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1)
전지현(1)
[텐아시아=정시우 기자]스타일 아이콘, CF 퀸, 원조 테크노 여신, 어마어마한 쌍년 그럼에도 매혹적인! 사실 이 모든 수식어가 필요 없을지 모르겠다. 전지현은 전지현이라는 이름 자체로 전지현이니까. 18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 그것도 국내에서는 드문 여자가 중심인 텐트폴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전지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암살’에서 전지현은 조국의 운명을 짊어진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으로 분해 스크린을 장악한다. 특히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펼치는 복수의 혈극은 캡처해서 개인 컴퓨터에 보관해 두고 싶을 정도로 멋들어진 명장면. ‘킬빌’의 우마 서먼 ‘툼 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 같은 여전사 캐릭터가 국내에는 왜 없냐는 볼멘소리는 이제 사라져도 되지 않을까.

Q. 시나리오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암살’ 출연을 결정했다고. 작품에 대한 일말의 의심도 없었나.
전지현: 없었다. 왜냐하면 최동훈 감독님을 너무 좋아하니까. 감독님과는 여러 가지로 잘 맞는다. ‘도둑들’ 작업할 때 내가 좋으면 감독님도 좋고, 내가 싫으면 감독님도 싫은 경우가 많았다. 하물며 ‘이건 좀 삼각형인데?’ ‘애매한데’ 싶은 것들까지 통했다. 그럴 때 배우로서 감독과 뭔가 공감대를 이뤘다는 희열을 느꼈다. 배우라면 누구나 그런 느낌을 원한다. 최동훈 감독님과 함께하면 그게 가능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된 거다. 그래서 감독님이 ‘암살’을 제안해 주셨을 때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Q. 180억 원이 투입된 대작, 그것도 국내에서는 드문 여자 주인공 중심의 영화다. 부담과 기대가 교차했을 것 같다.
전지현: 한국영화에서 이런 캐릭터가 나오기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잘 하고 싶었다. 나에게 기회라고 생각했다. 또 안옥윤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뭐랄까. 내가 그 캐릭터에 흠집이 되기 싫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연기했다.
전지현(2)
전지현(2)
Q. ‘도둑들’때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최동훈 감독이 전지현의 잃어버린 10년을 찾아줬다’는 이야기. 그런 감독에 대한 믿음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전지현: 없지 않다. ‘도둑들’ 촬영 초반 무렵이었다. 감독님이 갑자기 달려오시더니 “지현 씨, 숨도 쉬지 말고 연기하세요!”라고 했다. 처음에는 ‘뭐지?’ 싶었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곰곰이 생각했다. 뒤늦게, 내가 대사 중간 중간에 늘 뭔가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런 내 습관을 ‘숨 쉬지 말라’는 표현으로 잡아주신 거다.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연기를 한 후 모니터를 보니까, 연기에 군더더기가 없어진 느낌이 들었다. 연기가 깔끔하게 흘러갔다. 감독님 덕분에 패턴화 된 연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거다.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커졌다.

Q. ‘암살’을 통해 한 단계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겠다.
전지현: 살면서 미쳐서 집중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겠나. 그런데 연기를 할 때만큼은 배가 고픈지, 어디가 아픈지 모를 정도로 내가 집중하고 있더라. 어느 순간부터는 연기가 삶의 낙처럼 느껴졌다. 집중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 즐거움을 느끼며 연기하다보니, 표현력이 조금 더 넓어진 게 있는 것 같다.

Q. 연기에 집중하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과거를 잠시 돌아보자. ‘도둑들’을 만나기 전까지 몇 년간 활동이 뜸했다. 그 시간에 조금 더 많은 작품을 하지 않은 게 아쉽지는 않나.
전지현: 사실 1년에 한 작품씩은 꾸준히 했다. 출연한 작품이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기억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당시의 나는 20대 중후반에 불과했다. 인생을 길게 봤을 때 시작점에 있다고 생각했기에 조급해 하지 않았다. 아, 이런 아쉬움은 있다. ‘조금 더 내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할 걸’이라는 아쉬움. 분명 그 나이 때에만 표현할 수 있는 연기가 있거든. 그럴 때 또 가장 순수한 연기가 나오는 거고.

