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수정 기자]
박강성 : 예전에는 이런 인터뷰를 많이 하지 않았다. 저절로 노래가 확산이 됐다. 그래서 지금이 낯설기도 하다. 제일 즐거운 것은 지금 현재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 생활 전반적으로 활기가 넘친다는 것이다. 원래는 작년에 나왔어야 하는데 몸 컨디션이 조금 좋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나오게 됐다.
Q. 고민 끝에 소통의 폭을 넓히기 위해 싱글 발표를 결심했다고 들었다. 요즘 음악 시장에 대한 고민이 많이 보인다.
박강성 : 트렌드니까, 트렌드를 역행하고 간다는 것은 조금 그렇다. 정규 앨범은 이제 의미가 없다. 12곡이나 실어서 모두 타이틀곡이 되는 것이 아니고, 들을만한 곡 이외에는 버릴 것이 많으니 경제적으로 손해다. 내심으로는 그게 아쉽다. 원래 12곡을 실으면서 나의 정체성이 드러낼 수 있는데 말이다.
Q. 그렇다면 신곡 ‘목숨이 건다’는 고심 끝에 고른 한 곡이겠다.
박강성 : 1년 반전에 곡을 받았을 때 슬로우로 가려고 생각했다. 나는 ‘문밖에 있는 그대’, ‘장난감 병정’가 많이 알려진 가수다. 목소리가 짙은 음색이라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다른 곡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곡이 안 나오더라. 이 곡도 그런 감성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던 있던 찰나에 빠른 곡이기 때문에 변신을 하려면 이게 낫겠다 싶었다. 본의 아니게 변신 아닌 변신이 됐다.
Q. 변신 아닌 변신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박강성 : 노래를 부를 때 연습을 많이 하고 녹음실을 가는데 이번엔 멜로디만 겨우 익혔다. 연습을 차라리 하고 오지 말라고 하더라. 연습을 하면 내 습관에 담겨있으니까. 차라리 와서 작곡가가 원하는 대로 하자. 작곡가가 나를 또 잘 아는 사람이고. 녹음실에서 노래하면서 변신 아닌 변신을 하게 됐다.
Q. 작곡가가 어떤 점을 요구했나?
박강성 : 목소리에 기교를 담지 말라고. 내지르는 것을 록스럽지 않게 절제해야 한다고 하더라. 나는 표현을 짙게 하는 편인데 그런 습관을 다 뺐다. 고집을 꺾는 게 어렵지 않았다.
Q. 젊은 층과 소통하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박강성 : 젊은층은 10~20대를 말하는데 나는 30대를 말한다. 그냥 조금만 젊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내 나름대로 팬층을 겨냥한 것이다. 40대에서 30대를 내려가려는 과정이다.
Q. 30대로 내려가는 과정과 도전도 대단하다. 젊은 감각을 유지해야 하는데 노하우가 있는가?
박강성 : 일단 술, 담배는 하지 않는다. 연습은 꾸준하게 하는 거니까. 너무 자극적인 것을 먹거나 과식하는 등 생활에서 많이 지키려고 한다. 또 운동 마니아다. 복싱도 좀 하고, 헬스는 기본적으로 하고, 배드민턴, 자전거 등등 생활체육을 즐긴다. Q. 현재 직접 운영 중인 중식당에서 한 달에 한 번 공연을 개최한다고 들었다. 오래된 팬들이 많이 찾아오겠다.
박강성 : 15년 전에 팬을 처음 만났는데 지금까지 만나니까 아이도 데려온다. 아가씨였다가 결혼한 사람도 있고, 품에 안고 왔던 애들이 고등학생, 대학생이 돼 군대를 간다고도 하더라. 하하. 공연은 내가 노래를 오랫동안 하니까 레파토리가 많아서 적절히 섞는다. 통기타도 가끔씩 잡는데 통기타 하나로 감성을 자극한다. 저를 좋아하는 팬층이 통기타에 아련한 추억을 갖고 있다.
Q. ‘미사리의 서태지’라고 불릴 만큼 라이브 카페에서 큰 인기를 얻었지 않나.
박강성 : 나는 그 인기를 얻는 과정을 못 느꼈다. 그때는 포기하고 초야에 묻혀 사는 시기였다. 힘도 다 빠지고, 노래에 대한 열정도 죽어있을 때였다. 팬들한테 외면을 받았다. 인기가 미미하고, 다른 가수에 비해서 차이가 나다보니까 좌절을 했다. 청평에 가서 몇 년 숨어 있었다. 거기서 카페를 하면서 노래를 하는데 점점 달라지더라. 출연 요청이 오고, 나를 어떻게 여기 있는지 알고 찾아오는지 점점 손님이 가득 찼다. ‘내 노래가 죽지 않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희망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어느 날 확 하고 갑자기 터졌다. 인기가 붙는 속도가 빨랐다.
