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정화 기자] ‘60초면 충분한 스토리 내 맘으로 넌 들어왔어’ 누군가가 눈 안에 ‘콕’ 들어오거나 가슴에 ‘콱’ 박히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짧은 시간 동안 이뤄진다. 하루에도 수많은 연예인이 브라운관과 스크린 속에서 웃고 울고 노래하며 우리와 만나지만, 그 중에서도 제대로 ‘필(feel)’ 꽂히는 이들은 손에 꼽힐 정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어느 순간 그야말로 내게로 와 꽃이 된, 꽂힌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번 편은 드라마 속에서 극과 극의 매력을 선보이고 있는 MBC ‘밤을 걷는 선비’의 이준기, tvN ‘오 나의 귀신님’의 박보영, KBS2 ‘너를 기억해’의 박보검이다. 두 얼굴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하나의 캐릭터로 전혀 다른 매력들을 선보이고 있다.

# 이준기, 이보다 ‘딱’일 순 없는 뱀파이어

MBC ‘밤을 걷는 선비’의 이준기
MBC ‘밤을 걷는 선비’의 이준기
이준기에겐 어쩐지 ‘처절함’이란 옷이 잘 어울린다. 그가 연기하는 드라마 속 캐릭터가 아파하고 고통 받을수록 폭발력을 지닌 연기를 볼 수 있게 되니, 이 어찌 좋지 않을 수가.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사랑은 ‘애절함’이 되어 그의 연기를 풍성하게 느끼게 한다. MBC ‘밤을 걷는 선비’에서 이준기가 연기하는 성열이 명희(김소은)를 잃었을 때도, 200년간 뱀파이어로 살아오다 우연히 명희와 꼭 같은 얼굴을 한 혜령(김소은)을 만났을 때도, 처절함과 애절함은 절묘한 콜라보를 이뤄 잊지 못할 장면을 완성했다. 사람도 괴물도 아닌, 뱀파이어 선비로 살아가는 그가 양선(이유비)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는 또 다른 이준기, 또 다른 양선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 순간만큼은 뱀파이어로서는 살생에 대한 욕망을, 인간으로서는 사랑에 대한 본능적인 감정을 끊임없이 억누르며 살아왔을 그의 삶은 상상할 수 없었다. 양선을 향한, 그저 다정하고 따뜻한 눈빛과 행동이 있었을 뿐. 이야기의 전개가 느린 탓에 극의 몰입도가 떨어져가는 와중에도 이준기는 모든 스토리의 개연성을 그의 연기로 설명하며 설득하고 있다.

# 박보영, 무시무시한 저력을 지닌 러블리걸

tvN ‘오 나의 귀신님’의 박보영
tvN ‘오 나의 귀신님’의 박보영
tvN ‘오 나의 귀신님’에 출연 중인 박보영의 사랑스러움이 브라운관에 차고 넘친다. 오죽하면 드라마에서 같이 호흡을 맞추고 있는 조정석이 “너무 귀여워 연기가 힘들다”고 했을까. 그런데, 박보영의 러블리함은 그 자체로도 좋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어 매력적이지만, 그것과 대척되는 지점의 감정을 연기하면서 더욱 빛을 발한다. 소심하고 무기력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극중 캐릭터 나봉선은 박보영의 최근작 ‘경성학교’의 주란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세상과 단절된 듯한 어두운 성격을 지닌 인물이 어떤 계기로 기존의 자신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점에서 꽤나 비슷하다. 그녀는 제로베이스(혹은 마이너스)에서 시작되는 캐릭터의 감정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감정의 최고점으로 단숨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낯설어진다. 그녀의 연기가 너무나 자연스럽기에 박보영이 박보영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얼굴에서 두 사람을 그려낼 수 있는 그녀. 귀여운 눈웃음 속에 굉장한 내공을 숨기고 있는 배우임이 틀림없다.

# 박보검, 슬픔의 결정체를 간직한 남자

KBS2 ‘너를 기억해’의 박보검
KBS2 ‘너를 기억해’의 박보검
몇 ‘분’도 아니었다. 15초 정도의 아주 짧은 순간. KBS2 ‘너를 기억해’ 9화 후반부, 정선호 변호사 역을 맡은 박보검은 농밀한 슬픔의 정서를 섬세하게 꺼내 보였다. 20년 만에 찾은 집에서 그가 형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살아온 세월의 애수 어린 그림자가 눈에 차올랐다. 박보검의 눈빛 연기가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이현(서인국)이 정선호가 자신의 동생 이민임을 알게 된 후 재회하게 되는 12화 속 장면은 어떤가. 상대 배우와 함께 긴장감 있게 호흡을 주고받으며 몰입감 높은 연기를 선보인 박보검은 눈으로 많은 이야기를 전달했다. 눈물을 쏟아내며 무작정 감정을 배설하지 않았다. 형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감정을 시작으로 “찾지도 않았”고 곁에서 끊임없이 맴돌았음에도 “알아보지도 못했”다고 말하며 내보인 형에 대한 애틋한 마음, 이후 “날 이준영에게 보냈어”라며 내비친 서늘함까지, 박보검은 감정의 변곡점을 자연스럽게 지나며 눈빛으로 슬픔의 완급조절을 탁월하게 해냈다. 덕분에 이민이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연민의 감정이 들 수 있었다. 드라마가 절정을 향해 가면 갈수록, 박보검의 연기가 기대되는 이유가 계속 늘어간다.

이정화 기자 lee@
사진제공. KBS, MBC,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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