Q. ‘엽기적인 그녀’의 엄청난 인기 이후 당신은 해당 영화의 이미지를 반복할 것인가 아닌가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고민이 작품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을 게다. 그런데 지금은 뭐랄까. 발랄한 이미지든, 진중한 이미지든 모두 껴안을 수 있다는 어떤 자신감이 엿보인다.
전지현: 맞다. 결국 답은 자신 안에 있는 것 같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작년과 올해의 느낌이 다를 수 있는데, 그건 책이 변해서가 아니라 내가 변해서다. 마찬가지로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더라도 작년에 표현한 것과 올해 표현한 게 달라지는 건, 내 생각이 달라져서 일게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 더 감정을 다양하고 디테일 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됐다. 나에게 자신감이 엿보인다면, 그 차이가 아닐까 싶다.
전지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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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질문의 연장일 수 있는데, 대중들 역시 어느 순간 전시현에 대해 신뢰를 갖는 것 같다.
전지현:
작품이 잘 돼서다. 좋은 작품 속에서 내가 또 매력적인 역할들을 만나서일 거고. 배우나 감독은 결국 전작에 의해 평가받는 사람들이다.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말해야 하는 존재들이고.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거, 내가 끌리는 작품을 선택한다. 대중이 원하는 것만 할 수는 없지 않나.

Q. 굉장히 확고하게 얘기한다. 스스로가 원하는 작품만 선택해 왔다고.
전지현: 항상 그래왔다.

Q. 그렇다면 최근 작품들이 유독 많은 사랑을 받은 건 왜일까. 당신이 원하는 것과 대중이 원하는 게 일치해 가는 걸까.
전지현: 없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작품을 보는 눈과 관객들의 눈이 많은 부분 맞아 떨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맞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웃음) 너무 어긋나기만 하면 그것도 문제다.

Q. 예상 밖으로 대중들이 좋아해줬던 작품은 뭔가.
전지현: ‘베를린’이다. 련정희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빛이 나는 캐릭터가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베를린’은 좋아하는 감독님(류승완)과 배우들 사이에서 많이 걸 배워가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작품이다. 분량도 많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남자 배우들 사이에서 장치적일 수 있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련정희라는 캐릭터가 생각보다 많은 드라마를 끌고 가면서 배우로서 또 다른 평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나에겐 의외의 상황이었다.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Q. 지금의 자신감과 ‘엽기적인 그녀’로 큰 인기를 얻었을 때의 자신감을 조금 다른가.
전지현: 음…글쎄. 다른 문제, 다른 이야기인 것 같다. 뭐라고 해야 할까…그때는 어렸다? ‘어렸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때는 그냥 눈앞에 있는 일을 잘 하려고만 했지, 무엇이 맞고 틀린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그때와 지금의 자신감의 차이는 거기에서 나오지 않나 싶다 .
전지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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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스타가 아닌 배우가 되길 갈망해 온 걸로 안다. 지금의 당신은 어떤 것 같나.
전지현: 하하. 내 입으로 “스타 전지현이예요”라고 소개하기에는 웃긴 것 같다.(일동 웃음) 그런데 사실, 스타로 불려도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나는 배우도 스타성을 가져야한다고 보니까. 배우가 스타성이 없는 것도 어떻게 보면 안타깝거든. 둘 다 가져 갈 수 있으면 너무 행복한 일이다.

Q. 당신은 국내에서 액션을 멋지게 소화해 내는 드문 여배우다.
전지현: 매일 운동을 해서 그런지 몸에 대한 느낌을 잘 잡는 편이다. 다르게 말하면 몸이 예민하다. 가령 총을 쏠 때 중심을 잡으려면 손끝-발끝이 모두 흐트러지면 안 되는데, 예민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세심하게 잡아 낸다. 어떤 운동을 하냐고? 매일 아침 유산소 운동과 근력운동을 한 시간 반 정도 한다. 액션 영화 ‘블러드’ 때부터 이어 온 습관이다.

Q.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도 전지현을 얘기하는데 빼 놓을 수 없을 거다. 대중이 당신에게 가장 열광하는 건, ‘엽기적인 그녀’ 같은 캐릭터를 연기할 때라는 생각도 들었다.
전지현: 맞다. 천송희 같은 캐릭터. 드라마의 힘을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 ‘해피투게더’ 이후 14년 만의 드라마인데, 나에게는 첫 드라마 주연작이기도 하다.(웃음) ‘별에서 온 그대’의 경우 사실 앞뒤 안 보고 선택한 작품이다. ‘암살’ 준비 전에 시간 여유가 있어서 ‘뭘 할까’ 하다가 운 좋게 만난 작품이다. 김수현 씨와 호흡을 맞춘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무엇보다 박지은 작가님의 느낌이 좋아서 결정했다.