Q. 좌절을 할 때 카페 공연을 시작했다고 했다. 노래에 대한 열정도 없었을 때인데 공연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박강성 : 카페 공연을 시작한 계기가 안 하면 먹고 살 수가 없으니까. 배운 게 그거 밖에 없었다. 대신 나는 생활이 어렵더라도 한 군데에만 있으려고 했다. 한 군데에서는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세 군데에 쏟을 것을 한 곳에 쏟기 때문에 자부심이 생겼다. 또 한 군데에서 하니까 상징이 생기게 됐다.
Q. 다시 노래에 대한 열정이 생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박강성 : 열정이 완전히 죽어있지는 않았다. 당분간 숨어 있어야 할 때인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 시기가 2년 정도 됐다. 2년 동안 인기가 커졌더라. 전혀 모르고 있다가 카페에서 요청이 들어와 노래를 했는데 연일 매진이 됐다. 그때부터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Q. ‘목숨을 건다’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어떤가?
박강성 : 잘 모르겠다. 팬들은 변신 아닌 변신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한다. 박강성 씨가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에 놀란다. 늘 발라드에 강한 가수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약간 의아한 마음도 갖고 그래도 다 좋다는 반응들이다. 하하. 결국 가수는 라이브로 소통을 해야 하기 때문에 라이브 공연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겠다.
Q. 변신 속에서도 자기만의 것을 찾는다는 게 참 힘들 것 같다.
박강성 : 자기 것을 계속 찾는 게 힘들다. 아이디어는 갑자기 나오는 것이다. 준비를 계속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반짝한다. 거기에 집중력이 떨어지면 끝난다. 나는 누구 것을 닮고 싶지도 않고, 트렌드를 쫓아가기는 하나, 나는 그냥 나다. 이번 앨범은 조금만 젊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있으나 절대 젊어질 수가 없다. 작곡가의 것을 반영했으나 작곡가도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없애지 않고, 서로 서로 맞춰서 나온 것이다. 100% 변신은 있을 수 없다.
Q. ‘목숨을 건다’는 어떤 활동을 계획 중인가?
박강성 : 가을에 콘서트를 생각하고 있다. 콘서트는 설렘이자 두려움이다. ‘잘못하면 어떡하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어떡하지’ 이런 두려움. 거기서 내가 준비한 프로그램대로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저 사람들이 내 공연을 보고 지루하면 어떡하지. 내가 평소에 웃긴 말도 좀 알고, 그런 것을 준비를 해놓는다. 그런 이야기를 한 번 꺼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있다. 어느 날은 빵 터진다. 대화하고, 그날 그날 변수에 따라 바뀐다. 콘셉트들이 바뀐다. 때로는 콘서트 레파토리를 바꾸기도 한다.
Q. 계속된 도전과 노력을 하고 있다. 20년 뒤에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
박강성 : 그때도 가수를 하고 싶다. 그때의 연륜이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지금은 과정이고, 음악을 달관한 느낌, 노래를 편하게 부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도 내가 내 목소리에 힘이 있어서 부담스러울 수 때도 있는데 부드럽고 온유하고, 이 사람 노래는 따뜻하고 좋다는 그런 게 됐으면 좋겠다. 오래 오래 하기 위해서 다 준비하고 있다.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 그거니까. 70세가 넘었을 때도 콘서트를 해야지!
Q. 박강성만의 변신이 담긴 ‘목숨을 건다’를 듣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박강성 : 희망을 갖기 바란다.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노래는 그냥 즐기면 된다. 사람이 세상살이가 힘들지 않나. 노래가 지친 일상을 위로하면, 그러면 됐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가수의 역할은 그거니까.
⇒ 데뷔 33주년 박강성이 후배 가수들에 건네는 조언 (인터뷰②)
박수정 기자 soverus@
사진. 보아즈엔터테인먼트
가수 박강성을 만난 건 지난 7월 초였다. ‘미사리의 서태지’라는 박강성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지만, 7080세대가 아니기에 낯설음과 생소함이 존재했다. 게다가 그가 발표한 신곡 ‘목숨을 건다’는 히트곡 ‘장난감 병정’과 ‘문밖에 있는 그대’의 발라드와 다른 장르의 곡. 애절하고 짙은 발라드를 노래하던 박강성은 ‘목숨을 건다’에서 록을 접목 시켜 빠른 곡을 새롭게 선보였다. 그래서 궁금했다. 1982년에 데뷔해 어느덧 데뷔 30주년을 훌쩍 넘은 가수가 선보이는 변신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트렌드를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것을 찾으려는 박강성의 모습에 절로 존경심이 들었다.Q. 오랜만에 신곡을 발표했다. 활동하면서 예전과 달라진 점을 느낀 것이 있나?
