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이기홍
[텐아시아=정시우 기자]“이기홍 주연의 ‘나를 찾아줘’”

지난 24일 SNS 상에서 화제가 된 키워드다. 이게, 무슨 말일까. 한국계 미국인 배우 이기홍이 새로운 영화에라도 캐스팅 됐다는 의미일까. 아쉽지만 속사정은 쓰리다. 사건의 중심엔 그가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이하 ‘메이즈 러너2’)이 있다. 최근 제작사 20세기폭스는 공식 사이트와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 출연배우 이름을 등재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디에서도 이기홍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팬들은 외쳤다. 이기홍의 ‘나를 찾아줘’라고.

‘메이즈 러너2’는 쫄깃한 긴장감을 선사하며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영화 ‘메이즈 러너’의 속편이다. 1편은 지난해 9월 개봉, 전세계 3억 4,000만 달러라는 수익을 내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 영화의 흥행에 가장 크게 일조한 해외시장은 한국이었다. ‘메이즈 러너’의 국내 관객수는 전국 281만 명. 북미를 제외한 최고의 흥행이 한국에서 터졌다. 당시 평단은, ‘메이즈 러너’의 한국 흥행 요인 중 하나로 이기홍을 언급했다. 미로를 탐사하는 러너 민호 역을 맡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배우 이기홍에 대한 관심이 흥행을 도왔다는 분석이었다.

‘메이즈러너2′ 홍보 중인 이기홍
‘메이즈러너2′ 홍보 중인 이기홍

그래서다. 2편의 캐스트 목록에서 이기홍이 빠진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은. 이기홍은 1편에서 주연배우 딜런 오브라이언에 버금가는 분량과 존재감을 보인 배우다. 그렇다면 2편에서 그의 비중이 단역 수준으로 줄어든 것일까. 적어도 영화 예고편을 보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이기홍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영화 곳곳을 달리고 또 달린다.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2편에서의 더 많은 활약을 기대해 달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으니, 주조연급 인물의 캐스트 목록에서 빠진 것은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 한국 팬들, LTE급 해결사

이 상황에서 놀라웠던 것은 한국 팬들의 민첩한 행동이다. 영화 캐스트 목록에 이기홍이 빠진 것을 확인한 국내 팬들은 폭스 측에 해당 사건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는 멘션을 보내기 시작했다.(역시, SNS시대!)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논란도 일었다. ‘메이즈 러너’의 원작자 제임스 대시너가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린 것이다. 일부 팬들은 이기홍이 동양인이기 때문에 목록에 빠진 것이 아니냐며 항의했다. 마침 폭스가 1편에서 이기홍을 빼고 프리미엄 행사를 다닌 전적이 더해져 논란을 부추겼다.

제임스 대시너와 폭스의 대응은 한국 팬들 못지않게 민첩했다. 논란이 일어나자, 대시너와 폭스는 바로 사건에 반응했다. 현재 ‘메이즈 러너2’ 홈페이지에는 이기홍의 이름이 업데이트 된 상황. 맞다. 한국 팬들의 목소리에 폭스가 바로 응답을 한 것이다. 하루 사이에.

수정 전(왼쪽)과 후
수정 전(왼쪽)과 후

사건은 해결됐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정말 이기홍이 인종차별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20세기폭스의 실수였을까. 일단 원작자 제임스 대시너를 살펴보자.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친애하는 한국 팬 여러분, 이 모든 것은 명백한 오해”라며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대시너에게는 한국인과 결혼한 조카가 있는데, 극중 민호는 거기에서 따온 이름으로 알려진다. 평소 이기홍이 대시너에게 감사의 말을 표해 온 것을 감안하면, 그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가는 건 여러모로 위험해 보인다.

#폭스코리아 측 “이기홍은 너무나 중요한 배우!”

그렇다면 폭스의 단순 실수일까. 폭스 본사가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은 가운데, 폭스코리아는 25일 텐아시아와의 통화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누락된 정보를 국내 팬들이 나서서 수정해 준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전하며 일부에서 이는 인종차별논란이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폭스코리아 측은 “얼마 전 폭스 본사에서 이기홍과 딜런 오브라이언이 영화 예고편을 함께 보며 환호하는 모습을 깜짝 공개한 바 있다. 그런 영상에 아무나 출연시키지 않지 않나. 이기홍은 본사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배우다. 그가 아시아에서 인기가 많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번 일로 큰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메이즈 러너2’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이 폭스의 (작다고 하기엔 너무나 큰) 실수에서 비롯된 해프닝이길. 그들이 (영화에서) 외치는 자유와 평등이 거꾸로 가지 않기를 바란다.

글. 정시우
사진. ‘메이즈러너’ 스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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