Q. 첫 드라마 주연작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 했다.(웃음) 영화 촬영과는 많이 달랐을 텐데.
전지현: 처음에는 드라마 스크립트 보는 것도 어색했다. 21부를 찍었는데, 1주일에 하루 자고 나머지를 생방송처럼 찍었다. 내가 뭘 하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더라고. 어쨌든 나는 드라마를 찍고 있고 당장 방송은 나가야 하기 때문에, 내가 영화를 찍다가 온 사람이라는 사실은 잊자고 마음먹었다. 이 현장에 완벽하게 적응하자는 생각만 했다. 그러다보니 개인의 삶을 살 시간이 전혀 없었다. 나중에는 그냥 천송이에 ‘빙의’해서 찍게 되더라.(웃음) 천송희 대사가 많아서 외우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데, 어느 순간 책(대본)이 그림처럼 자동으로 떠올랐다. 작가님, 나, 천송이가 한 몸이 된 느낌이었다. (웃음)
전지현(5)
전지현(5)
Q. 생각보다 굉장히 쾌활한 것 같다. 결혼이 끼친 영향인 건가.
전지현: 거꾸로 물어보고 싶은 게, 이전에는 나를 바라보는 잣대가 굉장히 엄격했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식이었다. 어떤 사람은 ‘전지현은 스타지 배우가 아니지 않느냐’고도 했다. 그런데 결혼 후, 사람들의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진 게 사실이다. 결혼 후 작품을 왕성하게 하다 보니, 달라졌다는 말을 듣는 것도 있을 테고. 그런데 나는 기본적인 성향 자체가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원래 그랬다.(웃음)

Q. 당신 말대로 근래 들어 당신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런데 과거엔 달랐다. 당신 스스로 생각하는 전지현과 대중이 생각하는 전지현 사이의 괴리가 꽤 컸다. 왜 그랬다고 보나.
전지현: 작품을 많이 하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배우는 결국 작품을 통해 관객을 만나야 하는데, 이전의 나는 작품 수가 적었다. 그러다보니 다소 멀게 느끼지 않았나 싶다. 최근의 나를 조금 더 가깝게 느끼시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 거다. 다작을 한 게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다작을 한다고 해서 관객들이 무조건 환영하는 건 아닐 게다. 마침 관객들이 사랑해 주는 작품 속에 내가 있었다. 작품 속 캐릭터가 사랑을 받으면서 이전보다 많이들 가깝게 느끼시는 것 같다.

Q. 광고이미지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광고에서의 전지현은 현실에 없는 사람 같기도 하니까.
전지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광고를 찍을 때가 정말 좋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했을 때, 뭐랄까. 나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을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려 카메라 뒤까지 전달하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한다. 그런 마음으로 광고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는다. 내겐 즐거운 일이다.

Q. 타고난 끼인가.
전지현: 그렇게 표현해 준다면, 고맙다.
전지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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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7년간 톱의 자리에 있었다.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전지현: 진짜 17살부터 이 일을 했으니 이젠 ‘배우 전지현’으로 산 세월이 더 길다. 그러니 이제 와서 ‘여배우로 산다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웃기지 않나 싶고.(웃음) 사실 지금은 별 생각 안 하고 편하게 산다. 생각은 오히려 어렸을 때 더 많았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일찍이 결론을 내린 것도 많다. 그때 고민하고 결론 내린 것들이 지금 많은 도움이 되지 않나 싶다. 그리고 어릴 때는 착각을 할 수 있다 ‘나는 너무 특별해’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야’라는 생각들. 그러다보면 주변 사람들과 연락이 끊기기도 하고, 세상이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깨닫는 거지. 그런 생각들이 나를 더 외롭게 한다는 걸.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이제는 카메라 앞에 있을 때만 특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의 나는 굉장히 평범하다. 가끔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평소 뭐 하세요” 하는데, 진짜 특별한 게 없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않나.

Q. 집에선 평범한 주부인건가.
전지현: 그럼. 내가 또 부지런한 스타일이어서 집안일을 쉬지 않고 한다. 생각과 동시에 행동이 나가는 편이라 집이 항상 깔끔하다.(웃음)

Q. 해외 활동 계획은 없나.
전지현: 하면 좋다! 나야 너무 하고 싶다. 그런데 요즘은 한국 콘텐츠가 워낙 좋지 않나.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아시아 사람들도 좋아하는 거라는 공식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거꾸로 좋은 한국작품을 통해 아시아 사람들을 반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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