박강성 : 예전에는 이런 인터뷰를 많이 하지 않았다. 저절로 노래가 확산이 됐다. 그래서 지금이 낯설기도 하다. 제일 즐거운 것은 지금 현재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 생활 전반적으로 활기가 넘친다는 것이다. 원래는 작년에 나왔어야 하는데 몸 컨디션이 조금 좋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나오게 됐다.
Q. 고민 끝에 소통의 폭을 넓히기 위해 싱글 발표를 결심했다고 들었다. 요즘 음악 시장에 대한 고민이 많이 보인다.
박강성 : 트렌드니까, 트렌드를 역행하고 간다는 것은 조금 그렇다. 정규 앨범은 이제 의미가 없다. 12곡이나 실어서 모두 타이틀곡이 되는 것이 아니고, 들을만한 곡 이외에는 버릴 것이 많으니 경제적으로 손해다. 내심으로는 그게 아쉽다. 원래 12곡을 실으면서 나의 정체성이 드러낼 수 있는데 말이다.
Q. 그렇다면 신곡 ‘목숨이 건다’는 고심 끝에 고른 한 곡이겠다.
박강성 : 1년 반전에 곡을 받았을 때 슬로우로 가려고 생각했다. 나는 ‘문밖에 있는 그대’, ‘장난감 병정’가 많이 알려진 가수다. 목소리가 짙은 음색이라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다른 곡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곡이 안 나오더라. 이 곡도 그런 감성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던 있던 찰나에 빠른 곡이기 때문에 변신을 하려면 이게 낫겠다 싶었다. 본의 아니게 변신 아닌 변신이 됐다.
Q. 변신 아닌 변신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박강성 : 노래를 부를 때 연습을 많이 하고 녹음실을 가는데 이번엔 멜로디만 겨우 익혔다. 연습을 차라리 하고 오지 말라고 하더라. 연습을 하면 내 습관에 담겨있으니까. 차라리 와서 작곡가가 원하는 대로 하자. 작곡가가 나를 또 잘 아는 사람이고. 녹음실에서 노래하면서 변신 아닌 변신을 하게 됐다.
Q. 작곡가가 어떤 점을 요구했나?
박강성 : 목소리에 기교를 담지 말라고. 내지르는 것을 록스럽지 않게 절제해야 한다고 하더라. 나는 표현을 짙게 하는 편인데 그런 습관을 다 뺐다. 고집을 꺾는 게 어렵지 않았다.
Q. 젊은 층과 소통하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박강성 : 젊은층은 10~20대를 말하는데 나는 30대를 말한다. 그냥 조금만 젊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내 나름대로 팬층을 겨냥한 것이다. 40대에서 30대를 내려가려는 과정이다.
Q. 30대로 내려가는 과정과 도전도 대단하다. 젊은 감각을 유지해야 하는데 노하우가 있는가?
박강성 : 일단 술, 담배는 하지 않는다. 연습은 꾸준하게 하는 거니까. 너무 자극적인 것을 먹거나 과식하는 등 생활에서 많이 지키려고 한다. 또 운동 마니아다. 복싱도 좀 하고, 헬스는 기본적으로 하고, 배드민턴, 자전거 등등 생활체육을 즐긴다. Q. 현재 직접 운영 중인 중식당에서 한 달에 한 번 공연을 개최한다고 들었다. 오래된 팬들이 많이 찾아오겠다.
박강성 : 15년 전에 팬을 처음 만났는데 지금까지 만나니까 아이도 데려온다. 아가씨였다가 결혼한 사람도 있고, 품에 안고 왔던 애들이 고등학생, 대학생이 돼 군대를 간다고도 하더라. 하하. 공연은 내가 노래를 오랫동안 하니까 레파토리가 많아서 적절히 섞는다. 통기타도 가끔씩 잡는데 통기타 하나로 감성을 자극한다. 저를 좋아하는 팬층이 통기타에 아련한 추억을 갖고 있다.
