기방난동사건’(2008)과 드라마 ‘트리플’(2009) 등이 연이어 무너지면서 이정재는 ‘이제 한물갔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기회는 늘 의외의 곳에서 찾아오는 법. 2010년, 이정재는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선택했다. 조연에 가까운 비중도 비중이지만, 그가 연기할 훈이라는 인물은 결코 호감이 가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기존에 지니고 있던 고급스러운 이미지마저 훼손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정재는 욕정과 허세와 잔혹함과 기품을 동시에 두른 훈을 농밀하게 연기해내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하녀’는 이정재에게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
수양대군: ‘관상’에서 이정재가 연기한 캐릭터. ‘하녀’를 통해 운신의 폭을 넓히고, ‘도둑들’(2012)로 연기를 즐기고, ‘신세계’(2013)로 무게를 더한 이정재는 ‘관상’(2013)에 이르러 배우로서의 농밀함과 카리스마가 짙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관상’에서 슬로우 모션으로 걸어 들어오는 그의 첫 등장 씬은 CD로 따로 구워서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멋들어진다. 주목할 지점은 ‘하녀’ ‘도둑들’ ‘관상’에서 이정재가 구사한 전력이다. 그는 데뷔 때부터 줄곧 주연이었다. 하지만 이들 영화에서 이정재는 한발 물러나 있다. 이제 그는 비중보다 캐릭터를 살피고, 부분보다 전체를 본다. 그렇게 90년대를 주름잡던 ‘스타’는 진짜 ‘배우’가 됐다.
임세령: 대상그룹 상무, 그리고 이정재의 여자. 2015년 1월 1일, 새벽백두부터 세상은 이들로 인해 뜨거웠다. 인기 톱스타와 재벌 3세의 만남. 영화에서 볼 법한 일이 현실로 일어나자, 대중의 관심과 호기심은 치솟았다. 임세령이 입고 다니는 옷, 차종, 살고 있는 집 시세까지 일거수일투족이 포털사이트 연예면을 도배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5년 시작됐는데, 임세령이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과 2009년 이혼한 후 가까워 졌다는 후문. 이정재는 그 해 9월 대상그룹의 ‘청정원’ CF 모델로 낙점되기도 했다. 이후 두 사람은 수차례 열애설에 휩싸였지만 그때마다 “친구일 뿐”이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열애를 공식화하면서 2015년 공식 커플 1호로 등극했다.
최동훈: ‘도둑들’ ‘암살’을 함께 한 감독. 사실 최동훈 감독과 이정재는 더 일찍 만날 수 있었다.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004) 때 말이다. 하지만 레스토랑과 양복 브랜드 사업으로 한창 바빴던 이정재는 당시 출연제안이 들어온 작품의 대부분을 고사했고, ‘범죄의 재구성’은 그 중 하나였다. 이후 최동훈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정재와 함께 작업을 하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피력했는데 이는 ‘도둑들’에서 성사됐다. ‘도둑들’에서의 만남은 두 사람 모두에게 근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최동훈은 천만 흥행을 기록한 이 영화를 통해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오락영화 감독임을 증명했고, 이정재는 탐욕, 사랑, 배신이 뒤범벅된 뽀빠이 캐릭터를 통해 관객의 마음을 훔치며 침체기에서 벗어났다. 이정재가 ‘암살’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출연을 결정한 것도 ‘도둑들’에서 확인한 최동훈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 ‘암살’에서 두 얼굴의 남자 ‘염석진’으로 분한 이정재는 20대 청년부터 60대 노인까지 약 40년을 아우르는 연기를 선보이며 호평 받는 중이다. 이정재의 차기작은 한중합작영화 ‘역전의 날’이다. 그의 무대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이전의 이정재는 다양한 캐릭터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젊은 남자’ 같아 보였다. 그러니까 배역을 아무리 갈아입어도 변하지 않는 어떠한 ‘고정된 연기 톤’이 있었다. 그것이 변화의 시기를 놓치고 그대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식상하게 다가온 면이 없지 않았다. 그랬던 이정재가 최근 다르게 보이는 것은 캐릭터 덕분이라기보다는 스스로가 자신의 이미지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조율하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자신이 지닌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거나 끌어안으려 하기보다는, 핵심을 간파하고 즐길 줄 아는 모습에서 비로소 대중의 신뢰를 이끌어낸 것이다. “잘 관리한 40대 남자가 제일 멋있어 보인다”고 말한 이정재의 그렇게 40대를 통과하는 중이다. 하용수: 이정재를 연예계로 이끈 인물. 재수 시절 이정재는 밤엔 신사동 디자인 학원을 다니고, 낮엔 압구정 카페에서서빙을 했다. 신이 주신 타고난 외모는 그가 나르던 팥빙수 보다 손님들에게 더 매혹적이었을 것이다. 연예 에이전트이자 디자이너 하용수는 그런 이정재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한 달에 아르바이트비로 38만 원을 받던 이정재는 하용수의 소개로 일당 20만 원을 받는 모델 일에 뛰어들었다. 기회는 빨리 왔다. 이정재는 한 잡지 화보 모델이 펑크를 낸 자리에 대타로 긴급 기용됐는데, 상대는 톱모델 박영선이었다. 박영선과 함께 찍은 사진은 업계에 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후 초콜릿 광고를 통해 X세대를 대표하는 얼굴이 됐고,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안방극장에 데뷔했다. 모든 게 1년 안에 일어난 일이다.
