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영화 등 대중문화의 각 영역 중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가요계에서 오랜 시간 동안 변화에 대응하며 히트곡 메이커 자리하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변화에 민감한 한국 대중음악계는 하나의 히트곡이 나오면 비슷한 곡이 연달이 발표되는 등 쏠림 현상이 많고 히트곡의 주기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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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멜론이 지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간의 히트곡 톱100을 분석한 ‘2000년대 가요 연대차트 톱100′ 자료에 따르면, 해당 기간에 가장 많은 히트곡을 낸 작곡가는 박근태(9곡) 박진영(8곡) 김도훈(7곡) 순이다. (2010년~2015년 집계는 연간 톱100 참조)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변화하는 음악 트렌드에 적극 대응, 대중과 교감하면서 롱런하는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굳혀오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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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의 ‘백일째 만남'(1994)으로 대중가요 작곡가로 데뷔한 박근태는 1990년대 소찬휘의 ‘헤어지는 기회'(1995) 젝스키스 ‘폼생폼사'(1997) 에코 ‘행복한 나를'(1997) 등을 통해 90년대 가요계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로 자리잡는다.
특히 1997년 ‘폼생폼사’부터 현재까지 2013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모든 해에 톱100 순위에 자신의 곡을 올려놓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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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2009년까지 10년간의 히트곡을 총망라한 2000년대 톱100 순위에서는 성시경의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14위) 양파의 ‘사랑…그게 뭔데'(23위) 브라운아이드소울의 ‘정말 사랑했을까’ 인순이&조피디의 ‘친구여'(31위) 백지영의 ‘사랑 안해'(62위) 아이비의 ‘이럴거면'(33위) ‘유혹의 소나타'(88위) 등 총 9곡을 순위에 올렸다.
이후 2010년대에도 그는 매년 톱100 차트에서 아이유의 ‘하루끝'(9위, 2012년) 이선희의 ‘그 중에 그대를 만나'(13위, 2014년) 등을 모두 100위 안에 안착시키는 등 22년차 작곡가의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박근태의 미덕은 무엇보다 꾸준함 속에서도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데 있다. 20여년의 시간 동안 그는 다작에 치중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변주해가는 노력 끝에 전 장르의 히트곡을 보유한 작곡가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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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이자 JYP엔터테인먼트의 수장, 때로는 영화배우로까지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진영도 2000년대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다. 1993년 ‘날 떠나지마’로 데뷔, 초반에는 ‘날 떠나지 마’ ‘허니’ 등 자신의 곡을 직접 쓰는 것에서 출발해 진주, 박지윤, 엄정화 등의 가수를 프로듀싱하면서 작곡가로도 명성을 높였다.
2000년대 톱100 순위에서 그는 원더걸스의 ‘소 핫'(So Hot, 10위) ‘텔 미'(tell me, 12위) ‘노바디'(Nobody, 32위) god의 ‘거짓말'(11위) ‘보통날'(85위)에 이어 이기찬의 ‘또 한번 사랑은 가고'(35위) 비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59위) 2PM의 ‘하트비트'(HEARTBEAT) 등 주로 자신이 프로듀싱한 가수들의 곡을 100위 안에 올렸다. 박진영은 특히 가요계에 ‘후크송'(짧은 후렴구에 반복된 가사를 위주로 한 음악)을 대중화한 작곡가로도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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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강변가요제 입선 후 1998년 장혜진의 ‘영원으로’의 편곡가로 데뷔한 김도훈은 SES의 ‘저스트 어 필링(Just A Feeling)’으로 본격적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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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중적인 감성을 잘 담아내는 작곡가로도 사랑받고 있는 그는 2010년 씨엔블루의 ‘외톨이야’가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갑론을박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최고 히트곡인 소유&정기고의 ‘썸’에 이어 올해 마마무의 ‘음오아예’ 등으로 다시금 전성기가 도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혜리 기자 hyeri@
사진. (주)RBW, 박근태 블로그, JYP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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