Q. ‘미사리의 서태지’라고 불릴 만큼 라이브 카페에서 큰 인기를 얻었지 않나.
박강성 : 나는 그 인기를 얻는 과정을 못 느꼈다. 그때는 포기하고 초야에 묻혀 사는 시기였다. 힘도 다 빠지고, 노래에 대한 열정도 죽어있을 때였다. 팬들한테 외면을 받았다. 인기가 미미하고, 다른 가수에 비해서 차이가 나다보니까 좌절을 했다. 청평에 가서 몇 년 숨어 있었다. 거기서 카페를 하면서 노래를 하는데 점점 달라지더라. 출연 요청이 오고, 나를 어떻게 여기 있는지 알고 찾아오는지 점점 손님이 가득 찼다. ‘내 노래가 죽지 않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희망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어느 날 확 하고 갑자기 터졌다. 인기가 붙는 속도가 빨랐다.
Q. 좌절을 할 때 카페 공연을 시작했다고 했다. 노래에 대한 열정도 없었을 때인데 공연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박강성 : 카페 공연을 시작한 계기가 안 하면 먹고 살 수가 없으니까. 배운 게 그거 밖에 없었다. 대신 나는 생활이 어렵더라도 한 군데에만 있으려고 했다. 한 군데에서는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세 군데에 쏟을 것을 한 곳에 쏟기 때문에 자부심이 생겼다. 또 한 군데에서 하니까 상징이 생기게 됐다.
Q. 다시 노래에 대한 열정이 생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박강성 : 열정이 완전히 죽어있지는 않았다. 당분간 숨어 있어야 할 때인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 시기가 2년 정도 됐다. 2년 동안 인기가 커졌더라. 전혀 모르고 있다가 카페에서 요청이 들어와 노래를 했는데 연일 매진이 됐다. 그때부터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Q. ‘목숨을 건다’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어떤가?
박강성 : 잘 모르겠다. 팬들은 변신 아닌 변신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한다. 박강성 씨가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에 놀란다. 늘 발라드에 강한 가수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약간 의아한 마음도 갖고 그래도 다 좋다는 반응들이다. 하하. 결국 가수는 라이브로 소통을 해야 하기 때문에 라이브 공연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겠다.
Q. 변신 속에서도 자기만의 것을 찾는다는 게 참 힘들 것 같다.
박강성 : 자기 것을 계속 찾는 게 힘들다. 아이디어는 갑자기 나오는 것이다. 준비를 계속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반짝한다. 거기에 집중력이 떨어지면 끝난다. 나는 누구 것을 닮고 싶지도 않고, 트렌드를 쫓아가기는 하나, 나는 그냥 나다. 이번 앨범은 조금만 젊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있으나 절대 젊어질 수가 없다. 작곡가의 것을 반영했으나 작곡가도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없애지 않고, 서로 서로 맞춰서 나온 것이다. 100% 변신은 있을 수 없다.
Q. ‘목숨을 건다’는 어떤 활동을 계획 중인가?
박강성 : 가을에 콘서트를 생각하고 있다. 콘서트는 설렘이자 두려움이다. ‘잘못하면 어떡하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어떡하지’ 이런 두려움. 거기서 내가 준비한 프로그램대로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저 사람들이 내 공연을 보고 지루하면 어떡하지. 내가 평소에 웃긴 말도 좀 알고, 그런 것을 준비를 해놓는다. 그런 이야기를 한 번 꺼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있다. 어느 날은 빵 터진다. 대화하고, 그날 그날 변수에 따라 바뀐다. 콘셉트들이 바뀐다. 때로는 콘서트 레파토리를 바꾸기도 한다.
Q. 계속된 도전과 노력을 하고 있다. 20년 뒤에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
박강성 : 그때도 가수를 하고 싶다. 그때의 연륜이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지금은 과정이고, 음악을 달관한 느낌, 노래를 편하게 부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도 내가 내 목소리에 힘이 있어서 부담스러울 수 때도 있는데 부드럽고 온유하고, 이 사람 노래는 따뜻하고 좋다는 그런 게 됐으면 좋겠다. 오래 오래 하기 위해서 다 준비하고 있다.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 그거니까. 70세가 넘었을 때도 콘서트를 해야지!
Q. 박강성만의 변신이 담긴 ‘목숨을 건다’를 듣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박강성 : 희망을 갖기 바란다.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노래는 그냥 즐기면 된다. 사람이 세상살이가 힘들지 않나. 노래가 지친 일상을 위로하면, 그러면 됐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가수의 역할은 그거니까.
⇒ 데뷔 33주년 박강성이 후배 가수들에 건네는 조언 (인터뷰②)
박수정 기자 soverus@
사진. 보아즈엔터테인먼트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