배창호: 영화 ‘젊은 남자’(1999)의 감독. ‘공룡선생’에 출연했을 뿐 스크린에서는 무명이었던 그를 ‘젊은 남자’ 주연으로 과감하게 캐스팅 한 것은 배창호 감독이었다. 성공과 욕망을 위해 내달리는 3류 모델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에서 이정재는 곧 이한이었고, 이한이 곧 이정재 같았다. ‘젊은 남자’를 통해 이정재는 제33회 대종상, 16회 청룡영화상, 15회 영평상, 31회 한국백상예술대상 신인남우상을 휩쓸었다. .
고현정: ‘모래시계’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귀가시계라 불렸던 드라마 ‘모래시계’(1995)에서 보디가드 백재희로 분한 이정재는 말이 없었다. 그저 사랑하는 여인(고현정)을 한 발짝 뒤에서 조용히 지켜내고,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까지 묵묵히 바라보다가, 급기야 그녀를 위해 장렬히 전사했다. 이정재는 ‘말’보다 호소력 있는 것은 ‘몸의 언어’임을 보여주며 전국 여성들의 잠들어 있는 연애세포를 깨웠다. ‘모래시계’가 끝났을 때 이정재는 언론과 광고주와 대중이 가장 주목하는 배우가 돼 있었다. 이정재가 연기한 백재희는 대한민국 드라마/영화 속 보디가드의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
정우성: (이쯤이면) 이정재의 소울 메이트? 이정재와 정우성은 ‘태양은 없다’(1998)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태양은 없다’는 ‘정사’를 통해 다시 한 번 도약한 이정재와 ‘비트’로 청춘의 아이콘이 된 정우성의 만남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작품. 권투가 전부인 삼류복서 도철(정우성)과 흥신소에서 폼나게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기꾼 홍기(이정재)의 우정은 스크린 밖으로 이어졌다. 흥신소 사장이 홍기를 해고하자 “저도 그만둘래요!”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도철의 모습에는 현실의 이정재와 정우성이 투영돼 있다. 영화 촬영이 끝난 뒤에도 두 사람은 꾸준히 연락하며 우정을 나눴고, 지금은 명실상부한 영화계 ‘절친’으로 불린다.
장동건: 이정재 정우성 등과 함께 90년대를 대표한 청춘스타. 일찍이 정상의 인기를 맛본 이정재는 ‘태양은 없다’ 이후 예술영화에도 눈길을 돌렸다.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함이었다. ‘이재수의 난’(1998)과 ‘순애보’(2000)는 그러한 선택의 산물이었다. 특히 그의 작품선택은 장르를 불허했는데, ‘모래시계’ 백재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긴 시간 고군분투했던 그는 배우를 옭아매는 이미지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고 있었다. 도전이라 불릴만한 의외의 선택들이 이어진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성과 작품의 운이 늘 함께한 건 아니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정재에게 침체기가 찾아온다. 이정재에게 장동건과 함께 한 대작 블록버스터 ‘태풍’(2005)의 흥행실패는 특히 뼈아팠다 이후 5년여 간의 정체기. 이정재 스스로가 슬럼프라 부르는 암흑기가 찾아온다.
전도연: ‘하녀’에서 함께 한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 ‘1724 기방난동사건’(2008)과 드라마 ‘트리플’(2009) 등이 연이어 무너지면서 이정재는 ‘이제 한물갔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기회는 늘 의외의 곳에서 찾아오는 법. 2010년, 이정재는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선택했다. 조연에 가까운 비중도 비중이지만, 그가 연기할 훈이라는 인물은 결코 호감이 가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기존에 지니고 있던 고급스러운 이미지마저 훼손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정재는 욕정과 허세와 잔혹함과 기품을 동시에 두른 훈을 농밀하게 연기해내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하녀’는 이정재에게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
수양대군: ‘관상’에서 이정재가 연기한 캐릭터. ‘하녀’를 통해 운신의 폭을 넓히고, ‘도둑들’(2012)로 연기를 즐기고, ‘신세계’(2013)로 무게를 더한 이정재는 ‘관상’(2013)에 이르러 배우로서의 농밀함과 카리스마가 짙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관상’에서 슬로우 모션으로 걸어 들어오는 그의 첫 등장 씬은 CD로 따로 구워서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멋들어진다. 주목할 지점은 ‘하녀’ ‘도둑들’ ‘관상’에서 이정재가 구사한 전력이다. 그는 데뷔 때부터 줄곧 주연이었다. 하지만 이들 영화에서 이정재는 한발 물러나 있다. 이제 그는 비중보다 캐릭터를 살피고, 부분보다 전체를 본다. 그렇게 90년대를 주름잡던 ‘스타’는 진짜 ‘배우’가 됐다.
임세령: 대상그룹 상무, 그리고 이정재의 여자. 2015년 1월 1일, 새벽백두부터 세상은 이들로 인해 뜨거웠다. 인기 톱스타와 재벌 3세의 만남. 영화에서 볼 법한 일이 현실로 일어나자, 대중의 관심과 호기심은 치솟았다. 임세령이 입고 다니는 옷, 차종, 살고 있는 집 시세까지 일거수일투족이 포털사이트 연예면을 도배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5년 시작됐는데, 임세령이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과 2009년 이혼한 후 가까워 졌다는 후문. 이정재는 그 해 9월 대상그룹의 ‘청정원’ CF 모델로 낙점되기도 했다. 이후 두 사람은 수차례 열애설에 휩싸였지만 그때마다 “친구일 뿐”이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열애를 공식화하면서 2015년 공식 커플 1호로 등극했다.
최동훈: ‘도둑들’ ‘암살’을 함께 한 감독. 사실 최동훈 감독과 이정재는 더 일찍 만날 수 있었다.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004) 때 말이다. 하지만 레스토랑과 양복 브랜드 사업으로 한창 바빴던 이정재는 당시 출연제안이 들어온 작품의 대부분을 고사했고, ‘범죄의 재구성’은 그 중 하나였다. 이후 최동훈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정재와 함께 작업을 하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피력했는데 이는 ‘도둑들’에서 성사됐다. ‘도둑들’에서의 만남은 두 사람 모두에게 근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최동훈은 천만 흥행을 기록한 이 영화를 통해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오락영화 감독임을 증명했고, 이정재는 탐욕, 사랑, 배신이 뒤범벅된 뽀빠이 캐릭터를 통해 관객의 마음을 훔치며 침체기에서 벗어났다. 이정재가 ‘암살’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출연을 결정한 것도 ‘도둑들’에서 확인한 최동훈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 ‘암살’에서 두 얼굴의 남자 ‘염석진’으로 분한 이정재는 20대 청년부터 60대 노인까지 약 40년을 아우르는 연기를 선보이며 호평 받는 중이다. 이정재의 차기작은 한중합작영화 ‘역전의 날’이다. 그의 무대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Who is next
이정재가 영화 ‘관상’ 에서 호흡을 맞춘 김혜수가 드라마 ‘사랑과 결혼’에서 함께 한 김희애
정시우 기자 siwoorain@tenaisa.co.kr
사진. 텐아시아DB, 씨제스 엔터테언먼트, 대상그룹, 하용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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